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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
일 자 |
주제 및 강의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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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9월 30일 목요일 |
〔개강식 및 공개강의〕 1. 일본의 반도식민사관과 중국의 동북공정 극복의 길 |
교재 53p〜 |
2 |
10월 5일 화요일 |
1. 상고사의 신화적 역사관 극복 2. 하느님의 삼신(三神)과 역사인물의 삼성(三聖) |
교재 80p〜 |
3 |
10월 7일 목요일 |
1. 한인천제와 한국(桓國)의 성립 2. 삼국유사 고조선 편의 홍익인간의 재 발견 |
교재 113p〜 |
4 |
10월14일 화요일 |
1. 최초의 민족이동 및 한웅천왕과 신시배달국 2.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편의 신화적해석의 문제점 |
교재 130p〜 |
5 |
10월16일 목요일 |
1. 배달국을 계승한 조선(朝鮮)의 성립과 단군왕검 황제 2. 대부여의 성립과 삼한(三韓) 및 삼조선의 관계 |
교재 192p〜 |
6 |
10월19일 화요일 |
1. 해모수가 이룩한 북부여와 고주몽의 고구려와의 관계 2. 특강 : |
교재 306p〜 |
7 |
10월21일 목요일 |
1. 소도경전(蘇塗經典)의 천부경(天符經) 2. 소도경전의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叅佺戒經) |
교재 330p〜 |
8 |
10월26일 화요일 |
1. 문명이동사(文明移動史)로 본 대한민국의 미래 〔수료식〕 |
교재 367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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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대학 수강 및 연수신청은 010-7587-5768 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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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시간 매주(화, 목요일) 오후 6시 〜 8시 (2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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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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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 한인개국 7만년 한민족의 대륙역사 (송부웅 편저) 수강료 : 무료 단, 교재(매일 프린트 교재 포함)대는 본인부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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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사랑의 길은 국사를 아는데 있다. 국사를 알면 조상을 알고, 민족의 정체성을 알게 된다.
한민족상고역사대학(桓民族上古歷史大學) 설립취지문
중국이 서북공정으로 신강성 자치주에 대한 중국화를 도모하였고, 서남공정으로 티벹을 침략하여 중국화 하여, 최근에는 티벹에 철도를 부설해 주는 등, 동화사업을 가속화 하고 있다.
마치 일본(日本)이 우리나라(대한제국)를 강점하고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우리의 역사를 정리해 준다는 명분을 세워, 우리의 상고역사를 왜곡 내지는 말살하였듯이, 중국은 주변 소수민족의 영토와 주권은 물론 역사와 문화에 대한 침략을 계속하여 왔다.
이번에는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동북삼성의 만주와 북한(북조선)을 저들의 역사권으로 만들려고, 우리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침략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개인이나 단체 또는 국가가 과분한 욕심을 부리어, 경우에 어긋난 짓을 할 때는,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시작의 징조였던 것이 역사의 교훈이었다.
따라서 중국이 서북공정, 서남공정에 이어 동북공정을 통하여, 우리교포들을 중국인으로 동화(同化)하고, 우리민족의 대륙역사와 문화를 침략하는 야심을 들어낸 것은,
첫째로 머지않아 중국이 4분 5열할 징조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둘째로 우리나라의 지도자와 국민을 일깨우려는 하늘의 섭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광복 후 역대 정부는, 일본이 저들의 침략을 정당화하려고, 왜곡 날조하여 만든 반도식민사관을 우리민족역사라고 잘못 가르치더니, 문민정부 때부터 학생들의 역사과목을 선택으로 바꾸고, 대학시험에 국사를 배제하였다. 뿐만 아니라 국가지도자를 뽑는 공무원시험을 비롯하여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회계사 시험 등에 국사과목을 배제하였으니, 합격한 분들이 자기나라의 역사와 조상도 모르는 사람으로, 어찌 올바른 국가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세태의 국민들에게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하여, 우리의 조상과 민족의 정체성을 찾으라고, 중국을 통하여, 채찍을 가하는 하늘과 조상의 일깨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따라서 중국의 동북공정 극복의 길은, 일본이 왜곡 날조한 한국(桓國), 신시배달국(神市倍達國), 고조선(古朝鮮), 북부여(北夫餘) 등, 우리민족의 상고역사를 복원하여, 우리민족이 중원(中原)의 주인이요, 주체였음을 온 국민에게 알리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대학시험에 필수과목으로 하며, 국가지도자를 뽑는 공무원시험을 비롯하여 사법고시, 행정고시, 회계사 시험 등에도 필수과목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본다.「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편과 한단고기(桓檀古記)」를 중심사료(史料)로 삼아, 고증을 통하여 정립된 우리의 상고사(上古史)를, 전 국민과 해외동포에게 전하고, 중・고등학교의『검인정국사교과서』와『상고사 만화』를 편찬하여, 민족의 비전을 제시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도장이 되려고, 본 역사대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웅개천 5907(서기 2010)년 2월 4일
한민족상고역사대학(010-7587-5768)
※ 아십니까? 우리가 배우는 국사는 일본이 왜곡 날조한 반도식민사관의 역사인 것을!
