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신선이 쉬고 계신다네…영월 주천강
장맛비 그친 새벽강에 물안개가 걸렸다. 이 골짝 저 골짝 계곡수 위로 피어오른 물안개가 산허리를 지우며 강물처럼 흘러간다. 강줄기는 안개
틈새로 고개를 내민 미루나무 너머로 꼬리를 감춘다. 밤새 천둥소리를 내며 들썩거리던 황톳빛 여울에는 새벽부터 낚싯꾼들이 모였다. 장맛비에 뒤집힌
여울로 물고기가 먹이를 찾아 몰려들기 때문이다.
영월 주천강은 참 평화롭다. 거센 빗줄기로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계곡물이 서로 부딪히며 회오리를 이루던 강줄기가 한나절 만에 다시
고요해졌다. 황톳빛 물줄기도 앙금을 가라앉히고 금세 푸른 하늘빛을 담아낸다.
주천강은 ‘강의 고장’ 영월에서도 최상류에 있다. 평창과 횡성의 경계에 있는 태기산(1,261m)에서 발원해 횡성 강림면을 거치면서 제법
강줄기가 굵어진다. 영월의 수주면과 주천면을 관통한 뒤 서면 신천리에서 평창강을 만나 서강이 된다. 서강은 영월읍 합수머리에서 동강과 만나
남한강을 이루니 주천강은 남한강의 첫 물줄기인 셈이다. 동강과 서강의 이름값에 가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풍광은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길이는
40㎞에 불과하지만 골골마다 경관이 아름답다.
서만이, 운학, 도원, 무릉, 요선정, 주천…. 지도에 나타난 강마을의 이름만으로도 풍광이 좋은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상류의 수주면
서만이는 첩첩산을 끼고 돌아온 강물이 심산으로 들어서는 길목. 황둔 앞 너른 평야지대를 적시던 강물이 산악지대로 물줄기를 돌린다. 산이 촘촘히
앉아 있는 만큼 풍광도 뛰어나다.
지난해까지는 황둔과 서만이를 잇는 강변도로가 비포장 흙길이었다. 올해 말끔하게 새 길이 뚫려 이제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강촌이 됐다.
서만이 하류에는 송림이 있고 강변에 자그마한 백사장도 있다. 이곳에 2~3년 전 펜션이 들어섰다. 서만이란 원래 ‘섬안’에서 비롯된 말.
옛날에는 뒤에는 산이 우뚝하고 앞에는 강물에 흘러 섬처럼 고립된 마을이었다.
서만이를 지난 강줄기는 운학(雲鶴), 두산(斗山), 도원(桃園), 무릉(武陵)을 거친다. 합쳐보면 ‘별처럼 높은 산에 구름과 학이 뛰노는
무릉도원’을 뜻한다. 하나같이 주천강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으로 이름값을 한다.
주천강은 운학을 지나면서부터 다시 물골이 넓어진다. 강폭이 넓은 대신 물살은 한풀 숨이 죽는다. 경사가 심하지 않고 주변에 산이 울창한데다
강이 넓어서 쉬어가기 좋은 코스다.
도원과 무릉사이에는 요선암이 자리잡고 있다. 요선암은 거대한 암반지대다. 반쯤은 물에 잠겨 있고 일부가 물위로 나와 있는데 돌출한 부분이
마치 조각품처럼 이리저리 패어서 올록볼록하다. 요강처럼 작은 구멍도 있고, 욕조처럼 널찍한 것도 있다. 한가족이 둘러앉아 쉴 만한 거대한 암반도
있다.
조선 중기 양사헌이 이곳 경치에 반해 ‘신선이 놀다간 자리’라는 뜻의 요선암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큰 바위에 요선암이란 글자를
새겼는데 지금은 물살에 씻겨서 흐릿하다. 요선암 길목에서 미륵암을 끼고 숲길로 5분 정도 오르면 요선정과 마애석불, 5층석탑이 나타난다. 높이
7m, 너비 3m의 타원형 바위에 새겨져 있는 마애석불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요선정에서는 주천강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와 함께 요선암이
내려다보인다.
주천읍에서 바라본 주천강은 넉넉하다. 주천은 영월에서도 꽤 넓은 곡창지대. 산 많기로 유명한 ‘영평정’(영월·평창·정선)에서 주천면에만
82만5천평의 논이 있다. 영월 전체 논의 3분의 1 수준이다. 옛날에는 주천에 영월과 마찬가지로 현청이 있었다. 일제 때는 영월읍내에도 없던
농업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면 단위에서 국회의원을 4명이나 배출했다고 자랑한다.
주천읍에는 ‘주천’의 내력을 품은 샘이 있다. 주천(酒泉)은 ‘술이 솟는 샘’이다. 옛날에는 잔을 들이대는 사람이 양반이면 청주가,
천민이면 탁주가 솟았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천민이 양반 복장을 하고 잔을 들이댔는데도 탁주가 나오자 화가 나서 샘을 부숴버렸다. 그때부터는 술
대신 맑은 물만 흘러나와 강을 이뤘다는 전설이다. 지금도 바위틈에서 내려오는 주천 물맛은 일품이다.
