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24일. 다나카 마사히로(29)와 다르빗슈 유(31)가 양키스타디움에서 맞붙었다.
메이저리그의 일본인 투수 선발 대결은 역대 15번째. 메이저리그 진출 후 처음 만난 둘은 일본에서 네 번을 격돌해 다르빗슈가 2승1패 1.36, 다나카가 1승3패 2.90을 기록했다. 네 경기 모두 다르빗슈가 평균자책점 1.72를 기록한 황금의 5년(2007~2011)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다르빗슈(232이닝 18승6패 1.44)와 다나카(226이닝 19승5패 1.27)의 리그 폭격이 겹친 것은 2011년 한 해뿐이었다(사와무라상 수상 다나카).
당시 궁지에 몰려 있는 쪽은 다나카였다. 3년 6700만 달러의 잔여 계약을 취소하고 FA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시즌을 맞이한 다나카는 시범경기 6경기에서 23.2이닝 28K 1자책을 기록하고 평균자책점 ML 1위(0.38)를 차지했다. 첫 5경기는 무실점이었다.
다나카는 3년 연속으로 개막전에 나섰다. 세 번의 개막전 선발 등판은 일본인 투수 타이 기록(노모 히데오)이었다. 그러나 다나카는 그 전까지 무패(8경기 6승 2.82)로 제압했던 탬파베이를 상대로 2.2이닝 7실점에 그쳤다. 개막전에서 3이닝을 버티지 못하고 7점 이상을 내준 양키스 투수는 1973년 멜 스톨트마이어 이후 처음이었다.
위태로운 출발을 한 다나카는 4월28일 펜웨이파크에서 메이저리그 통산 두 번째 완봉승(3피안타 무볼넷)을 따냈다. 양키스 투수가 펜웨이파크에서 완봉승을 달성한 것은 2002년 마이크 무시나 이후 15년 만의 일. 상대 선발이 크리스 세일(8이닝 10K 2자책)이었기에 더 빛나는 승리였다. 그러나 이 경기는 다나카에게 전환점이 되지 못했다.
5월15일 휴스턴과 더블헤더가 열린 양키스타디움에서는 축제가 벌어졌다. 1차전 종료 후 데릭 지터의 영구결번식이 열린 것이다. 다나카는 2차전 선발로 나섰다. 그러나 1회초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조시 스프링어에게 리드오프 홈런, 조시 레딕에게 백투백홈런, 알렉스 브레그먼에게 만루홈런을 맞는 등 1.2이닝 4피홈런 8실점 대참사의 주인공이 됐다. 양키스 투수의 '2이닝 미만 4피홈런'은 1977년 캣피시 헌터에 이은 역대 두 번째. 양키스 팬들은 아름다운 밤을 망친 다나카에게 분노했다. 14경기 5승7패 6.34가 다르빗슈를 만나기 전까지 다나카의 성적이었다.
선배 다르빗슈와의 대결. "일구 일구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진 다나카는 약속을 지켰다. 역시 7이닝 10K 무실점(2안타)으로 역투한 다르빗슈를 상대로 8이닝 9K 무실점(3안타 2볼넷) 경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경기를 시작으로, 다나카는 16경기에서 8승5패 3.54를 기록하는 반전을 만들어냈다. 다나카는 시즌 후 NHK <선데이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다르빗슈와의 맞대결을 지난 시즌의 전환점이 된 경기로 꼽았다. 초심의 자세로 투구한 것이 주효했다는 것. 다만 컨디션이 올라와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나카는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7이닝 15K 무실점(3안타 무볼넷)으로 탈삼진 한 경기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포스트시즌이 시작하자 양키스가 영입 당시 기대했던 모습을 마침내 보여주기 시작했다.
미네소타와의 와일드카드 경기에서 불펜이 8.2이닝을 던진 양키스에게 디비전시리즈 상대인 클리블랜드는 골리앗과도 같았다. ESPN 전문가 30명 중에서 양키스의 승리를 예측한 사람은 추후 양키스의 감독이 될 애런 분을 포함해 아무도 없었다. 1차전에서 양키스는 상대 선발 트레버 바우어(6.2이닝 8K 무실점)에게 꽁꽁 묶이며 0-4로 패했다. 8-3으로 앞서다 8-9로 패한 2차전은 더 충격적이었다.
양키스를 3연패 탈락의 위기에서 구해준 선수는 정규시즌 내내 비난을 받았던 다나카였다. 다나카는 7이닝 7K 무실점(3안타 1볼넷) 역투로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그렉 버드 7회 앤드류 밀러 상대 결승 솔로홈런). 포스트시즌에서 7K 이상 7이닝 무실점 경기를 만들어낸 양키스 투수는 2000년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의 로저 클레멘스(8이닝 9K 무실점) 이후 처음이었다. 이 승리를 발판으로 양키스는 리버스 스윕을 만들어냈다.
리그 챔피언십시리즈 상대는 다나카에게 악몽을 안겨준 휴스턴이었다. 다나카는 1차전에서 6이닝 3K 2실점(4안타 1볼넷)으로 선전했다. 하지만 타선이 댈러스 카이클(7이닝 10K 무실점)에게 봉쇄를 당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그러나 다나카는 5차전 카이클과의 재대결에서 7이닝 8K 무실점(3안타 1볼넷) 승리를 따냈다. 양키스는 다나카의 활약에 힘입어 3승2패 리드를 잡았지만 원정 6,7차전을 모두 패했다. 다나카의 파란만장했던 시즌도 종료됐다.
