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심장에 입을 맞추다
이영식
선홍빛
동백꽃 심장에 머리 박고 죽은
동박새를 보았다
아니, 동박새 부리에
온몸 찢긴 동백꽃을 보았다
아편처럼
아편처럼
동박은 동백의 꼴샘 속에 부리를 묻고
동백은 동박의 단꿈을 빨았을 것인데
찌이 찌이-
체위를 바꾸며
전심으로 주고받은 입맞춤
물고 물려 죽음에 이른
장엄한 의식
내 가슴속 작은 불씨 하나
쪽동백나무 가지로 번지고 있다.
자전거와 달팽이
이영식
강촌 자전거 도로
민달팽이 한 마리 뭉개져 있다
비명횡사 중에도
시 한 줄 남겨놓고 가셨다
집도 절도 없이
몸 하나로 밀고 가는 길
제 3의 속도가 그 부드러운 순간을 가로질렀나보다
문상객은 바람뿐
초롱초롱 개망초 꽃등 켜 놓고 가는데
자전거와 달팽이의 속도
사이
갓길에 불편하게 걸쳐 있는
내 그림자.
낙타사파리
이영식
낙타의 몸속에는 지도가 숨어있다
어미젖 떼고 마신 첫물 냄새로 시작하여
사막 곳곳 샘터의 기억을 새겨 넣는다
肉峰
깊숙이 내장된 물의 지도,
낙타의 全生 출렁이며 발굽을 끌고
모래바다 위 좌표를 찍는다
낙타는 발자국을 지우지 않는다
풀 한 포기 없는 다클라마칸 황사계곡
목숨처럼 찾아 마신 물의 유전자가
골수에 스며들 때쯤
쌍봉낙타 고개 들어 입 거품을 뿜어 날린다
사막의 정령은 그제야 생각난 듯 바람 놓아
발자국을 쓸어 덮는다
낙타는 알라에게 목을 꺾지 않는다
무릎 높고 보폭 좁은 걸음 도도하기 짝이 없다
인간이 세워놓은 아흔아홉 神宮 너머
카멜의 누각, 그 높은
정신을 향해 긴 눈썹이 열린다
깃털 같은 마지막 짐 하나에 거꾸러지면서도
그들의 별자리에 神聖을 모셔놓았다
낙타사파리를 떠나자
일상의 갈고리에 걸려 비루먹던 나날들
뚝, 떼어 던지고 사막으로 가자
낙타가 길 없는 길을 어떻게 제 몸피 속에 그려 넣는지
그리움 깊으면 십리 밖 물 냄새도 맡을 수 있는지
오래전 우리 꿈에서 빠져나간 몽고반점 같은
물의 지도를 따라가 보자
한입 베어 물고 싶은 날고기 같은 하늘 아래
사막의 시간은 산 채로 씹힐 것이다
날 것 그대로의, 나를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