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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 4:4~5)
존 칼빈
“그리스도는 율법의 영혼이시다.”
개혁 신학의 아버지 칼빈 선생님 가르침을 애써 모르쇠 하며 미혹하는 세기의 사기꾼 Wolf이철 ②
https://cafe.daum.net/reformedvillage/D3ML/446
※ 편의상 아래에서 <세기의 사기꾼 Wolf이철 ②>로 적는다.
<세기의 사기꾼 Wolf이철 ②>에서 나는 ‘예장 합동 꼴뚜기파 대표 바보 Wolf이철이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 113쪽에서 죄인 그리스도론을 주장한 문장들’을 가지고 말장난을 했다. 말장난을 하면서 “논리와 독해 수준이 낮을 뿐만 아니라,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을 애써 모르쇠 하는 세기의 철면피 Wolf이철이 이 말장난에 숨은 행간 의미를 깨달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사전제전師傳弟傳, ‘죄인 그리스도론’을 주장하신 그 스승에 그 제자가 ‘죄인 그리스도론’을 주장한 그 문장들은 “행간 의미”를 이야기하며 말장난까지 할 필요가 없는 문장들이다.
내가 ‘썩어 없어지지 않을 세기의 명시名詩’로 여기는 ‘파발 <바보를 위한 엘레지>’1)에서 파발 님께서는 “바보의 특성”을 이야기하셨다. “하는 말마다 고삐 풀려 좌충우돌하는데, 상대가 필요 없고, 스스로 하는 말에 걸려 넘어지고 자빠지고, 호랑나비 춤추다가, 스스로 딴지 걸리고, 자기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자기도 모르면서 …(중략)… 이 바보는 그 말 의미가 그러한지 자기는 모르고 있다. 그게 이 바보 특성 중 하나다.” 하신 것이다.
범주 오류의 허수아비 때리기가 주특기 하나인 예장 합동 꼴뚜기파 대표 “바보는 그 말 의미가 그러한지 자기는 모르고 있다. 그게 이 바보 특성 중 하나다.”…. 이 점에서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 113쪽에서 Wolf이철이 “자기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자기도 모르면서” 주장한 ‘죄인 그리스도론’을 또 옮긴다. 생략해도 될 문장은 중략하고 옮긴다. 배경색은 내가 칠한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의 근거를 성경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중략)… 율법 속에는 죄인을 의롭게 만드는 기능이 처음부터 장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의 근거”에서 구문론상 앞 “의”에 속하는 말은 당연히 “능동적 순종 교리”로, “능동적 순종 교리”가 ‘그리스도 소유’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100%를 뜻하지 않는 “적”은 빼고 ‘그리스도 능동 순종 교리의 근거’로 쓰면 된다. 그런데 ‘의’를 좋아하는 나머지 굳이 ‘의’를 세 번 쓰고 싶어서 ‘그리스도의 능동 순종의 교리의 근거’로 쓰면, ‘의’가 세 번이나 들어가 있어서 지저분하다. 그러므로 앞 “의”를 빼 ‘그리스도 능동 순종 교리의 근거’로 쓰면 되는 것이다.
나는 예장 합동 꼴뚜기파 Wolf만옥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영적 쓰레기다.”며 “한국 장로교 신앙고백서가 돼야 한다.” 했던 장로교 최초 신앙고백서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에서 <제15조: 율법의 완전과 인간의 불완전>을 <세기의 사기꾼 Wolf이철 ②>에 적었다. 그런데 “율법 속에는 죄인을 의롭게 만드는 기능이 처음부터 장착되지 않았”음에도, ‘사람은 거듭난 뒤조차도 의義의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임에도, 중세 로마 천주교는 행위의 공로를 의지하며 자랑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은 중세 로마 천주교 율법주의 행함 구원론에 저항(protest)해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모세 율법, 거룩하고 의로운 진리로서 율법’을 찬양하며 ‘진리인 율법의 영혼으로서 그리스도께서 그 율법을 성취하신 의義’만을 드높였다. 참 아름다운 신앙고백이다. ‘율법의 의義로 우리를 구원하신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만을 찬양한 참 은혜로운 신앙고백이다. 진리인 율법과 함께하는 복음의 진리, 그 진수를 드러낸 참 훌륭한 신앙고백이다. 그럴지라도 ‘율법주의 개념’조차 정립하지 못한 채 이단 감별사로 나서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율법 따위”로 모독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은 반법주의 신성모독자 Wolf이철에게 {스코틀랜드 신앙고백} <제15조>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7장: 하나님의 언약] 장과 [제19장: 하나님의 율법] 장과 똑같이 ‘저주받을 율법주의’를 말한 신앙고백일 수밖에 없다.
