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호흡법! 어느 게 나에게 맞을까?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호흡을 통해 생명을 유지한다고
보아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 인체가 소중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숨, 즉 호흡이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10분 이상 숨을 쉬지 않고
견뎌낼 사람은 많지 않을 터,
그만큼 호흡은 우리 생명력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어떻게 하면 깊고 고요한 호흡을 할 수 있는가는
몸과 마음 다스리기에 달려 있다.
즉 심신이 안정되면 호흡 또한 몸과 마음처럼 고요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곧 잠의마법에서 행하는 주요한 내용 중 하나이다.
호흡 조절은 또한 몸과 마음을 운용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면접 등과 같이 쉽게 긴장할 수 있는 상태에서
몇 번의 호흡조절만으로도 일시적으로나마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호흡은 우리 몸과 마음을 조절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 말은 반대로 호흡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 현재의 몸과 마음 상태를 가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들숨이 길다는 것은 기력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날숨이 길다는 것은 에너지가 과잉현상을 일으켜
몸이 흥분되어 있다는 뜻이다.
호흡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일상적으로 코를 통해 숨 쉬는 폐호흡과
피부의 모공을 통해서 미미하게 하는 피부호흡이다.
폐호흡은 일반적으로 쉽게 수긍하지만
피부호흡의 중요성은 간과하기 쉽다.
복부 전체를 휘돌고 있는 대장은
허파를 통해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배의 들고 남을 통해 피부호흡을 주관한다.
즉 복식호흡은 단지 폐를 통한 호흡만이 아니라
피부의 수많은 모공을 통해서 동시에 호흡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피부도 노화되어 모공을 통한 피부호흡이 줄어드는데,
그에 따라 복식호흡도 잘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유아기 때는 특별히 수련을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복식호흡이 이루어지는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상부로 올라가 흉식 호흡을 하게 되고,
종국에는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게 되면 생명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호흡을 통해 우리 인체는 무엇을 얻는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 단지 공기 중의 산소를 흡입하고
체내에 쌓인 이산화탄소와 같은 탁기만을 배출하는 게 아니다.
바로 호흡을 통해 공간 에너지인 기(氣)를 흡입하는 것이다.
동서양 공히 호흡법은 사람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래서 수련 입문자들이 가장 혼란스러워 하는 게 호흡법이다.
어느 사람은 이렇게 하라 하고, 또 어떤 책에는 저래하라는 등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게 맞다.
왜냐면 수련자 개개인이 자신의 호흡을 관찰해서 얻은
체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아두어야 할 게 있다.
호흡은 현재 내 몸의 상태를 말해주는 ‘잣대’라는 점이다.
이처럼 ‘호흡만큼 자신의 현재 몸 상태를 잘 반영하는 것도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자기의 호흡을 잘 관찰해보면
몸의 상태를 알 수 있는 답이 거기에 있다.
그래서 호흡의 기준점을 자신의 몸에서 찾아야지
다른 이가 주장하는 것을 무작정 따라하다가는 다치는 수가 있다.
호흡은 하루에도 수시로 변한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호흡법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최대한 편안한 상태로 누워서 자신의 들숨과 날숨을 지켜보면
매양 같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호흡을 조절할 게 아니라
고요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이완되는
유익한 현상들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들숨과 날숨이 거칠어도
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고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호흡 역시 편안해지면서 가늘고 길어진다.
생명력 유지에 필수적인 호흡법은 거북이를 닮을 것을 권유한다.
장수동물 중에서도 가장 오래 사는 것으로 알려진
거북이의 가장 큰 특징을 호흡에 있다고 파악한 것이다.
호흡을 하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가늘고 길게 하는 것으로 알려진 거북이!
호흡조절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이 닮고자 하는 호흡의 대표주자이다.
다양한 호흡법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수련의 목적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우리 몸의 주인인
마음이 깨어있음을 알아차리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자연스럽게
몸을 통한 호흡 또한 고요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호흡은 인위적으로 조종할 게 아니라
그저 일관된 마음으로 들고 나는 숨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출처 : 지리산 천년 3암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