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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412 어린아이 같이 되자(마태복음18장1-10절)
성경말씀은 마태복음 18장 1절에서 10절까지 봉독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5월은 가정의 달로 교회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그런 달입니다.
아마 수년 동안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살을 했다 이런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되었을 것이고, 또 최근에는 자살하는데 혼자 안 죽고 동반 자살했다 그런 얘기가 계속 들리고, 또 대체로 사회적으로 잘나가던 사람들이 연예인이라든지 인기가 많던 사람들이 맥없이 그저 자살 충동에 무너져버리는..
그래서 가정이 다 파괴되어버리는 그런 이야기를 연이어서 듣게 되는데, 하나가 기억에 아직 사라지지 않았을 때 또 터지는 그런 일을 계속 겪었을 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우리 사회와 교회 내지는 우리 현대 문화가 가정의 가치를 제대로 심어주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서 범사에 앞서서 가치를 발견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어린이를 가장 일찍 발견한 종교입니다.
지금부터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너희 어른들이라 할지라도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처럼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할 정도로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서 발견하시고 내세우시고 어린 아이의 가치를 가장 일찍이 선포한 그런 종교가 기독교 교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유교문화권에서 ‘애들은 가라’, 애들은 어른들 말하는데 끼어들어서도 안 되고 어른들 앞에 얼씬거려도 안 되고, 어른들이 말하는데 말마다 대꾸해서도 안 되고..
어린 아이는 그냥 확 눌려서 살았어요.
그런데 처음에 교회에 가보니까 어린 아이가 어른들 할아버지와 함께 어우러져 그렇게 친교가 이루어지는데 큰 충격이었어요.
적어도 제게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기독교야말로 여인의 인격을 가장 일찍 발견한 종교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어떤 종교는 여성이라는 존재는 그저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하는 그런 종교가 아직도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오늘 오후에 특강을 할 건데, 어떤 종교는 여자나 남자나 어린이나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자체가 불행이다. 이렇게 하는 사람도 있어요.
종교가..
그런데 그런 종교가 한국에서도 인기가 최고야.
여자나 남자나 어린 아이나 할 것 없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자체가 불행이다. 이렇게 말하는 종교가 있는데도 정확하게 냉철하게 비교 분석을 해보지도 않고, 비교하고 평가하는 비평도 비난처럼 듣는 우리 국민들이기 때문에 정직한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런 종교는 인류에 해악을 끼치는 종교입니다.
그저 우리가 말이 좋아서 다른 종교를 비난하면 안 된다. 물론 비난하면 안 되죠.
그런데 비평이 없으면 발전하지 않습니다.
비난과 비평은 다른 문제야.
우리 국민 의식이 비평과 비난을 구분 못할 정도로 그런 수준에 있기 때문에 말하기 상당히 조심스러워요.
그래서 기독교가 발견한 어린 아이 그리고 여성 그리고 가정..
기독교만 가정을 가장 중시합니다.
다른 어떤 종교도 가정을 중시하는 종교가 없어요.
여러분 어제가 ‘고타마 시타르타’라고 하는 불교의 비조(鼻祖)가 되는 석가모니 탄생일이라고 해서 온 한국이 떠들썩 했는데,
그 석가모니도 결혼을 했거든요. 결혼해서 애기를 낳았어요. 아들을..
아들을 낳았는데 그 소리를 듣고 아주 낙심천만 하면서 아들 이름을 ‘라훌라’라고 지었어요.
우리말로 번역하면 ‘장애물이다.’ 그렇게 지었어요.
그 장애물이라는 말에서 ‘애물단지’가 나온 거예요.
참 애물단지가 또 나왔다.
우리 기독교와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애물단지가 아니고 보물단지죠.
어떻게 같을 수가 있어요?
우리 산청이 낳은 인물중에 위대한 인물이 이성철 종정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분도 한국에서 손꼽는 대단한 승녀였지만, 이분도 결혼을 했었어요.
결혼도 하고 딸을 낳았었어요.
딸을 낳아가지고 이름을 ‘불필’로 지었어요. 불필이..
이불필.. 필요없는 게 나타났다...
석가모니는 장애물이라고 하고 이성철은 불필이라고 하니까 그러니까 아이가 태어나는 자체를 장애물 아니면 필요없는 거야.
이런 종교를 어떻게 가치있는 종교라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성경은 한 아이가 탄생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지구가 하나 창조 되었다 하는 것만큼 가치가 있는 거예요.
어떻게 같은 종교라 할 수 있겠습니까? 비교할 수 없습니다.
다른 종교간에 서로 괜히 정직한 말 바른 말 하다보면 참 감정이 상할 우려가 있으니까, 서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정직하게 솔직하게 말한다면 다른 종교는 다 인류에 해악을 끼쳤습니다. 거의 다..
