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기우는 역시 보란듯이 빗나갔더군요. 1학년 아이들 모두 대견할 정도로 잘 지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민들레학교의 봄기운은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과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발꿈치에서 넘쳐 나고,
연해진 나무와 풀들의 낯빛, 부드럽게 파헤쳐진 흙위에도 흐드러집니다.
거저 얻어먹는 밥과 밤새 찜질방에서 잘 재워주신 데 보답하기 위해 짜뽕쌤과 경민쌤께 교육을 받고 감자를 몇 이랑 심고,
파밭의 잡초 몇뿌리 뽑았는데, 등줄기에 땀이 나고 갈증도 났습니다. 허락 없이 배추도 두 포기 캐내어 저녁에 된장국
도 끓여 먹었습니다. 예찬맘이 제가 열심히 캐서 나눈 쑥이 민들레여서 된장국을 못 먹게 되었다고 해서 정말 민망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서울 토박이들의 비애를 절감하며 다시 한 번 겸손한 자세를 갖춰야겠다고 반성 많이 했습니다.
어제 밤 10시가 다 되어 학교에 도착하니 숙직 당번이신 박지용쌤이 아이들 칼같이 재우고 계셔서 눈치만 보다가 겨우
잠자리에서 머리만 내민 주협이와 몰래 상봉하고 나왔습니다. 반갑다고 안기는 주협이보다 줄줄이 양옆으로 누워서
지켜보는 어둠 속의 1학년 아이들이 안스러워서 허겁지겁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농담 속에 진심을 담은 진솔이는
우리 엄마도 서울 사는데 오지도 않았다고 타박을 해대고, 다른 아이들은 '주협이 좋겠다'며 같이 흥분해서 잠도 안자고..
자는척 아무 말도 안하는 아이들도 엄마 대신으로 머리 한 번씩 쓰다듬어 주고 나오려니 왜 그렇게 안쓰럽던지요.
칠흙같은 어둠 속에 누워 숨죽이고 그리움을 삭히는 아이들의 마음이 그대로 읽혀서 아이들 곁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
습니다. 너희들 엄마, 아빠는 몇 배나 더 너희들을 보고 싶어하신단다. 이 말이 위로가 되었을까요?
재영맘은 다음날 직장에 중요한 교육이 있는데도, 아들 곁에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서 새벽 5시에 서둘러 출근하시고..
찬영맘은 이틀씩이나 귀가를 안하고 민들레학교에 머무느라 작은 아들에게 원망을 많이 듣고 있더군요.
새벽 5시부터 울어대는 수십마리의 수탉들 목청에 뒤척이다 6시 정각에 종이 울리고 5분도 안되어 일제히 몰려 나간
아이들이 무려 50여분이나 아침 산책을 하고 상기된 얼굴로 돌아오더군요. 7시도 되기 전에 부지런한 2학년 누나들이
도서실에 와서 책을 펼쳐 들고, 남학생 1등 경민의 뒤를 이어 푸릇푸릇한 형들도 모두 도착하여 아침 식사 전에 예배와
큐티에 임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된장국 냄새에 주방까지 와서 '와, 맛있겠다!'를 외치고 간 승철이, 설겆이 당번 정하기 가위바위보가 흥미진진하게 전개
되더니 1학년 박민호 앞에 접시와 국그릇이 열개도 넘게 쌓였는데, 불평 한 마디 없이 그릇을 닦는 민호가 얼마나 대견하
던지요. 옆에서 함께 설겆이를 도우면서 오히려 제가 더 즐거웠습니다. 동건이는 어느새 마당에서 빗자루를 들고 청소중
이었고 현석이는 쉬는 시간에 뛰어와 감자 심는 저를 도왔습니다. 진솔이는 민들레 개그왕 답게 연신 웃기고, 떠드느라
쉴 틈이 없고, 온지 일주일도 안 된 박 현이는 공동체에서 수제비를 먹으며 당당히 '간장 좀 주세요'하고 요청할 정도로
조용히 적응해가고 있었습니다. 동균이는 2학년 형들과 친하게 어울리고, 다른 1학년 아이들도 2학년 형들과 붙어다니며
의기투합해서 지내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았습니다.
일주일동안 지낸 일과를 짧게 정리해서 써낸 일지가 교무실에 있길래 양해를 구하고 읽어보며 얼마나 기분좋게 웃었던지요.