여성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서고, 어머니가 국사를 알아야 큰 인물을 키워내는 것을!
광복 후 우리가 배운 국사는 일본이 왜곡 날조한 역사였다!
일본은 단기 4243(서기 1910)년 무력으로 우리나라(대한제국)를 강점한 후, 영원히 우리나라를 지배할 목적으로, ① 민족의 성전인 원구단(천제를 올리는 곳)을 제일먼저 파괴하고, ② 우리민족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려고 조선총독부를 통하여 고등경찰에게 단기 4255(서기 1922)년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조선총독부 고등경찰 요사에서 발취)
“먼저 조선인들이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러므로 조선민족의 혼, 조선민족의 문화를 상실하게 하라.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능과 악행을 들추어내되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모 조상들을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이 기풍이 되게 하라. 그렇게 함으로서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갖게 하고,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하라. 그럴 때 일본의 사적, 일본의 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동화(同化)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帝國) 일본이 조선을 반(半) 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이와 같은 방침 밑에 우리민족 젊은이들에게 은밀히 역사와 전통을 모르게 교사(狡詐)하였고, 이를 은폐하려고, ③ 우리역사를 왜곡하였다. 즉, 단기 4255(서기 1922)년 조선총독부 산하에「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우리나라의 역사를 정리하여 준다는 명분으로 16년(1922-1938)에 걸쳐 조선사 35권을 만들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역사 강역을 속지주의로 한반도와 만주에 국한시키고, 그리고 역사기간은 겨우 2,000여 년에 불과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4국 시대부터 시작한 것으로 축소하고, 일본인 자기들의 역사는 2,600년이 넘는 것으로 엿가락처럼 늘려, 일본의 역사서인 서기(書記)를 조작 기록하여 놓았다. 그리하여 일본역사에는 없는 수천 수만 년의 우리민족의 상고역사(上古歷史)인, 7세대 63,182년간 계속된 한인천제(桓仁天帝)의 한국(桓國)과 18대 1,565년간 존속한 한웅천왕(桓雄天王)의 신시 배달국(倍達國), 47대 2,096년간 지속된 단군왕검(檀君王儉) 황제의 조선(朝鮮)과 대부여(大夫餘), 8대 200년간 존속한 해모수(解慕漱) 단군황제의 북부여(北夫餘)의 역사를 말살하려고, 우리민족의 상고사(上古史)를 신화(神話)로 조작하였다.
