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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사랑과 주님과 같이 됨
천 영 대
성경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1~24)」
주님의 사랑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갈구하고 있지만, 진정한 사랑이 어떠한 것이며, 또 어떻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 우리를 사랑하고 위하는 주님께서는 어떠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지를 그의 삶을 통해 친히 증거하셨다. 로마서 5장 7, 8절에서는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하셨다. 의인을 위해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해 죽는 자는 혹 있지만 죄인을 위해 죽는 자는 없다. 타락한 인간들은 죄인에 대해 손가락질하고 비방하거나 악담을 한다. 심지어 저주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죄인이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주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증거했다. 로마서 5장 10절에서는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했다. 우리가 주님과 화목할 때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지 않고, 우리가 주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대적하고 범죄함으로 주님과 원수가 되었다면 주님께서 원수를 갚아야 하는데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주님과 화목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이해할 수도 없고, 따를 수도 없는 사랑이다. 참으로 높고, 위대하고, 깊은 것이다. 마태복음 5장 43, 44절에서는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다. 주님은 원수를(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했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했다. 로마서 12장 14∼20절에서는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했다. 주님은 사도를 통해 핍박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했다. 원수를 친히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했다. 원수 갚는 것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주님께 있다고 했다. 원수를 갚는 대신에 그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고 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사랑이다. 우리 육신으로는 결코 이러한 사랑을 할 수 없다. 우리가 주님과 원수가 되고, 죄인이 되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고 위하사 귀한 생명까지 주신 주님에 의해서만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다. 요한일서 4장 9, 10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는데 그것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고 했다. 사랑은 여기에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들을 위해 그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셨다고 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를 위해 특별한 일을 함으로 그에 대한 보상으로 그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먼저 그 아들을 우리 죄들을 위해 그의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보내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셨다. 할렐루야!
서로 사랑함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계명이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했다. 먼저,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고 쌍방의 사랑이며, 두 번째는 서로 사랑하되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 없이 외적으로 주님의 사랑을 모방하여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고(물론,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주님을 믿고 영접하여 그 주님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주님으로 주님의 사랑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고 영접하지 아니한 자, 주님을 믿고 거듭나지 아니한 자는 어느 누구도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할 수 없다. 요한일서 4장 10, 11절에서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했다. 사랑은 여기에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죄들을 위해 그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위하여 그 아들을 화목제물로 주실 정도로 사랑하셨으므로 우리 또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이 내용에서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들을 위해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주셨으므로 우리 또한 그에 대한 보답으로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지 않고, 주님께서 택한 자들, 사랑하는 자들 서로가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주님께서는 그가 우리를 위해 행한 것에 대해 우리로부터 보상을 받는 것을 말씀하시지 않고 그가 택하고 사랑하는 자들 서로가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는 그가 사랑하고 위하는 자들을 모두가 다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고 기꺼이 내어주셨다. 주님께서 사랑하고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줄 정도로 사랑하는 자들을 모두가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도 최고의 사랑으로 사랑해 주는 것이다. 곧, 최고의 사랑인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사랑하신 자들을 미워하지 않고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사랑하고 위하사 목숨까지 내어 주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러한 자들을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요한일서 3장 14∼18절에서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갔다고 했고,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한다고 했다. 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고 했다. 주님께서 사랑하고 위하여 죽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이만큼 심각한 것이다. 살인하는 것처럼 심각한 것이다. 로마서 14장 13∼15절에서는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고 했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말라고 했다.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식물을 인하여 우리의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식물로 망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실 정도로 사랑한 형제들을 미워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고 위하는 주님,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이 사랑하는 자들을 결코 미워해서는 안된다. 대신에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 또한 사랑해야 한다.
