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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차 백두대간 산행
미시령-상봉-신선봉-병풍바위봉-마산-진부령
2013.08.25 무박
산행시간:8시간30분
산행거리: 15.6km
"별이 언제나 떠 있는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없어지는것도 아니다. 산이 그렇고 사랑이 또 그랬다."
버스에서 내려 들머리인 미시령 고개길 어디쯤을 넘어가는 동안 하현으로 이지러지는 달이 처연히 떠있었다.
북쪽 하늘에는 달빛에 반쯤 사위었을법한 별들이 총기를 더하며 반짝거렸다.
삽상한 바람이 불어 어느결엔가 가을이 다가왔음을 알려주었다. 시계를 보니 2시 45분이다. 그 동안 많은 무박 산행을 다녔지만 오늘처럼 아름다운 새벽을 만난적은 없었던것 같다. 세상 본래의 모습은 다 이렇게 아름다운것인지... 새삼 새벽 산길을 오르게한 내 운명의 힘에 감사한다.
멀리 우리보다 먼저 산에 오른 등산객들이 은빛 갈치비늘같은 불빛을 함초롬히 남기며 산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수상한 불빛이 돌아 다녔다. 놀란 산대장님은 어서 철책을 넘어오라고 신호를 보낸다. 이미 철책을 넘어 온 일행은 얼른 몸을 숨긴다. 순간 새벽 산속에 긴장이 흘렀다. 별일은 아닌 모양이다. 랜턴불을 꺼라는 주의를 지키지 않은 우리 일행일 수도 있다. 어찌나 빨리 산으로 달아났는지 얼마가지 않아 힘이 바닥나버렸다.
지리산 돌길은 설악산 너들에 비하면 자갈길이란 知人의 경고대로 너들길을 만났다. 황철봉 너들겅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짧은 구간이었지만 한번 미끌어지면 크게 다칠 우려가 있어 조심해서 돌길을 건넜다.
속초시
산중의 새벽은 매우 농밀하다. 해조와 같은 어두움이 차분하게 피부에 달라붙었다. 긴 오름길에 숨이 목까지 차 올랐으나 견디지 못할 고통은 아니었다. 늘 큰 고통은 고통을 참아낸 뒤에 바로 찾아왔다. 선잠에 깨어난 아기를 다독이듯 고통을 다독인다. 산이 툭툭 털어낸 어두움 위로 학익을 펼친듯한 도시의 불빛이 불면의 고통처럼 떠올랐다.
들머리에서 한시간 반 정도 시간이 소요되어 상봉 정상에 올랐다. 새벽에 오르는 대부분의 산은 한시간 반이면 대게 오를 수 있다. 그런데 내게는 이 한시간 반의 오름길이 언제나 초죽음의 길이다. 산행 초기 두어시간가량의 고통이 없다면 나는 어느 산이건 즐겁게 오를 수 있을것 같다. 결국은 그동안 이 고통을 이겨낸 셈이지만 이 고통으로 말미암아 다음 산행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지고 산행의 즐거움은 반감된다.
화암재
너무 이른 시간 산행을 시작했기 때문에 신선봉에서 일출을 보기위해 도중에 일행들이 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걸음이 늦은 나로서는 참 바람직한 일이다. 기다리는 일행을 만나 10여분 쉬다가 다시 신선봉을 향해 출발했다.
신선봉에서의 새벽
봉우리마다 아침이 피어났다. 아침은 걷지 않아도 왔고 걸음을 통해 더 빨리 왔다. 아침이 오는것이 아니라 아침으로 다가가는것 같았다.
동해의 아침해
그 동안 대간길을 걸으며 몇차례나 일출을 맞이했지만 이번처럼 새벽을 기다린적은 없었다.
그냥 걷다가 일출을 만났을 뿐이다. 오늘 새벽은 그야말로 일출을 맞이하기 좋은 날씨였다. 한여름 이렇게 맑고 고요한 새벽을 맞이하다니. 하늘의 은총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좋은 날씨다.
산이 물결쳐 옵니다. 깊은 평화의 일자진이 펼쳐집니다.
새벽 안개 물러난 사이로 연주를 준비하는 무대처럼 숲이 수런거립니다.