제가 나이가 자꾸 들어가는 것 같아서 앞으로 시간이 나면 무덤까지 가지고 안 가고 그저 주일 오후시간 같은 때에 특강 같은 것을 해서 그 동안 예배시간에 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을 여러분에게 꼭 전하고 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오늘 오후에도 석가모니의 정각과 착각, 무엇을 바르게 깨달았고 무엇을 착각을 했는지 그런 이야기를 할텐데,
가능하면 이런 것은 창세이후로 다시 듣기 어려운 일이고, 앞으로 누가 이야기 할 사람도 없을 거예요.
점점 바른말 하는 사람이 없어지니까..
그래서 신학대학원 앞에 보니까 석가탄신일에 ‘석가모니의 탄생은 우리 인류의 기쁨이요 평화입니다’. 그렇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하는 모양인데 화해 무드가 대단한 것 같아요.
겉치레로 하면 외식이요, 진실로 하면 타락이야. 그렇죠? 생각을 안 해봤구만..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진리를 다룰 때는 정직해야 돼요.
그래서 한번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는데, 아마도 많은 회중이 있었던 것 같지 않습니다.
열두 제자와 몇 사람 정도 이렇게 있었는데, 예수님께 질문을 했어요.
잘 질문하지 않는데 모처럼 한다고 한 질문 수준이 이 정도야.
3년이나 배운 사람들이 모처럼 했다는 질문이 ‘천국에서 누가 크냐?’ 하는 거야.
누가 크기는 누가 커? 똑 같지..
[마태복음 18장]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했더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2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어린아이를 불러 세웠다는 것은, 그 이야기 할 때 예수님 말씀을 듣고 있는 가운데 어린아이도 있었다는 말이죠?
있으니까 불러 세운거죠.
그래서 저는 좀 아직도 질서가 잘 안 잡힌 훈련이 잘 안 된 사람은 곤란하지만, 아동부가 우리 어른과 같이 예배드리는 것 잘 하는 거예요.
유치부도 원래 유아실도 없애야 돼요. 같이 예배드려야 돼요.
뱃속에 있는 사람이나 배 밖에 있는 사람이나 크나 작으나 같이 훈련 받는 것이 잘 하는 거예요.
예수님 말씀을 듣고 어린 아이들이 거기에 있었다는 건데,
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것은 최고의 선포예요. 그렇죠?
극단적인 문제죠.
여러분 우리가 실컷 신앙생활을 했는데, 천국에 못 들어가버리면 세상에서 복 많이 받아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렇잖아요?
세상에서 잘 나가고 복 받았다손 쳐도 결과적으로 천국에 못 들어갔다면 그 복 받았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예수님께서 아주 깜짝 놀라시면서 누가 크다 작다 상관 말고 너 까딱하면 들어가지도 못해..
그런 얘기거든요.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첫째는 너희가 어린 아이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고, 둘째는 이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되어야 들어가서 큰 자가 된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어린 아이처럼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을 니고데모에게는 아예 거듭난다는 말씀으로..
그 때 밤이 깊었기 때문에 빨리 이야기 하죠.
‘거듭나지 아니하면..’ 이렇게 이야기 했는데,
사람이 어린 아이처럼 될려면 거듭나지 아니하면 어린 아이가 안 됩니다.
혹시 여러분 여기 우리 성도님 중에 아직도 ‘내가 낸대, 누가 좀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가’ 해 가지고..
‘내가 어른인데, 내가 선배인데, 내가 뭔대’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은 자기가 거듭 났는지 생각을 해봐요.
거듭 났을 때 제일 특성이 뭐냐 하면 자기를 전혀 내세우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기를 부인하게 돼요.
여러분 어린 아이가 무슨 자기 고집이나 철학이 없거든요.
진짜 어린 아이는 그런 것 아무 것도 없어요.
그래서 어린 아이의 특성을 제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첫째, 어린아이는 단순해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거듭나서 아주 단순해요.
아무 것도 없고 내가 지금까지 가졌던 것 배웠던 것 내세웠던 것 아무 것도 아니다. 하는 모든 것에 무가치를 처절히 느끼면서 단순해집니다.
하나님 앞에 단순한 어린 아이같은..
두 번째 겸손한거죠.
어린 아이가 교만떨고 하는 것 없죠.
그 다음에, 순수해요.
여러분 사람이 어떻게 하면 순수하겠어요?
순수해질려면 욕심이 없어야 순수해지는데, 애나 어른이나 벌써 욕심이 개입되면 목사라도 순수하기 어려워요.
대개 어떤 욕심들이 있느냐 하면, ‘뭐가 되겠다, 뭐를 가지겠다, 뭐를 하겠다.’ 그런 것들인데, 그런 게 너무 지나치게 되면 목사도 설교나 목회가 순수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단 욕심을 내려놔야 돼요.
왜 우리가 욕심을 부리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진짜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이예요.