주천강은 이제 주천읍을 돌아 흘러 주천면 용석리를 지난다. 이 일대는 기암절벽이 우뚝 솟아 있다. 주천강 풍광의 클라이맥스격. 암벽을 끼고
휘돌아가는 강물에는 꺽지, 쏘가리, 피라미, 버들치, 어름치, 쉬리 등이 산다. 특히 쏘가리 낚시꾼들은 소문이 퍼질까봐 쉬쉬하며 다녀간다고
한다. 용석리를 지나면 주천강은 다시 바위벽을 안고 돌다가 평창강을 만나 서강으로 이어진다.
“주천강에는 옛날부터 요선정, 빙허루, 청허루, 관란정 같은 정자들이 있었습니다. 물좋고 경치 좋아야 정자가 들어서는 것 아닙니까”
이석준 주천면장은 주천강은 강원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강이라고 자랑한다. 굽이굽이 강줄기마다 평화로운 강마을과 수려한 암벽을 끼고 있는
주천강. 여름날 반두로 물고기를 쫓으며 천렵을 하던 옛 추억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곳이다.
-여름 강에서 호젓한 추억…영월·정선‘산높고 물맑고…’-
강원도 영월과 정선에서는 가는 곳마다 강줄기를 만난다. 아직 때묻지 않은 인심이 살아있는 데다 산이 높아 수량도 풍부하다. 번잡한
해수욕장에서 느끼지 못하는 여름추억을 만들 수 있다.
▲영월 서강=영월 서강은 동강의 명성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물놀이를 즐기기에는 동강보다 좋다. 영월의 관광 사진에 나오는 거대한
바위봉우리 ‘선돌’이 있는 곳. 서강은 주천강과 평창강이 만나 푸른 물줄기로 흘러내린다. 법흥천, 횡성천 등 물골이 많아 수량도 풍부하다.
서강에는 역사유적지도 많다. 영월의 관문 소나기재와 선돌 아래쪽은 천연의 강수욕장. 이 물줄기는 유배된 단종이 눈물을 뿌렸던 청령포로 이어진다.
솔숲이 아름답다. 단종 유배시의 관사 등을 재현해 놓았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서강에는 비오리가 서식한다. 강물은 아직도 맑은 편이다. 어항을
놓으면 금세 고기가 가득 들어찬다.
▲평창 조양강=조양강은 동강의 최상류. 한강의 발원지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정선 임계와 아우라지를 거쳐 대관령에서부터 흘러내려온
송천과 합류해 조양강이 된다. 정선 가수리를 지나면 동남천과 만나 동강이 된다. 광하교∼가수리 21㎞ 구간의 풍광이 아름답다. 정선∼평창간
42번국도의 광하교 아래 진입로를 따라가면 비포장 도로가 나오고 협곡 사이로 흐르는 강줄기를 만난다. 마을 사람들이 ‘뼝대’로 부르는 절벽이
깎아지른 듯 강줄기를 에워싸고 있다. 동강의 물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백운산이다. 백운산 정상에 오르면 물굽이가 산자락을 에돌아 흐르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정선 골지천=아우라지는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 ‘어우러지는’ 물줄기다. 송천은 요즘 평창 도암댐 문제로 시끌벅적하지만 골지천은 아직도
옛모습 그대로다. 골지천의 명소는 구미정. 구미정사라는 서당이 있던 곳으로 협곡처럼 깊은 계곡이다. 암벽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가 놓여있으며
벼랑엔 정자가 서있다. 하류로 내려가면 감자밭 등 예스런 강변풍경을 만난다. 골지천에서 고둥을 잡거나 천렵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단종이 삼촌에게 쫓겨나 눈물을 흘리며 넘었다는 군등치에서 내려다본 주천강(사진 위). 수백년동안 한결같은 물맛을 간직하고 있는
술샘(酒泉·아래). 주천강의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여행길잡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문막휴게소를 지나 오른쪽 만종분기점으로 접어들면 중앙고속도로. 치악산휴게소를 지나 신림IC를 빠져나온 뒤 우회전하면
88번 지방도. 주천으로 가는 길이다. 황둔마을과 터널을 지나면 주천읍 4거리. 주천교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해서 강을 따라 달리면 서만이가
나온다. 영월 방면을 택하면 용석리 가는 길. 왼쪽 제재소를 지나 오른쪽 입석교를 건너면 용석리 강변이 보인다.
용석리 강변에서 승용차로 1분거리에 영월자연학교의 콘도형 숙소가 있다. 학교 내에 관사로 사용하던 13~30평 6동의 단독주택을 숙소로
개조했다. 취사도 가능하다. 영월자연학교(033)374-7353∼4.
주천읍내의 제천식당(372-7147)에서 향토음식인 꼴두국수를 먹을 수 있다. 메밀국수, 김치, 두부를 뜨거운 육수에 말아먹는다.
화전민들이 너무 먹어서 ‘꼴도 보기 싫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메밀 면발이 구수하고 국물도 좋다. 3,500원. 두부도 별미. 주인
이경숙씨가 직접 만든 두부를 촛물(두부를 만들 때 나오는 물)이 조금 담긴 그릇에 올려 내놓는다. 신김치에 두부를 싸먹는 맛도 일품이다. 두부는
2,000원.
신라말 구산선문의 하나로 사자산문의 중심 사찰이었던 법흥사가 가깝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국내 5대 적멸보궁의 하나. 적멸보궁 오르는
길에는 멋진 송림이 있다. 숲에는 까막딱따구리가 서식한다. 적멸보궁에서 바라보는 사자산 산세가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