설악의 수많은 봉우리마다에 초롱같은 아침이 걸리고 뽀얀 젖빛의 연무사이로 어린 빛들이 연락선처럼 떠다닙니다.
이미 점이된 시간들도 저마다의 역사가되어 사라집니다. 만기가 지난 생명보험처럼 나는 자유롭습니다.
희망이 가득담긴 기분좋은 표정들이다. 우주의 기운이 인간의 기분을 만든다.
신선봉에는 이렇게 희망의 메시지들로 가득하다. 마음이 해를 머금은 동해의 바다처럼 들떤다. 고요한 아침 풍경 하나를 싱싱한 물고기처럼 건저 올린다.
울산 바위가 좌측으로 소박한 자태를 드러내고 황철봉 너머 대청과 소청도 모습을 드러낸다. 그 거대한 울산 바위가 응석을 부리는 아이처럼 아담해보인다. 설악이 한아름에 쏙 들어 온 애인처럼 푸근하다. 설명할 수 없는 평화와 안도감이 느껴졌다.
해가 뜨기 전의 실루엣
해가 떠기 직전의 고요.
아득히 먼곳으로 부터 미리 찾아 온 시원의 빛이 동해 바다를 얼비춘다.
하늘과 바다는 구분되지 않는다. 그냥 한덩이의 고요다.
여명이 쓸쓸한 스카렛빛으로 구름을 물들이며 거대한 서사를 쓰내려간다.
해를 기다리는 눈동자들은 이미 맑다.
마침내 해가 모습을 드러내고 일행들은 일제히 숨을 죽이며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마침내 안전히 모습을 드러낸 동해의 태양
동해의 일출은 일출 이상의 주술적 힘이 있다. 막 뜨오른 해를 향해 빌면 더 효험이 있을것같아 다양한 소망들을 빌어본다.
기도가 더 경건해지거나 혹은 더 이기적이되어간다. 초문명의 세상을 살아가는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인간의 아주 오래된 습성인것을 어쩌겠나.
오히려 물질 문명에 매몰되어 가시적이고 표면적인 가치만을 맹신하는 현대인에게 해를 향한 인간의 소박한 신앙은 그 무엇보다도 비물질적이고 원초적인 가치가 있지않을까.
해돋이를 감상하고 신선봉에서 이른 아침을 먹었다. 예외없이 입이 자갈밭처럼 까슬하다. 넘어가지 않는 빵을 억지로 반쯤 우겨넣는다. 이때는 물말아 먹는 밥이 제일인데... 식사를 일찍 끝낸 사람들이 다음 행선지를 향해 속속 떠나기 시작한다. 주인없는 신선봉을 접수해 여유를 가지고 사진을 담아보기로 한다.
황금빛 햇살이 설악에 가득하다. 두 사람의 우정도 황금빛으로 빛난다. 가장 아름다운 시간 가장 아름다운 산악인들의 우정이 나누어졌으리라 믿는다.
일행을 다 보내고 다시 후미가 되어 산을 내려갔다. 200m 쯤 내려가자 일출 시간을 아깝게 놓친 타 산악회 사람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산을 올라오고 있었다. 좀 안됐다는 생각이들었다. 숨막히는 일출을 본 마음이 이렇게 뿌듯했다.
돌무더기들이 무너져 내리며 너들겅을 만드는것이 아니라 이렇게 무더기로 마치 고대왕의 적석총처럼 흩어져있다. 하얀 화강암이 아침 햇살 속에 기분좋은 은회색의 빛을 발한다. 발길을 떼오놓기 싫은 순간이다.
멀리 가야할 병풍바위봉과 마산봉 너머 금강산 향로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실 신선봉을 넘으면 설악의 권역은 끝이나고 금강산이 바톤을 이어 받는다. 산 아래 절이름도 금강산 화암사라 부른다. 절 주소가 금강산이 되는것이다.
가스등에 불이 들듯 푸른 회청의 봉우리에 뽀얀 아침이 들었다. 말갛게 개인 산들은 어둠의 결박들을 풀어내고 내해에 박힌 섬처럼 산중을 떠다녔다.