내가 볼 때는 우리가 뭘 되겠다고 하는데, 하나님 아들 되면 될만큼 된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하나님 아들되고 하나님 딸 되었으면 될만큼 되었는데, 그 이상 될게 없어요. 사실은.. 최고가 되었는데, 그게 아직 실감이 안 나서 그런 거야.
내가 하나님 아들 된 것이 실감이 안 나서 자꾸 내가 뭐가 되겠다 하는데,
뭐가 되어봐야 별것 아니예요.
여러분 보세요. 대통령 한번 되면 갈데가 없잖아요.
꼭 가는 곳 감옥에 갈 수 있는데, 그 외에는 별로 갈데가 없어.
국회의원 다 감옥 담장에 줄타기 하는 사람들인데, 그것 뭐 출세해봤자 되겠다 해봤자 별것 아닙니다. 사실은..
저는 교회 안에서 총회장 되겠다고 총회장 될려고 돈 써서 총회장 되었다고 하는데, 돈 안 쓰고 되는 길은 별로 없어.. 보니까..
그것이 나는 볼 때 땅에서 영광이 아닌데, 결코 하늘에서도 영광이 아닐거거든..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요. 내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수치지 영광 같지 않다는 거야.
정말 모든 사람들이 만민이 다 참 기쁨으로 추대해서 존경해서 이렇게 된다면 모르지만, 선거 운동까지 해가지고 이렇게 피곤한 일 해가지고 총회장 되는 것..
글쎄 그게 별로 하는 일도 없으면서..
아마 그런 사람 천국가면 ‘야 너는 땅에서 다 받았잖아.’ 하면 끝나잖아요.
되겠다는 자체가 별게 아니라는 거예요.
뭘 가지겠다고 하는데, 옛날에 우리 선배가 솔로몬이란 분이 있었는데, 많이 가져봤어. 별것을..
다 해보니까 아무 것도 아니더라는 거야. 나는 그것 믿습니다.
형편도 그렇고.. 내가 믿기로 했어요.
다 가져봤는데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야.
뭘 가지했다. 뭘 하겠다.
‘우리가 하나님 뜻이면 이것 저것을 하겠다’ 해야지, 하나님 뜻인지도 모르고 뭘 하겠다는 자체가 다 별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런 욕심들 괜히 하지도 못하고 되지도 못하고 그러면서 괜히 순수성만 잃어버리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야.
그래서 엄마 품에서 젖을 실컷 먹고 어린 아이처럼 엄마 품에서 젖꼭지에서 물러난 어린 아이처럼 평안한 그런 마음이 되어야지..
너무 욕심 부려가지고 아시는 대로 욕심이 잉태해서 죄를 낳는 것이고, 죄가 장성해서 사망을 낳는 것 아녜요?
그래서 순수해진다는 것은 일단 과도한 분에 넘치는 욕심을 내려놔야 돼요.
오늘날 이상한 부흥강사들이 비젼 비젼하면서 욕심을 부추겨서 거짓 꿈을 꾸게 해서 착각하게 해서 부도나게 해서 그런 추태를 부려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어린 아이는 순종한다는 거예요.
순종하는데, 물론 요즈음 애들은 순종 안 하는 애들이 많이 있어.
못된 것을 먹어서 뭘 잘못 먹어서 말 안 듣는 애들이 있는데, 대체로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 말에 순종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겸손하다 하는 것과 의존하고 신뢰한다.
여러분 어린 아이들은 내가 우리 애들 어릴 때에 어디가도 하나도 염려 안 해..
아빠가 다 해 줄건데..
그러니까 그냥 따라나서는 거예요. 그것이 절대 신뢰죠.
아니 내가 못 믿게 해도 얘들은 믿을려고 해요.
‘야, 내가 너를 대학이나 대학원 보내가지고 학비 감당할 자신이 없다.’ 해도 아빠는 해 줄 것으로 믿는 거야.
나보다 더 믿음이 좋아. 얼마나 믿는지..
그래서 결국은 믿는 사람이 이기더라고..
결국은 내가 다 해 줬잖아요.
그러니까 절대 어린 아이가 순수한 믿음과 신뢰가 있는 거예요. 어른을 신뢰한다는 거야. 의존하고..
여러분 물론 30년이나 40년 되어서 맨날 부모 너무 의존하고 그러면 곤란하지만, 어린 아이때는 절대 신뢰하고 의존하지 않습니까?
그런 모습들 자기를 낮추고 이런 모습들이 예수님이 보실 때 참 아름답게 보인다는 거예요.
우리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는 어린 아이예요. 어린 아이..
그래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여러분 이 세상에 어린 아이를 태어나게 어린 아이를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 보내셨어요. 맞습니까?
어쩌다가 잘못 만나서 태어나고 이런 게 아닙니다.
어떻게 실수로 태어나가지고 그러면 큰일 나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내셨다면 우리가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거예요.
어린 아이 하나에게 혹독하게 잘못하는 것은 예수님에게 잘못하는 겁니다.