주님과 같이 됨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위하사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고 내어주사 우리의 죄들을 사하여 주셨고, 그의 은혜로 주님을 믿고 거듭나 그의 생명을 갖게 하셨다. 주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요 1:12, 13) 그의 생명으로 나서 그의 삶을 살게 하셨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범죄하며 산다면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난자가 아니고 마귀에게 속한 자다. 요한일서 3장 7∼10절에서는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했다. 죄를 범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해서 계속해서 죄를 지으면서 산다고 했다. 반면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죄를 계속해서 범하는 삶을 살지 아니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했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계속해서 죄를 범하는 삶을 살지 아니하고 의를 행하고(요일 3:7), 또한 형제를 사랑한다고 했다. 하나님께로서 나서 그 안에 거하는 자는 범죄하지 아니하고 의를 행한다고 했고, 또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다고 했다. 요한일서 3장 1, 2절에서는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큰 사랑을 주사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게 하셨다고 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것을 뜻하고, 또 그것은 그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범죄하지 않는 삶을 살 뿐만 아니라, 주님과 같이 의로운 삶을 살고, 또 사랑이신 주님의 역사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산다. 요한일서 4장 7, 8절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나서 하나님을 안다고 했다. 반면에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을 하나님과 같이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형제들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고 마귀에게 속해서 죄를 범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한다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랑이며, 의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의를 행하고, 형제들을 사랑한다고 했다.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했지만, 주님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다고 했다(요일 3:7), 지금은 단순히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우리 또한 주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에베소서 4장 13∼15절에서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는데 이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가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까지 자라는, 곧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의 머리와 몸이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다. 로마서 8장 29절에서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다. 이것은 주님께서 택하고 구속하신 자들을 그와 같이 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고린도후서 3장 17, 18절에서는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볼 때에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 또한 주님과 같이 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빌립보서 3장 20, 21절에서는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했다. 이것은 우리의 연약한 몸이 부활한 그리스도의 몸과 같이 연약함과 죽음을 초월한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고전 15:51∼54). 주님께서는 택한 자들의 영을 거듭나게 하셨고(요 3:6, 7, 벧전 1:3, 23), 우리의 혼을 변화시키고 있고(롬 12:2), 종국에는 우리의 연약한 몸까지도 변형시켜(빌 3:21, 고전 15:51∼54), 그리스도와 같이 되게 하실 것이다. 창세기 1장 26∼28절에서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처음에 창조하실 때에 하신 말씀대로 비록 인간들이 타락했을 지라도 주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생명주는 영이 되심으로(고전 15:45), 인간의 죄들을 구속하셨고, 또 그를 믿고 영접한 자들의 안과 밖에서 역사하사 그가 구속한 자들을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변화시켜 그가 인간을 처음 창조하실 때에 하셨던 말씀대로 이루신다. 할렐루야!
믿음과 사랑
어떤 사람들은 믿음과 사랑을 분리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함께 한다. 갈라디아서 5장 6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고 했다. 어떤 무리들은 할례를 특별하게 여기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런 효력이 없고, 오직 사랑을 통하여 역사하는 믿음만 효력이 있다고 했다. 이렇게 사랑과 믿음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지만 서로 분리되어 역사하지 않고 힘께하여 사랑을 통해 믿음이 효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디모데전서 1장 14절에서는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주님의 은혜가 넘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을 갖게 했다고 했고, 또 믿음과 사랑이 다른 곳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가 없는 자들에게는 믿음과 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또, 그리스도 예수가 있는 자들은 그 안에 믿음과 사랑을 함께 가질 수 있고, 또 그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갈라디아서 5장 6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런 효력이 없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랑을 통하여 역사하는 믿음만이 효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믿음도 그냥 역사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랑을 통하여 역사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므로 믿음과 사랑으로 형제들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디모데후서 1장 13, 14절에서는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했다. 사도는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그에게서 들은 건강한 말씀을 본받아 지키라고 했다. 건강한 말씀을 본받아 지키는데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삶을 살므로 그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요한일서 3장 21∼23절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것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신성한 생명을 받아들이는 것이고(요 1:12), 서로 사랑하는 것은 형제들과의 관계에서 신성한 생명의 삶을 사는 것이다. 믿음은 신성한 생명의 근원을 접촉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은 신성한 생명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자들이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과 주님께서 택하고 구속하신 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