비로소 색을 입은 풍경들은 어둠 위에 시편을 쓰듯 글을 토해냈다. 감동적인 아침이었다. 새들의 울음 또한 그러했다.
아침은 세상의 모든것을 제자리로 돌려내는것이어서 밤새 몽롱해진 내 의식조차도 어두움을 걷어내듯 되돌아왔다.
어둠은 나로부터 찾아왔고 아주 느리게 물러났다.
신선봉에서 대간령으로 가는 한시간 반가량의 구간은 급경사길이다. 중간 중간에 로프가 메여져 있었지만 로프에 의존할 정도의 경사길은 아니었다. 큰산 답지 않게 잡목이 우거져 걷기에 매우 거추장스러웠다. 간간히 여름꽃들이 남아 살가운 자연의 사랑을 보여준다. 정신 없이 산을 내려간다.
금강초롱
참취
병풍바위봉과 마산
산을 마주보았다. 아무런 힘없이 흘러다니는 언어를 보았다. 멈추어버린 시계처럼 걸어 온 길도 가야할 길도 멈추어섰다.
참을성있게 순서를 기다리는 긴 행열 속에 선듯 설명할 수 없는 설레임이 다가왔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인듯한 여유같기도 하고 휴식같기도 한 시간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산과 나는 꼭 조화만으로 연결된것은 아니었다. 산행은 회피할 수 없이 고통을 동반하였기에 산행은 오히려 슬픔과 슬픔, 상처와 상처를 이어주는 끈에 가까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슬픔과 상처는 나약함이 아니라 나약함을 이겨내는 근거가 되었다.
나의 상처는 아버지의 상처로 회복되고 나의 슬픔은 아버지의 슬픔으로 극복되었다. 산은 늘 아버지처럼 의였한 중재자요 그 자체로 선지자였다.
애기며느리 밥풀
병풍바위봉
땜빵자국같은 너들겅이 보인다.
마침내 대간령
마침내 대간령에 도달하였지만 이제 처음 시작하는 초심의 마음으로 산을 오르지 않으면 안된다. 병풍바위봉으로 오르는 까탈스런 오르막이 딱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의해 쌓아진 돌탑이 곳곳에 놓여져 있었다. 높이에 대한 소박한 인간의 의지가 느껴졌다.
동자꽃
상봉,신선봉으로 부터 지나온 발자취
멀리 설악산 서북능의 장쾌한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귀떼기청봉의 모습도 앙증스레 보인다. 원경들이 손에 잡힐듯 가깝다. 가을이 오고있는 모양이다. 가을이 오면 피사체의 심도가 더 깊어진다. 더 멀리 보고싶어지고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더 솔직해지고 싶고 더 선하게 살고 싶어진다.
카프카의 말처럼 내 글의 염두에는 늘 아버지가 계신다. 아버지에대한 반감만으로 산을 싫어했던 나였지만 지금 나는 아버지를 좇아 산에 오른다.
아버지는 꼭 지금의 내 나이에 세상을 버리셨다. 세상을 버리시듯 정말 그렇게 가셨다. 그 버림에 속했던 나와 배낭이 되어 내 어깨에 걸린 아버지가 오늘도 나란히 산을 오른다.
"산 사람들은 어떻게든 산답니다. 아버지 없이 산 세월 동안 아버지를 아주 잊고 산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늘 베고 자는 베게처럼 아버지를 곁에 두고 살아 온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는 비가 퍼붓는 한적한 밤길에 느닷없이 나타나거나 풀섶을 휘 날아가는 메추라기처럼 불현듯 나타나 내 고요를 흔들어 놓습니다.
또 그렇게 사는것이 사람사는 이치라는듯, 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란듯 때로는 나를 아이처럼 울먹이게합니다."
산에 대한 두려움은 높이에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불가능에대한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에 대한 스스로의 연민이었다. 산을 넘으면 공포의 벽은 무너졌고 연민 또한 사라졌다. 연민은 아득하게 물러난 다음 바람에 실린 배처럼 또 돌아왔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내 생은 너무 무의미했다. 아니 그런 자기 부정으로부터 내 산행은 시작되었다.
