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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극도로 어렵다 보니 많은 분들이 향후의 경제 전망과 주가 지수를 비롯한 경제 지표에 궁금해 합니다. 이에 대한 저의 예측과 생각을 말씀 드리기 전에 먼저 과거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몇 가지 특이한 행태 및 장면들을 차례로 소개 합니다. 다소 외람될 수도 있지만 충분히 연관된 이야기라 서두에 적어보니 먼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 뒤에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적도록 하겠습니다.
장면 #1.
1990년대 어느 해에 9시 뉴스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 종말론이 난리를 쳤던 적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그것을 믿는 신도들은 몹시 심각했다. 신도들은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신의 계시를 받은 목사의 집에 모여 종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예언했던 그 날 밤이 지나고 다음날이 되고 또 다음날이 되어도 종말은 오지 않았다. 종말론을 주장한 목사는 우겼다. 종말이 안 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좀 늦어지고 있으니 기다리라고 주장 했다.
여기서 종말론 보다 더 웃긴 건 신도들에게는 재산을 정리하라 했던 그 목사가 정작 자신은 먼 후일에 만기가 되는 거액의 정기적금에 들어 있다는 사실과 아직도 그 목사를 믿는 사람은 종말이 오지 않았어도 전혀 동요 없이 그의 계시가 실행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10년도 더 지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잊을 만 하니 또다시 종말론을 꺼내 순진한 사람들을 현혹해 돈을 빼먹고 있다는 사실.. 그 예전의 종말론에 그나마 덜 빠진 사람이 새롭게 마음을 잡고 생활하는데 또다시 그들을 부추겨 그 동안 믿음이 흔들렸던 것을 회개하고 다시 신 앞에 나와 종말이 오면 천국 가자고 꼬여내고 있다는 사실..
장면 #2.
이 역시 1990년대 초반 대한민국은 다단계 열풍에 빠졌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친구, 형제, 친척, 동료의 소개로 다단계에 뛰어들어 별 가치도 없는 몇 백만원짜리 물품들을 사서 집 안 구석에 처 박아 놓았다. 대부분 허름한 여관에서 합숙을 하거나 라면으로 끼니를 간신히 해결하면서도 대박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억지로 버티고 버티다 결국 거지꼴을 해 맨몸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그로 인해 많은 친구들이 너 때문에 다단계에 빠졌다고 분란이 있었고 너 때문에 친척간에 의가 상했다고 큰 싸움이 나는 등 여러모로 후 폭풍이 있었다.
역시나 여기서도 재미(?)난 사실은 그 후로도 계속 다단계 회사는 생겨났고 절대 과거의 ‘다단계’, ‘피라미드’ 회사가 아니라며 사람들을 끌어 모은 후 역시 똑같이 부도가 났고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앉아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과 원통함을 하소연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피라미드 회사는 곳곳에 널려 있고 열심히 영업 중이며 우리는 과거의 피라미드와 다르다며 순진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 그럼 여기서 과연 종말론과 다단계 피라미드에 당해 재산을 날린 피해자들은 과연 오직 종말론을 설교하고 대박을 주장한 업체들만의 잘못인가? 흔히 쌍방 과실이라고 한다. 어느 일방의 100% 잘못이 아닌 5:5, 6:4, 7:3의 비율로 서로 같이 잘못 했다는 것이다. 순진하거나 생각이 모자라 실수를 했다고 해도 그 과실 비율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쌍방 과실은 맞고 잘못에 대한 책임은 함께 져야 한다.
게다가 뻔히 몇 번이고 매스컴에 알려진 사실에 대해 똑 같은 피해가 계속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무지와 실수만으로 변명할 수는 없다. 피해자들 역시 허황된 욕심을 낸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그 피해를 스스로 떠안아야 할 수 밖에 없고 가해자를 원망할 수만은 없다. 정말 원망한다면 스스로의 헛된 욕심을 탓해야 한다.
장면 #3.