기독교 윤리 수준이 이 정도입니다.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그러니까 여러분 성인을 타락하게 하는 죄도 잘못되고 무서운 것이지만, 어린 아이가 잘못되게 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야.
제가 가끔 대나무 이야기를 가끔 하는데, 경상도 지리산 대나무가 참 많아요.
조금 있으면 죽순이 올라옵니다.
대는 거의 두달만에 다 커버리거든요. 1년 크는 것도 아닙니다.
두달 만에 다 커요. 나머지는 일평생 더 단단해지는 것이지..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고 하죠?
두달만에 다 커버리는데, 다 큰 후에는 가지가 하나 꺾어져도 괜찮고 중동을 잘라도 아래동은 쓰는 거예요. 다 큰 후에는..
그 나름대로 쓸모가 있는데 이게 죽순때 골병을 들어버리면 아예 못 쓰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른을 타락시키는 것도 잘못하는 것이지만, 어린 아이를 실족시키는 ‘스칸달리조’ 실족케 한다는 말이 걸고 넘어뜨린다는 거예요.
어린 아이를 함정에 빠뜨리고 올무에 걸리게 하고 어린 아이에게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어릴 때 잘못되게 해 버리는 것. 아주 끔찍한 죄가 된다.
그래서 어린 아이를 잘 가르치고 잘 보호하고 잘 사랑하고 잘 지도하고 할 책임이 우리 기성세대에 있고 부모에게 있다는 겁니다.
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특별히 어린 아이를 상대해가지고 돈을 벌기 위해 어린 아이들을 탈선의 길로 가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의 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끔찍한 죄악이예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이런 사람들이 기업인들이 돈을 떼 먹고 하는 것은 큰 문제 아닙니다. 시간만 지나면 다 토해내니까..
관계없는데, 어린 아이들을 타락하게 하는 그런 문화 그런 직업들 이런 것은 하나님 앞에는 살인죄보다 더 무서운 거예요.
여러분 제일 작은 죄가 돈 문제입니다.
제일 하찮은 문제예요.
한 인격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장치 어떤 죄악성 이런 것들이 끔찍한 거예요.
여러분 지금 현재 교육을 통해가지고 교육이나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린 아이들을 타락하게 하는 끔찍한 문화가 있습니다.
한 40-50년 전에 실존주의 내지 개인주의 이런 사상들이 막 대학을 통해가지고 대학생들에게 만연되어 갈 때 ‘남이야 어떻게 하든지 말든지’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잘 안하죠?
왜? 남이 어떻게 하든지 아무 말 안하니까..
지금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어른들 앞에서 담배 피울 때 건드려봐.. 아무도 건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옛날에 우리 때는 ‘네 이놈!’ 하고 난리가 났죠.
그 때 대학가 그런데에서 남이야 어떻게 하든지 말든지 이런 말이 이른바 개인주의 실존주의 이런 것에서 나온건데, 나무에 전봇대로 쑤시든지 말든지 그런 말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철학들이 이른바 실존주의 내지는 개인주의에서 나온 것들인데, 아무도 아무 에게 간섭을 못하게..
물론 인격에 대해서 지나친 간섭은 잘못된 것이지만, 심지어 어른들이 어린 아이에게 지도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거예요.
심지어 그런 쪽으로 앞서간 것도 아니고 사실은 잘못되어 간건데, 아버지가 아들을 처벌도 못해요.
아들이 아버지를 경찰에 고발한다니까..
선생님이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반면에 그런 어린 아이들을 실족하게 하는 악한 문화들 악한 예술들, 그것은 예술도 아니죠. 사실은..
그런 것들이 만연해도 이것을 통제할 길이 없는 거예요.
지금도 제가 잘못된 것을 우리 인터넷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면 ‘그것을 꼭 잘못되었다 할 수 있느냐? 너무 편향된 것이 아니냐? ’ 이렇게 하는데, ‘아무 가치 기준이 없고 여러분이 한 쪽으로 갔기 때문에 그것을 돌이킬려고 하는 소리다.’
너무 편향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치고 수용을 못하는 거야.
그런 글들이 그냥 애들이 너무 철도 없는 것들이 어른들이 무슨 말을 해도 꼬박꼬박 반말하고 대들고.. 그런 세상이 되었어요.
어떤 권위가 통하지 않는 거야.
교육이 잘못된 거죠.
그래서 어린 아이들을 실족케 하는 철학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있다는 겁니다.
시간 나면 많이 깊이 파봐야 되는데,
여기 8절에,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분명히 굉장히 잘못될 때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자가 있다는 거죠.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없음)
그리고 여기 11절은 ‘없음’이라고 되어있는데, 가끔 가다가 반복체 아니면 점증체 아니면 만연체로 자꾸 수사학이 강조하고 또 강조할 때 보면 꼭 하나 더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아마 여기에 ‘네 고추가 범죄케 하거든 잘라버리라’ 든지 이런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이런게 있다는 거예요. 가끔..
