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로 부곡정으로 갔다. 우리 목요산우회 회원들이 여럿 와 있었다. 그렇게 모인 동창생들은 9명(강공수 강종원 나종남 박남용 양수랑 오은열 윤상윤 이용환 이정학 등) 이었다. 10시가 넘어 산행을 시작하였다. 나는 맨 앞서서 오은열과 동행하여 올라갔다. 조금 얇은 옷을 입고 있었더니 등이 서늘하였다. 그래서 숲 그늘 길을 피해 햇볕을 받으면서 걸을 수 있는 아스팔트 도로로 나가서 걸었다. 오은열 친구는 몇 년 전에 지붕을 수리하다가 낙상을 한 후로 여러 가지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 신세를 지게 되어 건강 상태에 이상 징후를 겪고 있다고 들었는데 오늘 같이 걸으면서 그의 몸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걱정할 것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작년부터 하루에 1만보 이상을 빠지지 않고 걸었더니 이렇게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휴대폰에 자동 저장된 하루의 걸음수와 거리(km)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여 주었다.
등나무 밑의 벤치에서 잠시 쉬었는데 회원들이 뒤따라오는 기색이 없어서 우리는 다시 올라갔다. 약사암에 도착하여 석등에서 나오는 석간수로 음양탕을 만들어 마셨다. 용변을 마치고 한참을 더 기다렸더니 후속 부대가 도착하였다. 친구들이 연등 아래서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11시가 넘어서 하산하였다.
오은열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 교직에서 봉사한 햇수는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중열이라는 형님 역시 우리 학교의 선배로 교직에 봉직하시다가 정치에 입문하여 정치인 생활을 한 것에 영향을 받아 오은열 친구도 정치인으로 또는 여러 공직에서 기관의 장으로 종사하면서 우리 동창생들에게 도움을 준 이야기들은 나로서 다 알 수도 없을뿐더러 또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오은열 친구가 그런 여러 직에 종사하면서 우리 동창생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주었지 해를 끼쳤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그의 출신성분이 선비 집안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증조부님은 호남이 인정하는 훌륭한 교육자이셨다. 오은열의 증조부님 후석(後石) 오준선(吳駿善, 1851~1931)선생은 일제강점기에 광산구 임곡동의 용진산(聳珍山)에 자리 잡은 용진정사(湧珎精舍)에서 후학들을 양성하시면서 민족정신의 함양을 위해 노력하셨던 그 당시 이고장의 정신적 지주(支柱)이셨다. 그런 분의 후예이었기에 그는 조상에 대한 자긍심에서 무슨 일이든 친구들을 도우려고 애를 썼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수년 전에 자비(自費)로 전남대학에서 증조부이신 후석(後石)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학술발표회도 개최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시 우리가 점심을 먹을 부곡정으로 내려왔다. 오늘 등산에 참가한 친구들(9명) 외에 점심시간에 합류한 4명(김상문 장휘부 정자룡 최기동 등)이 더하여 13명이 점심을 먹었다. 각자 주문한 애호박찌개와 김치찌개 그리고 파전 등 13인분 외에 오은열이 돼지 주물럭 3인분과 이정학이 소주 1병을 주문하여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13회 이정훈 선배가 또 막걸리 두 병을 보내와서 목을 축이기도 하였다. 현 우리 십오야 동창회 집행부가 처음 시행하는 합동산행이 참가인 수는 적었지만 즐겁고 유쾌하게 무사히 끝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더 많은 친구들이 참가하여 즐거운 행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첫댓글 건강관리와 회원들의 단합을 깊이 생각하시는 회원들이 많이 참석해 주시어 뜻있는 산행을 무사히 마치게됨을 다행으로 생각했습니다,그런데 아석 목요산우회장님께서 산행의 전모습을 총천연색 그림처럼 보이게하는 글솜씨로 추억을 기록해 주었네여ㅡ.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