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인연에 대해 생각하며】
20대때 대구의 정각사라는 사찰에서 어떤 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제행무상이라는 구절에서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며
세상 이치를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명상과정 네 번째 과제를 정리하다가
제법무상, 제법무아를 다시 접하니 이것도 인연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친김에 날잡아 제법무아를 화두로 들고 2시간여 치열하게 화두명상을
수련하였으며 아래는 그 치열했던 좌충우돌 명상수행 기록이다.
【좌충우돌 화두명상기】
오취온을 ‘나’ 라고 착각하고 그것에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오취온은 자성이 없으니 ‘나’라는 것도 자성이 없다.
자아가 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자아속에 몸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몸이 자아를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法)들은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이어서 나(我)라고 할만한 실체 역시 없다.
우리가 안개라고 말하지만 그 안개 속에 들어가면 안개가 없고
조건이 갖추어지면 안개의 형상을 띠었다가 조건이 사라지면
안개도 사라지듯 ‘나’라는 몸뚱아리 또한 안개와 같은 것
그러나 ‘자아’ 라고 하는 것이 공(空)하다고 하여도
고정된 실체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거기다가 제법무상이라고 했으니 모든 것(法)들은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하고 있다고 하니 더더욱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닐까?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루쉰(魯迅)은
그의 작품 <고향>에서 이렇게 말했다.
希望是本无所谓有,无所谓无的。这正如地上的路;
其实地上本没有路,走的人多了,也便成了路。路是人走出來的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이것은 마치 땅위의 길과 같다. 사실 땅위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
길이란 사람들이 걸어다니다 보니 길이 된 것이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은 있는 것이며
희망이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생이 아름답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고,
인생이 苦海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인생은 고해 그 자체이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뇌는 정말 즐거워서 웃는 것과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짓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즐겁지 않아도 웃는 표정을 지으면
얼굴근육의 움직임을 보고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팍팍 분비한다고 한다.
이처럼 특정한 얼굴표정, 예컨대 행복, 분노, 공포 등의 얼굴 표정이 그 표정과 관련된
정서를 유발시킨다는 것을 ‘안면 피드백 효과(Facial Feedback Effect) ’라고 한다.
하도 많이 들어서 식상한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다 보면 정말로
즐거워진다’는 말이 심리학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기왕 인연이 닿아 한 세상 살아가는 것
‘나는 왜 지지리도 복이 없나, 나는 왜 되는 일이 없나, 남들은 다 저렇게 재미있게
사는데 나는 왜 사는게 이다지도 힘드나’ 등등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살아있는 매 순간에 감사하고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갖고오지 않았음에도
지금 이순간 이만큼 가진 것에 행복해 하고
자꾸만 위로 향하려는 욕심은 아래로 유턴시키고 초라하고 낮아진 자존감에
자꾸만 아래를 향하는 시선은 위를 향해 당당하게 들어올린다.
욕망이라는 열차는 브레이크가 없어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기 때문에
초반에 시동을 꺼서 멈추게 해야 한다.
바빠서 여유가 없다는 말은 여유를 갖고 싶지않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이다.
여유는 있어서 갖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여유를 가지면 되는 것이다.
여유를 갖다보면 정말로 여유가 생긴다.
자존감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가 나에게 자존감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존감을 가지면 되는 것이다. 외부 상황 때문에 자존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없어진다면 그것은 진정한 자존감이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는 내편’ 이어야 한다.
‘포기’ 라는 히든 카드는 내가 사용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인데
미리 앞당겨 써버리는 것은 어리 석은 일이다. 정말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때
그때 써도 늦지않다. 최종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데
굳이 서둘러 실패한 인생이라고 미리 낙인 찍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행복을 바깥에서 찾으면 이번 생에 행복하기는 글렀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전 프로포즈를 하면서 연인에게 ‘내가 행복하게 해주께’ 라고 말한다.
남이 갖다주는 행복은 물질적, 외부적인 행복이다. 그것은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행복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으므로 어떤 것이 충족되고나면
이미 그것은 당연한 것이 되어 더 이상 행복감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면 모든 것을 다 갖추어 참 행복하겠다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받는 사람이 정작 본인은 행복 하다고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면 행복할 건덕지가 하나도 없는데도
그렇게도 표정이 평온하고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다.
과거 행복지수 조사에서 늘 상위권을 기록하던 방글라데시가 근래들어
하위권으로 떨어진 현실을 통해 시선이 외부로 향하기 시작하면
행복과는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법무아를 화두로 들고 명상을 시작했는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비 그친후 죽순이 올라오듯 벌떼처럼 일어나 갈팡질팡이다.
그런데 지금 앉아서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
어떤 인연으로 여기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이냐?
도천아! 너는 누구냐?
2023.6.6. 초보 수행자 도천(道泉)
첫댓글 도천님, 명상일지 열심히 명상을 참구하면서, 자각한 체험을 우리 모두에게 좋은 등불이 될 수 있습니다.
여려 좋은 알아차림의 자각 중에서, "그러나 ‘자아’ 라고 하는 것이 공(空)하다고 하여도
고정된 실체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라고 넛두리 글이 좋아보이며,
한 글자 한 글자에서 살아 쉼쉬고 있는 기백을 느낄 수 있어서, 여려 수행 도반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