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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20여년전 지리종주를 하고 적었던 기록을 찾았습니다. 그 당시 사진도 있었으나 야후블러그에 올렸던
글이라 야후코리아가 철수하면서 사진이 전부 없어졌네요. 참고하세요...)
때 : 2005년 6월 3일 - 5일
누가 : 전희근, 운조
날씨 : 출발 맑음, 산행 안갯속 흐리고 갬, 하산 볕이 뜨겁다.
일정
구례 - 성삼재 - 노고단 - 돼지령 - 임걸령 - 노루목 - 반야봉 - 삼도봉 - 화개재 - 토끼봉 - 명선봉 - 연하천산장 - 삼각고지 - 형제봉 -
벽소령산장 - 덕평봉 - 칠선봉 - 영신봉 - 세석산장 - 촛대봉 - 삼신봉 - 연하봉 - 장터목산장 - 제석봉 - 천왕봉 - 장터목산장 - 백무동
지리산은 1967년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산으로 3도(전라남북도, 경상남도) 5군(하동군, 구례군, 남원군, 함양군, 산청군) 16개면으로
감싸고 둘레 300리에 걸치는 총면적 438.9 평방km 넓이의 방대한 산이다.
1,400m의 고봉들을 20개를 거느린 산이면서도 등산로 곳곳에 샘물이 있어 산행에 갈증을 덜어준다.
예로부터 두류산, 방장산, 삼신산 등으로도 불리었다. (김장호저 韓國名山記 참고)
지리산 비경중 10경은 노고 운해, 피아골 단풍, 반야 낙조, 벽소령 명월, 세석 철쭉, 불일 폭포, 연하 선경, 천왕 일출, 칠선 계곡,
섬진 청류로 비경을 이룬다.
산행후기
작년에도 지리산 종주를 시도했으나 우천 관계로 중도 하차한 쓰라린 기억이 있다.
수없이 일기 예보를 예측해보고 시간을 맞추다 보니 이번에 산행을 하게 되었다.
원래는 한적한 산행을 위해 6월 3일(금요일)에 장터목 산장 예약을 시도했으나 예약 시스템 미숙으로 산장 예약을 못하고 하루 충분히
연습하고 신중을 기해 6월 4일 산장 예약에 성공 하였다.
그런데 같이 산행을 계획했던 김창모 전무님 이번 산행을 앞두고 90kg 거구를 날렵하게 한다고 출, 퇴근 12km를 열심히 걸었으나
결국 발을 헛 딛어 산행을 포기한다.
6월 3일(금요일) 13시 50분 용산 발 새마을 기차에 몸을 싣는다. (요금 3만 원)
구례구역에 18시 도착, 역전에 나오니 여러 방면으로 가자하는 택시들이 즐비하다.
구례터미널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차부에 도착 필요한 정보를 얻고, 숙소를 얻어 들어간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나
월드컵 축구(우즈베키스탄전)를 포기할 수 없어 맥주 한 모금씩 하며 T.V 시청을 한다.
시청하는 내내 짜증만 내다가 다행히 박주영의 동점골에 만족하며 잠을 청하니 벌써 자정이다.
6월 4일(토요일) 새벽 2시 50분경 기상, 세면을 하고 짐을 챙기니 옆에 잠자던 전희근, 너무 이르다 짜증이다. 누구 때문에 잠을 못 잤다나.....
서둘러 식사하고 차부에 도착하니 4시 15분, 시간이 이름에도 버스 앞에는 산님들이 길게 줄 서있다. 다행히 좌석에 앉기는 했다. (출발 4시 20분)
화엄사를 거쳐 성삼재를 향해 버스는 내리 치 달린다. 평소에 멀미하고 거리가 먼 나인데도 운전기사 아저씨의 곡예 운전에 항복 - 속이 울렁 거린다.
될 수 있으면 일찍 서둘러 버스 앞 쪽에 좌석을 잡는 게 좋겠다. 성삼재에 도착하니 4시 50분이다.
일출 2시간 전에는 공원 개방이 안 된단다. 지금은 새벽 3시 30분부터 개방한다.
성삼재 (1300m) 출발(05:00) - 대망의 지리종주를 시작한다.
노고단을 향하는 길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논 돌길이다. 마치 북한산 도선사를 향해 걸어 올라가는 형국이랄까? 다행히 온몸을 휘어 감는
새벽 공기의 시원함과 이름 모르는 새소리의 청명함, 숲 속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의 웅장함이 어우러져 산행 들머리에서부터
이 산에 나를 압도당하게 한다. 노고단 휴게소에 당도하니 많은 산님들이 한쪽은 식사를 하고 한쪽은 짐을 챙기고 산행 준비에 부산하다.
시장 장터 같은 대피소를 뒤로 하고 조금 더 위로 향하니 노고단(1500m) 돌무덤이 보인다. (05:52)
안개인지 운무 속에 갇혀 있는 건지 구분이 안 가지만 시야가 어둡고 물기 머금고 있는 대기가 나의 머리에서부터 몸 구석구석을 촉촉이
적셔 나가고 있다.
