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지휘관 양성
그때 삶은 염소 고기와 술을 한준과 이중부가 한 상 들고 마루로 옮긴다.
향기는 술병을 별도로 들고 와서는 선우휘 노인에게 꿇어앉아 다소곳이 소나무 옹이 부분을 다듬어 만든 술잔에 술을 따른다.
소나무 옹이 부분은 관솔과 같이 솔향이 응축 凝縮된 부분이다.
그 솔향은 수십 년이 흘러도 퇴색 退色하지 아니하고 은은한 솔 향내를 풍긴다.
십이지살 선우휘 노인은 향기가 따른 술잔을 들고는 바로 마시지 않고, “어 험, 험 험” 헛기침을 크게 하며 좌중을 휘둘러 보며, 혈창루 노인 쪽을 슬쩍 바라본다.
자신이 먼저 술잔을 받았다고 어른 행세를 하며 유세 有勢하는 모습이다.
혈창루는 ‘흥’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못 본 척 한다.
그러자 십이지살 노인에게 먼저 술을 따른 향기의 입장이 난처하다.
얼른 혈창루 반백옹 半白翁에게 다가가, 십이지살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술잔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혈창루 어르신에게 권한다.
미묘한 분위기라 어느 누구 감히 입을 열 수가 없다.
늦은 오후 참이다.
모두들 열심히 먹는다.
석늑이 조심스럽게 십칠선생에게 묻는다.
“선생님 다녀오신 일은 어떻습니까?”
“지금 조선하 서편에 한군의 척후병이 나타난 것이 사실로 확인되었네”
“본대는 어디쯤 있답니까?”
“본대는 아직 제대로 파악이 되질 않았는데, 영정하를 도하 渡河 중인 걸로 짐작되네, 병력은 1만 정도로 여겨지고...”
그러자 녹피 옷의 모용척은 허리를 곧추세워 펴고, 갈색머리 설태누차를 바라보고 묻는다.
좀전의 바둑 둘 때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품위를 갖추어 스승의 위엄을 보인다.
“우리 측 정보도 같은 것이냐?”
“네, 십칠 선생님과 함께 회의했던 내용입니다. 더 자세한 것은 탐지병들을 여러 곳으로 재차 파견했으니, 조만간 상세한 보고가 올 겁니다”
혈창루 모용척은 평상의 바닥에 놓여 있던 부채를 들고 안면에 바람을 일으킨다.
“그럼 대책은?”
“일반민들은 선박으로 대릉하로 이주시키고, 이주가 끝날 때까지 우리 측 병사들이 5천 명가량 되니, 전선 戰線을 조선하에서 버티는 것으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병사 숫자가 5천 명이라지만 정규군은 몇 명 되지를 않으니 그것이 문제 아닌가? 더구나 실전 경험자도 별로 없고...”
“그래서 제자가 사부님을 모시려고 왔습니다”
혈창루 모용척은 들던 술잔을 다시 상에 내려놓으며 미간 眉間을 찌푸린다.
“이놈이 또 나를 귀찮게 만들려 하네”
그러자 십칠 선생이 나선다.
혈창루 모용척과 십이지살 선우휘 두 노인을 보고는
“이번엔 형님들께서 수고 좀 하셔야겠습니다.”
“이 사람아! 내 나이가 몇인데 뭘 한다는 말인가?”
“두 분 연세는 제가 잘 알지요, 그러니 일선 一線에서의 수고로움 보다는 재질 있는 젊은이 몇 명을 가르쳐 주세요”
“으음...”
“슝노인 들이 초원을 떠나온 지 짧으면 수년, 길게는 대를 이어 수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그동안 제대로 된 군사 훈련이나 실전 경험이 없잖습니까?”
“그렇치, 그게 문제라는 거지”
“그래서 제일 취약점이 군의 지휘관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전투 경험자들은 다들 죽었거나 아니면, 우리처럼 이렇게 늙었으니까”
“그러니 형님들이 힘드시겠지만 젊은 지휘관을 육성 育成해 주십시오”
“지휘관 육성?”
“네”
“그런 어려운 것은 모르겠고, 무술은 몇가지 지도할 수 있지”
“예, 그러시면 됩니다”
“어디에서?”
“이곳에서 하면 안 될까요?”
두 노인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백두옹이 한마디 한다.
“그럼, 술은 매일 대접 받겠네”
“그럼요, 술과 안주는 금성부에서 양껏 공급한답니다”
“이런, 벌써 금성부까지 끌어들였어, 이런 고얀 사람 같으니….”
“하하하... 형님들 죄송합니다”
'금성부 金城府'란 단어가 나오니 괴팍스러운 두 노인도 이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다.
‘금성부’는 흉노인들의 구심적 求心的인 핵 核이며, 자신들의 상징물 象徵物이자 자존심이다.
“그럼, 인원은 몇 명이나 되지? 언제부터?”
“인원수는 열 명 정도 되고, 시간이 없으니 내일부터 당장 시작합시다”
십칠선생의 사전 事前 물밑 작업과 주도적인 언변에 두 노인은 꼼짝 못 하고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젊은 지휘관 양성 과제중 무술 사부는, 두 노인의 자의반 타의반 自意半 他意半 식으로 순조롭게 타협이 되었다.
중부와 한준은 멀찍이 떨어진 대청마루에서 향기와 한담 閑談을 나누고 있으면서도 눈과 귀는 온통 십칠선생과 두 노인의 대화 對話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저녁에 십칠선생은 중부와 한준에게,
“너희들도 무술을 정식으로 배워 볼 테냐?”고 물어본다.
중부와 한준은 감지덕지 感之德之다.
아니, ‘배울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려는 심정 心情이었다.
그런데 먼저 물어오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넵” 둘이 동시에 힘차게 답한다.
그러자 두 소년을 찬찬히 살펴보던, 십이지살 선우휘 백두옹 白頭翁이
“다른 수련자들은 나이가 15, 6세로 다 큰 청년들이며, 무술에 대한 기본기가 탄탄한 인재들인데 너희들이 따라갈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두 소년은 이구동성으로,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자신 있게 답한다.
그제야 선우휘 옹은 두 명의 이름을 물어보더니,
한준에게 재차 묻는다.
“자네는 청주 한씨 靑州 韓氏로군”
“네, 맞습니다”
“그럼, 한씨가 선우 성씨에서 갈라져 나온 성씨인데 알고 있으냐?”
“그것까지는 잘 모릅니다.”
“흠...”
“...”
“산동성의 청주 한씨는 선우씨에서 파생되어, 제남 齊南을 비롯하여 청주와 산동성 전체에 널리 펴져 살고 있었지”
“네...”
십이지살 선우 휘 옹은 소속된 부족과 자신의 성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며, 유달리 애착하고 있는 모습이다.
핏줄과 혈통을 남달리 중히 여기는 분이다.
아니,
당시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대부분 사람의 사고방식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누가 뭐래도 그래도 믿고 의지할 곳은 피붙이다.
최우선 순위다.
노숙자가 소주 한잔에 취해 인생 넋두리를 해댄다.
옆에 있던 동료가 묻는다.
부모님은?
자식은?
형제는?
다른 가까운 친인척은?
묻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촌수 寸數 순서로 물어 본다.
어쩔수 없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당연한 순서고 도리라 여긴다.
그러니 혈통을 찾고,
문중 門中에 뭔 일이 있으면, 먼저 족보를 뒤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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