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1929)은 1899년에 쓴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값이 비쌀수록 호사품의 가치는 커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한계급에게 가격표는 본질적으로 지위를 상징하는 것이며 "비싸지 않은 아름다운 물건은 아름답지 않다"고 말했다.
이를 가리켜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라고 한다. 베블런 효과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비합리적인 소비 행위임이 틀림없지만, 중요한 건 바로 이것이다. "호사스러움을 위해 많은 돈을 지불했다는 사실을 자신만 알아서는 안 된다. 남들이 알아줘야 한다."
비슷한 것으로 속물 효과(snob effect)가 있다. 이는 "자기만이 소유하는 물건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소비 행태"다. 남들이 사용하지 않는 물건, 즉 희소성이 있는 재화를 소비함으로써 더욱 만족하고 그 상품이 대중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면 소비를 줄이거나 외면하는 행위다.
명품 브랜드들은 지속적으로 가격을 올린다. 그런데도 일부 계층의 과시욕이나 허영심 등으로 인해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현상을 베블런 효과라고 한다.
중류층과 상류층은 숨바꼭질 놀이를 한다. 중류층이 상류층을 쫓아가면 상류층은 기분 나쁘다며 다른 곳으로 숨는다. 예컨대, 20세기 초에는 화장품의 가격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상류층 여성들만 사용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말쯤에는 화장품의 값이 저렴해지자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까지 화장품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화장품을 많이 사용하면 상류층이 아니라 노동 계층이라는 표시가 되었다. 이에 상류층 여성들은 어떻게 대응했던가? 그들은 화장품을 계속 사용하기는 했지만 훨씬 절제된 방법으로 사용했으며 세련되고 비싼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중하층 여성들과의 차별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오늘날 유행의 사이클이 빨라진 것도 그런 숨바꼭질 놀이와 무관하지 않다. 상류층은 중류층이 쫓아오면 숨어버리고, 중류층이 상류층이 숨은 곳을 찾아내면 얼마 후 또다시 숨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낸시 에트코프(Nancy Etcoff)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류층은 패션 추구자들로, 그들 중 가장 보수적인 사람도 특정 스타일을 입도록 이끌리게 된다. 그 이유는 오로지 그 스타일이 너무 유행이라 그것을 입지 않으면 관행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상류층은 그들을 모방하는 중류층으로 오인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것이 한 패션이 그들에 의해 도입되자마자 그들이 그 패션을 포기하는 이유다."
그런데 소비사회는 물질로 자신을 내세우는 걸 매우 어렵게 만든 점도 있다. '물질의 평등'이 상당한 정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명품(luxury)'이다. 미국에서 명품의 소비 규모는 전체 소비 규모에 비해 네 배나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이는 서구 여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일수록 명품 소비에 더 열성적이다. 왜? "이제 사람들은 종교, 정치적 견해, 가치관 등이 아니라 사용하는 제품의 브랜드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값이 비쌀수록 명품의 로고는 더 작아진다. 명품을 찾는 중류층이 많아진 탓에 생긴 차별화 욕구로 빚어진 결과다. 이와 관련, 제임스 트위첼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랄프 로렌의 폴로 선수 도안, C 자를 맞대어 놓은 샤넬의 도안, 구찌의 G 자 도안, 루이비통의 머릿글자 도안 같은 등록상표들은 높은 가격을 뜻하는 신분 상징물 노릇을 해왔다. 그러나 그런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라도 그 물건을 사는 사람이 많아져 의미가 퇴색하자 디자이너들은 가격을 올리고 로고를 작게 만듦으로써 베블런 효과를 활용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명 디자이너들의 제품은 아무리 싸구려라고 해도 낙서 같은 도안 글자나 로고로 도배가 되어 있는데, 그렇다고 아무 물건이나 닥치는 대로 만들어서 로고나 글자를 박아놓을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 앞으로는 디자이너의 제품이면서도 로고나 글자가 들어가 있지 않은 의류가 가장 비싸고 귀한 것이 될 것 같다. 우습게도 이제는 아무 표시도 나지 않는 것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물건이란 물건은 모조리 디자이너들의 광고판이 되어버렸으니 스스로 인간 광고판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광고할 기회를 상실하는 디자이너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만 하게 된 것이다."