노고단을 출발 임걸령을 향해 걸음을 놓는다. 조금씩 내리고 오르는 길의 연속이다. 물기를 머금고 있는 너덜지대의 바위들과 나무 등걸이
길을 걷는 자를 자빠뜨리기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키가 낮은 산죽들이 좁은 길과 숲의 경계를 이루고 산님들의 발걸음을 안내한다.
미끄러움에 조금은 조심성이 필요한 산행 시작 길이다. 얼마만치 걷다 보니 조그만 안부에 사람들이 쉬고 있어 한쪽 옆으로 비켜 지나친다.
걷다 보니 그 곳이 돼지가 자주 출몰 한다는 돼지평전 (1424m) 인가 보다. 씩씩하게 걷는다고 몇 팀의 산님들을 추월하고 마구 걷다보니
샘터에 도착하였다. 시원한 샘물에 갈증을 해결하고 둘러보니 임걸령(1470m)이다. (06:35)
임걸령을 지나 20여분 걸으니 노루목 (1480m)에 당도한다.(07:00)
반야봉과 주능선의 삼거리이다. 노루가 자주 출몰 한다는 뜻의 노루목인지 노루의 목을 닮았다는 지명인지는 모르겠다.
언덕길을 올라온 사람들이 쉬기도 하고 반야봉을 다녀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기도 하니 협소한 공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다.
또 한편에는 배낭들이 쌓여있다. 어차피 무거워 누가 가져가지 못하니 반야봉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잠시 두고 간 짐 꾸러기이다.
반야봉 오르는 길
주능선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고도를 높여 나가니 반야봉 가는 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넘친다. 몸이 산에 적응되어 나가고 지리산 정기가 온몸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힘찬 해님의 위력에 시야를 가리고 있던 안개가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반야봉 가는 산길을 맑고 투명하게 열어준다.
초록의 물결과 철쭉으로 펼쳐진 눈앞의 장광에 감격의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탄성을 외친다.
드디어 반야봉(1734m) 정상에 도착, 역동적으로 굽이치는 지리산 자락에 넋을 빼끼고 서 있는다.(07:33)
반야봉을 떠나 밑으로 하강을 하며 힘들게 올라오는 사람들을 만나는 족족 흥분에 들떠있는 나의 마음을 다 들키곤 한다.
절로 콧노래가 나면서 “수고하세요”, “조금만 힘내세요”, “얼마 안 남았네요”등 인사치레 하느냐 정신이 없다.
얼마간 내려오다 보니 뱀사골대피소 방향 이정표가 있어 길을 묻는다.
산길을 내려섰다, 다시 삼도봉 방향으로 올라서야 하니 노루목으로 길을 가라는 답이다.
의견에 따라 노루목에 다시 들른다. (08:15) 반야봉을 다녀온 시각이 한 시간 정도 걸린 거 같다.
노루목을 떠나 삼도봉으로 다리를 놓는다. 10여분 걷다 보니 반야봉에서 내려서는 산길을 만난다.
조금 전 아저씨의 잘못된 길 안내인 거 같다. 바로 질러올 수 있는 것을...... 이정표도 약간 이상하고..
삼도봉(1550m)에 도착하니 3개의 도(전라남북도, 경상남도)를 경계해 논 표식기가 세워있다.(08:30)
물 한 모금 마시고 완만한 길을 걷다 보니 화개재(1360m)에 도착한다.(08:48)
화개재 왼편으로는 뱀사골 대피소로 내려서는 길이고 오른편은 화개장터 방향이다.
화개재에 얽힌 설화중 "운봉무더미"란 얘기가 있다. 운봉사람 소금장수 3대의 조상이 일흔 살 나이에 화개에서 소금을 지고 운봉으로 넘어가다
화개재에 이르러 힘에 지쳐 소금을 진채 쓰러져 죽었는데 손자가 할아버지를 그 자리에 묻고 정성을 다해 큰 묘를 만들었다 한다.
화개재 언저리의 큰 무덤을 두고 그 소금장수의 무덤이라 해 운봉무더미라 부르고 있다.
이 설화에서 보듯 화개재는 해안지방의 소금이나 수산물과 내륙지방의 삼베를 비롯한 농산물을 서로 교역했던
삶의 고갯마루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
화개재를 지나 토끼봉을 향한다. 꽤나 급경사면을 올라간다.
전희근 님 숨소리가 가빠오는 게 힘이 드나 보다. 어제 잠이 부족한 게 체력이 떨어지나 보다.
점차 경사가 더해가는 힘든 길이지만 울창한 구상나무, 전나무 숲을 이루어 중간중간 햇볕을 피해 쉬기에 안성맞춤이다.
뒤돌아보면 듬직한 반야봉과 뒤쳐져 따라올 듯한 노고단이 훤하고 천왕봉, 세석, 명선봉으로 이어지는 지리 연봉의 위용도 가관이다.
