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목요일은 본래 수업이 없는 날.
사회복지사 자격증 문제로
오랫만에 목요일 수업을 받고 있는데
육백마지기에 농사를 하시는 이해극회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어이~금자씨 육백마지기에 첫눈이 왔어, 세상이 너무 아름답구만
이 아름다운 밤을 우리끼리 보내기는 너무 아까우니
얼른 짐 싸가지고 와서 우리 함께 보내자구~>
내일 모레면 70을 바라보시는 회장님의 목소리는 아직 별을 세고
첫눈이오면 첫사랑을 그리워 하는 청년의 목소리와 다름이 없다.
<좋지요. 올 겨울들어 첫눈인데 제가 안 가면 누가 가서 마중해 주겠습니까>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아직도 일하는 중이라 언제 끝날른지 알 수가 없단다.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하기에 아무리 빨리가도 세시간은 잡아야 집에 도착할것~
충주에 희망님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첫눈 보러 가실래냐고 했더니 거기도 아직 일하는 중이지만
갈 의사가 있다고 중간에서 만나자고 한다.
그렇게 만나 저녁을 먹고 밤열시가 넘어서 깜깜한 육백마지기에 도착하니
기다린다던 양반들께서 불이 다 꺼지고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대답이 없다.
천상 이 추운 날씨에 밖에서 비박을 하게 생겼네~
한참만에 밖으로 나오셨는데 진짜 올 줄을 모르셨다고 저녁 드시고
잠자리에 드셨다고 한다.
서울에서 온 손님 또 함께 일하시는 분 네분에다가 우리셋하여 일곱명이
밤중에 홍두깨마냥 깨어 유기농 농사를 말하고 농촌정책을 말하고 사랑과 정열을 이야기 했다.
나이를 먹어도 그 사랑과 정열은 여전히 늙지 않는 것인가 보다.
남자들틈에 끼어서 침낭에서 자고 일어 났더니 머리가 약간 띵하다.
여기저기서 골아 대는 코 고는 소리 때문에 .....
여섯시가 좀 넘자 동녘에 붉은 빛이 감돌아 유리창너머로 나오라고 눈짓을 한다.
마당에 나섰더니 멀리 지평선이 붉고 그 위의 하늘은 푸르다.
떠 오른지 얼마 안되는 음력 9월 스무엿새 하현달이 아쉬운듯 빛을 내고 있다.
아무리 낸들 떠오르는 달을 어찌 당하려고......
어제 내게 전화하실 때만해도 눈이 펑펑 내리고 육백마지기 전체가 백설의 세상이었다고
조금 남은 눈을 아쉬워 하시는 회장님,
그래도 그 흔적이라도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이곳에 오면 늘 해맞이를 하는 동산으로 자리를 옮기며 보니 길가에 고인 물들이 꽁꽁 얼었다.
밟으면 사강 깨지는 소리가 조용한 육백마지기에 마치 아침을 깨우는 소리처럼 들린다.
달님은 별 할일도 없는데 이 시기에 잘 없는 인간이 반가운건지 열심히 나를 따라온다.
내가 카메라렌즈를 겨냥하는 곳곳에 나타나서는 놀자고 한다.
그 옆에 달을 따라다니는 밝은 별하나는 이제 여명이 밝아 렌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직 해가 뜨려면 반시간은 남았다.
언덕을 올라 가면서 가슴이 뛴다.
이 시기에는 해 뜨는 모습은 한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로 5월에서 7월사이에 이곳에 와서 새벽을 만나고 이슬쑥 따는 일을 하며
다른 방향에서 떠 오르는 아침해를 보았는데,
11월을 열흘이나 지낸 이 시기에는 처음 보는 해돚이며 운무의 모습을 보는 것이라
새로운 일출의 모습을 기대해서 그렇다.
멀리 영월 , 평창 그리고 제천과 단양쪽으로 보이는 산들 사이로 운무가 옅게 펼쳐지고 있다.
날씨 맑은 날은 이곳에서 소백산도 보인다.
원주쪽으로는 치악산도 보이고 반대쪽으로 태백산도 보이는 이곳의 해발은 1250m정도.....
눈과 서리를 잔뜩 맞은 별꽃들이 배추를 뜯어 낸 밭들 사이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도
꽃봉오리가 맺혀 있는 것들이 있다.
