시골에 온지 4개월째,
한가하던 시골 생활이 겨울준비를 하면서부터
바빠지기 시작하더니 다시 한가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남에게 뒤질세라 이사 오고 바삐 심은 배추와 무우, 갓, 알타리로
김장을 했습니다. 너무 늦게 심어 김장에는 택도 없을 거라던 배추가
그래도 좋은 날씨 덕에 절반은 배추 모양새를 잡아줘서 할 수 있었습니다.
심어서 길러놨으니 어찌 되었든 해야 하더라구요.
손바닥만한 무우 가지고 동치미도 담아보고, 손가락만한 알타리 가지고 알타리김치도 했습니다.
하면서 드는 생각, '에고, 사 먹는 것이 최고구먼'.
그래도 나름 기특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냥 나만의 수고로 된 것이 아니어요.
11월 초 추위가 한 번 바짝 왔을 때, 무우가 얼까봐 남들 하는 대로 비닐도 덮어주고
신경 꽤나 쓰고 있었는데 하필 온 가족이 집을 비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밤 늦게 도착했는데,
남편이 밭이 걱정돼서 갔다 오더니, '무우가 없어졌다'합니다. 설마...
이웃집에서 날이 너무 추워지는데 밭 주인들은 온데간데 없고 그냥 놔두면 얼 것 같고
보다못해 무우를 뽑아 한쪽에 쌓아놓고 비닐로 두겹세겹 덮어놓으셨던 겁니다.
이건 이웃이 이사온 것이 아니라 혹이 하나 붙은 셈입니다.
혹이거나 말거나 거기에 딱 달라붙어 있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 중에 방법이니까요.
거의 모든 것이 처음이어서 아무리 옆에서 도와주셔도 헛점투성입니다.
워낙 이 곳 추위에 대해 강조를 들었던 바, 사실 그 두려움이 상당히 큽니다.
큰 마트에서 파는 겨울 준비용 문풍지도 종류별로 사서 이것 저것 다 써보고
창을 크게 낸 것을 후회하면서 틈 막느라 신경쓰죠, 서울을 오고가고 드는 기름만도 만만찮은데
기름보일러까지 가동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나무를 해나를까 고민하죠, 바쁩니다.
옆집에 쌓여있는 나무만 보면 부러운 눈을 숨길 수가 없어요. 아무리 딱 달라 붙어있는다 하더라도
그 나무 달라 할 수는 없쟎아요~ㅋ.
거기다 거실에 화목난로 하나 해놓고 설치 미숙으로 고생하고
바싹 마른 나무가 없다보니 나오는 연기 때문에 속상하고
ㅋㅋ 이제는 좀 적응 중입니다.
나무만 있으면 너무 따뜻해요. 근데 그 난로가 나무먹는 하마에요^^.
다행히 이 마을에 먼저 귀농하신 분의 도움으로
온 가족 하루 품 팔아 그 분 산에 쓰러진 나무를 베다가 지금까지 연명(?)하고 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날 좋은 그 가을 날에 차곡차곡 나무해다가 쌓았어야 했는데...
내년에는 일년 내내 나무할 수 있을 때마다 가져다 놔야겠다고 남편과 다짐을 했답니다^^.
춥지만 따스한 날에는 지형이와 강아지 2마리와 산책합니다.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지요.
지난 번 새끼 강아지는 이제 제법 컸구요. 그 사이 남편 친구의 집들이 선물로 온
토종 진돗개도 비슷합니다. 둘이 어찌나 친하면서도 싸우는지 너무 귀여워요.
지금도 집에 안들어가고 밖에서 서로 의지가지 포개져서 자고 있습니다.
똥개 이름은 장군이, 진돗개 이름은 봉남이입니다.
장군이는 식탐이 심하고 촐랑촐랑대고, 봉남이는 의젓해요. 그래도 음식 쓰레기장 앞에서는
둘다 똑같아집니다.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안겨주는 놈들이에요.
이놈들 때문에 시골에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아쉬운 것은 풀어놓고 키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밭에 마늘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피해줄까봐이기도 하구요, 좀 크니까 거름자리 뒤지고 다녀서이기도 하구요.
음, 또 주저리했습니다.
스스로도 그동안의 생활을 정리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또, 이 번 겨울은 내년 봄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여러가지를 공부하고 계획하고 보내야 할 것같아요.
산책하면서 지형이랑 강아지들 찍은 사진 올리고 싶은데 처음이라 잘 될지 모르겠당.
한 2개월 후에나 또 보고하겠습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그래도 봐주셈^^.
첫댓글 우메 부러운거~.. 도심가로등 불빛아래서 밤인지 낮인지 구별못하고 무지 바쁜듯이 살아가는 저보다 자연의 빛으로 살아가는 지형맘이 더 알차게 살아가고 있으시네요... 지형이의 해맑은 얼굴이 안그래도 멋진 얼굴이 더 멋져 보입니다. 봄준비를 벌써 하신다니 역시 자연은 사람을 잘 이끌어 주는 것 같아요. 지금 이시각이 지나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이 자연과의 일이니.. 어제도 내일도 생각할 필요없이 지금 이 시각에 집중해서 살아야하는데....
저도 주저리주저리했네요..반가워서...
승엽맘! ㅋ 부럽지라잉~. 덕분에 김장 잘했습니다. 봄에 먹을 김치는 따로 양념했는데 막판에 속이 모자라 거의 비볐댔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용. 전화 못했는데, 여기서 인사함당^^
무엇보다도 지형이 모습 속에 행복 가득합니다... 얼굴에 적당이 살이 붙으니 뭐랄까 듬직한 청년으로 보이네요 ..고녀석들 너무너무 구엽네요 글구 좋은 이웃을 두셔서 부럽고 또 직접 키우고 담그셨다는 말씀에 감동 두배입니다 .. 나무패기 프로젝트를 개설하심이 힘이 남아도는 젊은 청년들 (그 속에 큰아이 의한이도 포함해서 ) 삼겹살석쇠구이로 배를 채우고 산으로 가서 나뭇가지 줍기,나무패기 등을 하는 건 어떨까요 얼마전에 수지초에서 축구감독님이 스카웃 제안을 하는데 마다하더군요 의한인 축구를 즐기고 싶다고...참 대견합니다 ..요즘 남아도는 힘을 어쩔 줄 몰라 방황하는 의한에게 일거리 주심 어떨까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