모두 민들레 24시 다큐멘터리의 훌륭한 소재였는데, 저마다 넘치는 개성과 감성과 끼와 주장들이 '날 것' 그대로 살아있는
그 묘미를 다른 민학모 학부모님들도 맛보시길 적극 추천합니다. 역시 남학생들의 관심은 단연 '축구'와 '컴퓨터'이고, 여학생
들은 영화와 성교육, 공부 등 다양한 관심사에 더듬이를 뻗어나가고 있어서 대조적이었습니다.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기를
드러내고, 그런 자신의 느낌을 소중히 여길줄 아는 민들레 홀씨들의 3년후, 5년후가 너무나 기대됩니다. 그들 앞에 펼쳐질
세계와 그들의 끈끈한 우정, 그 곁에서 웃고, 울고, 행복해서 목이 메일 우리들의 모습이 축복처럼 다가옵니다.
다소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해 보이기까지 해서 걱정이 많았던 주협이는 그 산만함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아이들 사이를
분주히 누비고 다녀 이 어미의 걱정을 날려버렸습니다. 누구에게나 주눅들지않고 자신있게 다가가 먼저 말 건네고, 친해지는
아들을 보는 것만으로 저의 꿈은 이루어진거나 다름 없으니까요. 남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곧 자신의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알
게 되면 더 이상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주협이는 제빵 동아리에 당당히 가입해서 맛있는 빵을 만들어 나누어줄 상상으로
들떠 저에게 요리책을 사오라고 주문까지 했습니다. 저는 하루빨리 아들이 만든 음식으로 영육을 채우고 싶습니다.
제가 이번에 민들레학교의 규칙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저지른 중요한 실수가 있습니다. 주협이와 통화하며 치킨을 사간다고
한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2주동안 집중적으로 식생활을 바꾸고 새롭게 민들레 정신에 맞는 몸으로 키워나가는 과정인 것을
간과한 어리석은 약속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의 난감한 표정과 단호함에 맞닥뜨려서야 저의 경솔함을 깨닫고 결국 아이들에게
설명과 사과를 하고 과일로 대체를 했습니다. 이미 음식과 식생활에 대한 수업을 들은지라 아이들은 아쉽지만, 학교의 규칙에
순응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본의 아니게 허풍장이, 늑대소년이 되어 버린 저의 미숙함이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아이들마다 지닌 장점과 단점, 한계와 아픔까지 보듬어가는 민들레 홀씨들의 놀라운 모습을 짧은 시간이나마 목격하고 온
저는 이제 어른도 부모도 기성세대도 아닌 민들레 식구로 거듭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민들레 학교가 있는 그곳이
따뜻하고 편하기만 했는지 그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사랑을 낳고, 아이들이 어른을 깨워나가는 놀라운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곳, 그곳이 민들레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팍팍한 도심에서 그곳까지 아이들은 이끌어 주시고, 더불어 고개 숙여 자기 발아래를 내려다 보는 부모로 성장시켜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수고 많았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올려 주신 글로 힘이 될 줄 믿습니다. 노파심에서 한 말씀 올리자면 민들레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이제 어린이가 아닙니다. 틴으로 다시 청소년기를 보내야 합니다. 이미 1년의 경험을 소유한 학교를 믿고 아이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내다 보면 자주 가시는 학부모님과 그렇지 못한 학부모님이 있기 만련입니다. 그래서 자주 가시는 학부모님들은 내 아이 먼저가 아니라 모든 아이들, 만나는 순서마다 똑같은 부모로서 안아 주고 쓰다듬어 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 앞에서 찐한 애정 표현은 가급적 지양하시는게...
내려놓음...더 내려놓음..명심합니다. 우리가 무슨 찐한 애정표현을 한다고...그리마옵소서! 아들 봤으니 한 번은 안아줘야지유~ 아니 주주맘은 1힉년 얘기만 그 좋은 필치로...예림찬맘! 드뎌 쓰실 차례입니다. 숙박스케치 중 2학년 얘기를 올려주시지요. 빨리요.