또한 일본은 그들이 만든「조선사(朝鮮史)35권」을 정당화시키려고,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관계 사료(史料)로, 고려시대 일연스님이 기록한「삼국유사(三國遺事)」와 김부식을 중심하여 쓴 「삼국사기(三國史記)」만을 남겨둔 채, 다른 사료(史料)는 27년 동안 수거(收去) 하여, 20만권 이상의 상고(上古) 역사서(歷史書)를 모두 인멸(湮滅)하여 버렸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일본은 우리의 상고역사 왜곡을 은폐하려고, 일연스님이 쓰신「삼국유사 고조선 편」마저 지능적으로 변조하여 남겨 놓은 것이다. 즉,「삼국유사의 기이(紀異) 고조선편」의 378자 중 석유한국(昔有桓國)을 석유한인(昔有桓因)으로 변조하였다. 그리고 아사달의 위치인 관성의 동쪽(阿斯達…或云在關城東)을, 개성의 동쪽(阿斯達…或云在開城東)으로 기술적으로 변조시켰다. 원문대로 석유한국(昔有桓國)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나라가 한국(桓國)이 되며, 다음에 기록된 서자한웅(庶子桓雄)을“첩의 자식 한웅”으로 풀이 할 수 없고, 한국의“서자부”한웅으로 해석함으로, 한국의 존재, 한웅천왕과 신시 배달국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아가 고조선(古朝鮮)의 존재는 더욱 명백해 지는 것이다. 따라서 고조선편 전체 해석도 달라진다. 그른데 석유한국(昔有桓國)을 석유한인(昔有桓因)으로 변조함으로서, 한국(桓國)인 나라가 한인(桓因)인 사람으로 바뀌면서, 우리민족 최초의 나라, 한국(桓國)은 없어지고, 한인(桓因)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함으로서, 다음에 나오는 서자한웅이 첩의 자식으로 해석하도록 유도하였고, 나아가 한인(桓因)을 하느님으로 해석하게 하여, 우리역사를 신화(神話)로 인식하도록, 일본이 계획적으로 왜곡 날조한 것이다.
그리고 고조선의 도읍지를 관성(關城) 동쪽에서, 개성(開城) 동쪽으로 변조함으로서, 고조선의 강역을 한반도로 축소시켜 놓은 것이다. 관성의 동쪽은 흑룡강성의 하르빈으로서, 조선의 강역이 한반도가 아닌 대륙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변조하지 않은「삼국유사 기이 고조선편」의 원문(서기 1904년 : 명치 37년, 동경제국대학 발행 본)이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도서관에 소장되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삼국유사의 고조선편」을 변조한 결과, 오늘까지 이병도교수의 제자인 강단사학자들은 변조된「삼국유사」만을 유통시키고, 이를 상고사에 대한 유일한 사료(史料)로 여기다 보니, 우리의 상고역사는 신화(神話)적인 것이며, 또한 우리민족은 하느님의 서출(庶出)인 한웅의 자손, 또는 웅녀인 곰의 자손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우리나라역사를 왜곡하고 날조할 때 협력한 대표적인 사람이「조선사편수회」에서 일한 친일파 이병도씨였으며, 광복이후 서울대학 교수가 되어 조선사 35권을 중심으로「국사대관(國史大觀)」이라는 국사책을 만들어, 제자들을 양성하여 지금까지 가르쳐 온 것이다.
광복이후 우리가 배운 국사는 이렇게 왜곡 날조된 것이었다. 따라서 친일파를 발굴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보다 시급한 일은 일본이 파괴한 원구단을 복원하고, 일본이 계획적으로 왜곡 날조한 우리의 상고사를 찾아, 바르게 정립하여 학생들과 국민들에게 가르치는 일인 것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길은 국사를 바로 알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사를 아는 것은 윤리도덕과 더불어 인성교육의 핵심으로 곧, 부모와 조상을 아는 것이며, 자신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이 왜곡하고 날조한 우리나라의 상고사를 하루속히 복원하여야 한다. 그것이 중국의 동북공정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한단고기와 삼국유사」를 중심 사료(史料)로 하여 정립한 우리민족상고사『한민족의 대륙역사(송부웅 편저)』를 구입하여 보시거나 또는,『홍익TV』을 검색하시어, 본인의 상고사 강의를 동영상으로 보시거나,「우리역사교육 무엇이 문제인가」하는 소책자를 구입,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또는 다음의 카페를 쳐보십시오. http://cafe. daum. net/ baedalung
서기 2010(단기 4343)년 7월 25일
한민족상고역사대학. 배달민족진흥회
학장 桓松 송 부 웅(宋 富 雄)
전화 : H.P : 010-7587-5768)
E-mail : baedalung@hanmail.net
※ 헌법전문에「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이라고 시작해 놓고, 유구한 역사를 나타내는 국가연호를 왜 폐지했으며, 역대정권은 왜 국가연호를 회복하지 않는가?