‘바울 사도께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말씀하신 율법주의’, 그 개념조차 정립 못 한 채 이단 감별사로 나선 Wolf이철은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 [제7장: 칼빈을 우겨 먹는 칼빈주의자들]에서 예장 합신 신학위원회, 예장 고신 신학위원회, 리차드 멀러, 김재성, 우병훈, 신호섭, 정성우, 피터 릴백, 마이클 호튼 목사님을 언급한다. 그런 뒤 이 책 171쪽에서 “(그들은) 칼빈의 글의 문맥을 무시하고 단지 자신이 보고 싶은 일부 단어나 문구를 발췌하거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내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인용함으로 칼빈을 왜곡하고 칼빈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들을 자행했”음을 주장하며 “사자死者(칼빈) 명예 훼손”을 운운한다. 또한 172쪽에서는 “합신의 교수들은 모호한 뜻이 내포된 한 문장을 발췌하여 자기들의 주장을 방어할 방패로 이용하였다. 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과 정직성의 심각한 하자이다.”고 주장한다.
물론, “자신이 보고 싶은 일부 단어나 문구를 발췌하거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내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인용함으로 칼빈을 왜곡”하는 확증편향은 나에게나 예장 합신 교수님들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자死者(칼빈) 명예 훼손”을 운운한 것은 세기의 사기꾼 Wolf이철이 창피도 모른 채 벌인 적반하장이다. 양심이 화인 맞아 {바른 믿음} {독자 마당}에 올린 내 글들을 삭제하기 바빴고, ‘{바른 믿음} 비회원이 {바른 믿음} 댓글란이나 {독자 마당}에 글을 쓸 수 있는 기능’을 막은 것도 모자라, 결국에는 {바른 믿음}에 접속할 수 없도록 내 컴퓨터 주소까지 차단한 세기의 철면피 Wolf이철, 그의 주특기 하나인 적반하장이다. 이 점에서 내가 별명 ‘늘 푸른 솔’로 {바른 믿음} {독자 마당}에 올렸던 글을 링크한다.
존 칼빈 <율법을 모두 철저하게 지키신 그리스도>
https://cafe.daum.net/reformedcafe/jMaU/95
다음은 위 링크 글에서 옮기는 강설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이셨지만 우리를 해방해 주기 위해서 종의 직분을 감당하셨다는 사실을 알아둡시다.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님께서는 할례를 받으셨으며 성인이 돼서는 모세 율법이 명령한 것들을 모두 철저하게 지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그렇게 해야만 했기 때문이 아니고 노예와도 같은 우리 상태를 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여기서 한 것처럼 성경 말씀이 우리 자유를 언급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 자발 순종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내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인용함으로 칼빈을 왜곡”??????? 시골 청년 님2)이 {바른 믿음} {독자 마당}에 올리신 ‘존 칼빈 <에스겔 18장 17절 주석>’은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내용”이라서 삭제했나? 내가 올린 ‘존 칼빈 <갈라디아서 4장 4절~5절 강해>’ 역시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내용”이라서 삭제하기 바빴나? “예수님께서는 할례를 받으셨으며 성인이 돼서는 모세 율법이 명령한 것들을 모두 철저하게 지키셨습니다.” 하신 칼빈 선생님 말씀은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내용”인가?
얼마 전에 부흥과개혁사에서 ‘앨런 스트레인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있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 윤석인 역 (가로 15cm x 세로 220cm, 총 171 쪽, 1만2천 원)’을 펴냈다. 그런데 글씨 크기를 줄여서 쪽수를 150 쪽 정도로 줄임으로써 책값을 4분 1 정도는 낮출 수 있었던 책, ‘정이철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 (가로 13cm x 세로 185cm, 총 208 쪽, 1만3천 원)’ 21쪽에서 Wolf이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배경색은 내가 칠해 강조한다. 부득이한 경우 신자나 목사 역시 세상 법에 호소할 수 있건만, ‘신자나 목사로서 노승수 목사님 부도덕성’을 드러내려는 의도, 야비한 의도를 가지고 쓴 말로 생각하기에 강조하는 것이다.