그런데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놓고 볼 때 사본대조를 보면 없는 게 원전쪽에 가까운 거야.
있는 것은 후대에 사본하는 사람들이 한마디 더 보태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 하니까.
한마디 했는데 괄호안에 넣고 이렇게 하다가 본문처럼 들어온 것인데, 없는 것과 있는 것은 없는 것이 원전쪽에 더 가까운 겁니다.
그래서 있는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사탄이 이것을 한절 삭제했다고.. 삭제한 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갖고 있는 것이 더 보탠거야.
이게 기본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 해마다 우리 기독교적 입장에서 어린이들을 어떻게 섬기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 이런 것을 꼭 같은 이야기를 지금 매년 하고 있는데, 주보 안쪽에 보면 20여 가지를 정리해서 적어 놨습니다.
성경적인 혹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어린이 헌장 같은 이야기인데, 제가 제일 중요시하는 것은 어린이는 하나님의 뜻을 쫓아 많이 태어나야 돼요.
태어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보호하고 할 게 없잖아요.
태어나야 가르치던지 할 텐데 태어나야 말이죠.
어린 아이는 많이 태어나야 돼요.
두 번째 어린이는 부모와 형제 자매들 사이에서 자라게 해야 됩니다.
여러분 놀이방 어디다가 자꾸 맡기고 친가에 외가에 맡기고 하는 것 잘 하는 것 아닙니다.
부모 형제 자매 사이에서 다시 말하면 대가족 속에서 어린이가 크는 것이 잘 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든지 대가족을 만들어서 핵가족이 잘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지금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있는데, 어쩌면 성격과 문화가 비슷 해요.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대가족을 고집합니다. 그 사람들은..
젊은 부인들이 할머니 없이 어떻게 아들을 기를 수 있으리요.
가뜩이나 할 일 많은 세상에.. 할머니 없는 세상은 상상도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애기를 못 낳고 안 낳는 이유가 할머니와 따로 떨어져서 살기 때문에 많이 나아서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잘못된 거죠.
세 번째 어린이는 건전한 가정 경건한 교회 즐거운 학교에서 자라게 해야 합니다.
첫째는 건전한 가정, 둘째는 경건한 교회..
요즈음은 가정이 건전하지 않고 교회가 경건하지 않아요.
교회가 순 난장판처럼 되어가지고.. 학교는 그냥 공부를 가지고 사람을 줄세워가지고 바보로 만들고..
학교 30명 40명 되면 4명 5명만 교육하고 나머지는 서포트 해 주는 것 밖에 안 됩니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들이나 아이들이나.. 아이들보다 부모들이 너무 욕심이 많아가지고 아이들 못 살게 만드는 거죠.
그 다음에, 어린이는 목사와 교사와 의사가 있는 곳에서 자라야 합니다.
목사는 그의 영을 위해서, 교사는 그의 혼을 위해서, 의사는 그의 몸을 위해서..
그러니까 의사나 목사와 교사의 캐어(care)가 함께 다 필요하다 그 말이예요.
다섯 번째 어린이는 중생해야 되고 성장해야 되고, 성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됩니다.
어린이는 중생해야 돼요. 거듭나게..
대체로 볼 때 중2 정도되면 바로 하나님 말씀을 듣다가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생각을 100% 내려놓고 거듭나 버려요. 중생합니다.
그렇게 하면 어린 아이가 말씀듣는 실력이 어른들과 똑 같거나 어른보다 더 잘 듣거나 그래요.
그리고 세계관 역사관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생하게 하고 성장하게 하고 성숙하게 도와주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여섯 번째 어린 아이가 반드시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게 해야 돼요.
그 교육이 안 되면 그것은 잘못된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수학을 해 보면 괄호앞에 마이너스면 괄호안에 뭘 채우면 채울수록 더 손해보는 것처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모르면 지식이 있으면 더 타락하고 돈이 있으면 더 타락하고 힘이 있으면 더 타락하고..
뭐든지 있으면 있을수록 더 타락해요.
반드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알도록 가르쳐야 돼요.
그 다음에 일곱 번째 어린이가 성경과 역사와 과학을 기본이 성경을 배우고 역사를 배우고 과학을 배워야 돼요.
과학을 배우지 않으면 또 역사를 모르면 성경을 모르고 이래갖고는 죽도 밥도 아니고 그냥 기술 가지고 돈벌이 하는 기계처럼 되어 버려요.
역사 의식을 가지고 역사관을 가진 책임있는 인격체가 아니고 돈 버는 기계에 불과한 거예요.
여덟 번째 어린이는 체능과 지능과 예능을 다 고루 갖추도록 길러야 돼요.
지금 볼 때 체능도 떨어지고 지능 하나만 가지고 예능도 다 무시해버리고..
