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지 2 금등대의 밑판과 줄기
31.너는 순금으로 등대를 쳐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결하고
34.등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35.등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게 하고
36.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결하여 전부를 순금으로 쳐 만들고
- 출애굽기 25
1. 등대의 밑판 (기초):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자람
금등대는 밑판부터 시작한다 (출 25:31). 성경은 밑판이 얼마나 큰지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온 등대를 지탱하기 위해 충분히 강해야 한다. 밑판의 히브리어는“yarek”는 “넓적다리”란 뜻이다(출 32:27). 등대의 밑판은 등대 줄기가 나와서 자라는 근원이다.
만약 금등대가 살구꽃이 피는 나무라면 밑판은 뿌리와 같을 것이다. 뿌리가 건강한 나무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처럼 등대의 밑판이 강해야 등대를 온전히 지탱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밑판, 기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유일한 기초(foundation)이요: 이외에 능히 다른 기초가 없다 (고전 3:11). 바울은 고린도 전서 3장 10절에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기초(터)를 닦아 둔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일을 시작할 때 먼저 기초를 어떻게 놓아야 할 지 조심해야 한다.
1. 사람의 갈망과 필요에 따라서 기초를 놓을 수 없다.
2. 회중의 선호를 따른 프로그램이 기초가 될 수 없다.
3. 회중의 필요를 따른 행정이 기초가 될 수 없다.
4. 위대한 사역자의 가르침이 기초가 될 수 없다.
모든 것은 적극적일 지라도 하나님의 금의 본성에서 나온 갈망이 아니라 사람의 필요 또는 회중의 선호에 의해서 나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나 장로들의 행정이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무시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은 매우 효율적일지 모르나 하나님의 교회가 좋은 인간 조직 또는 종교로 변질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사역자의 건강한 가르침에 감사할 수 있지만, 사역자의 가르침은 다만 우리로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뿐 그리스도를 우회할 수 없다.
우리가 성장하는 기초가 다만 사역의 가르침이나 프로그램이나 행정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를 살아내는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 3장에서 특별히 여러 사역으로 인하여 교회안에 시기와 분쟁이 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바울은“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은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대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고 말한다 (고전 3:5-7).
베드로가 마태복음 16장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말했을 때 주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신다. 곧바로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foundation, 기초)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신다. 밑판, 기초는베드로가 그리스도에 대한 하늘에서 본 계시였다. 바울도 다메섹에서 홀연히 큰 빛을 보았고 주님의 음성인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는 음성을 들었다 (행9:4-5). 그리고 바울은 사도행전 26장에서 아그립바왕에게 " 하늘에서 보이신 이상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라고 말한다. 뿐만아니라 디모데 전서 3장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기초)이니라...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신"그리스도 자신을 소개한다 (딤전3:15-16). 바울이 주님을 섬기고 따르는 것은 살아계신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이였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일은 전적으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기초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할때 밑판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줄기이신 그리스도가 자란다.
2. 아름다운 살구꽃이 핀 줄기
밑판으로부터 살구꽃 나무가 자란다. 등대의 밑판과 마찬가지로 줄기도 그리스도이다. 즉 밑판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줄기이신 그리스도가 자란다. 우리는 등대의 높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이 얼마나 큰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엡4:13).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분은 등대의 줄기가 되기 위하여 두들겨 맞으셨을 뿐만 아니라 세상과 혼합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주님은 요한복음 14장에서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다”고 간증하셨다 (요 14:30). 그분은 전혀 혼합되지 않은 순금의 인생을 사셨다.
밑판과 달리, 줄기는 잔과 꽃받침과 살구 꽃이 있는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하나의 살구꽃 나무로써, 밑판과 한 덩이로 연결 되어있다(출 25:31, 34). 이 얼마나 아름답고 매혹적인가!
3. 잔: 그리스도께서 두들겨 맞으시고 비어지심
그리스도가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분은 등대의 줄기가 되기 위하여 두들겨 맞으셨다. 그러나 이것보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모든 고통과 수치와 조롱과 천대를 감당하셨다. 그분은 “잔”으로 비우시고 낮아졌다 (빌 2:5-11).
주님은 겟세마네에서“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다(마 26:42). 주님은 하나님에 의해서 매맞으시어 꽃받침으로 변형되기 위하여 완전히 비우셔야 했다.
4. 꽃받침(Bulb): 그리스도의 풍성한 부활하심
살구 나무에 있는 꽃받침은 앞으로 필 꽃 봉우리의 모든 생명을 지니고 있다. 만일 등대에 잔이 비워져 있다는 것은 주님은 죽음으로 인하여 비우셨음을 의미한다. 분명히 꽃받침은 그분의 부활 생명을 의미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꽃받침인가!
1. 꽃받침은 신성한 본성과 속성을 지니신 신성한 하나님을 포함하고 있다.
2. 꽃받침은 모든 인간 미덕이 신성한 속성을 통하여 표현하신 사람 예수님을 포함하고 있다.
