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지나면서 명절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기를 쓰고 고향으로 향했다. 그래서 고속도로는 하염없이 기다리는 주차장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돈 있는 사람들은 고향대신 해외로 빠지고 돈 없는 사람들은 방콕을 하기도 한다.
명절에 친인척들을 만나서 제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이 “결혼 언제 하니?”라고 한다. 그런데 비장애인들은 결혼이 선택일 수 있지만 장애인들에게는 비애일 수도 있다. 부산장애인총연합회(회장 조창용)에서는 장애인들의 그 비애를 조금이나마 덜어 주려고 “내 마음의 보석찾기”를 시작했다.
결혼식을 기다리는 신랑신부 3쌍. ⓒ이복남
올해에는 부산장애인총연합회 결혼상담소(후원회장 박흠경)가 지난 10월 17일 낮 12시 금정구 소재 야외결혼식장(금정구 체육공원로298번길 42)에서 “내 마음의 보석찾기” 제15회 합동결혼식을 개최했다.
이날 결혼식에는 부산시 관계자, 후원이사, 단체장, 봉사자, 그리고 하객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쌍의 부부가 웨딩마치를 울렸다.
“내 마음의 보석찾기”는 1992년부터 시작해서 2,700여 명의 회원가운데 오늘까지 129쌍이 내 마음의 보석을 찾았다고 한다.
축사하는 내빈들. ⓒ이복남
결혼식은 정현아 MC의 사회로 시작했다. 정현아 MC는 부산장애인총연합회 홍보대사라고 한다. 결혼식에 앞서 부산시 장애인복지과 신은주 과장은 축사에서 결혼이란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어려움과 역경을 헤쳐 나갈 거라고 여러 사람 앞에서 다짐하는 자리라고 했다. 이어서 장애인결혼상담소 4기 서현영 후원회장의 축사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조창용 회장이 격려사를 했다.
그리고 장숙희 전 후원회장과 팽경숙 후원이사가 화촉 점화를 하고 박호국 주례를 모셨다. 박호국 주례 선생님은 전 부산시 복지건강국장으로서 결혼식 주례를 전담한다고 했는데 오늘이 서른다섯 번째 주례라고 했다.
오늘 합동결혼식을 올리게 된 사람은 신랑 김훈 군과 신부 서지현 양, 신랑 김두형 군과 신부 레티리 양, 신랑 박종철 군과 신부 이현진 양이다.
화촉 점화를 위해서. ⓒ이복남
이들 신랑 신부는 “내 마음의 보석찾기”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게 된 3쌍이다. 이들은 “내 마음의 보석찾기”를 통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보석 같은 존재가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먼저 신부 서지현 양과 신랑 김훈 군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만남으로, 결혼상담소 프로그램 “내 마음의 보석찾기”를 통해서 오직 사랑하나만으로 서로에게 보석 같은 존재가 되기로 약속하고 김훈 군이 멋지게 프러포즈를 했다고 한다.
신랑 박종철 군은 신부 이현진 양도 결혼상담소 프로그램 “내 마음의 보석찾기”를 통해서 만났는데 두 사람 모두 학구파라서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서 친해졌다고 한다. 이현진 양은 지난 8월 부산디지털대학교 아동보육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똑똑한 신부라고 신랑이 자랑했다고 한다.
신랑신부 입장. ⓒ이복남
그리고 아름다운 신부 레티리 양은 베트남에서 왔다. 흔히 생각하기를 국제결혼이라면 결혼정보회사를 통해서 팔려온(?) 신부가 아닐까하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레티리 양은 아니다. 레티리 양은 베트남에서 취업 비자로 와서 김두형 군과 같은 회사에서 만났다고 한다.
김두형 군이 레티리 양을 보고 맘에 들어서 “내 마음의 보석찾기”를 소개 했다고 한다. 레티리 양은 장애가 있지만 따뜻한 남자 김두형 군을 만나기 위해 국경과 나이를 초월한 그야말로 사랑 하나만으로 결혼에 이르게 된 순애보적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다.
다른 신랑 신부는 부모 친척 등 하객들이 많은 것 같았지만, 신랑 김두형 군과 신부 레티리 양은 하객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결혼식이 끝나고 필자가 물어보았다. 김두형 군은 부모님은 두 분 다 돌아가시고 오늘은 누나가 왔다고 한다.
주례의 혼인 서약. ⓒ이복남
신부 레티리 양의 하객은 아무도 없었다. 레티리 양은 아직 우리말이 능숙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레티리 양은 별로 외롭지 않다고 한다. 레티리 양의 부모님이 오늘 결혼식에 참석은 못했지만, 김두형 군이 두 달전 베트남에 가서 레티리 양의 부모님에게 인사하고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박호국 주례 선생님이 “신랑 신부는 남편과 아내로서 서로에게 충실할 것을 맹세합니까” 신랑 신부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박호국 주례 선생님은 신랑 신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라고 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나를 따라하는 거울말이다.
