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무예
수박은 과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글의 제목을 보고 ‘그렇지’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한여름 더위를 물리쳐주는 수박은 채소작물에 속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수박이 전 세계에 퍼지게 된 것은 약 500~600년 전의 일로, 우리나라의 기록에는 조선시대 허균(許筠)의 글에 처음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고려시대와 ‘수박’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보통 ‘수박’했을 때 떠오르는 대상이 먹어서 우리 몸에 좋은 것이라면, 여기에서 이야기하려는 ‘수박’은 움직여서 우리 몸을 좋게 하는 것이다. ‘수박’은 바로 고려시대 체육의 하나였다.
고려시대의 체육
요즘 사람들은 심신을 수련하거나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또는 호신술로서 따로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한다.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려면 적절한 신체활동이 필요하지만, 문명의 이기가 발달하면서 직접 몸을 사용해 일해야 하는 경우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1000년 전 대부분의 고려시대 사람들은 직접 몸을 움직여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따로 운동을 할 필요도 없었고 또 그럴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특별히 운동을 해야 하였다.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전 근대사회의 전쟁은 주로 각개전투(各個戰鬪)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병사들이 직접 몸을 부딪쳐 싸우는 일이 매우 드물지만, 당시에는 먼 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크게 발달되지 못하였으므로 전쟁터에서 병사들은 적군과 아군의 구분 없이 한데 얽혀 싸워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힘세고 전투력이 뛰어난 병사들이 많아야 했고, 이에 병사들에게 무예를 익히게 하여 기본적인 체력훈련과 함께 전투력 상승을 꾀하였다.
고려시대의 무예에 대한 기록은 매우 드물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고려시대의 체육종목을 그다지 많지 않다. 앞서 예로 든 수박이 가장 대표적인 무예라 할 수 있으며, 그밖에 활쏘기·말타기·각저·석전·격구 등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활쏘기·말타기와 같은 종목은 삼국이 통일된 이후 점차 순수한 놀이요소가 강해졌다. 때문에 군사훈련의 의미가 더 강하였던 수박과 각저·석전, 그리고 격구를 통해 고려시대의 체육에 대해 알아보자.
각저희와 수박희
각저와 수박은 신변의 위협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인간의 원초적인 공격모습과 방어형태를 담고 있는데, 이 두 종목 모두 개인의 강인함을 다른 사람과의 대련 속에서 드러내는 무예이다. ‘각저희(角觝戱)’라고도 불리는 각저는 지금의 씨름으로 볼 수 있는데, 고구려의 고분인 각저총(角觝塚)에 두 명의 장사가 상대방의 허리를 잡고 씨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매우 오래 전부터 행해졌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려 후기의 충혜왕(忠惠王, 1331~1332 및 1340~1344)가 특히 각저희를 즐겼는데, 즉위하던 해 3월 정무를 보지 않고 위아래의 예도 없이 각저희를 행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나와 있고, 고려의 큰 명절이라 할 수 있는 연등회(燃燈會)·단오절(端午節)·팔관회(八關會)가 있는 달인 2월·5월·11월에 각저희를 관람하였다는 사실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이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명절분위기를 돋우는 동시에 체력훈련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각저와 관련된 기록이 고려 후기에 집중되어 있다면, 수박 또는 수박희(手搏戱)에 관한 기록은 고려 전기는 물론 후기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구분할 때 그 분수령이 되는 무신정변(武臣政變)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 바로 오병수박희(五兵手搏戲)였다. 이 때 행해진 오병수박희가 어떠한 것인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한 사람이 상대방을 이기면 다른 사람과 계속 대련을 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1대 1 대련형식의 수박희는 고구려의 고분인 무용총(舞踊塚)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