3. 꽃받침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영원한 생명과 함께 영원을 포함하고 있다.
4. 꽃받침은 모든 그리스도 인들이 하늘에 속하시고 운행하시는 분을 참여하고, 거하며, 누림을 포함하고 있다.
5. 꽃받침은 제한이 없는 승리하신 능력을 포함하고 있다.
6. 꽃받침은 갈망하는 자들이 참여하고 얻을 수 있는 무한한 생명의 근원을 포함하고 있다.
7. 꽃받침은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 인들이 무한히 쓰고도 남을 삼일 하나님의 풍성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이 주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신 꽃받침이다!
그분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두가지 본성을 있다. 주님의 인격 안에 하나님과 사람의 본성이 있다.
1.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고, 영화롭고, 승리하신다. 그분은 항상 우리를 매혹시키며 격려하시고 공급하시고 부축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인내를 가지고 그분께 참여하고 따르게 한다.
2. 사람이신 예수님은 참으로 실제적이시다. 그분은 주님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모든 자들에게 매순간 어떤 환경에서도 함께하신다.
꽃받침 안에는 축복의 생명이 있다. 그러나 이 축복의 생명이 해방하고 꽃이 피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죽음의 잔을 통과하시고 부활하셔야만 했다. 그리스도가 부활한 순간 그분의 축복의 생명은 모든 믿는 이들이 누리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해방되었고 꽃이 피웠다. 그분은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 (롬 1:4). 이 얼마나 아름다운 꽃인가! 이 얼마나 놀라운 과정들인가! 이와 똑같이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 모두가 이러한 과정을 기쁨으로 동참할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때, 우리의 주변 온 세상에 부활 생명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5. 줄기에 있는 네 개의 살구꽃: 그리스도가 하나님- 사람으로 하나님의 만족을 위하여 사심
등대의 줄기에는 네 개의 살구꽃이 있다는 것은 매우 비밀스럽다. 그리스도는 한번 죽으시고 한번 부활하시고 한번 승천하셨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등대의 줄기에 하나의 살구꽃이면 충분할 것 같다. 그러나 네 개의 살구꽃은 줄기에 있음은 주 예수님에 관한 특별하고 달콤함을 보여준다.
한면으로 총 네 개의 꽃이 있다. 또 다른 면에서 네 개의 꽃은 3과 1로 나눌 수 있다. 처음 3은 가지들의 근원이며 1은 줄기의 꼭대기에 홀로 서있다.
전체적으로 네 개의 살구꽃은 그리스도가 넷인 창조물의 숫자로서 사람이심을 증명한다. 하나님-사람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실 책임이 있다. 더욱이 그분은 창조물을 대표로 하여 오직 하나님에 대하여 책임을 지신다. 이것이 네 개의 살구꽃의 의미이다.
처음 세개의 살구꽃은 사역을 위하여 있다. 각각 세개의 꽃들은 두개의 가지들을 생산한다. 그러나 마지막 꼭대기 하나의 살구꽃은 오직 하나님만을 위하여 있다. 이 마지막 꽃은 그리스도의 순수함을 보여준다. 그분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을 위해 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네번째의 꽃의 가장 높은 성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가에 따라서 이러한 성취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금등대가 이것을 예표하며 주 예수의 생명이 이것을 증명하신다.
주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분은 실로 하나님의 간증이셨다. 그분은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으셨다 (요 12:24). 그분은 자신을 하나님과 사람의 만족을 위한 많은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로 비유하셨다 (요 15:1).
그분의 인생의 마지막에서오직 자신을 하나님께 부탁하셨다. 그분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라고 하시고 운명하셨다(눅 23:46).
이것이 네번째 살구꽃이다. 예수를 믿고 사랑하고 봉사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러한 체험을 해야 한다. 많은 주님의 위대한 종들이 세개의 살구꽃으로 끝나고 가지를 친다. 그러나 이것이 주님의 마지막이 아니셨다. 그분의 생의 마지막은 오직 하나님 자신의 만족만을 위하셨다.
네번째 살구꽃이 얼마나 고귀한가! 아마도 이 살구꽃은 “나는 하나님에 의해서 매맞은 바 되고 비워진 잔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꽃받침으로 풍성한 생명을 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꽃피움이 다만 하나님 자신이 만족하시길 원합니다”라고 간증할 것이다.
우리의 영적 체험에 있어서 네번째 살구꽃은 앞에 있는 세개의 꽃의 실재를 간증한다. 우리의 대부분은 이러한 체험이 없지 않은가? 주께서 우리를 격려하고 역사하시어 우리가 잔이 되게 하고 꽃받침이 되게 하며 살구꽃이 되어 피기를 부탁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네번째 꽃이 피기를 체험해야 한다. 사역의 일이 결론이 아니다. 하나님자신이 결론이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하나님의 일로 인하여 축복을 주실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하나님만이 만족하실 수 있는 네번째 살구꽃을 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