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 기대지 않고 재산 다 쓰겠다"… 셀프부양 시대로 [靑노년이 미래다 (2)]
일하는 노인 72% 역대 최고 주택연금 가입 13만명 돌파
정년 60→ 65세 공감대 확산 퇴직 후 재고용 논의도 활발
지난해 은퇴하고 지방으로 이사를 한 김씨 부부는 주말에 방문한 아들과 한바탕 말다툼을 했다. 결혼을 앞둔 아들이 기존에 부모님이 살던 서울집을 증여해주거나, 신혼집으로 쓸 수 있을지 물어봤기 때문이다. 김씨는 "서울집은 월세를 받아서 노후에 쓸 것"이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아들이 실망한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씨는 "차후 죽어서 상속은 할지라도, 생전에는 계획이 없다"면서 "그 대신 노후에 아들에게 손 벌리지 않을 자신은 있다"고 말했다.
능력을 갖춘 젊은 노인들이 과거와 달리 은퇴 후에도 자립적으로 경제생활을 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연금이나 부동산 등을 통해 이미 노후대책을 세워두거나, 지속적으로 일을 하려는 '셀프 부양족'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따라 현재의 정년을 연장하거나, 계속고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4명 중 1명 "재산, 다 쓰겠다"
5일 보건복지부의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희망하는 재산 상속방식을 묻는 질문에 4명 중 1명의 노인(24.2%)은 자신과 배우자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답했다. 2009년만 해도 한자릿수(9%)였지만 지속적으로 그 비중이 오른 것이다.
특히 장남에게 전부 혹은 더 많이 상속하겠다는 비율은 2009년 23.3%에서 2023년 6.5%로 떨어지며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다. 과거에는 늙은 부모님을 장남이 모시고 살면서 부양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실제 노인들 중 자녀동거 가구는 10.3%에 불과하다. 10년 전인 2014년만 해도 28.4%였는데 비율이 18.4%p나 떨어졌다.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1인 가구도 늘어나는 추세다. 2023년 기준 1인가구(독거노인) 비율은 32.8%로 3년 전인 2020년(19.8%)보다도 13%p가량 높아졌다.
주택연금 가입자 증가세도 이 같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주택연금은 집을 담보로 제공하고, 내 집에 계속 살면서 평생 동안 매월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노후의 주거안정과 노후비용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주택연금 연간 누적가입자 수는 2022년 10만명을 돌파한 이후 2024년 10월 기준 13만3354명으로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 주택연금을 가입할 수 있는 주택가격 상한선이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완화되는 등 가입조건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정년연장·계속고용 논의 고조
연금뿐만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위해 일자리를 찾는 노년층도 늘고 있다.
통계청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고령자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71.6%에 이른다.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다. 60세 이상만 봐도 경제활동 참가율은 47.3%에 달한다. 이에 따라 노인가구 소득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23년 노인가구의 연간소득은 3469만원으로 7년 전인 2590만원보다 879만원 증가했으며, 연간 개인소득도 같은 기간 1177만원에서 2164만원으로 1000만원가량 늘었다.
EBS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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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들의 경제활동이 늘면서 계속고용과 관련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그러나 노사 간 이견이 아직까지 첨예하다. 노동계는 65세까지 법정정년 연장을, 경영계는 정년퇴직 후 재고용하는 방식 도입을 각각 주장하고 있다.
건국대 경영학과 윤동열 교수는 "노년기 장기화에 따른 소득보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금을 포함한 개인소득 보장체계를 강화하는 방안과 더불어 고령자의 경제활동을 촉진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계속고용 문제는 단순히 고령자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직결된 구조개혁 과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인구고령화는 단순히 생산연령인구 감소, 노인부양비 증가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연령대가 더 다양해지고, 이전보다 다양한 세대가 함께 일하는 일터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승호 연구위원은 최근 '고령자 노동시장정책의 개선 방향' 보고서를 통해 "청년과 고령 세대의 일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가치관 등의 차이로 인한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상생을 도모하기 위한 변화가 모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aber@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