대한민국이 그를 지지하면 더 부강해지고 잘산다는 믿음으로 능력이 의심스러운 정도를 넘어 무식하다고까지 알려진 그 분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사실 그 분은 누구도 예기치 못한 전혀 엉뚱한 3당 합당을 하셔서 무언가 범상치 않은 치기를 보이셨다. 아니나다를까 초반에 잘 나가는 듯 하더니 결국 나라는 거덜나고 IMF라는 수렁에 빠져 많은 국민들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피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분은 절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지금도 여전히 큰 소리를 치시며 독설을 퍼붓고 계시다. 그리고 종말론 신도들이 목사에게 헤어나지 못하듯 지금도 몇몇 부류의 분들에게는 추종을 받고 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국가가 부도나 고통을 당한 국민들은 단순 피해자일까, 아니면 쌍방과실일까?
장면 #4.
일단, 이분 이야기만 나오면 많은 국민들은 아주 만만하게 욕설부터 내뱉는다. 그 누구나 별 이유 없이 그 분을 무시하고 괄시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경제를 망쳤다고 악담을 퍼부었다. 그러나 실제로 경제는 계속 성장해 수출은 늘었고 주식은 오르고 부동산은 폭등했다. 많은 국민들은 속으론 자기 집값 올라 좋아졌다고 쾌재를 부르면서도 겉으로는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무능하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래서 그분이 지금 집사면 쪽박 찬다고 제발 자제하라고 했고 법적 장치도 만들었다. 그러나 아파트 부녀회를 필두로 너나 할 것 없이 ‘얼마 밑으로 팔지 말라’고 공갈치고 담합을 했다. 이러니 집 값이 안 오를 수가 있나. 결국 아무리 뜯어 말려도 아파트 가격은 치솟았고 가격이 오른다고 욕하면서도 모두가 더 오르길 바랬다.
이런 모순을 보며 그 누구도 탓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미래를 우려하지 않았다. 단지, 대통령을 욕 했을 뿐이다. 오르면 오른다고 욕 했고 내리면 내린다고 욕 했다. 이제 욕망을 채워주지 않고 절제 시키려는 그가 미울 뿐이었고 그 끝없는 탐욕의 욕망을 충족 시켜줄 새로운 누군가가 필요 했다. 결국 오른 것은 아파트 가격이 아니라 국민들의 욕망의 크기였을 뿐이었다.
장면 #5.
다단계 피라미드 판을 벌려 한탕을 한 가해자들이 그 맛을 못 잊고 계속 상호와 업종을 바꿔가며 그 짓을 하듯 나라를 거덜 내고 IMF라는 수렁에 밀어 넣은 그 가해자들도 달콤한 그 권력의 맛을 못 잊고 찌라시 언론의 후원을 등에 없고 또다시 판을 벌렸다. 그리고 다단계 업체가 의심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다르다’며 ‘다이아몬드’ 등급의 화려한 신화로 현혹해 많은 회원을 끌어 모으듯 주가 지수 3,000과 부동산 대박으로 국민들을 현혹하고 끌어 모았다.
마침 욕망에 목말라 있던 국민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통제하는 대통령을 발도 차버리듯 매정하게 버리고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줄 수많은 과거의 부정이 의심 되는 사기전문 다단계 업주 같은 그 분을 선택 했다. 이것저것 볼 것 없이 무조건 땅값 오르고 집값 오르고 주식 오른다면 아무것도 묻지 마라 식으로 그분을 지지 했고 그리고 과거의 한탕하고 사라졌던 피라미드 업주가 복귀하듯, 종말론으로 재미 본 그 목사가 또다시 슬그머니 종말론을 들고나와 산도를 끌어 모으듯 그렇게 권력을 움켜 쥐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다단계 ‘다이아몬드’ 등급에 도전한 사람은 많지만 ‘다이아몬드’ 등급에 이른 사람은 본적도 없이 결국 ‘다이아몬드’는 커녕 ‘구리’도 못되고 때려 친다는 그 바닥의 속설처럼 주가 지수 3,000과 부동산 대박은 전혀 이루지 않았고 주가 반토막과 부동산 쪽박만을 경험해야 했다.