고통의 힘으로 절망과 대좌한 내 삶의 이 짖이김이 없었다면, 실존을 향한 저항이 없었다면, 나와 他者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나는 산행이라는 전략적 방편으로 무너져 내리는 자존을 일으켰다. 일상에 매몰된 절망과 자학으로부터 비로소 나를 살려냈다.
눈 앞에 일제시대 사진첩에서 본 다 쓰러진 불국사처럼 쓰러져있는 돌무더기가 보인다.
새로이 생성되는 기운이 아니라 산이 전반적으로 노화하고 쇠잔한듯한 모습이다. 앙코르와트의 폐망한 제국을 푸나무들이 뒤덮듯 나무들이 돌들의 잔해를 뒤덮는다. 세상사를 보는듯 마음이 수수롭다.
무너진 바위 아래에서 쉬는 동료들
산행을 참 기분좋게 하시는 분들이다. 우리도 잠깐 쉬어간다.
때로는 내 걸음 속에서 殺氣가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왜 나를 몰아가는가? 금강초롱의 화관처럼 머리를 숙인 채 죽을듯 뜨거운 숨을 몰아쉰다. 세상의 모든 죽음들은 뜨겁지 않다. 그러기에 나는 살아있다.
이런 위기가 오로지 내게 속한 절망에 기인하기에 나는 내 고통들을 희화화하고 말지만 殺氣가 결코 나를 넘어 설 수 없다는것도 안다. 적은 늘 내 마음 속에 존재한다. 살기는 곧 희망의 재를 남기고 사라진다.
선업의 결과, 혹은 악업의 결과들이 인간의 삶 위로 떨어지는 TAX같은것이라면, 피할 수 없는 제 몫의 운명같은 것이라면, 누구나의 삶은 삶 자체로 경건하거나 적어도 경건해 보여야 한다.
한 인간의 생애를 들여다 본다는것은 그 삶의 이유들을 들여다 본다는것. 死者의 삶은 더욱 그렇다.
나는 산행을 통해 아버지의 삶을 미화하려하지 않는다. 인간으로써의 고통과 소망을 이해하려한다.
내가 산을 통해 자문자답하듯 아버지의 삶을 통해 내 삶에대한 답을 얻고 싶은것이다. 안개와 같은 세계, 아버지의 피땀어린 긴 고뇌의 삶이 여기 있다.
하지만 내가 그기로 간다고 해서 나는 무엇과 더불어 돌아올 수 있을까? 답이 없다. 그러기에 내 고뇌는 허구다. 아버지의 세상을 아무리 구체화한다하여도 아버지와 나 사이, 산자와 죽은자 사이의 이 극명한 간극만은 극명한 채 남아있을것이다.
왜 운명은 내가 수락할 수 없는 방법으로 접근하는가? 나는 왜 이미 아버지가 되어버린 지금 아버지를 찾으려할까? 오늘따라 초록은 푸름에 지쳐 검게 꺼져가고 불꽃처럼 무시로 상념이 드나든다.
아버지가 불현듯 보고싶다. 아니 느끼고 싶다. 느낌에 대한 간절함이갈증처럼 차 오른다.
병풍바위봉에서
참 시원한 조망처이다. 아무리 조망이 좋은곳이라하여도 훌륭한 조망은 그날의 날씨가 결정하게된다.
오늘은 기분좋게도 날씨도, 조망도 그저 그만이다. 동해에 연한 설악과 금강의 여러능선을 한점 거리낌없이 감상한다. 기분좋은 날이다.
설악의 능선들이 오열을 맞추어 흘러내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은 利를 생각하지 않는것이라고 했다. 릴케는 詩를 일컬어 체험이라고 정의했다.
利를 생각하지 않는 체험의 산물로서 산행만한것이 또 있을까? 삶의 정답이 삶 중에 있듯 걸음의 답은 시를 쓰가며 글맛을 알아가듯, 걸음 속에 있을것이다.
삶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니 다만 걸을 수 밖에.
병풍바위봉에서 발아본 설악 서북능
마산을 코앞에두고 멀리 동해를 바라보았을 때 동해의 해풍은 이미 갈매기처럼 산마루에 닿아있었다.