합신의 노승수 목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모여 활동하는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믿지 않는 서철원 박사와 정이철 목사를 이단시하는 발언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이철 목사가 이 교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바른 믿음〉에 지속적으로 기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점차 이 논쟁이 뜨거워졌고 한국 장로교회 속에서 피할 수 없는 논쟁거리가 되었다.
특히 합신 노승수 목사가 자신의 노회에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부정하는 정이철 목사에 대한 신학 조사 건을 헌의하였고, 정이철 목사를 명예 훼손으로 세상 법에 고소함으로 더욱 논쟁이 첨예화되었다.
“노승수 목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는 {페북} 그룹 {개혁파 목사와 목회, 개혁주의 성경해석}을 뜻한다. 그리고 “정이철 목사를 명예 훼손으로 세상 법에 고소함”이 먼저고,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부정하는 정이철 목사에 대한 신학 조사 헌의”는 한참 뒤 일이다. 그런데 Wolf이철이 ‘허위 사실 적시로 노승수 목사님 명예를 훼손한 건’을 두고는 사과하는 글을 {바른 믿음}에 올렸음에도,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칭의’를 부정한 이단 Wolf이철에게 오히려 이단으로 몰리는 궁지에 처하신 노승수 목사님이 ‘허위 사실 적시 명예 훼손을 가지고 세상 법에 호소한 건’이 “더욱 논쟁이 첨예화”하게 된 원인인가? 참 야비한 글쓰기다.
노승수 목사님이 세상 법에 호소하지 않으셨다면, Wolf이철이 ‘허위 사실 적시 명예 훼손’을 사과했을까? Wolf이철은 세상 법은 무서워 사과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의 빛을 가리심으로써 양심에 화인 맞은 반법주의자 Wolf이철은 ‘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의義의 율법’을 “율법 따위”로 모독하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무서워하지 않는다. 명명백백한 칼빈 선생님 글들을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는 양심, 화인 맞은 양심으로 {바른 믿음} {독자 마당}에서 삭제하는 짓거리를 한 뒤, 그것도 모자라 ‘자신과 스승 서철원 목사님 아킬레스건으로서 피스카토르’는 언급도 못 한 채 “사자(칼빈) 명예 훼손”을 운운한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를 출판함으로써 세기의 사기꾼이 된 것이다.
“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과 정직성의 심각한 하자”??????? 뚫린 입이라서 말은 그럴싸하게 참 잘한다. 사실, 만 4 년이 돼 가는 이 논쟁은 이 논쟁이 시작될 때인 2019년 설 무렵에 이미 끝난 싸움이다. {성경} 지식과 신학 지식이 짧은 세기의 듣보잡 Wolf이철이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칭의’를 부정하며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칭의를 이야기하신 노승수 목사님’을 이단시했을 때 이미 끝난 싸움이다. 또한 ‘그리스도 율법준수(능동) 순종은 인정했지만, 그 의義의 전가는 부정한 알미니안 신학 아류로서 새관점 신학이 그리스도 능동 순종마저 부정’하는데, ‘Wolf이철 스승 서철원 목사님과 Wolf이철 역시 새관점 신학과 똑같이 그리스도 능동 순종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이미 끝난 싸움이다. 이 사실을 Wolf이철이 알고 있음인지, Wolf이철은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에서 칼빈 선생님 후계자 ‘베자’ 목사님은 두 번 언급3)할지라도, ‘그리스도 능동 순종의 의義, 그 의義의 전가 문제’로 베자 목사님과 논쟁했던 알미니안 신학자 ‘피스카토르’ 목사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새관점 신학’이라는 용어도 언급하지 않는다.
다음은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 203쪽에서 또 옮기는 글이다. 이 책 마지막 문단 바로 위에 있는 문단이다. 배경색은 내가 칠한다. 한 사람을 경험하고 그 한 사람 경우를 전체로 말하는 오류로 거짓 음해를 했음을 뜻하는 단어들이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에 대해 이상한 열정을 보이는 사람들이 율법이 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이상하게 그들의 성품이 야비하고 간교하다는 사실을 더 자주 보았다. 가장 율법에 대해 많이 말하는 사람의 성품과 삶이 율법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다는 것을 여러 번 확인했다. 왜 그럴까? 율법 타령 좋아하는 그에게 성령의 지배하심이 없기 때문이다.