역시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신도들에게는 재산을 정리하라 했던 종말론 목사가 정작 자신은 먼 후일에 만기가 되는 거액의 정기적금에 들어 있었다’는 사실처럼 국민들에게는 경제가 좋아지고 주식이 오를 거라 말하며 투자를 권하던 그분들은 정작 그 펀드도 사지 않고 오히려 주식을 모두 팔았다는 것이다. 펀드도 안 들며 주가 3,000을 주장하셨던 그 분을 몹시 추종하는 어느 여성 국회의원께서는 그 분의 권유와는 정반대로 주식을 모두 팔아 큰 피해를 면했다. 그러면서 지난 정권 시절에는 엄청난 고통이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살만하단다.
맞다. 자기는 주식을 다 팔고 화를 면했으니 살만 할거다. 종말론 목사가 종말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종말이 미루어졌을 뿐이라고 뻔뻔하게 우기는 것과 어찌 이리도 똑 같은 가. 그런 식의 속 보이는 예언이라면 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식의 막무가내 우기기식 정치라면 그 누가해도 무방한 자리가 국회의원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차라리 포르노 배우를 의원으로 뽑아 주었던 가.
위의 장면 1,2와 장면 3, 4, 5의 피해 국민들은 몹시 그 피해 과정이 유사하지 않은가? 과연 1 ~ 5까지의 장면들은 아무 상관이 없는가?
사람들 누구나 인생 살면서 몇 번의 다단계 피라미드 유혹이 없었던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 때 헛된 욕망의 유혹을 절제한 사람들은 그 고비를 무사히 넘었고 참지 못한 사람들은 그 유혹에 빠졌다. 그리고 그런 유혹은 지금까지 20년 넘게 계속 반복 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당하고 또 당해도 피해자는 끊이지 않고 생겨난다.
이 모두가 사람들 저 가슴 밑바닥에는 과도한 욕망과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익이 된다면 불의에 눈감고 그 무엇과도 손 잡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도둑이 매일 도둑질하고 사기꾼이 계속 사기 쳐도 큰 돈을 벌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언젠가는 망하게 되어 있다. 이래서 성공에 걸 맞는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성도 필요하다.
다단계나 종말론에 피해자들을 보며 황당한 주장에 현혹되었다고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경제로부터 매 맞으면서 아프다는 국민들은 정말 미국 탓이고 과거 정권의 무능 탓만인 가. 지금의 대한민국의 경제 위기는 종말론과 다단계의 피해 사례와 너무 흡사하다. 욕망이라는 안경을 벗으면 너무도 쉽게 보여지는 대한민국의 현 상황이건만 아직도 그 안경들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다. 아직 자기들의 욕망은 반성하지 않고 남의 탓만을 한다. 그래서 국민들은 단지 피해자가 아니라 쌍방과실을 행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것이다.
경제가 이 지경이 된 지금 대박에 열광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대박 욕망을 정당한 투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부끄럽기 때문이고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의 선택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심리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정당한 투자가 폭등을 꿈꾸거나 엄청난 시세 차익만을 찾아 다녔는가. 어째건 자신의 과욕을 부정하려다 보니 아직도 지금의 위기는 미국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하거나 ‘이명박 대통령’이기에 그나마 이만큼 잘 선방한다고 한다.
이것은 마치 종말론자들이 자신들의 목사를 끝까지 믿고 지지한다는 절대적 믿음과 흡사하다. 그럼, 이 나라의 피해가 비슷한 경제 수준의 다른 나라보다 더 심각한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다른 선진국과는 상반되게 부자에게는 혜택을 주고 서민들에게는 별 혜택이 없는 지금의 정책은 어찌 이해해야 할까? 하긴 똑같이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상황이 되었다면 이미 쿠데타로 대한민국은 군사독재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나 역시 지구의 종말이 아닌 인류의 종말을 믿는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영적 선지자가 먼저 계시를 받고 알아채어 돈 모아 천국 갈 준비하는 방식으로 종말은 오지 않는다. 모두가 뻔히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환경 재앙, 전쟁의 폐해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당하게 될 거다. 또한, 나 역시 성공과 부를 갖고 싶다. 그러나 최소한 그런 피라미드 식의 말도 안 되는 대박을 꿈꾸지는 않는다.