말로만 내려놓음 뭐합니꺼~
어쩌면 그리 글을 잘 쓰시나요 탐방보고서 한편 읽을것 같습니다 우리 부부 문상 마치고 내려 가는데 아이들이 막 올라오더군요 우리 명성이는 슬쩍 보기만하고 아이들 툭툭 치며 인사를 했지요 무뚝뚝한 명성아빠도 1학년들에게 "명성이 아빠다" 하며 인사를 건네더군요 옆에서 보기 좋더라구요 모두모두 내자식 같고사랑스럽고 예쁩니다
안그래도 엄마 금방 가셨다했더니 만났다하더군요. 그날 뒷풀이에 없으셔서 아쉬웠습니다. 사모님! 운전에 도전하세요. 글구 민들레 오실 때는 뒷약속 하지 마세요. 우리가 언제 또 본다고....
그래 볼까요? 사모님 도전을 주셔서 감사해요
현장을 스케치하는 탁월한 은사들을 이렇게 나눠 주심으로 더욱 풍성한 언어집이 부족한 제 내면에도 지어지는 것 같아 내심 기쁩니다. 2기 민학모님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감동도 되고요. 그날 멀리서 큰 걸을 하시느라 이분 저분 수고 많으셨어요^^ 아이들 간식도..감사. 오늘도 파이팅!!
글쎄 이런 범상치 않은 소감을 저에게도 요구하시니 대략난감입니다.^ ^;; 사모님!!! 주주맘께는 민망하게 해드릴려고 한것이 아닌데... 전에한번 그런 실수를 하고 또 민들레와 쑥을 볼 줄 모르는 제가 더 민망..
"민들레와 쑥"ㅎㅎ 그런적이 있으셨군요. 어디선가 쑥덕 쑥덕 하는 것 같습니다^^
민들레하고 쑥하곤 착각할 거시기는 아닌데...
민들레도 좋은 국재료인데...민들레는 좀 더 있으면 무성하게 잎이 자라납니다. 생으로 상추쌈처럼 먹어도 맛있고 김치만들어 먹어도 훌륭합니다. 참고로 간(liver)에 아주 좋은, 풀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까운 풀입니다. 많이 드시면 좋습니다.
민들레는 먹을 게 없는 사람들이 억지로...
간에 좋다면 우리 집사람 약을 하도 많이 먹어 간이 약해졌는데..어떻게 먹어야..? 약효가 쑥쑥..
민들레를 깨끗이 씻어서 김치양념으로 담궈 먹기도 하고요, 말려서 가루를 내어 환으로 만들어 하루에 2번씩 먹으면 좋다고 들었습니다.
감사^^ 병은 자랑하라고 배웠어요. 위장이 안좋다고 하니까 메실 액기스를 경민아버님이 한병 주신다 하셨어요. 얼매나 감사한지.. 민학모덕분에 오래 살것어요. 정말~!!! 날로 튼튼하고 실해지는 위장 간장.. 고추장 ect.. ㅎㅎ
글만봐도 민들레학교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수 있네요 2기 학부모 기자하셔도 되겠습니다.
부족한 스케치에 넘치는 과찬을 주셔서 부담백배^^ 제가 아직 1기 아이들과 많이 친해지지 못한 탓에 2기 아이들 소식만 전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한 아이도 사랑스럽고 아름답지 않은 아이가 없었습니다. 저도 스무명 넘는 아들딸 속에서 행복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좀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밀착(?)해서 따끈한 소식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학교에 선생님 중심의 동아리도 만들기로 했는데 편집부가 있거든요. 제가 편집부에 추천해서 글을 싣도록 해야겠네요. 생생함이 넘치는 글입니다.
저는 많은날을 학교에 갔지만 한번도 이런글을 남기질 못했는데...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아이들 곁에서 웃고,울고, 행복해서 목이 메인다는 그말 정말 공감 100배 입니다. 2편 3편 계속 기대해도 될까요? 부담 드리는건 아닙니다. 다만 기다리겠습니다.
글로 때우시는 분도 있고 사진으로 때우시는 분도 있고 몸으로 때우시는 분도 있고 댓글로 때우는 분도 있지요~ 우린 이걸 다양성이라 표현하고 싶군요~
허허~때우시다니요. 지금 제가 때우고 있다는 말씀입니꺼. 다양한 "헌신" "봉사"이런 언어로 품격의 격상을 요망하는 바입니다^^
옳소오~
교장선상님이 따로 계셨네~
집에서 뒤돌아서며 저녁에 뭐 먹냐고 외치던 모습이 그려집니다. 냄새에 얼마나 민감한지... 주주맘 글 보니 정말 더욱 맘이 놓입니다. 편집부에 저도 적극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