그런데 그 지적인 능력도 그렇게 그냥 지나치게 윽박질러서 여러분 우리가 머리란 게 사람이 기억되는 게 까다로운 것은 기본이 세번이고 어떤 기본 상식이 우리 머리 속에 마음속에 입력되는 게 예습 학습 복습 이 세 가지가 기본이예요. 기본..
그렇게 하면 70% 정도가 기억된답니다. 70%가..
예습 학습 복습해서 심어지고, 그러니까 한번 해갖고는 다 90% 날아가게 되어 있어요.
한번 읽고 듣고 해서는 90% 날아가 버리고 두번 들으면 50%, 세번 들으면 70%까지 기억되는데, 그 세번 들어서 확인한 것이라도 한달 내에 다시 한번 확인하지 않으면 다 날아가 버려요.
그래서 예습 학습 복습 한 다음에 한 달내에 반드시 그것을 체크해가지고 다시 확인해야 거의 90% -100% 기억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공부하는 원리도 그런 원리가 있는 거죠.
지능이라는 것을 그렇게 할려면 양이 너무 많으면 기억속에 병목 현상이 일어나서 넘쳐버려요. 안 들어가는 거야.
적당하게 조금 쉬면 공부하고 싶어지고 공부하면 좀 쉬고 싶어지고..
그것을 잘 조절해가지고 공부를 시켜야 되는데, 억지로 쑤셔넣는다고 다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예습 학습 복습 하고 한 달 내에 다시 한번 중요한 것은 되새겨가지고 확실히 기억을 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그래가지고 한달 두달 3개월 내에 다시 꺼내어서 남을 가르쳐보는 정도 이렇게 되어야 진짜 공부가 되는 거예요.
절대로 한번 들은 것으로는 안 돼요.
하나님 설계 자체가 한번 들으면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게 이렇게 안 되어 있다는 거야.
그 원리를 알아야 공부를 잘 할 수 있어요.
체능, 여러분 체능이 떨어지면 나중에 지능이 안 됩니다.
체능도 있고 지능도 있고 예능도 있게..
여러분 예능이 없으면 세상을 아름답게 살지 못해요.
여러분 인생을 살아갈 때 힘차게 살아야 되지만, 즐겁게 아름답게 살아야 돼요.
즐겁게 아름답게 살려면 예능도 있어야 돼요.
그런 것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는 겁니다.
어려서부터 노래도 부를 줄 알게 그림도 그릴 줄 알게 길러야 되는데,
여러분 오늘 우리가 국영수도 국영수지만, 지금 디자인 시대를 맞이하니까 그 미술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이지 않습니까? 지금..
보이는 모든 것 우리가 눈뜨면 미술을 보는 거예요.
제일 많이 보는 게 미술적인 것이고, 그 다음에 음악적인 것들..
이런 것들이 없으면 인생이 얼마나 삭막하겠어요?
그래서 지능과 예능과 체능을 골고루 잘 발달하도록 그런 마음을 써야 돼요.
그 다음에 아홉 번째, 어린이는 도덕과 예절과 절제를 반드시 배워야 돼요.
지금 아이들이 전혀 도덕도 안 배우고 예절도 없고 절제도 없고 제 멋대로 그저 하나만 기르니까 제멋대로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길러버리면 그런 아이는 앞으로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문이 열릴 리가 없어요. 절제를 배우도록..
그 다음에 어린 아이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배워야 돼요.
필수적인 거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없으면 사람도 아니죠.
그 다음에 어린이는 어린이라도 권리와 의무를 가르쳐야 돼요.
어린이도 자기 의무와 자기 책임을 반드시 인식하게 항상 가르쳐야 됩니다.
그냥 너무 얼러서 얼러서 그렇게 길러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됩니다.
반드시 권리도 권리지만 의무와 책임도 항상 느낄 수 있는 책임적인 인간이 되도록,
책임질 수 있는 인간을 길러야 됩니다.
열두 번째 어린이가 생명과 사명과 계명을 어려서부터 배워야 돼요.
그 다음에, 어린이가 분별력과 판단력과 결단력을 반드시 기르도록..
그리고 어린이의 생명과 인격과 개성은 아무리 어린이라도 무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존중되어야 됩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어른생명과 똑 같은 생명이예요.
노동력 가치라고 해도 앞으로 미래가 많이 남아 있는 가치죠.
어른이야 얼마 있으면 죽을 것 아닙니까?
어린 아이는 어떤 이유로도 생명이 존중되어야 되고, 인격은 손상되기 쉬운 인격이니까 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돼요.
개성은 그 사람의 개인에게 주어진 성품이기 때문에 아무도 함부로 터치할 수 없어요.
그래서 생명과 인격과 개성만큼은 어린이라도 반드시 존중되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어린이는 강인한 체력과 건전한 정신과 거룩한 성품을 기를 수 있도록 부모도 교회도 학교도 도와줘야 됩니다.
열 여섯번째, 어린이가 진위 선악 미추.. 기본이죠.
진위 선악 미추의 감각이 분명하게..
