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둘러친 태백 땅에는 옛날에 범이 시끌벅적할 정도로 많았다. 대낮에도 혼자서는 마음놓고 밭일이나 나들이를 못할 정도였다. 그 시절 철암, 동점에 살던 사람들이 꽤나 호식을 당했다. 그 범이란 놈이 사람을 잡아먹고는 두개골만 산에다 버려놓았다. 이후 이 산은 두골산(1044.1m)이라 부르게 되었다. 두골산 부근에는 호식당한 사람의 무덤인 호식총이 아직도 남아있다.
다른 지방은 벌써 초여름이건만 태백은 이제서야 봄이 조금씩 오고 있는 것 같다. 말이 봄이지 초겨울처럼 날씨가 쌀쌀한게 여간 내기가 아니다. 한여름에도 군불을 지피고 이불을 덮고 자야할 정도니 봄이 아니라 겨울 날씨나 다름없다.
정이호(65세, 태백한마음산악회), 남청희(50세, 강릉시 왕산면우체국)씨와 함께 두골산 들머리가 되는 423번 지방도가 지나는 태백시 상철암 머리골, 매상골 입구에서 산행을 나선다.
태백선 철길을 기준으로 서쪽은 신도로, 동쪽은 구도로가 마을을 지난다. 가는 길에 정이호씨 부인 전혜자 여사가 운영하는 '소라 속셈학원'이 보인다.
백병산(1259.3m)과 면산(1245.9m)을 잇는 낙동정맥에서 발원한 물이 매상골과 머릿골로 흐른다. 계류 건너 철암 북동파출소 건물에는 때늦은 벚꽃이 만개했다. 한가로운 물길 옆의 포장길을 따라 걷는다. 철암초등학교에 다니는 여자 아이 둘이 정답게 지나간다. 하늘색 바지를 입은 학생은 서희이고, 빨강 신발에 노란 가방을 든 아이는 박현숙이다. 정이호시와 남청희씨가 학생들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정겹다.
숲속에서는 시샘이라도 하는 듯 장끼란 놈이 목청을 돋구어 '꿩!' '꿩!' 까투리를 부른다. 파란 호밀밭 둑으로 눈이 부시도록 조팝나무가 하얀 꽃을 피웠다. 옛날 춘궁기에 저 꽃을 보고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좁쌀' '조팝' 이라 했겠는가?
20분쯤 오르자 오른쪽 두골산 자락에 보이는 고산지대 농산물연구소 단지로 가는 삼거리다. 그대로 직진한다. 30분 거리에 매상골과 머릿골이 갈라지는 삼거리다. 삼거리에는 호식총 안내문과 장승이 있다. 오른쪽 매상골 길로 간다. 매상골을 매를 길러 꿩을 사냥하던 골짜기라는 말인데, 면산의 두리봉으로 가는 곳이란 뜻, '뫼산골'이 아닌가 싶다.
매상골로 들자 시멘트 다리를 건너는 계류에는 물고기들이 너닐고 있고, 오른편으론 두골산 정상이 올려다 보인다. 다시 시멘트 다리를 건너 조금 가자 계류를 건너기 전에 두골산쪽 비탈로 경운기 길이 나있다. 그곳으로 가자니 산행코스가 너무 짧은 것 같아 그대로 매상골로 들어선다. 잠시 후에 지난 수해로 바위들이 뒹굴고 있는 틈새로 물이 졸졸 흐르는 심도령텃골 입구다.
갑자기 비가 내린다. 얼음같이 차가운 비다. 범이란 놈이 조화를 부리는 걸까? 계곡에는 간벌한 나무들이 뒹굴고 있어 자연 발걸음이 느려진다. 광산길이다. 올라갈수록 입구보다 산행하기가 수월해진다. 이제 겨우 취나물이 낙엽을 밀어내고 고개를 내밀었다. 꽃이 진 생강나무 군락은 새순이 돋으며 작설을 흉내내고 있다.