포스트시즌 세 경기 성적은 2승1패 0.90(20이닝 2자책). 단일 포스트시즌에서 두 번의 3피안타 이하 7이닝 무실점 경기를 만들어낸 투수는 1998년 케빈 브라운(샌디에이고) 2000년 로저 클레멘스(뉴욕 양키스) 2001년 랜디 존슨(애리조나) 2006년 케니 로저스(디트로이트)에 이어 5번째였다. 다나카의 휴스턴전 두 경기 평균자책점이 1.38(13이닝 2실점)이었던 반면 나머지 선발투수들의 휴스턴 상대 포스트시즌 평균자책점은 5.66이었다.
시즌이 끝난 후 '프로 무대에 뛰어든 이래 가장 고민이 많았던 시즌'이라고 자평한 다나카는 "모든 게 잘 풀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벽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만 하다가 시즌이 끝난 것 같다"는 말을 했다(라디오 닛폰, 도스포웹 인터뷰). 예상과 달리 옵트아웃을 선언하지 않고 양키스에 남은 다나카는 "20대의 마무리를 잘 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열성적인 '아이돌 팬'으로 돌아가 겨울을 나고 있다.
완벽한 스프링캠프를 만들어낸 다나카가 롤러코스터 시즌을 보낸 것은 개막전에서의 참사가 두고 두고 영향을 미쳤다. 최고의 시즌을 만들면 FA 대박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되려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다나카는 어떻게 해서 반전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포스트시즌이 포함된 다나카의 지난 시즌을 세 개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14경기 : 5승7패 6.34 (21피홈런)
15경기 : 7승5패 3.80 (14피홈런)
04경기 : 3승1패 0.67 (0피홈런)
데뷔 첫 시즌 팔꿈치 부상 후 토미존 수술 대신 플라주마 주사를 맞고 돌아온 다나카는 포심패스트볼 대신 싱커에 주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지난해 다나카의 포심 비중은 10.7%로 너클볼투수인 R A 디키(7.1%)보다 살짝 높은 수준이었다.
첫 14경기에서 다나카는 8%의 포심과 24%의 싱커를 던졌다. 하지만 다르빗슈와의 맞대결 이후 15경기에서는 12%의 포심과 14%의 싱커를 던졌다. 반전이 일어난 것은 마지막 정규시즌 경기였다. 그 경기에서 30%의 포심을 던지며 15개의 삼진을 잡아낸 다나카는 결국 포스트시즌 포함 마지막 네 경기에서 24%의 포심과 6%의 싱커를 던졌다. 다나카의 싱커를 대비하고 있었던 포스트시즌 타자들로서는 허를 찔릴 수밖에 없었다.
포심 구사율을 대폭 높인 마지막 네 경기에서 다나카는 시즌 내내 자신을 괴롭힌 홈런을 하나도 맞지 않았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메이저리그 데뷔 후 가장 기복이 컸던 스플리터의 부활이었다. 싱커가 아닌 포심과 호흡을 맞춘 그 네 경기에서 다나카의 스플리터는 42타수1단타 피안타율 .024를 기록했다.
시즌 막판에 돌아온 다나카의 포심은 자주 회전이 풀리면서 타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됐던 싱커와 달리 더 안정적으로 낮은쪽 코스를 파고 들었다. 이에 스트라이크 존의 바닥 높이로 날아오다 원바운드에 가깝게 떨어지는 스플리터가 날개를 달게 됐다. 결과적으로 다나카가 말한 초심은 <포심으로의 회귀>를 의미하게 됐다.
오타니 쇼헤이(23)를 놓친 후 FA가 된 CC 사바시아(37)와 1년 1000만 달러 계약을 맺은 양키스는 피츠버그에서 게릿 콜(27)을 데려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루이스 세베리노(97.6마일)과 콜(96.0마일)의 강속구 원투펀치 탄생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콜에 더 접근해 있는 팀은 올해도 월드시리즈 진출을 놓고 다툴 가능성이 높은 휴스턴 애스트로스다. 다르빗슈에게도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이 역시 경쟁자가 많다. 이에 지난해와 같은 선발진 구성(세베리노 다나카 그레이 사바시아 몽고메리)을 가지고 시즌을 시작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오타니와 같은 1994년생인 루이스 세베리노(사진)는 지난해 평균자책점과 사이영상 투표에서 리그 3위에 올랐다(193.1이닝 14승6패 2.98). 양키스 선발투수가 규정 이닝 소화와 함께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감한 것은 1997년 앤디 페티트(240이닝 18승7패 2.88)와 데이빗 콘(195이닝 12승6패 2.82) 이후 처음이었다.
두 명의 50홈런 타자가 뭉쳤으며 강력한 불펜을 자랑하는 양키스의 관건은 세베리노와 원투펀치를 맡아 세베리노에게 성장의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투수가 등장하는 것이다. 바로 양키스에서 3년을 더 보내기로 한 다나카가 해야 할 일이다.
지난 가을 가능성을 보여준 다나카의 패스트볼은 스플리터를 세팅해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또 한 명. 다나카를 도와줘야 할 사람이 있다. 스플리터의 블로킹 능력을 반드시 더 높여야 하는 포수 개리 산체스다.
2017 패스트볼 피안타율 상위(150타수 이상)
0.369 - 류현진
0.367 - 타일러 글래스나우
0.355 - 라파엘 몬테로
0.353 - 맷 케인
0.352 - 다니엘 고셋
0.348 - 크리스 틸먼
0.348 - 제이슨 바르가스
0.347 - 다나카 마사히로
2017 패스트볼 피안타율 하위(150타수 이상)
0.114 - 채드 그린
0.135 - 크렉 킴브럴
0.166 - 앤서니 스와잭
0.177 - 라이언 벅터
0.179 - 리치 힐
0.186 - 코리 크네이블
0.200 - 크리스 세일
0.203 - 브래드 브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