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기준(살전5:16-18)
2023.7.2 맥추감사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자신은 감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청년이 있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곳에 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그러자 자신은 뒷배경이 든든한 부모도, 내세울만한 학벌이나 외모 그리고 스펙이나 기술 등 어느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한탄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세상이 자신만 따돌리는 것 같고, 외롭게 느껴지고, 자신만 늘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나왔다. 기도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순간의 실수로 교도소에 가있는 친구로 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그 편지의 내용 중에 “나는 자유가 있는 자네가 정말 부럽네”라는 말이 있었다. 며칠 후 청년은 병원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또 다른 친구의 병문안을 가기 위해서 버스에 탔다. 청년이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서 있을 때, 주름이 많은 어느 할머니가 “나도 한때는 자네 같은 때가 있었지. 젊음이 있는 자네가 정말 부럽네”라고 말했다. 청년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던 친구는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얼마든지 가지고 있는 자네는 정말 좋겠군”이라고 말했다.
청년은 집에 돌아와서 며칠 사이에 자신이 들었던 말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자신은 없는 것들 보다, 있는 것들이 더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유가 있고, 젊음이 있고, 살아갈 시간이 있고, 건강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고, 무엇보다 여전히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고, 하나님이 곁에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그는 그동안 자신이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을 회개하면서, 지금부터는 감사의 기준을 하나님만 두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났다. 그 후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결국은 당당한 청년 사업가로 성공했다. 우리들도 이 청년처럼 나에게 감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감사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것들이 없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이다. 성경에서 맥추감사주일은 보리나 밀을 수확한 것을 감사하는 절기이다. 그러나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 사회에서는 지난 전반기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 감사를 발판으로 후반기를 믿음으로 시작하겠다는 신앙고백의 의미가 더 강조된다. 사실 맥추감사뿐만 아니라, 모든 감사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인 것을 인정하고 시인하는 것에 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도 바꿔 말하면 감사를 통해서 범사에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신 것을 인정하고 시인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고 마음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감사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조건부(If) 감사”와 “때문에(Because) 감사”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eless, 또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이다. “조건부 감사”는 글자 그대로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감사이다. 이런 감사를 1차원적인 감사라고도 한다. “때문에 감사”는 무엇이 이루어졌거나 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다. 이런 감사를 2차원적인 감사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는 감사할 조건이나 이유가 없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감사를 3차원적인 감사 또는 절대적인 감사라고 말한다. 이 감사는 감사의 기준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시인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은 이런 의미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감사의 기준을 눈에 보이는 어떤 것들(건강, 돈, 응답, 선물, 등수, 합격, 조건 등)에 두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 감사의 기준을 하나님께 두면 감사할 수 없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늘 주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면, 생각지 않은 기쁨들도 보너스로 따라온다. 스위스의 크리스천 법학자이자 철학자인 카를 힐터는 그의 저서 「행복론」에서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고 말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늘 감사하는 사람은 건강도 더 좋아진다. 이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된 사실이다. 불평하면 아드레날린이 더 분비되어 심장박동과 삶에 영향을 주고, 감사하면 뇌에서 행복 호르몬이 나와서 몸을 평안하게 한다(KBS 생로병사의 비밀,2017.1.25_608회). 이것은 곧 환자가 마음을 평안히 하고, 기도해야 함을 의미한다. 불평하면서 저주스러운 말이나 가족들을 공격하는 말들을 하면, 자신의 몸이 더 안 좋아질 뿐이다. 이처럼 주님을 향해 감사하면 행복해 지고, 젊어지고, 멋있고 예뻐지며, 건강이 찾아오고, 삶에 발전이 있게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행복을 빼앗아가고, 감사를 방해하는 마음들도 있다. 그것은 방심, 낙심, 욕심이다. 이런 마음들은 감사의 기준을 하나님이 아닌 딴 것들로 착각하게 만든다. 방심(放心)은 일상에서 대부분의 안전사고들의 원인이 된다. 이것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영적인 방심을 방치하면, 영적태만이 찾아오고, 영적태만을 방치하면 습관적이고 율법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다가, 결국은 하나님과 멀어진다. “은혜”라는 찬양에도 있듯이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이다.
낙심(落心)이란 글자 그대로 마음이 떨어지는 것이다. 낙심의 상태에 떨어지면 감사가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 낙심은 하나님 보다 상황을 먼저 볼 때 생긴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선을 떼면 그 순간부터 마음의 곰팡이들(두려움, 불안감, 염려, 불평, 불만, 의심 심지어 분노감 등)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자신이 한 없이 작아 보이고, 부정적인 생각만 든다. 이것을 방치하면, 자기연민에 빠지면서 자신을 부당하게 깎아 내리고, 우울증과 영적 침체를 거쳐 결국에는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진다. 그래서 성경은 낙심 가운데 빠지는 것을 강력하게 경계한다(시42:5).
마지막으로 감사를 방해하는 마음은 욕심(慾心)이다. 욕심은 영적인 교만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욕심이 있으면, 감사가 나오지 않는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은 감사가 없는 것이다. 또한 욕심에 사로잡히면 옆에 누가 있어도 보이지 않게 된다. 욕심에 사로잡히면, 가족도 눈에 안보이게 된다. 욕심이 사람 사이에 다툼과 분열을 일으키고(잠28:25), 죄와 사망의 원인이 되고(약1:15), 말씀의 결실을 막는다(막4:19). 그래서 마귀 사탄은 사람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방법으로 욕심을 자극하는 것을 가장 많이 사용 한다
결국 감사와 행복을 빼앗아가는 방심, 낙심 그리고 욕심은 한결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선을 뗄 때 생긴다. 그러나 감사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때 나온다. 그렇기에 내 입에서 감사가 되지 않으면, 지금 내 마음의 시선의 방향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있지는 않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우리들이 늘 깨어서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것이 영적으로 깨어있는 길이다. 그래서 본 설교자도 매일 새벽기도 시간에 주님이 내 삶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기를 잊지 않는다. 이것은 저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확신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기쁨과 감사와 기도는 서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말씀한다.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예전에 어느 찬양 사역자가 경북 영덕에서 청년찬양집회를 인도하는 중에 이런 경험을 했다고 한다. 모두가 뜨겁게 손뼉을 치면서 찬양하는데, 중간에 앉은 한 청년이 손뼉을 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기 뺨을 치는 것을 보았다. 찬양단원들은 그 청년을 보면서 혹시 정신이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라는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뺨을 치며 찬양하는 그의 표정은 너무도 행복해 보였다. 찬양집회가 끝난 후에 모두가 자리에서 설 때, 단원들을 그 청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청년은 한쪽 팔이 없는 장애우였던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양손으로 손뼉을 칠 수는 없지만, 성한 한 손을 주심을 감사하면서, 그것으로 자기 뺨을 치면서라도 찬양하길 원했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감사하고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감사의 참된 의미는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에 있다. “조건부(If) 감사”나 “때문에(Because) 감사”의 수준을 넘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eless)의 감사”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시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의 기준을 늘 하나님께 두자. 감사를 방해하는 마음들(방심, 낙심, 욕심)을 다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자. 그래서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이를 통하여 더 크고 놀라운 주님을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자.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