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자의 ‘무지개’
여름철 소나기는 즉흥 환상곡이다. 번개와 뇌성이 허공을 가르고, 검은 구름이 성난 들소처럼 모여들어 내리꽂히는 빗줄기가 무참하다. 칸나가 태질을 당하고, 목이 꺾인 꽃 타래가 핏빛으로 흙탕물에 둥둥 떠내려간다. 풀잎들은 일제히 땅으로 몸을 눕히고, 귀청이 따갑도록 울어대던 매미의 울음도 칼로 자른 듯 끊어졌다 오로지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과 비의 폭성만이 난무할 뿐이다.
그러나 즉흥 환상곡의 연주는 길어야 3악장으로 끝난다. 거짓말처럼 구름이 걷히고, 해가 반짝 얼굴을 내밀면 초록빛 산허리에 무지개가 뜬다.
무지개는 허공에 걸린 홍예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빛의 판타지이다. 유년시절, 소나기가 퍼붓고 간 뒤에, 어미니께선 서쪽 언덕에 선 무지개를 바라보며 딸에게 짧은 동화 한 편을 들려주었다.
어느 호기심 많은 소년이 무지개를 찾아 나섰다고 했다. 어른들이 ‘저 산 너머엔 무지개가 뜨는 신비한 우물이 있다.’ 해서 였다. 소년은 어른이 일러준 대로 산을 넘고 또 넘어가 보았지만 무지개가 뜬다는 우물을 찾을 수가 없었다. 소년이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백발이 되었고 백발이 된 그의 손에는 낡은 기왓장 하나만 들려있었다.
엄마에게 동화를 듣던 아이는 훗날 어른이 되어 다산선생의 시 율정별(栗亭別)을 읽었다. 놀랍게도 그 시의 마지막 연에는 무지개를 찾아가던 동화 속의 소년이 들어있었다
나 또한 어리석은 바보아이/헛되이 무지개를 붙잡으려 했었네/서쪽 언덕 활처럼 굽은 땅에/분명히 아침 무지개를 보았노라/어린 노ㅁㅁ 무지개를 쫒아갈수록 무지개는 더욱 멀어졌네/기고보면 또 다른 서쪽 언덕, 서쪽 또 서쪽에 있었네.
다산의 율정별
인간의 꿈은 무지괘를 닮아있다. 이 고비만 넘기면 내가 원하던 일을 이룰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산을 넘고 또 넘는 동안 내 인생 백발에 이르렀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비록 꿈을 이루진 못했어도, 꿈 자체가 살아야 할 이유와 동력이 되었던 지나온 내 생애의 나날들을
첫댓글 소년이 무지개를 찾아 나선 이야기에서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파랑새를 찾아 나선 동화가 생각납니다.
꿈 자체가 살아야 할 이유와 동력이라는 작가의 생각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