【 개천절(開天節)을 폐지하라 ! 국경일에서 !
아니면, 국가연호(단기)를 복원하여 공식적으로 서기와 병용하라. 】
1. 우리나라 국사교육의 문제점
개천절은 4대 국경일(國慶日)의 하나다. 그런데 한 학생에게“개천절이 무슨 날이냐?”고 물었더니,“하늘이 열린 날”이라고 대답하였다. 또 다른 학생은“개 천 마리가 절에 가는 날”이라고 대답하여, 폭소를 자아냈다. 더욱이“하늘이 열린 날이 무엇이며, 왜 하늘이 열린 날이 국경일이 되었는가?”고 물었더니, 대답을 못하였다. 이것은 국사교육의 부재를 증명하며, 애국심과 도덕심의 결여까지 일으키고 있다.
2. 국경일에서 개천절을 왜 폐지해야 하는가?
서기 1945년 광복한 후, 서기 1948년 제헌국회에서 상해임시정부(단기 4252, 서기 1919년)의 법통을 계승하여, 국가의 정체(政體)를 자유민주주의로 채택하고, 국호(國號)를 공화제(共和制)인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정하면서, 대한민국의 국가기원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논의하였다. 많은 논란 끝에“삼국유사 기이 고조선 편”에 근거하여, 단군왕검 황제가 세운 고조선(古朝鮮)에 둘 것으로 정하였다.
그리하여 단군왕검 황제를 국조(國祖)로 모시고, 국가연호를 단기(檀紀)로 정하였다. 그리고 10월 3일을 개국기념일로 정하여, 개국절(開國節)을 관습에 따라 개천절(開天節)이라 명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개천절은 우리민족의 개국기념일인 국가의 생일인 것이다. 국경일의 가치를 논한다면, 어찌 삼일절이나 광복절, 제헌절에 비하겠는가? 그런데 당시 학교에서는 일본이 만든 반도식민사관의 역사를 우리역사로 알고,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의 역사를 신화(神話)라고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제헌국회가 완전히 무시당하였다. 그리고 5.16 혁명정부는 경제발전을 위한 서구화를 표방하면서 단군신화(檀君神話)운운하며, 국가연호인 단기의 공식사용을 폐지하고, 서기 연호만을 공식 사용하도록 하였다.(연호에 관한 법률 제 775호) 따라서 국경일로 정한 개천절에 대통령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지 않고, 국무총리가 축사를 대독하는 등, 역대정부와 대통령은 50여 년간이나 국민을 기망(欺罔)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개천절은 국경일에서 폐지해야 되는 것이다. 아니면, 단기연호를 복원시켜 서기와 병용토록 해야 한다.
3. 국가기원과 역사가 없는 나라로 떨어짐
생각하면 우리민족과 나라는 국가기원이 없는 민족과 나라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남의 역사 즉, 기독교의 역사를 차용하여 서기연호를 우리나라 공식연호로 쓰고 있는 꼴이 된 것이다. 그 결과는 민족의식도 없어지고, 민족 정체성도 망각하고, 오로지 돈과 출세만을 추구하며, 애국의 길을 모르게 된 것이다.
4. 새로운 국가연호와 개국절(開國節)을 제정해야 한다.
변조되지 않은 원본「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古朝鮮)편」“석유한국(昔有桓國)”이라는 원문에 의거하여, 한국(桓國)을 우리민족 최초의 나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국가기원을 한국(桓國)에 두고, 한인천제(桓仁天帝)를 국조로 모시고, 국가연호를 한기(桓紀)로 할 것을 제의하는 바입니다.
※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분은 본「한민족상고역사대학」에 참여해 보시기 바랍니다.
배달민족진흥회・민족상고역사대학(010-7587-5768)
원구단의 뜻과 역사
원구단(圓丘壇)은 보구단(珤丘壇)이라고도 쓴다. 원단(圓壇)이라고도 하며, 보단(珤壇)으로도 쓰는데, 둥근 언덕 모양으로 쌓아 만든 제천단(祭天壇)을 말하는 것이다.