여러분 미술이라든지 이런 세계 보편미가 있습니다.
내가 어떤 청소년들 옷 입는 것에 대해서 이런 것은 성도에게 합당하지 않다.
그것은 목사님 혼자의 생각이지.. 우리는 이게 좋다는 거예요.
너는 좋아도 딴 사람이 볼 때 안 좋으면 안 좋은 것이다.
여러분 보편미가 있는 겁니다. 그런 것 때문에 예술이나 미술을 할 필요가 있는 거죠.
음악도 보편미가 있는 것이고, 미술도 보편미가 있는 거예요.
그것도 없으면 아무 학문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죠.
어린이에게 바른 역사관 가치관 세계관 반드시 길러주도록..
올바른 역사관 세계관 가치관을 길러주어야만 진정한 교육이 됩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가 초목과 오곡과 백과를 보면서 자라야 돼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시멘트 콘크리트 아스팔트에서 자라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반드시 풀도 보이고 나무도 보이고 오곡도 보이고 백과도 보이게 이렇게 길러야 제대로 기르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샤론교회가 커지거든 그런 학교를 만들어봐야 돼요.
샤론 초등학교부터 시작해가지고..
정말 다 크면 또 모르는데, 어릴 때 아무 생명도 없는 콘크리트 아스팔트 아파트 데파트 그런 죽은 문화 속에서 아이를 길러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제가 가끔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과 같이 산에 가서 지나가면서 이름도 잘 모르는 풀들 이런 것 물으면 진짜 하나도 몰라요. 너 아는 게 뭐냐?
피자와 햄버거 이런 이름만 알지..
그러니까 참 한심한 거야. 인생이 이렇게 살아서 무슨 가치가 있는가..
풀도 모르고 나무도 모르고 그냥..
그리고 어린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공급되어야 된다.
이것은 옛날 어린이 헌장에 나왔던 거죠.
어린이는 모든 위험에서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되는데, 이것도 옛날 어린이 헌장에 있던 거죠. 이 두개만..
어린이가 잘못될 때는 성실히 초달하고 징계해야 된다.
어린이를 때려서 길러야 돼요.
그냥 기르면 안 됩니다.
반드시 어릴 때 엉금엉금 길 때부터 때려야 돼요.
22번째 어린이는 모든 유해물질과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60살, 70살 넘은 할아버지는 볼짱 다 봤으니까 아무래도 괜찮은데, 어린 아이가 자는 방이나 이불이나 옷이나 침구류도 다 유해하지 않은 것으로..
잠을 8시간 장시간 노출되는데, 지금 현재 서울 어느 한 지역에는 세명 중에 한 명이 아토피라는 거예요.
자녀 교육 시킨다고 서울에 갔는데, 그렇게 가려워서 집중력이 없어서 공부 되겠어요? 그래가지고..
밤에 잠을 못 잤는데 어떻게 공부할 시간에 집중력이 생기냐고..
학원에만 냅다 보내면 학원 스트레스 때문에 더 긁어가지고 밤새도록 잠도 못 자고..
생각할수록 불쌍한 거야.
어차피 출세도 못하고 출세해봐야 감옥가는 건데.. 그렇지 않습니까?
23번째, 어린이는 가정과 교회와 민족의 희망이요 보물입니다.
절대로 장애물이 아닙니다. 불필이가 아니고..
그리고 어린이는 가정과 교회와 나라에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계획이 그 어린 아이속에 들어있습니다.
굉장한 역사도 항상 하나님께서 한 어린 아이 속에 뭘 심어서 보내는 거예요.
여러분 이 역사를 구원하는 메시야 구세주가 오는 것도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낫다는 거예요.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다.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어린 아이라는 생명이라는 그릇에 담아서 보내오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린이는 일과 공부가 짐이 되지 않아야 됩니다.
너무 아이들에게 공부로 부담주지 않도록..
옛날에는 이런 시절이 있었어요.
어떻게 머리가 괜찮은 아이가 있어서 정말 조금만 밀어주면 한 시대의 민족의 지도자가 될 만하다. 이런 시대에는 아이 하나 잘 기르면 그 시대의 영웅이 되는데, 지금은 그런 영웅이 일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여러분 전부 다 학문을 찢어 나누어서 전문인으로 박사과정까지 되어버리면 아무 것도 모르고 자기가 전공한 조그마한 그것밖에 모르는 거야.
그것 밖에 몰라요.
자유도 없이 기계 부속처럼 매여가지고..
그게 공부한다손 쳐도 그것밖에 안 되는데, 그런 것을 위해서 어린 아이가 놀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고 자유도 없이 그렇게 인격을 위축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저는 실컷 놀고 그리고 마음껏 쉬고 그리고 생각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놔두고 그러한 가운데에서 인물이 나오는 거예요.
억지로 위축되게 쭈그려 가지고 이렇게 해서 학원에서 만드는 그런 천재가 아니고, 진짜 자유롭게 사유할 수 있는..