아무도 알아볼 수 없다면 왜 비싼 돈을 주나? 그러나 안심하시라. 자기들끼리 그리고 그 근처에 가까이 가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만 알아볼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게다가 그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능력이 대접받기 때문에 이건 아주 재미있는 수수께끼 놀이가 된다. 그래서 생겨난 게 바로 노노스족이다.
노노스(nonos)족은 'No Logo, No Design'을 추구하는, 즉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명품을 즐기는 계층을 일컫는 말이다. 2004년 프랑스 패션회사 넬리로디가 처음 사용한 단어로, 명품의 대중화에 대한 상류층의 반발이 노노스족을 낳게 했다. 루이비통이 'LV'라는 널리 알려진 로고를 2005년 추동 제품부터 거의 쓰지 않기로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명품잡지 『네이버(Neighbor)』의 VIP 마케팅 팀장 이기훈은 "부자들은 '구별짓기'를 하고 워너비(wannabe: 추종자)들은 '따라하기'를 한다"며 "여행을 하더라도 부자들은 구별짓기 위해 워너비들도 갈 수 있는 발리보다는 쉽게 가기 어려운 몰디브나 마케도니아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진짜 부자들은 '10개 한정판매' 등과 같은 특별한 물품, 즉 '명품 중의 명품'을 원하며, 일반적인 명품에 대한 선호도는 오히려 추종자 그룹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부자들의 여행지』 같은 책도 나오곤 한다. 패키지여행을 벗어나 특별한 휴가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몰디브, 피지, 뉴칼레도니아 등 고급 리조트 45군데를 소개한 책이다.
노노스족의 원리에 따라 해외 명품을 취급하는 국내 백화점들은 소비 귀족층을 일반인과 철저하게 분리해 관리한다. 노노스족을 신명품족 또는 명품족 2세대로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일반 소비자는 몰라보고 이른바 '선수'들만 알아보는 브랜드를 찾아내 사용하는 데에서 쾌감을 느낀다. 이들에게 샤넬, 루이비통, 조르지오 아르마니, 구찌, 프라다 등은 낡은 이름이다. 이들은 보테가 베네타, 다이안 폰 퍼스텐 버그, 바네사 브루노, 스텔라 매카트니, 핼무트 랭, 나르시소 로드리게스, 쿠스토 바르셀로나, 로베르토 메니케티, 알렉산더 맥퀸 등 희소성 있는 럭셔리 브랜드들을 선호한다. 그들에겐 구별짓기를 위한 우아한 처신이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한국인의 지극한 명품 사랑은 일종의 기 싸움이다. 세계적인 명품 업체들이 첫 출시를 한국에서 하는 이유에 대해 국내 한 명품 정보 사이트의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똑똑한 소비자와는 거리가 멀죠. 아무리 명품이라도 품질 등 조건을 따지는 유럽 소비자와 달리 브랜드 프리미엄만으로 너도 나도 구매를 하니, 한국만큼 안전하고 매력적인 시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당연히 몰려올 수밖에 없죠."
아니다. 똑똑한 소비자다. 명품 사랑의 이유가 '주목'이며, 유럽인에게 주목받으려는 게 아니라 같은 한국인에게 주목받으려는 게 아닌가. 명품 대중화에 반발한 상류층, 즉 노노스족 또는 신명품족이 일반 소비자는 몰라보고 이른바 선수들만 알아보는 브랜드를 찾아내 사용하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웃 효과 때문이 아니겠는가.
한국에서는 비쌀수록 더 잘 팔린다는 법칙을 깨달은 세계 명품업체들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가격을 올리는 마케팅 전략을 쓰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이 해외 명품 업체들의 봉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북유럽에서는 명품을 자랑하면 얼마나 자존감이 없으면 그러느냐고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는다지만, 한국에선 명품을 가지면 사람도 명품 대접을 받으리라는 기대가 높으니 그거 참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은 사랑(주목)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 가사도 있지만, 그건 당위일 뿐 현실은 아니다. 주목은 쟁취의 대상이다. 한국인은 주목 투쟁의 전사들이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건 자신이 돋보이는 쪽으로 남들과 구별되고 싶은 욕망, 그리고 그 욕망에서 비롯된 명품 사랑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중요한 건 균형 감각일 것이다. 속이 허할수록 겉에 더 신경을 쓰는 법이니, 명품을 사랑하더라도 적당히 사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