지난 5년 동안 이 욕망의 대한민국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아무런 경고를 하지 않고 오직 경제 침체, 잃어버린 경제를 떠들어 댔다. 그렇게 잘난 척 좋아하고 국민들을 준엄하게 꾸짖는 것을 즐기던 그들은 왜 불과 1년 후, 6개월 후의 위기도 못보고 도리어 욕망을 부추겼을까.
자, 그럼 묻는다. 헛된 대박을 꿈꾼 사람들만 가해자고 나머지는 모두 피해자인가? 아니다. 흔히 뉴스도 안보고 정치판이 개판이라 다 나쁜 놈들이라 아예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 비판적 시각으로 잘잘못을 따지거나 역사를 바로 잡자고 하면 먹고 살기도 바쁜데 쓸데없는데 신경 쓰지 말자고 한다. 그들의 주된 논리는 그 놈이 그 놈이고 다 도둑놈이니 무시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잘 살게만 하면 독재를 하던 민주를 하던 알아서 하라고 한다.
그들의 무시와 묵인이 피해를 더 키웠다는 것을 그들은 아직도 모른다. 제 형제가 다단계를 하건 종말론에 빠지건 돈 만 벌면 된다 라고 묵인 했기에 그런 방관자의 형은, 또는 동생은 아버지의 재산을, 어머니의 적금을 허공에 날려 버렸던 것이다.
지금도 주변에 현재의 위기가 왜 왔으며 왜 피해가 더 커졌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저 뉴스와 정보라고는 화장실이나 식당에 굴러다니는 조중동 기사가 그들이 아는 전부다. 한편으로는 먹고 살기 바쁘니 그들을 욕할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지금 같은 인터넷 시대의 정보가 넘쳐나는 상황에 몰라서 그랬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변명으로 들린다. 인터넷을 모르거나 세상 물정에 어둡다고? 그래도 모두 내 형제, 자매고 어머니 아버지다. 왜 젊은 당신은, 많이 알고 있는 당신은 그 가족들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나.
자, 이제 인터넷 경제 대통령이라는 ‘미네르바’도 말하지 않은 각종 경제지표 및 주가지수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 하기로 하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경제 대통령’이라는 미네르바는 경제는 고수지만 정치는 고수가 아니다. 왜? 경제도 사실 따지고 보면 정치 안에 있다. 단순히 경제 지표와 주가지수만으로 설명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불경기라도 정치적으로 호황기로 둔갑할 수도 있다. 대중의 원망이 다른 곳으로 가면 불황은 정권의 책임이 아니라 당신의 투자 실패가 원인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잘못이 된다.
주가지수가 300이면 어떻고 500이면 어떤 가. 우리가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면 그만이고 그나마 우린 다른 나라에 비해 다행이라 안도하고 있으면 그만이다. 실제로 정치인들은 그렇게 우기면 그만이고 국민들을 그렇게 믿게끔 하면 끝이다. 아무리 경제가 안 좋아도 좋다고 착각하고 넘어가면 그만인 것이다. 그 뒤에 그 후유증이 있건 말고 그건 후임자의 몫이다. 자기 임기 때만 아무 문제 없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경제 대통령’이라는 미네르바는 자꾸만 경제지표가 어쩌고 주가지수가 어쩌고만을 말하며 착각에서 깨어나라고 한다. 사실은 경제지표와 주가지수만 깨우친다고 진정 깨우친 것이 아니다. 정치를 알고 진실을 구분할 줄 아는 눈을 가져야 진정 깨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미네르바와 여러 인터넷 경제 고수들은 경제지표를 통해 “네가 있는 곳은 허상의 세계다. 언제까지 당하고만 살 것인가, 매트릭스를 넘어 현실의 세상에 발을 내디뎌라”고 충고 한다. 하지만 그런 경제지식만으로 사람들은 깨어나지 않는다.