신랑신부 키스 타임. ⓒ이복남
정은하 시 낭송가가 함민복 시인의 “부부”를 낭송했고 이어서 정현아 MC가 축가로 “봄날이야”를 불렀다. 그리고 신랑 신부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전에 서로 안아 주고 키스를 하라고 했다. 신랑 신부는 부끄럽고 수줍어서 어떤 신랑은 신부의 볼에 뽀뽀를 했다. 정현아 MC는 이제 결혼한 부부들인데 볼에 말고 입술에 키스를 하라고 했다. 신랑 신부는 부끄러워하고 하객들은 박장대소했다.
결혼식날 신부가 옷을 갈아입는 데서부터 여러 가지로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전통혼례에서는 수모(手母)라고 하는데 지금도 폐백 등에서는 절을 하고 술잔을 주고받고 할 때 수모가 필요하다. 전통혼례가 아니더라도 수모는 필요한데 요즘은 헬퍼 이모라고 부른다고 한다.
헬퍼 이모가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뒤에서 들어주고 모양새를 고쳐 주는 등 신부마다 헬퍼 이모가 한사람씩 따라 붙는다. 그런데 헬퍼 이모는 신부의 드레스가 예쁘게 보여야 되는데 신부가 돌아서기도 하는 등 움직이다 보니 드레스가 예쁘게 펴지지 않은 모양이다.
신랑신부와 참석 내빈들. ⓒ이복남
신랑 신부가 사진을 찍어야 하므로 바로 서라고 하는데 한 신부의 드레스가 예뻐 보이지 않았는지 헬퍼 이모가 드레스를 들어 올려 활짝 펼치는데, 맙소사! 신부가 속바지를 입지 않았는지 신부의 허연 맨다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만약의 경우라도 웨딩드레스 안에 속바지는 입으시도록.
신랑 신부가 사진을 찍었다, 주례 선생님과 단체 사진을 찍고 신랑 신부 개인 사진도 찍고 하객들과 같이 사진도 찍고 비디오도 여러 장 찍는 것 같았다.
합동결혼식에는 사랑의열매봉사단과 행복나눔위원회 자원봉사자들이 잔치국수를 준비했는데 올해는 잔치국수가 아니라 소고기국밥이었다. 합동결혼식이 치러진 야외식장은 장숙희 전 회장의 별장이다. 필자와 같이 소고기국밥을 먹던 한 장애인단체 회장은 야회에서 결혼식을 하는 모습이 부럽다고 했다. 장숙희 회장에게 말씀해 보세요. 대여비를 얼마나 내야 이런 별장을 빌려 주겠느냐고 한탄했다.
신랑신부 한복 모습. ⓒ이복남
필자도 다른 사람들과 소고기 국밥을 먹는 사이에 신랑 신부들이 한복으로 갈아입고 나와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신랑 신부의 한복이 은은한 파스텔 빛깔로 참 곱고 아름다웠다.
우리 전통 혼례식에서 신부는 원삼족두리에 녹의홍상(綠衣紅裳)이었다. 녹의홍상이란 연두색 저고리에 다홍치마인데 대부분의 신부들은 녹의홍상을 입었다. 아니면 노랑저고리에 빨강치마를 입었고 때로는 색동저고리를 입기도 했다.
신랑신부의 한복 색깔이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을까. 이번 결혼식에서 신랑신부 한복을 지원했다는 금소진 한복 김정혜 원장에게 물어보았다. 요즘 신랑 신부 한복은 원색이 아니라 무채색 계열인데 이렇게 변한지 제법 몇 년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신랑 신부 한복은 모양은 물론이고 색깔도 유행을 타서 해마다 조금씩 바뀐다고 했다.
아름다운 3쌍의 신랑신부. ⓒ이복남
이번 결혼식에 후원해 주신 분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결혼후원이사회, 청희당한의원, 금성관광, 그린나래웨딩홀, TOP시너지부동산중개, 문화엔터프라이즈, 동보테크, 인앤아웃외과의원한의원, 금소진한복, 가히스시, 알레르망, 대항운수, 국경없는교육가회, 환성기업, (주)타오로지스틱스, 한글손글디자인협회, 한·일한우리복지회, 봄날라이브카페, 부산진라이온스클럽, 삼미라이온스클럽, 자성대로타리클럽, 아이리스패션, (주)신성볼트 등 이었다.
그밖에 광도한의원 강병령 원장이 신랑 신부에게 공진단 3세트를 후원했다. 자성대로타리클럽 강우선 회장이 이불 3채를 후원했고, 인앤아웃의원 김태훈 원장이 3쌍의 신랑 신부에게 신혼여행경비에 보태 쓰시라고 금일봉 3개를 준비해 주셨다.
*부부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이 시는 함민복 시인이 결혼하는 후배를 위해 썼다고 한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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