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 해법은 없는가?-미국식 사면 대안될 것
늘어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 해법찾기-고용허가제 시행 1주년에 맞춰
고용허가제 시행 1년(8/17)에 맟줘 그 성패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고용허가제의 조기 정착을 위해 대대적인 단속과 강제추방, 자진출국 유도 등을 통해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수를 줄이려고 했지만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고용허가제 시행을 앞두고 정부는 선별적 합법화를 통해 당시 28만명이던 미등록자를 12만명으로 줄였었지만, 미등록자는 다시 7월말 현재 2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현실 앞에서 고용허가제 성패에 대한 논의를 함에 있어 미등록이주노동자 문제를 간과할 수가 없다. 여기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미등록 이민자가 있다는 미국의 예를 통해 해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민을 통해 발전해 온 미국의 경우, 인접 국가인 중남미를 비롯한 전 세계로부터 들어오는 미등록 이민자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에는 줄잡아 1000만 명의 미등록이주노동자가 있다. 미국은 미등록자의 증가에 대해 국경수비를 강화하고, 비자발급을 까다롭게 할 뿐만 아니라, 이미 국내에 들어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계속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이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미 국가안보부는 미등록이민이 매년 50만 명가량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미등록 체류 사면 논의나 그들의 세금 문제는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사안으로 꼽힌다.
미국은 미등록 이민 문제에 대해 기본적으로 '체류는 불허하되 노동은 허한다.'는 외국 인력 정책을 취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비록 미등록 체류자라도 세금(ITIN, 개인납세자번호를 부여받은 후)만 내면 사업장을 개설해서 사업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일정 기한이 지나면 영주권 신청도 가능하다.
하지만 강제 추방에 따른 미등록 이민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미국은 일정 기간을 두고 전면 합법화 조치를 취하고 있다. 1987년 미국은 일정 기간 미국에서 경제 활동을 한 미등록 이민자들에게 합법 체류를 허용하고, 체류 자격을 부여했다. 미국 정부는 1987년에 450만 명에게 대규모 합법 체류 지위를 부여하는 정책을 취하고, 9·11 이후 이민법이 강화되기까지 연 평균 6만 명에게 합법 체류를 부여해 왔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역시 2004년 1월 초 미국 내 미등록 이민자에게 합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이민법 개정안을 제안한 바 있다. 이 제안은 구인난을 겪고 있는 고용주들을 지원하는 한편 미국 내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나 미국 내 취업 제안을 받은 외국 거주 노동자들이 한시적으로 미국 내 합법적 체류 노동자로 일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조치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당시 개선안이 대선을 앞두고 히스패닉계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 취한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한 조치이며, 미등록 이민노동자의 취업을 합법화하여 일반 미국인들의 고용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비난이 일면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진통을 겪은 바 있다.
그런 홍역을 앓았던 부시 대통령이 최근 들어 다시 미등록자에 대한 사면을 연방법원이 사면논의를 연내에 하지 않겠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적극 추진하고 있어, 한국계 미등록자를 비롯한 1000만 명이 넘는 미등록 이민자들이 향후 추이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직접적인 당사자인 미등록 이민자들은 혹시나 좋은 소식이 들리나 하는 기대를 갖고 지켜보고 있는 반면, 보수적인 공화당 인사들을 중심으로 백인지도층들은 사회불안을 이유로 적극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나 월마트처럼 저임금의 이민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정치권에 미등록 이민자들을 사면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고, 내년 상하원 선거를 앞두고 라틴계의 표를 의식하고 있는 정치권에서 역시 사면 압력을 높이고 있는 반면, 연방의회에서는 이민법 개혁안에 대한 논의조차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미등록 이민자에 대한 대대적인 사면이 정치적으로 수차례 있어 왔다는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이번 부시의 발언은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사면이라 함은 영주권 혹은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이럴 경우 사면 대상은 선별적으로 취하게 되는데, 일단 미등록 이민자라 할지라도 국세청으로부터 부여받은 ITIN(개인납세자번호, Individual Taxpayer Identification Number)을 갖고 계속적으로 세금을 내 오던 사람들은 그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ITIN은 사회보장번호(SSN, Social Security Number)를 가질 수 없는 외국인 신분의 납세자들이 세금 보고를 하기 위하여 연방 국세청이 발행하는 번호이다. ITIN을 가지고 세금 보고를 하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우선은 향후 영주권이나 근로 허가증(Work Permit) 을 이민국을 신청할 때 ITIN을 가지고 신고한 세무보고서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향후 실제로 사회보장번호를 받고 난후 그동안 ITIN으로 납부한 사회보장 세금이 새로 발급 받은 사회보장번호에 이관됨으로써 은퇴 후 사회보장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ITIN을 가지고 5년간 사회보장 세금을 납부한 후 사회보장번호를 받았다면 그 사회보장번호로 5년만 더 사회보장 세금을 납부하면 사회보장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된다. 참고로 사회보장 혜택을 받으려면 40분기, 즉 10년의 사회보장 세금을 납부한 실적이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미국 내 미등록 이민자들은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사회보장번호를 갖고 있지 않지만, ITIN을 갖고 정상적으로 소득세를 내고 있으며, 또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
다만 미국의 경우 사면 논의를 할 때 정당한 논의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ITIN(개인납세자번호)을 부여받고 일정 기간, 일정 액수 이상의 세금을 정기적으로 내 왔던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원칙을 두고 있다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외국인등록증 발급을 안 해주는 것은 당연하고, 이들의 은행계좌 개설을 원칙적으로 막고 있으며, 송금 등도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로부터는 어떠한 세금도 받지 않는다. 그러면서 미등록자 문제를 얘기할 때면, 꼭 "세금도 안내면서 받을 혜택은 다 받으려 하고......."하는 식의 딴지를 건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미등록이주노동자들에게 외국인등록번호는 부여하지 않더라도 세금을 걷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세금을 걷어보면 이들이 얼마나 우리 경제에 기여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자료는 또한 미등록자에 대한 사면논의가 있을 때, 사면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 자료가 되어, 사면논의를 진행하는 정부 당국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개인납세자번호를 부여하여 세금을 받는 것이, 미등록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그들에 대한 정보수집과 단속의 근거가 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안전장치를 우선 마련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우리 사회에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지는 20년도 안 됐다. 때문에 우리 사회 내부의 미등록 이주 노동자, 흔히 말하는 불법 체류자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못하여 그 해법을 논의할 때 시민사회단체나 기업 혹은 정부 간의 마찰이 빚어졌고, 시민단체 역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데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사면을 통한 영주권 부여에 대한 논의는 우리 사회에도 있어 왔지만 시행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우리 사회에 이주 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지는 88년 이후로, 미국과 같은 나라에 비하면 일천하다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민 경험이 많은 나라의 정책에 대한 벤치마킹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 문제에 대한 해법 찾기를 모색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