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너를 탓하랴
서동근
이른 새벽 아파트 신축현장의 망치소리가 우렁차다. 겨울로 들어서는 날씨가 제법 차갑다. 몸을 웅크린 채 집을 나선다. 세상은 아직 고요한데 다른 한편에선 벌써 분주한 삶이 시작됐다. 눈앞은 어둠과 안개로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렵다. 매일 오가는 길이 익숙해져 발 아래 돌부리 정도는 이제 문제되지 않았다.
적막한 공간에 느닷없이 침입자가 나타났다. 안개 속에 검은 물체가 갑자기 발길을 가로 막는다. 동공이 확대되면서 순간 움찔 몸이 굳었다. 비단 나만 놀란게 아니었나보다. 검은 물체도 긴장한 채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 몰라 발짝을 떼지 못하고 한동안 요지부동이다. 눈만 멀뚱멀뚱 뜬 채 갈피를 못 잡는다. 잠시 그렇게 대치하다가 “흠” 헛기침을 하자 그제서야 후다닥 줄행랑을 친다.
요즘 새벽길이나 저녁노을이 질 때 쯤 길에서 고라니를 자주 보게 된다. 주변이 산업단지로 개발되며 그들의 생활 터전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산과 들이 깎이고 메워졌으며 구릉지 숲이 사라졌다. 그나마 남은 손바닥만 한 녹지는 아스팔트 도로와 아파트 건물들 사이에 고립되고 말았다. 동물들은 담장 없는 우리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낮엔 사람들 눈에 뜨일까 두려워 풀숲에 웅크리고 있다가 그나마 인적이 뜸한 밤이 되어서야 움직인다. 개중에 사리분간 없이 도로로 나섰다가 로드킬 당하는 동물들을 종종 보게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그 속도는 그야말로 초스피드다. 문명의 발전이 인류에게 미친 영향은 가히 획기적이고 엄청나다. 그럼에도 나는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 더 높이, 더 많이, 더 빨리 갖기를 원한다. 산림이 파 헤쳐지고 초목이 잘려 나가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개발의 장애물에 안달하고 조급해 한다.
산성부근 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해마다 늦은 가을철이면 너구리, 멧돼지가 출몰 하는 시기다. 올해도 어김없이 봉분을 두르고 있는 활개부분에 큼지막한 굴을 뚫어 놓았다. 남향의 햇볕이 잘 드는 곳에 터를 잡아 겨울을 지낼 모양이다. 이는 분명 너구리의 소행이다. 평평한 곳은 멧돼지가 마치 고랑을 일궈 놓은 듯 헤집어 놓았다. 며칠 전 꿈자리가 심란하더니 이제 보니 너희들이 나의 수면을 방해했구나. 참으로 야속하고 생각할수록 괘씸하다.
벌써 수년째 이어오는 이들과의 전쟁이다. 갖은 방법을 다 써봤다. 농약, 나프탈렌, 자동차 폐유 등 인터넷에 소문난 특효약까지... 약효는 잠시 뿐이다. 급기야 분묘 전문가에게 자문을 청했다. 특별한 묘안이 없단다. 다른 곳으로 이장을 하든가 묘지 주변에 휀스를 치란다. 어쩌랴! 너구리가 뚫어 놓은 구멍을 메우고 멧돼지가 헤쳐 놓은 흙을 다듬었다. 이들도 살기위한 방법이니 결코 포기하기 만무하다.
이 땅의 주인은 진정 누구인가? 인간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자칭 고등동물인 내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자연 생태계의 한 객체에 불과하다. 모든 숨탄것들의 자연스러운 조화 속에 유지되고 지속된다. 그러나 인간인 내가 무한한 혜택을 독점하고 있다. 어찌 조금 불편 하다고 그 존재를 부정하고 탓 할 수 있겠는가. 식물이나 동물은 누구를 탓 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자기들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제껏 그들에 대한 존재나 의미를 잊고 단지 인간을 위한 부속물로만 생각해왔다.
산등성이에 올라선 고라니가 ‘꺼~억 꺼~억, 울부짖는다. 도심 속에 고립되어 동족과 떨어진 채 살아가야 할 고라니의 운명이 처량하다. 나는 지금 인간으로써 온전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가? 물질의 풍요, 과학의 발전, 신속한 정보, 다양한 문화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늘 갈증을 느낀다. 이런 혜택의 이면에는 관계의 단절, 소통부재, 정서의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 때론 급변하는 사회 변화에 미처 따라가지 못하며 풍요속에 고독을 느낀다. 터전을 잃고 갈팡질팡 갈 곳을 잃은 고라니를 보면서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왠지 씁쓸하다.
생태주의 자연을 생각해 본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나아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는 존재로써 소중하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동등한 존재이며 이 땅에 함께 살아가야 할 생명체들이다. 지금 당장 내가 조금 불편하거나 편리함을 추구하여 제거 하거나 파괴 한다면 언젠가는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엄청난 재앙이 닥칠지 모를 일이다.
봄이 기다려진다. 마른 가지에 새싹이 돋듯이 희망을 꿈꿔본다. 고라니가 혹독한 추위와 고립된 환경에서 잘 견뎌 새봄엔 더 넓은 환경에서 마음껏 뛰어 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해마다 반복되는 산짐승들과의 전쟁에 짜증이 날 때도 있겠지만 이들로 인하여 돌아가신 부모님 찾아 뵙기에 자칫 소흘해질 내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 뚫어 놓으면 메우면 되고 파헤쳐 놓으면 다듬으면 되지... 아무려면 내가 감내 할 수고가 너희들이 살아갈 환경이나 고충보다야 누리는 혜택이 크지 않겠나.
첫댓글 생태환경을 해치는 고등동물이라 하는 인간들이 대자연 랖에 석고대죄 해야할 시간이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모든 생명체가 평화롭게 공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듯합니다.
수필창작 강의 중에 들었던 '에코페미니즘'을 떠올리게 되는 글이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생태수필이라고 하면 다들 어렵게 생각하던데, 아주 좋은 본보기 글입니다.
환경보호보다 상위개념으로서의 생태주의를, 결국 우주 안의 모든 자연이나 인간은 하나라는 의식을 잘 표현하셨습니다.
도심 속에 고립된 고라니를 보고 풍요 속에서도 관계의 단절과 정서적 고립을 느끼는 자신을 생각하셨네요
맞아요 군중 속에 고독이란 말이 실감나는 하루하루 같아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