이러다가도 날씨만 풀리면 어떡케하든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어 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자연에 있는 것들은 포기가 없다
어찌되든 최선을 다해 보는 것
그것이 늘 자연에서 배우는 모습이다.
우리가 야영을 오면 잠자는 한곳 육백마지기 핼기장~
거기에 발한쪽을 들여 놓고 이곳에서 함께 했던 많은 시간들을 떠올려 본다.
내가 이곳 육백마지기를 내집처럼 다닌지도 벌써
9년째 그동안 육백마지기의 모습도 많이 변했지만
해와 달이 뜨고 지는 모습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내가 이런저런 옛 추억까지 꺼내가며 운무사진을 찍고 있을 때
갑자기 서쪽 하늘이 훤해진다.
이제 곧 해가 뜰 모양이다.
그런데 서쪽하늘의 모습이 너무나 어여쁜 무지개색 노을이 생겼다.
카메라를 작은 것 밖에 안 가져가서 조작을 못 하는게 너무나 아쉬웠는데
몇번 못 보는 무지개빛 아침노을.....
저렇게 고운 아침노을이 지는 것을 보니 가까운 시기에 비가 오겠다.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을 내가 혼자 중얼거리며 걱정도 하고 있다
지금 비는 농부에게 별 도움이 안되는데.....
학교에 오면서 알게 된 홍대언니가 서울에만 살아서
비가 오면 오는가보다 눈이 오면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를 알고 부터
비가 오면 이 비가 금자에게 도움이 되는 비 일까.
해가 되는 비 일까를 걱정하게 되었다는 말이 갑자기 생각나 혼자 빙그레 웃었다.
무엇을 알고 그것과 친해지면 이런 새로운 삶의 생각들도 달라지나 보다.
운무도 많이 올라왔다.
바다에서 섬으로 올라오는 것 같다.
어떤곳은 파도가 치는 것 같기도 하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의 모습을 클로즈업 해 보면서 이제 곧 떠오를 2012년 11월 9일에
맞는 아침해를 만나러 동산위로 올라간다.
그러면서도 무지개빛 서쪽 하늘이 어여뻐서 다시 뒤돌아 보기도 하면서.....
정말 무엇으로도 표현이 안되게 아름다워서 행복한 마음의 눈으로 이 모습을 찍어 두고
카메라에도 찍어 둔다.
언덕을 다 올라오니 막 햇님이 지평선위로 떠 오른다.
말로 전할 수 없는 이 웅장함
신비함
충전된 새로움
나는 그 아침기를 가득 받으며 내부로 들여 마신다.
시계를 보니 정각 7시이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세월은 참 빨리간다.
아침해가 뜰 때처럼 세월이 빨리 가는 것을 느낀다면 아무도 허송세월을 하며
세상을 살지 않을 것이다.
서녘에 노을을 지게 했던 주범은 잘 보이지 않지만 해무리였다.
청옥산 머리에서부터 햇님은 빠른 속도로 내려 오는 모습이 보이는데,
부지런하신 농부님들도 벌써 일을 시작하셨다.
남편은 해가 솟은 다음에 나왔는지 그제 나와서 사진을 찍고 있다.
어제 종일 그리고 밤이 늦도록 일을 하고도 두말없이 함께 떠나 준 남편덕에
이 아름다운 아침을 맞았다.
남편은 나에게 키다리아저씨이다.
아침도 안먹고 간다고 아쉬워하며 일을 하다 말고 배웅을 해 주시는 이회장님,
우리도 얼른 가서 비오기전에 겨울채비를 해야 한다고 했더니 더 붙잡지 않으신다.
덕분에 이 시기에 육백마지기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고.....
날개 부러져 더이상 제 기능을 못하는 풍력발전기가
내게 작별 인사를 한다.
그런데 평안리 쪽으로 산을 내려 오면서 보니 마을위에 낀 운무가 정말
장관이었다.
마치 하늘에서 인간세상을 내려다 보는 것만 같았다.
뜻하지 않게 횡재한 오늘아침 이 행복한 순간들~
떠남이 있었기에 가질 수 있는 행운이었다.
첫댓글 ㅎㅎ 저는 눈오면 출근길 운전이 걱정 되는데 .. 순수함을 잃어가는 도시생활이랄까? ㅎㅎ 정말 낭만적인 회장님이세요. ^^ 이 아름다운 경관을 함께 못보지만 사진속에서라도 감상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