‘스승 서철원 목사님과 자신의 아킬레스건’은 감추며 ‘개혁 신학의 아버지 칼빈 선생님께서 {기독교 강요}에서나 주석집에서나 강설집에서 명명백백하게 가르치신 그리스도 율법준수 순종’은 애써 모르쇠 한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로 예장 합동을 또 욕 먹이는 사기극을 벌여놓고 “성령의 지배하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야비하고 간교한가?
개혁 신학의 아버지 칼빈 선생님께서 ‘그리스도께서 율법준수 순종으로 얻으신 의義와 그 의義의 전가 교리’를 명명백백하게 가르치셨음에도, 서철원 목사님이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 <추천사>에서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를 능동적 순종이라고 합니다. …(중략)… 이런 주장은 …(중략)… 개혁 신학의 아버지인 칼빈의 가르침에 아무런 자취도 없습니다.” 하신 거짓 증거가 “성령의 지배하심”에서 나온 것인가? 알미니안 신학 아류로서 새관점 신학이 ‘그리스도 능동 순종’마저 부정함에도, 서철원 목사님이 <능동 순종, 종교개혁 허물어 다시 율법주의-로마교회로 복귀>4)에서 ‘그리스도 능동 순종’을 가르치는 개혁 신학을 두고 “이런 신학을 새관점 학파라고 하는데” 하신 거짓 증거가 “성령의 지배하심”에서 나온 것인가? “학자로서 갖춰야 할 능력과 정직성”에서 나온 것인가?
서철원 목사님은 연로해 총기를 잃으셨다고 치자. 연로해 총기를 잃으신 까닭으로 생긴 “하자”, “학자로서 갖춰야 할 능력과 정직성의 심각한 하자”에서 나온 거짓 증거가 담긴 <능동 순종, 종교개혁 허물어 다시 율법주의-로마교회로 복귀>를 거르지 못한 채, 독해력과 신학 지식이 짧은 나머지 이 글을 {바른 믿음}에 올림으로써 이른바 “세계적인 신학자” 스승 서철원 목사님 명예에 똥칠하는, 세기의 듣보잡 짓거리를 했던 일이 “성령의 지배하심”에서 나온 것인가?
스승 서철원 목사님께 “선생님, 그리스도 능동 순종은 인정했지만 그 의의 전가는 부정한 알미니안 신학 아류로서 새관점 신학, 선생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는 새관점 신학이 개혁 교회 정통 교리인 그리스도 능동 순종 교리를 부정합니다.”고 권면하신 제자 목사님이 단 한 분이라도 계셨을까?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신학교 대학부 신학과에 입학해 비록 2학년을 마치고 그만둔 학교이기는 하지만, 내 모교 광주신학교 은사님이신 서철원 목사님을 두고 나에게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을 때가 있었다. ‘1982년 봄, 광주신학교 대학부 신학과 2학년 때 처음 뵌 서철원 목사님은 참 겸손한 분이셨는데, 연로해 총기를 잃고 교만해지신 서철원 목사님 곁에는 스승 서철원 목사님께 바른 사실을 알려드려 스승 서철원 목사님 명예를 지킬 줄 아는 참된 제자가 없다. 바로 이것이 서철원 목사님 큰 불행이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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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철원 교조주의’ 목사들 때문에 또 감상한 ‘파발 <바보를 위한 엘레지>’
https://cafe.daum.net/reformedcafe/jMaU/88
2) {바른 믿음} {독자 마당}에 ‘옳은 믿음’이라는 별명으로 글을 올리시는 분이 등장하고, {바른 믿음} {독자 마당}에 올리신 ‘옳은 믿음’ 님 글 몇 편을 읽고 ‘어울림 님이시구나.’ 생각하며 {바른 믿음} {독자 마당}에 별명 ‘참믿음’으로 글을 올렸던 나는 ‘시골 청년’ 님을 ‘옳은 믿음’ 님과 동일 인물로 생각한다. 또한 ‘옳은 믿음’ 님을 {Daum} 카페 {양무리 마을} 시절 ‘철수’ 님, {개혁주의 마을}에서는 별명 ‘어울림’을 쓰셨던 철수 님으로 생각한다. 참고로, 2014년 2월에 {양무리 마을}에서 문재文材 어울림 님이 쓰셨던 별명은 ‘soon5908’이었다.
3) 이 책 24쪽과 137쪽.
4) {바른 믿음} 서철원 <능동 순종, 종교개혁 허물어 다시 율법주의-로마교회로 복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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