저는 지금 어린 아이들이 과잉보호되거나 학문이나 학원이나 이런 것들이 과제가 너무 중과부담이 되어가지고 어린이가 감당을 못해 가지고, 어제도 보니까 발바닥 백대 맞고 집에 와서 아이가 자살해 버렸어요. 그냥..
그 아이 하나 낳아가지고 그만큼 기를 때 얼마나 고생해가지고 그 학원비 번다고 엄마 아빠가 뼈빠지게 노력했는데, 학교에 가서 발바닥 백 몇대 맞고 집에 와서 자살해버리고.. 이게 세상에..
우리 사회나 우리 국민들 우리 성도들이 가치관이 너무 세속화 되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린 아이들을 맡겨주셨는데, 그 오늘 이 헌장이 너무 부담되어서 포기할 마음이 더러 나죠?
그런데 포기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고 저도 아이들 길러보고 목회를 하면서 정말 청소년들이 바람직한, 어디에 내놔도 흔들리지 않는 만고불변의 어떤 어린이 헌장이 있을게 아니냐..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2002년도부터 똑같은 얘기를 해 왔어요. 주보에 있는 내용이니까 꼭 새겨보시고, 아니면 우리 홈페이지에 있으니까, 조그마한 액자라도 만들어서 집에 걸어놓고 아이들과 같이 읽으면서 이렇게 커야 되지 않겠는가..
중학생만 되어도 대화가 됩니다.
또 초등학생도 5-6학년쯤 되면 같이 할 수 있어요.
책임을 느끼고 엄마가 공부해라. 공부해라 이런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자기가 알아서 할 수 있는 그 정도 아이를 길러야 돼요. 믿음의 가정에서는..
그래서 우리 샤론교회 성도님들이 첫째는 다른 사람들처럼 하지 말고 학원 안 보내도 사교육비 없어도 얼마든지 기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아빠 혼자 벌어서도 먹고 사는데 문제 없잖아요.
그러면 중학교까지 거의 의무교육이니까 학원에만 안 보내면 거의 큰 문제 아닙니다.
그리고 음식만 깨끗하게 가려 먹어도 학원 보낼 필요 없습니다. 아이들이 잘 듣습니다.
음식을 아무 것이나 먹고 식품 첨가물 같은 것 함부로 먹어서 ADHD같은 그런 집중력 저하 과잉행동증 이런 것들 때문에 아이가 기초를 놓쳐버리면 그 다음에는 영원히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음식만 잘 가려 먹어도 얼마든지 남들 하는 만큼 할 수 있어요.
제 아이들 전부 그렇게 길렀거든요.
어디를 가도 우리 아이들이 남에게 뒤지는 그런 일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한 학년에 한 두 명 천재 그런 사람 혹 있지만, 그런 사람들과 경쟁하는 정도는 되지, 앞서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뒤쳐져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음식만 정하게 가려 먹여보세요. 아이들에게..
그러면 몸도 건강해지고 정신도 맑아지고.. 학원에 안 보내도 기본은 합니다. 얼마든지..
저는 아이들이 아침 7시반 8시에 학교에 가서 밤 11시까지 공부해야 되는 그렇게 공부해야 되도록 창조 되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지식적으로 조금 점수가 더 나올지 몰라도 그런 사람이 성공한다고 보장이 안 돼요.
그래서 아이들이 마음껏 정말 자유할 수 있도록..
우리 교회 학교에서도 여름 성경 학교해가지고 학교에서도 죽을 판인데, 여름 성경학교 해가지고 숨도 못쉬게 하지 말고 여름이 되면 계곡에 가서 실컷 놀게 물에 밀어넣고 올라오면 또 밀어넣고..
자유하게 해야 돼요. 자유하게..
얼마나 놀고 싶겠어요? 방학때만큼이라도..
교회까지 해가지고 아이들 두드려 잡지 말고..
정말 어린이들이 교회에 와서는 참 평안과 기쁨과 위로가 있어야 되겠고, 가정도 마찬가지..
저는 너무 혹사당하는 그런 어린 생명을 볼 때 참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요.
제일 마지막이 사실 중요한 겁니다.
일과 공부가 짐이 되지 않게, 공부를 즐거움으로 할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의 가정들 특히 샤론교회 성도들 가정에서 아름다운 사람들 그리고 인격들이 균형잡힌 이런 인격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땅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요, 또 우리 민족의 희망이며, 교회의 미래가 될 텐데, 그 동안 우리가 너무 세속적으로 따라 살아서 어린 아이를 낳지 않는 그런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 말씀은 한결같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이고, 세상에 사람 난 것이 최고의 기쁨이며 최고의 가치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왔는데, 우리가 인식을 못하고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세상을 따라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각성하고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배워서 우리 샤론교회에서 자란 어린 생명들이 하나님이 쓰실 만한, 우리 사회와 교회에 크게 이바지할 아름다운 인물들이 많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