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조(회원 상호간의 예절) 회원 상호간에는 절대로 무례히 행해서는 아니 되며 공석과 사석을 엄히 구분하고, 나이, 성별, 등단연도를 떠나서 상호 존경해서 선생님으로 호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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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졸고는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는 "호칭의 변천을 통해서 본" 현대의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모습을 풍자한 수필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을 다시 한번 더 상기하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정신세계가 허한사람이 남을 무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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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에 대하여
(00 선생님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굳이 김춘수님의 이 시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알맞은 호칭은 중요하다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생활에서는 대게 김 사장!, 이 과장!, 김 선생! 하면서 대개 그 사람의 성에다가 직책이나 직함을 붙여 부릅니다. 기술계통에 종사하는 사람을 부를 때는 김 기사, 이 기사 하며 부르는데, 그것도 동네 강아지 부르듯 막 부르는 것 같아서, 나이 좀 드신 분이 부를 때는 기사양반이라고 점잖게 불러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직업에 사 자 붙는 직함이 공부깨나 한 사람처럼 보여서 좋다고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의 뒤를 이어 온갖 사 자 돌림이 유행하는 직업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도 관(官)자를 좋아하니까 권위주의시대를 청산하고자 고위공직자들의 직함을 아예 없애고 "고위공무원단"이란 것을 만들었지만 고쳐지지 않고, 서기관이니 이사관이니 하는 직함을 꼬박꼬박 붙여서 부릅니다. 그것도 모자라 조사관, 수사관, 심사관, 감사관, 행정관 같은 이름을 곳곳에 붙여 쓰며 관(官)이 민(民)보다 우월한 지위라는 것을 은연중에 과시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백성이 관이 되길 소망하니 죽으면 들어가는 관(棺)에다 가 벼슬 관을 달아 주어 마지막 소원을 풀어 주기까지도 합니다.
호칭의 수난사도 많습니다. 천대받는 이름이라고 차장을 안내양으로, 때밀이를 피부관리사로, 청소부를 환경미화원, 구두닦이를 구두미화원으로 바꾸기도 하였습니다. 선생님이란 호칭도 그렇습니다. 그 본래 뜻이야 학생들을 가르치고 훈육하여 인성을 바로 키워주는 분을 존경하여 부르는 말이었으나, 지금 학교가 온통 입시지옥이고 공부기술만 가르치는 곳이 되어 가고 있으니 선생님이란 호칭의 값도 엄청 떨어져 버렸습니다.
원래 의사는 의사님이라 해야 맞는 말인데 천금 같은 내 목숨을 그가 좌지우지 하고 있으니 듣기 좋으라고 환자들이 선생님이라 부르니 이에 반기를 든 간호원들이 ‘저희들은 사자에다 선생님까지 추가하면서 나는 평생 환자는 물론이거니와 의사들의 뒷수발까지 들어주는데 간호원이 뭐꼬!’ 하는 볼멘 생각이 들어서 간호사 선생님이라 부르라고 요구하기도 하였으며, 고상한 분들이 목소리를 높여 싸울 때도 “당신” “당신”하면서 천박하게 싸울 수가 없으니 “선생님께서도 잘하신 게 없잖아요”하면서 싸우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이란 호칭보다 교수님이란 호칭이 더 급이 높아 보이는지 말끝마다 "교수님!" " 교수님!" 하는 분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교수님"이란 호칭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아들 낳아 교수 만든다고 죽을 고생을 한 시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부를 때도 "우리교수" "우리 교수님" 하니까 그집 며느리 조차도 남편에게 기를 못펴고 자기 신랑을 부르면서도 꼬박 꼬박 "교수님!" "교수님!"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말 잘해서 뺨 맞는 일이 없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사장님이고 보이는 사람마다 다 선생님이니 우리나라처럼 사장과 선생이 많은 나라도 드물기는 할 것입니다만, 사장이 많은 나라의 경제는 갈수록 힘들어 가고 선생이 많은 나라의 풍속은 날로 피폐해져가니 직함의 인플레이션 또한 세계 최고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한 때 “직함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종업원 몇 명 이상, 세금 납부실적 년 얼마 이상의 기업 대표만 사장이라고 부르게 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사장이란 직함조차도 가치가 추락하여 여기서도 회장님 저기서도 회장님이라 부르고 있으니, 계모임의 회장이라도 하지 못하면 팔불출이 될 지경입니다.
제가 선생님께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은 정화수를 떠 놓고 절을 올리고 사제의 연을 맺은 것은 아니지만 수필에 뒤늦게 입문하여 배운바가 있고 또 선생님의 글을 통하여 깨우친 바가 있기에 그리 부르는 것이고, 또 선배님이라 부르려니 무슨 동문회 같은 기분도 들고, 님 자를 빼고 0선배라 하려니 맞먹는 것 같기도 하고, 꼬박꼬박 선배님 이라고 부르려니 적당 패 똘마니 같다는 생각도 들고, 문우님이라 하려니 너무 딱딱하고 거리감이 생기는 지라-, 그러나 한편으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은연중에 그 호칭이 훌륭한 선생님으로 제게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여 어쩌면 참으로 불편해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지라, 다른 호칭을 생각도 해 보았으나 그렇다고 빠리식으로 마담이라 부를 수도 없고, 여사님이라 할 처지도 아니고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마땅한 호칭이 떠오르질 않으니 참으로 고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아예 “아줌마!” 라고 부르는 참 편한 호칭이 있기는 한데 글 쓰는 분께 그리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누님이라고 하자니 너무 사적인 냄새가 짙은지라, 차라리 남자라면 “0형!” 하면서 호형호제 하련마는 남녀가 유별하니 그리할 처지도 아니고,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 봐도 적당한 호칭이 생각나질 않고 또 누가 뭐래도 내가 좋아하는 분을 내 좋아 부르는 호칭이니 그냥 선생님으로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제 어머니께서 사내들이란 환갑이 지나도 철들지 않는다 하셨지만 그래도 수필에 입문한 체면이 있으니 저는 그냥 “정 선생!”이라 불러주십시오. 님자는 어찌하느냐고요? 점하나 잘못 찍으면 ‘남’이 될 우려가 있으니 아예 떼 내어 버리시지요. (2008.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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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대구수필가협회에는 한분도 동료 작가님들에게 무례히 행하는 그런 분이 없습니다 만, 작가가 되어서 까지도 자기 패거리만 끼고 도는 패거리 문화의식이 상존한다면 수필문학에 미래가 없습니다. 작가가 되었으면 오직 인류의 정신문화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는 글을 써야 진짜 작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고린도 전서 13:13). 나이 어리다고 함부로 반말 쓰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작가의 정신세계를 서로 존경하길 바랍니다. 사람을 상대함에서 예절을 다함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뜻입니다. 국민의힘당 대표 당선된 다음 날 국립묘지를 참배하러 간 한동훈 대표가 가다말고 현충원에서 풀뽑기 작업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잡는 장면은 내가 정말 사람을 제대로 잘 보았다는 확신이 들게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