편편한 터에 석축도 보이고 우물터도 어렴풋이 남아 있는 것이 집터다. 여기가 심도령이 살던 터인가. 갑자기 닭살이 돋는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니 유실수도 있다.
집터를 뒤로하고 몇 걸음 더 오르자 산림복구 석축을 쌓은 폐광터다. 조금 더 오르자 삼거리다. 오른쪽은 광산 때문에 생긴 길, 왼쪽 방터골로 넘어가는 옛길 너래재로 간다. 넓은 공터에 외딴 소나무 한 그루가 있고 이장한 묘터 앞에서 왼쪽 숲속으로 든다.
다시 주계곡과 만나더니 넓은 길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습지다. 질퍽거리는 습지를 건너는데, 노란꽃이 핀 동이나물이 군락을 이뤘고 덩굴과 두릅나무 터널을 약 50m 올라치자 안부인 너래재다. 재에는 구덩이도 있고 전주를 세웠던 자리도 보인다. 혹이나 저 구덩이가 범을 잡기 위해 팠던 함정이 아닐까 의심을 해본다.
"옛날 강원 탄광 칠구의 삭도가 있어서 전주가 섰던 자리여. 내가 그때 생산부장을 해먹었지."
정이호씨와 여태껏 함께 산행을 하며 광산 이야기만 했지 이곳에서 근무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형님, 그럼 진작 생산부장 이야기를 하지 그랬어요. 그래서 빠삭하셨구나."
남창희씨가 슬쩍 너스레를 떤다.
심도령터골에서 계속 오던 비가 너래재에서 휴식하며 간식을 꺼내자 잠시 멎는다. 이제는 서쪽 능선을 따라간다. 근간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았다. 구골산 남봉에 올라서기 전 안부에는 광산 도로가 지난다.
"형님, 석탄이 그냥 지표면에 나와 있네요. 노천 탄광이에요. 굴진도 하지 않고 저것 그냥 퍼 담으면 되겠네요."
"저걸 노두라고 해. 탄맥이 지나는데 흙을 걷어 낸거야."
남봉으로 가는 바위턱은 온통 진달래 나무다. 얼마나 거추장스러운지 진달래꽃도 다 귀찮다. 방향을 북으로 틀어 잡목을 헤쳐가자 삼각점(405 재설. 78. 6. 건설부)이 있는 두골산 정상이다. 사방 조망이 좋을 터인데 바람과 함께 차가운 안개비가 온다.
서북 능선따라 하산을 서두른다. 약 5분에 억새가 꽉 들어차 있는 안부에 당도한다. 옛날에는 연못이 있었을 듯싶다. 안부를 지나자 길은 봉우리를 올라서지 않고 슬그머니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간다. 이곳부터는 사람이 많이 다닌 듯 길이 뚜렷하다. 두골산 정상 서쪽 봉우리를 완전히 돌아서자 오락가락하는 운무 사이로 철암 시가지와 연화산(1171.2m)이 지난다.
날씨만 좋으면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흐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을텐데...
탄맥이 지나 간 자리를 파낸 자리가 교통호처럼 생겼다. 태백은 6월 초순에 철쭉꽃이 피는데, 양지쪽에는 성질 급한 철쭉꽃들이 먼저 피었다. 점차 경사가 수그러든다. 기온도 올라간다. 고깔제비꽃, 남산제비꽃들이 묘지를 장식했다. 공동묘지 같다. 조팝나무꽃이 흐르더리제 피었고, 시야가 트이며 헬기장까지 나타난다. 이곳까지 4륜구동 차량은 오를 수 있겠다. 이제는 길도 넓고 조팝나무가 가로수처럼 나열해있다.
두둑 평지에 이르자 산행들머리가 내려다보인다. 건너편에는 흰 병풍을 펼친 백병산의 병풍바위가 멋지다. 석회석이 만물상을 이룬 곳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자 철암중고등학교로 가는 갈이다. 연초록 빛이 길가를 휩싼다. 태백의 봄은 이제서야 오고 있다.