제천단이란 7만 년 전 한국(桓國)의 한인천제(桓仁天帝) 때부터 하늘과 땅에 제사(祭祀)지내기 위하여 쌓은 제단이다. 이토록 우리민족은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하느님을 섬겨온 제천민족으로서, 배달국(倍達國)을 개천하신 한웅천왕(桓雄天王)은 태백산에 신단(神壇)을 수립하여 천제(天祭)를 드렸으며,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는 백두산과 강화도 마니산에 천단(天壇)을 쌓아 하느님께 제사하여 근본에 보답하려는 경천(敬天)사상으로 백성을 교화하고 나라를 다스려 홍익인간(弘益人間) 하였다. 그리하여 인류 최고의 문명국을 이루어 동서양에 끼친 영향은 오늘날에도 그 잔영(殘影)이 남아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왕이 친히 원구제(圓丘祭)를 드렸으며, 근세조선에 이르러 건국 초부터 원구단이 마련되었는데, 원단(圓壇)이라고 많이 불렀으며, 그 위치는 한강의 서강 또는 남부라고 한 기록을 보면 지금의 한남동 부근으로 추측된다. 그 규모는 세종 때의 것으로 주위는 6장(丈)이었고, 단(壇)위에 천왕대제(天王大帝)와 오방오제(五方五帝)의 신위(神位)를 봉안하였다. 세조 때 고금예문(古今禮文)에 맞도록 수축(修築)을 하여 기곡(祈穀) 또는 기우(祈雨) 등, 기원제(祈願祭)와 감사제(感謝祭)가 거행되었으며, 이 때 왕이 친히 거행하였으나 때로는 중신(重臣)을 보내어 거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명(明)나라의 간섭으로 중간에 천제(天祭)가 폐지되었으나, 조선말 고종 때 의정 심순택의 상소를 가납하여, 고종은 지금의 소공동 남별궁 터(현 조선호텔 자리)에 원구단을 만들고, 고종 34(단기 4230)년 10월 11일 고종은 조선왕국(朝鮮王國)에서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국호를 고치고, 대한제국의 황제(皇帝)로 즉위하면서, 여기서 천제(天祭)를 올리고, 자주 독립국임을 내외에 선언하였으며, 이해를 광무(光武) 원년으로 하였다.
동지(冬至)와 원일(元日)에는 기곡제(祈穀祭)를 행하게 하였으니, 원구단의 제의(祭儀)는 고제(古制)를 참작하여 종묘사직(宗廟社稷)보다 앞세우는 가장 큰 제사(祭祀)로 규정하고, 광무 3년 원구단 북쪽에 황궁우(皇穹宇)를 건립하여 대우주(大宇宙) 천지(天地)의 신위(神位)를 봉안하였다.
이러한 원구단과 천제를, 이번에는 일본(日本)이 일본의 천황만이 천제를 드릴 수 있다고 하면서, 우리민족이 천제(天祭)를 지낼 수 없게 하려고, 강압적으로 단기 4246(서기 1913)년 원구단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철도호텔을 만들어, 신성한 우리민족의 정신적 구심점을 말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광복 60년이 지난 오늘에도 국가지도자들의 민족의식의 부재(不在)로 제천민족의 면모를 회복하지 못하여, 우리민족의 정신적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제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황궁우(皇穹宇)로서, 서울시 사적 157호로 단기 4300(서기 1967)년에 겨우 문화재로 지정되었을 뿐이다. 황궁우에는 단의 1층 북쪽 동편에는 황천상제(皇天上帝)의 위패(位牌)를, 서편에는 황지지(皇地祗) 위패(位牌)가 남향하고 있다. 단의 2층에는 대명성(大明星), 야명성(夜明星) 위패가 동서에 있다. 단의 3층 동편에는 북두칠성(北斗七星), 오성(五星), 28숙(宿), 주천성신(周天星辰), 오악(五岳), 사해(四海), 명산(名山), 대천(大川), 성황(城隍)의 위패(位牌)가, 서편에는 운사(雲師), 우사(雨師), 풍백(風伯), 뇌사(雷師), 오진(五鎭), 사독(四瀆), 사토(四土)의 위패(位牌)가 배열되어 있다.
한민족상고역사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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