고수들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사육 당한다는 것의 의미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겐 아무 의미 없는 말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대중들은 오히려 강력한 사육을 원한다. 뒤로는 서민들의 복지 예산을 줄여도 언론에 신문 몇 장 찍어 시장 상인의 눈물을 닦아주며 어버이 같이 따뜻한 대통령으로 포장하면 그만이다. 왜 중국의 수많은 서민들은 모택동 시절을 그리워하고 한국의 순진한 국민들은 박정희 시절을 그리워하나. 행복하다고 세뇌 되어있으면 그것이 진짜 행복한 줄 알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은 경제 논리 만으로만 따지면 벌써 내팽개쳐졌을 것이다. 정치 논리로 대중들을 통제하고 속였기에 그들은 북한에서 살아 남았다.
정치란 그런 거다. 실제로 국민을 위해 잘하고 국가를 내실 있게 발전 시키기 보다는 속으로 부실해도 겉으로만 좋다고 착각하게 만들면 그 지도자가 더 유능하다고 추앙 받는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어도 일반 국민들에게 저 너머 있는 진실 따위는 필요 없다. 그것이 마취 탓이건 환각 탓이건 지금 당장이 좋으면 그만이다. 그것이 지금 이 나라 정치다. 아무리 진실을 알고 깨어나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깨어나기 싫다. 오히려 비록 환각이라 할지라도 그 행복감에 더 오래 취하길 원한다. 후유증 따위는 상관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래서 경제 위에 정치가 있는 것이다. 미네르바가 정말 대중들의 고통이 안타까우면 경제에 대한 충고도 좋지만 사실은 더 일찍 진작 고민하고 관심을 가져야 했던 건 경제의 밑바탕을 이루는 정치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공장의 휴게실을 가고 뒷골목 식당가를 가서 서민들과 노동자들을 만나보라. 그들이 말하는 지금의 어려움은 미국 때문이지 고소영, 강부자만의 이 정권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 정권은 어쩔 수 없는 피해자고 그 나마 그들 때문에 선방하고 있는 다행인 상황이다. 심지어 지금의 대통령은 어려운 경제 위기의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다. 그런 것이 바로 서민들의 체감 경제다.
그들에게 주가지수니 경제지표 따위는 필요 없다. 그들에게는 엔화 강세니 ‘노란 토끼’는 헛소리일 뿐이며 그들에게 중요한 건 우리가 북한 보다는 아직 잘살고 있다는 거고 정히 싫으면 북한으로 가서 살면 되는 거다. 이렇게 어려워진 것이 지난 10년의 과오 때문이고 북에 퍼다 준 결과일 뿐이기에 이제 얼마 후면 위대한 제2의 박정희 같은 대통령께서 이 나라를 잘 살게 해 줄 거다.
기득권의 비겁한 술수와 대중을 통제하는 정치 수완에 놀아나는 서민들을 보면 그런 현상이 억울할 수도 있다. 안타까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대중과 이 시대가 그거 밖에 안되면 그것을 그냥 인정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일제 때도 일제를 그리워하고 거기에 구속 받길 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는 거다. 지독한 최면이고 마취일수도 있다.
이런 이들이 무척 소수일 것 같지만 사실은 전체 국민의 상당수이며 이 투표자들의 과반수나 되는 엄청난 인원이다. 그런 것들을 이 정권은 너무도 잘 알기에 미네르바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언론을 장악해 간다.
지금 이 나라에는 돈 이외의 가치는 남지 않았다. 그 많은 돈에 미친 사람들 모두가 공범이다. 서로 못 믿고 아무런 진실 없이 불의가 판치니까 이 나라가 이지경이 되고 똑같은 경제 위기에도 더더욱 힘든 거다. 이런 현상이 옳은가에 대한 자성은 없이 오히려 한판 더하자고 부추겨대는 이 나라의 지식층이나 언론들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건가?
성도 이름도 모르는 인터넷 논객의 말을 믿어야 할 만큼 답답한 현실이고 정부에 대한 신뢰성이 바닥이라지만 그런 문제를 떠나 왜 온 국민이 주식전문가 되고 부동산 전문가 되어야 하나. 책방마다 부자 사전이 넘쳐나고 투자 강의로 들끓는 우리 사회는 과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가.