바다는 아득했으나 그 아득함이 내가 뛰어넘어야 할 목표처럼 아득히 느껴지지는 않았다. 산은 방금 뿜어져 나오는 건강한 용암처럼 요동쳤고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선수처럼 분노에 차있었다.
나는 그 깊은 분노를 가라앉히는 판관처럼 산을 지긋이 응시했다. 비로소 산의 위세가 보였다. 늘 대간길의 마지막은 이랬다. 마침내 나는 길에 철든것일까. 나를 익게한 상대는 산일까? 나일까!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내 모든 걸음의 성취들은 통증의 보상이다. 시간이 갈 수록 고통은 누적되어 두 다리를 괴롭혔으나 통증을 벗어난 길을 걸은 바 없었고 통증을 피하지도 않았다.
통증은 내가 택한 삶의 방식이었지만 삶과 고통과의 경계는 늘 모호했다. 한고비의 거친 산마루를 넘자 뽀얗게 신세계가 펼쳐졌다. 일찌기 경험한 바의 산이었다. 예의 그 산을 예외없이 넘었다.
아직 대간길이 남았기에 마산 꼭데기에 올랐어도 이것이 넘어야할 마지막 봉우리임을 실감하지 못한다. 울먹임도,감회도 없는 그냥 여지껏 습관처럼 넘어 온 一峰에 불과했다. 그래도 마지막 봉우리임을 기념하여 길게 사진 촬영을 한다. 푸른 하늘을 배경삼아 서있는 산꾼들의 어깨에 잔뜩 멋이 들어있다.
알프스 리조트의 돌아가지 않는 리프트 아래 삼삼오오 모여 마지막 얼마남지 않은 대간길을 즐기고 있다.
저 11기 대원들은 오늘로 대간길 졸업이다. 아직 1/3의 여정이 남은 우리와는 다른 감회일것이다. 오늘 우리는 단지 11기 선배들의 축하객에 불과하다. 우리에게는 진부령이라는 대간의 말미가 없을지도 모르기에 오늘 이 길이 뜻깊다.
가능하면 천천히 남은 대간길을 즐기시는 선배님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길을 지나친다.
날머리가 가까와지자 시그널이 복잡하게 붙어있었다. 낙동 산악회의 시그널도 보였다. 다 왔다는 안도의 한숨같았다.
산에서 내려와 진부령 고개길까지 아직 3.3km의 거리가 남았다. 그 길을 찾아가는것도 그리 녹녹치 않다. 은사시 나무 가로수를 지나 한길로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좁은 소로로... 택시를 세워 타고 가고 싶어진다.
마산에서부터 줄기찬 하산길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왔다. 백두대간 하산길의 정의는 반드시 내려오는 길을 뜻하는것이 아니다. 비록 내려오더라도 그냥 일방으로 내려오는것이 아니라 물결치듯 오르내리면서 내려오게된다.
길을 급히 내려오다보니 발이 아려왔다. 진통제를 먹을까 망설이다 어짜피 하산길이니 참기로했다. 그런데 산을 다 내려와 흘리 마을 어귀로 들어서는 순간 그만 땅벌에게 발목을 쐬고 말았다. 바늘로 살을 푹 찌르는듯한 독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참았다. 등산화를 벗으니 어리석은 세작같은 땅벌 한마리가 기어나왔다. 벌침을 맞은자리는 약간 부어있었고 따끔거리며 가려웠다.
하지만 벌침을 맞는 순간 발의 통증이 신기하게 사라져버렸다. 일행을 불러 이 사실을 이야기하자 봉침을 제대로 맞은거라며 오히려 축하(?)해주었다. 참 신기한 노릇이다. 효과를 반신반의하며 기다렸으나 다리가 훨씬 가벼워진것만은 분명했다. 오늘 대간길이 준 최고의 선물일까?
가는잎 구절초
가을이 오고있다. 산에는 언제나 계절이 빨리 오고 빨리간다. 고상한 가을빛깔의 꽃들이 들길을 수놓기 시작한다. 어수리,마타리,물봉선,미역취,참취,며느리 밥풀꽃에 이르기까지 여름꽃과 가을꽃이 뒤섞여 묘한 노스텔지아를 자극한다.