*산행길잡이
매상골 입구-(1시간)-심도령텃골-(50분)-너래재-(1시간)-정상-(1시간10분)-매상골 입구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423번 지방도가 지나는 태백시 상철암 머리골, 매상골 입구가 두골산 들머리다. 두골산은 태백 시내에 있으면서도 사람이 다니지 않아 독도에 신경을 써야 한다. 태백 시민들은 거의가 태백산 산행만 주로 하다보니 근교의 산들은 더욱 잊혀지고 오지가 되다시피 한다. 두골산 산행은 4시간 정도 걸린다.
*교통
태백시외버스터미널(033-552-3100)에서 상철암버스가 20분 간격으로 다닌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태백선 열차(무궁화호)가 하루 6회(08:00, 10:00, 12:00, 14:00, 22:00, 23:00) 다닌다. 4시간30분 걸림. 요금 12,600원. 태백역(033-552-7788)에서 청량리역은 하루 6회(02:00, 06:19, 09:11, 13:01, 16:27, 18:18) 있다.
산악인이 경영하는 동경여관(033-552-6624), 태백민박촌(553-7460), 성류각(552-9020), 태평식당(553-2289), 초막막국수(552-2040). 태백 시내로 나오면 잘 데와 먹을 데가 많다.
*볼거리
호식총 호랑이에 잡혀가 죽은 사람의 무덤을 호식총이라 한다. 호식총은 주검을 화장해돌을 샇아 그 위에 시루를 엎고 사루 구멍에 몰레에 쓰는 쇠가락을 꽂아 놓는다. 돌을 쌓는 것은 '창귀'의 발호를 막기 위함이다. 창귀는 호식된 사람의 귀신으로 범의 호위병 노릇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불러내어 먹이감을 만든 뒤 범의 굴레를 벗어나는 악질이다. 돌로 무덤을 샇아 이 귀신을 꼼짝 못하게 하고, 창귀에 걸리는 피해를 막자는 것이다.
시루는 '철옹성' 임을 뜻하는 동시에 솥 위에 올라앉은 형국으로, 둟린 구멍과 함께 하늘을 상징한다. 모든 것을 지고 쌂아 죽이는 시루를 엎어놓으면 창귀도 그 안에서 꼼짝 못하리라 여겼던 것이다. 아홉 개의 시루 구멍으로 귀신이 바져나갈 수 없도록 벼락을 의미하는 쇠꼬챙이도 꽂았다. 쇠가락을 꽂았던 또 다른 이유는 물레에서 가락의 용도처럼 창귀도 묘 안에서 맴돌기만 하고 나오지 말라는 것이다.
검룡소 강원도 태백시 창죽봉 금대봉의 검용소는 514km에 이르는 한강 발원지다. 제당굼샘과 고목나무샘 물골의 물구녕 석간수와 예터굼의 굴에서 솟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검룡소에서 다시 솟아 나와 한강발원지가 된다. 둘레가 20여m이며 깊이를 알 수 없는 검룡소는 석회암반을 뚫고 올라오는 지하수가 하루 5,000톤 가량 용출하고 있으며, 솟아 나온 물이 곧바로 20여m 폭포를 이루며 쏟아지는 광경은 장관을 이룬다. 검룡소의 그 흐름은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듯이 이끼 낀 암반 위의 홈통을 따라 콸콸 쏟아져 내리다가 계곡으로 들어간다.
삼수령 태백시내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삼척으로 가다보면 해발 920m의 재를 만나게 된다. 이곳은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분수령이 된다. 이곳의 빗방울이 한강을 따라 황해로,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흘러가는 분수령이라 하여 삼수령으로 불린다. 정상에는 조형물과 정자각이 있다. 삼수령을 피재라고도 하는데 삼척 지방 사람들이 황지 지역을 '이상향' 이라 여겨 난리를 피해 넘어왔다는 고개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황지 황지는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로 태백시내 중심부에 위치한다. 이 못에서 솟아 나는 물은 드넓은 영남평야를 도도히 흘러가게 된다. 연못의 둘레가 100m이며, 상지, 중지, 하지로 구분되고, 1일 5000톤의 물이 뿜어져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