이래서 지금 이 땅에는 진짜 지식인이 없고 양심 있는 언론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자본과 경제 논리에 미쳐 실제로 더 잘 먹고 더 잘 살고 행복해졌는가. 지금 돈에 미쳐 남은 것은 폭락밖에 더 있는 가. 그런데 폭락하니 자기만은 살아남으려고 더더욱 돈에 미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경제 논리가 아닌 세상의 순리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미네르바의 글을 분석하고 따르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네르바가 존재하고 그에 대한 환호가 크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 사회가 그만큼 크게 잘못 되었다는 반증이다. 이 사회가 아직도 돈에만 미쳐 있기에 과히 신드롬이라고 할만큼 그를 추종할 뿐이다. 그가 더 이상 돈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바로 돌아서는 것이 현재 이 나라의 대중들이다.
경제를 모르면 당하니까,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돈의 열풍에 휩쓸렸다 치자. 그래도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하다. 잘 먹고 잘 사는 건 좋다. 그러나 그것도 정치, 사회, 문화 등의 일부분이고 여러 삶의 목표 중 한가지여야만 하는데 오직 경제와 돈 하나로만 집중된다. 뭐든지 '그것이 돈이 되나.'라는 명제로 연결된다. 교육도 사회활동도 종교도 뭐든지 돈의 논리로 본다. 이래서 과연 행복해질 수 있고 행복이 지켜질 까.
인류 역사에 비정상적인 성장, 팽창, 발전, 독재의 후유증이 없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사회가 어느 한가지에 몰입되고 피를 보지 않은 적은 없다. 종교에 미쳐있던 중세 사회는 종교 때문에 구원받고 행복해 진 것이 아니라 종교 때문에 불행했고 피폐했다. 단지 소수의 기득권과 종교, 지배계층만 그것을 이용해 행복했다. 중세에 종교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듯이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에 미쳐 수많은 사람이 피를 쏟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때 보다는 분명 더 선진화된 사회가 아니던가.
우리는 그 동안 오르막을 올랐고 정상에 섰었기에 이제 내리막을 갈 뿐이다. 그래서 지금 같은 경제 위기는 경제를 조율할 정치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 정치 지도자가 이 내리막에서 남들을 밀어 버리고 혼자 살아 남느냐 아니면 어렵지만 조심스럽게 함께 가야 할 길을 안내해 가느냐의 차이다.
그래서 주가지수에만 관심 갖지 말고 이 사회의 양심지수, 도덕성 지수, 정치지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이 나라의 주가를 끌어 올리고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국가 양심 지수가 올라가야 국민 행복도가 오르고 국민소득도 오른다. 잘 나가는 경제도 정치지수가 낮으면 하루아침에 반 토막 나고 또 같은 경제 위기가 와도 훨씬 더 힘들어진다. 세금이 50%가 넘는 서유럽 국가들의 행복지수가 왜 가장 높은 순위로 나타나는 것은 단지 주가가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 미네르바에 대한 추종도 좋지만 그를 경계하라고 말하고 싶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부동산이나 외화, 주식을 살 사람이 아니고 그 투자 수익으로 부를 이룰 사람들이 아니다. 단지 이 나라의 경제 흐름을 알고 자신의 업무와 직업에서 적절히 활용해 가면 된다. 큰 자본가가 아니고 주식 전문 트레이더들이 아닌 이상 그냥 투자 수익으로 대박 낼 일은 없다. 그런 대박 신화는 없다. 그런 신화를 버리고 잊어라. 신화에 매달릴수록 삶은 힘들어 진다.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인정 못 하는 가.
이 세상의 종말이 그렇게 뻔한 방법으로 신의 계시처럼 오지 않듯 대박도 그런 뻔한 방법으로는 오지 않는다. 그러니 미네르바가 말하는 주가 예측을 이용해 돈 벌려고 노리고 있다면 괜한 대박의 꿈을 잊어라. 이제는 미네르바의 주가 지수를 빨리 잊고 당신 자신의 일과 직업에 더 뛰어들어라. 그것이 진정 돈 버는 법이다. 그것이 정당한 거고 건강한 사회다.
