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포(鄭誧)는 자(字)가 중부(仲孚)이고 나이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예문관수찬(藝文館修撰)으로 표문(表文)을 받들고 원(元)에 갔는데, 마침 충숙왕(忠肅王)이 환국하던 길에 정포를 만나니 왕이 그를 사랑하고 만류하여 자신을 호종(扈從)하게 하고 갑작스럽게 좌사보(左司補)를 더하였다.
충혜왕(忠惠王) 때 전리총랑(典理摠郞)을 거쳐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로 임명되었는데, 봉박(封駁)을 한 것이 많아 집정(執政)이 미워하므로, 체직(遞職)되어 집에서 지냈다. 어떤 사람이 참소하기를, “정포 형제가 상국(上國)으로 달아나 왕의 아우[大弟]를 곁에서 도울까 두렵다.”라고 하였다. 이에 정오를 영해(寧海)에, 정포를 울주(蔚州)에 유배 보냈다. 정포는 적거(謫居) 중에도 시(詩)를 읊고 태연자약하였으며 서슴없이 원에 가서 벼슬할 뜻을 가졌는데, 일찍이 말하기를, “대장부가 어찌하여 〈고려 땅〉 한 구석에서 답답하게 있을 것인가?”라고 하였다. 뒤에 연도(燕都)를 여행할 때 승상(丞相) 별가불화(別哥不花, 베케부카)가 한 번 보고 크게 아끼며 황제에게 천거하려 하였으나, 마침 병이 나서 죽으니 나이 37세였다.
〈문집으로〉 『설곡집(雪谷集)』이 있어서 세상에 돌아다닌다. 〈정포는〉 시사(詩詞)가 간결하고 예스러우며 필적(筆蹟)도 또한 묘하였다. 아들은 정공권(鄭公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