산행은 늘 고통을 거스르거나 고통과 나란하게 이루어진다. 가난한 자의 남루처럼 피할 수 없는것이다.
나는 참을 수 없는 내 두다리의 통증이 무서웠기보다는 그 고통으로 쓸모없어져버릴 내 삶의 결과들이 두려웠다.
나는 패배의 삶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대신 골고다의 예수처럼 산을 택했다. 그 수많은 산들의 마루금을 가로지르며 산의 무게 만큼 두 다리의 통증을 받아들였다.
지금 나는 한마리의 땅벌이 쏜 봉침 덕으로 그 고통을 유예받았다. 고통의 실체란 이처럼 허구다. 이 허구를 깨닫지 못한 많은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다. 쾌락을 찾아 유곽을 뒤지는 일이나 고통을 지우려 병원을 찾는 일이나 따지고 보면 다 같은 일이다. 참을 수 없는 본능을 죽이는 일이다.
화려한 인생의 한방을 기다리며 내 전생을 소진할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다. 뛰어간다고 빨리 도달할 수 있는 대간길이 아니듯 세상사에 그리 목숨걸거 없다.
기억의 턱 밑에서 까슬거리는 내 청춘 인생의 한방은 이미 지나갔다.
금마타리 흐드러진 망연한 여름날 풀벌레 장엄하게 울어대는 마지막 대간길에서....
마치 죽은 산악인을 추모하는 느낌이어서 종주기념 공원이라기보다는 묘지와같은 인상이다.
백두대간 마지막을 가족,친구가 와서 축하한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을 내 대간 마지막을 상상해본다. 담담하다. 누가 시켜 시작한 일도 아니고 보니 축하받을 이유도 없다.
마침내 진부령.
진부령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선배님들이 받은 꽃다발을 재활용하여 강철의 후미조인 우리가 받아들고 기념 사진을 찍는다. 대관령에 구간에서 우리는 대간 종주가 끝나므로 진부령에서의 졸업식이 없을 가능성이 크므로 이사진 한장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어쨋던 진부령까지 가자던 대간의 끝은 완성된 셈이다. 남은 구간은 땜빵이 되는건가. 장하다 poll !!!
- 후 기-
세상을 의심하라 하지만 희망을 의심하진 마라. 세상은 절망하기에 너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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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폴님 이삭입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낙동에와서 좋은인연을만났고 소중한 인연 잊지않겠습니다.
저야말로 좋은 인연을 만났습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다듯이 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완주를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대간길 이어가며 멋진 산행기로 대간길이 더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합니다.
12기 대간팀 화이팅!
감사합니다.
어디 계시던 늘 건강하십시요^^*
졸업이 아니고 다시시작 이라 생각하며 나자신을 애써 달래보지만 어딘가 한구석이 멍하니 허전 한것은 어쩔수 없네요 진부령 졸업장에서 완주패&개근상 받으며 가슴으로 눈물을 흘렸답니다 폴님과의 첫 산행은 고치령에서마구령구간 이였던가요? 훨씬 큰키에 순하게 풍기던 좋은인상 이였지요 진부령에서 미리 꽃다발 안고 완주기념 촬영하는 강철의 후미조 !! 11기 졸업생들 보다 더 빛나보입니다 남은구간도 부디 안산 하시고 즐산하시어 목표달성 하시길 밥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라고 어찌 저자신을 모르겠습니까. ㅠㅠ
11기 선배님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동안 참 배울게 많은 분들이라는걸 깨닫았습니다.
준마님은 앞으로도 쭉 산행을 계속하실터이니 산을 함께하는 날까지 많은 배움 부탁드립니다
늘 감사한 마음 간직하겠습니다.^^*
폴 원장님...
훌륭한 작품 많이 남겨주셔서 즐겁게 감상합니다..
대간길 끝나고 졸업하면...
좋은 작품 전시회을 열어서 많은 산객들에게
아름다운 대간길의 모습들을 소개했으면 어떨까요????
앞으로 남은 길!!!
힘내시고..
화이팅 하면서...나아 가길 바랍니다..
저의 부족함을 늘 과찬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제 갈길도 바쁜데 무슨 작품을 남기겠습니까.