인간과 대중에 대한 애정으로 글을 쓴다면 경제에 대한 경고 말고도 이 사회가 옳은 길을 가도록 제시 하는 것에도 함께 매진하라. 미네르바가 이 나라의 기득권에 분노를 표하며 지하자본을 움직이면 현 정권이 큰 코 다친다 했는데 그 동안 물 대포로 많은 국민이 두둘겨 맞아도 참아주던 그 관용은 둘째 치고라도 이제야 이 나라가 그런 나라인줄 알았고 해외로 나간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절을 고쳐야 하는 것이 좋지 않을 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먹고 사느라, 지식이 부족해 말하지 못해도 소위 지도층이고 엘리트라고 자부하고 먹고 살만한 사람들은 그 이전부터 진작에 말했어야 했다. 그 동안 못했다면 늦었더라도 지금이라도 이 나라는 속으로 곪아가고 있다고 사실을 말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돈에 몰두하지 않아도 두루 잘사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왜 온 국민이 경제 공부해야 하고 주식차트 살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예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것에 고루 관심을 갖고 두루 발전시켜 전체 부의 평균을 올리고 그 분배의 형평성에 힘쓰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말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는 혼자만 똑똑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무지한 대중도 함께해야 발전할 수 있는 사회 구조다. 쉽게 말해 투표를 하면 고등 교육자도 1표고 아주 무식한 사람도 다 똑같이 1표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외면하고 혼자만 잘 살수는 없다. 당신이 특정 0.1%가 아닌 이상. 흔한 말로 말하는 조직에서의 단체 기합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런 민주주의의 모순을 간파한 위정자들은 그래서 일찌감치 그런 단순하고 무식한 사람들을 꼬신다. 그것이 이 나라의 정치 수준이고 바로 이 때문에 당신이 아무리 경제만 알고 정치를 외면하고 무시해도 어쩔 수 없이 정치의 영향을 받는 이유다. 그래서 진짜 경제를 위하고 대중들을 위한다면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다같이 살아갈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어린 시절 주변에서 흔히 보는 가정의 모습은 이런 거다. 자식들이 힘들게 돈 벌어오면 가장은 도박으로 다 날리고 오히려 가족들에게 분풀이를 하며 행패를 부린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직원들은 온갖 허리띠를 다 졸라매게 하면서 자기들은 비즈니스를 핑계로 흥청대다가 어설픈 판단으로 몇 년 벌은 돈을 한방에 날린다. 그리고 직원들이 불만을 제시하면 인사권을 휘둘러 그를 내보내고 자기 이익과 자리는 그대로 지킨다. 여기서 돈을 벌기 위해 힘들게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경제’라면 한 방에 날리는 것이 ‘정치’다. 바로 지금이 그런 꼴이다. 바로 그래서 경제에 대한 노력만으로는 가정, 사회, 국가가 행복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제 나는 두렵다. 히틀러에 열광한 독일이, 천황에 맹종하던 일본이 순간의 착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듯 자본이라는 절대 가치에 맹종하는 이 대한민국이 그 반대 급부로의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될까 봐 두렵다. 이 나라는 너무 한곳으로 달려 왔고 지금 이순간도 방향을 바꿔 제자리로 가지 않고 소수만의 가진 자를 위해 가고 있다. 그래서 더 두렵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종말이 온다고 했지만 종말은 오지 않았고 다단계 피라미드에 홀린 사람들은 끝내 대박을 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와 똑같이 부의 욕망에 맹종하는 대한민국은 그 끝을 모르는 탐욕의 늪에 빠졌다. 하긴 어쩔 수 없을지 모른다. 피눈물을 흘린 후에 잘못을 깨닫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종말론이 사이비인지 이미 알고 있고 피라미드가 사기 인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아무 말 하지 않았듯 지금의 욕망의 대한민국을 묵인하고 동조한 지식인들과 이런 대중들의 헛되고 부당한 욕망을 이용해 기득권 세력은 또다시 살아 남는다.
이제 나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가차없이 정권을 바뀌고 부에 열광 했던 당신들은 행복한가? 10년간의 한을 풀어 희희낙낙 했던 당신들은 여전히 행복한가? 하긴 그토록 갈망했으니 이제는 행복해야지 왜 아우성을 치겠는가. 하지만 혹시 힘들고 괴롭다고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아직도 대박의 미련으로 방황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네가 알고 있는 경제지표, 주가지수는 사회적 양심지수가 동반되지 않는 한 모두 허상이다. 언제까지 당하고만 살 것인가, 경제 논리의 허상을 넘어 진짜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소수의 가진 자들만을 위한 정치를 바꾸고 더불어 함께 사는 공공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라”고 충고한다. 이것이 바로 ‘미네르바’도 말하지 않은 각종 경제지표 및 주가지수의 비밀이다.
한마디만 덧붙여 만약, 그런 세상을 바꾸는 노력에 대해 궁금하다면 그 노력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며 작은 성의로도 충분하다고 권하고 싶다. 그 어떤 거창한 사회운동을 하지 않아도 투표 참여, 수구 신문 절독, 인터넷 댓글 한 줄, 추천 한번, 주변인께 권유 등의 방법으로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유럽 선진국들의 사회도 자본의 힘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열정과 의지로 바꾸었다. 우리도 우리 자식들에게 돈에만 몰입된 냉혹한 사회보다 삶의 꿈과 행복이 함께 있는 그런 선진 사회를 물려주고 싶지 않은 가.
*이야기를 적다 보니 너무 길어졌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목어' 블러그 "사람과 희망" http://blog.naver.com/uaok
첫댓글 고맙습니다..돈에 몰두하지 않고 사회,문화,예술... 인생을 즐겁게 타인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세상오면 좋겠습니다..
그런세상 오기 쉽지 않을 듯 싶네요.. 시류에 휩싸이지 않고 중심잡고 살기도 힘든 세상이니. 자기류를 살아가는 멋진 사람이 점점 귀하네요. 이웃을 둘러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그들 나름대로 우상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그것을 처세술로 포장하고 있죠. 길들여 지지 않는 삶을 홀로 서서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자신을 들여다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현상을 보면 사람들이 마음 속에서 한 선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요. 노동의 값이 낮아지고, 돈이 돈을 버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가치를 돈에 두고 있는 것이지요. 사랑이나 행복이나 평화 등은 뒷전이고요. 존재에 대한 깨달음 없이는 분리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고, 분리된 개인으로서의 나는 타인에게 빼앗아 옴으로써 부자가 되고, 그럼으로써 행복해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착각에서 벗어나기 아닌 다른 해결책이 있을까요? 한 사람 한 사람 착각에서 벗어나고, 임계질량에 이르면 전체가 질적인 변화를 이루겠지요.
그저 도덕적으로 한 단계 올라가는 변화는 진정한 변화라 볼 수 없습니다. 근원적인 존재에 대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말과 생각과 행위가 따로 놉니다. 그러니 나의 진정하고 완전한 변화를 향해 묵언하심으로 정진하는 것이 길이 아닌가 합니다.
분리된 개인은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끼고 뭔가에 집착하는 의존성을 가지죠. 의존하지 않는 개체들의 자유로움이 마치 자기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신의 제1 법칙인 다양성을 부정하고 획일화된 사회를 꿈꾸고 그것을 선으로 포장하죠.그것이 파시즘이며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양성을 부정하는 모든 시도에 대해 우리는 분노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전체의 임계질량의 변화가 이루어지겠죠. 항상 세상은 그런식으로 변화해 왔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주위엔 넋나간 이들이 너무나 많아 우리가 가진 고유의 얼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도 됩니다.
그렇습니다. 다양성은 창조의 댱연한 모습입니다. 다양성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본성인 일체성을 체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쩌다가 그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요? 스스로가 필요해서 만든 것을 두려워하고 폭력으로 제거하려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우스운 일입니다.
우리 모두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선택으로 많은이들이 고통 받는 상황을 보면 참 마음 아픕니다. 이시대 이나라에는 진정으로 용기있게 말하고 길을 알려주는 현인들을 교묘히 왜곡하고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무지가 판을 칩니다. 더불어 그동안 이기적이고 비겁했던 많은 지식인들이 용기있게 현실을 제대로 알리고 비판하는 노력을 해주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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