산행을 하며 생각이 떠오른 그 순간을 잊지않기 위해 겨우 흔적을 기록하는것으로 보아주십시요.
선생님 덕분으로 들어선 대간길,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오로지 대간을 완주하는것으로 생각됩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도전하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한 걸음..
걸음마다 느끼시고,
또 보시고~
그러다가 늦은 걸음..
그 늦은 걸음 덕분에 산행후 이렇게 좋은 후기 읽습니다..
뒤에 계실땐
왠~~지..산의 길도 잘 보이드마..
제가 맨~~후미이고 보니,
길도 안 보이든데요..ㅎ
마지막 날 ,
축하 해 주려갔었든 산길이 동행 산우님들께 짐이 된 하루 였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산행 후기
늘 읽을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진 색깔이 참 부드럽내요..
보고 느끼느라 늦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기야 늘 바쁠것 없는 저의 낙천적인 성격이야 어디가겠습니까만은
사실 쓸데없이 큰 몸집에 운동이라고는 수영밖에 할줄 몰라 아무래도 산행과 같은 다이나믹한 운동은 제 체질에 잘 안맞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연이 주는 그 그윽한 서정,산이 주는 선문답과 같은 성찰...이런것에 빠져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 겨우 따라다닙니다.
저를 도와주는 후미조가 없다면 저에게 대간도 없었을것입니다.
늘 부족한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인연이 될 때까지 오래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간을 완주하신 11기 선배님들께 축하드립니다.
poll님의 글을 못볼까 걱정했는데 아직 남았다고 하니 다행이며, 안산하시길 바랍니다.
홀로 산에서 야영하며, 구룡령까지 갔습니다.
한번쯤 대간길에 11기 낙동회원님들을 만날까 기대했는데 훌쩍 마쳐버렸군요.
동해님 반갑습니다.
저는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그래도 어느듯 대간길 2/3는 걸어 온 셈이네요.
우스게 소리로 이제 대간 땜빵할 일만 남았다고했는데 정말 그런 기분으로 탈까봐요.
저는 언제 님처럼 용감하게 비박하며 산행할 수 있을까요.
님의 고독한 산행이 한없이 멋지게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폴님 & 강철 후미조 백두대간 가졸업을 추카함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도 얼른 나으셔서 다음 구간 본래 모습대로 힘차게 걸으시기 바랍니다.
쾌차하셨죠^^*
졸업과 동시에 포올님 아니 원장님, 졸업과 동시에 인상착의를 알게되네요
남은구간 차근차근히 이루시고 정성으로 올린사진 감상잘 하고 갑니다 늘 행운이 함께 하옵소서.... ^j^
저를 알자마자 헤어져야한다는 뜻같아 정말 서운합니다.
그래도 반년넘어 함께 산행하여 저로서는 참 행운인 셈입니다.
그동안 저희 칠칠치 못한 후미조에 보여주신 사랑 감사드립니다.
늘 행복하세요^^*
완주라는 기쁨
남편과 지인들의 모습을
추억의 한페지로 남겨주심에 감사드리며
1월에 시작하셨어 벌써 3분2는 마쳤으니
백두대간 완주라는 기쁨도 얼마남지 않았네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네요
완주의 그날까지 강철의 후미조
11기 여장부 요지경님 이렇게 친히 마지막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맑고 씩씩한 모습이 같이 산을 타는 한사람으로써 참 보기좋았습니다.
산을 타실 때의 그 마음 그대로 늘 행복하고 건강하십시요.
감사합니다.^^*
Poll님 몸관리 잘하셔서 남은구간 멋지게
마무리하세요 산길추억은 많지 않지만
팥빙수는 환상이었습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좋은모습만 기억해주시고 항상 안산즐산 하십시요
강철의 후미조 파이팅!!!
곁에서 뵙기에는 살림잘하시는 아주머니처럼 보입디다만 일단 산에 올라 산타시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씩씩한 여장부이신지요.
세상을 향한 그런 적극적인 자세가 오로라님의 대간 완주를 이끈 힘인듯 싶습니다.
어디 계시던 늘 활기차고 건강하실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