토끼봉이란 명칭은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 모양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峯)(1533m)으로 부르는 것이다.(09:15)
헬기포터에서 잠시 다리 품을 쉬게 하고 재충전하여 명선봉을 향해 걸음을 시작한다. (09:30)
한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뛰다시피 내려서고 미끄러운 바위 벼랑을 기듯이 오른 뒤 차츰 완만해진 명선봉(1586m) 부근의 아름드리나무가
울창한 침엽수림 지대를 만난다. 그리고 내리막 흙길을 조금 지나면 숲 속 평지 연하천 산장에 이른다. (10:30)
마치 백설공주에 나오는 난쟁이 요정들의 별천지에 온 듯하다.
체력 보강을 위해 라면을 끓이고 따가운 국물에 김밥을 담가 이른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포만감에 나른한 육신으로 졸음이 쏟아 내린다.
졸음을 쫓아내며 벽소령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11:25)
한적한 산길이 더욱 졸음에 빠지게 하고 나뭇잎 사이로 내비치는 햇빛 한 줄기가 평화로움을 더한다.
삼각고지(1462m)를 지나고 나란히 서있는 형제봉(1433m)을 비켜가며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걷다 보니 수채화로 그려놓은 것 같은
벽소령 산장(1520m)에 도착한다.(12:40)
산장 앞에는 빨간 우체통이 놓여있다. 문득 연애편지 한 장 써서 마나님에게 보내고 싶은 생각을 해보다 너무 간지러운 것 같은 생각에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산장 앞 식탁에 걸쳐 앉아보니 연세든 아저씨, 아주머니가 식사 준비 중이다.
명선봉 가파른 길에서 뵈었던 노부부인데 어찌나 빨리 걸어 올라가시던지 감탄을 했었다.
실례인지 알면서 살짝 연세를 물으니 “나는 72, 할멈은 6 땡”이라는 답이다. 소주 한 잔 반주 하시고 싶다는 말에 얼른 배낭 속을 뒤져
팩 소주 하나를 들였다. 매년 건강 검진하러 지리산 종주를 하신단다. 그냥 젊은 소인은 고개를 떨 구고 할 말을 잊었다.
내가 저 나이에 이 산자락을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절로 존경과 찬사를 드린다.
벽소령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 종주 등반코스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화개에서 마천까지 지리산 중앙부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횡단 도로다.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예부터 이곳을 벽소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벽소령의 달은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다.
벽소령을 뒤로하고 세석산장을 향해 길을 걷는다.(13:05)
세석을 가기 위해서는 덕평봉(1522m), 칠선봉(1576m), 영신봉(1651m)을 넘어야 한다.
왼쪽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무릎이 아파 본 적이 없어서 이유를 찾지는 못하고 무픞 아대와 스틱을 부랴 부랴 끄집어내어 중무장을 한다.
산행 초기부터 스틱을 써야 할 것을 너무 방심했나 보다.
선비샘에 도착 (13:55)하여 갈증을 풀고 시원한 샘물로 세면을 하고 잠시 쉬어보니 한결 무릎 통증이 가라앉는다.
한 걸음걸음 죽을힘을 다해 걷다 보니 칠선봉(15:30), 영신봉(15:46)을 지나 세석평전에 다다른다.
분명히 봉우리 3개만 넘으면 세석이라 했는데 그만 그만한 봉우리가 한없이 이어진다.
특정 봉우리 주변에 이름 없는 부속 봉우리가 몇 개씩 딸려있나 보다.
말은 3개지만 수 없는 봉우리를 넘나드는 거 같다. 그리고 체력이 다 떨어진 후 올라타야 하는 영신봉 오르는 계단들은 기운을 더욱 뺏어간다.
세석평전에는 아직도 철쭉이 남아 나를 반긴다. 세석산장(1550m)에서 잠시 다리품을 쉬게 하고 작년 7월 장맛비로 인해 세석에서 거림으로
도중 하산 하던 일을 돼 집어 본다.(16:00) - 15분 휴식(16:15 출발)
다행히 이번 산행에는 해님이 우리를 반겨주어 능선을 걷는 걸음걸음이 가볍다.
고산대 산악의 황량함을 보여주는 촛대봉(1703m)에 올라 세석산장 쪽을 바라보니 여기저기 흩뿌려진 철쭉들을 머금고 서있는 세석의 모습이
고혹스럽다.(16:35) 촛대봉에서 밑으로 하강하는 듯하며 산자락을 끼고 도니 곧바로 위로 솟아오르는 올림길이다.
비슷한 봉우리들을 지려 밝고 올라서니 삼신봉(1807m)인 거 같다.(17:00)
풍광 좋은 지리 한 자락을 물고 늘어지며 기운을 돋아 내리치고 달리니 드디어 연하봉(1730m)에 도달한다.(17:34)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사이로 고사목과 어우러져 있는 연하봉은 운무가 머물다가 바람처럼 흘러가곤 하니 가히 신선이 노닐다가 갈 만한
산세를 지니고 있다. 연하 선경이 지리 10경에 들어감을 다시 확인해 본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추슬러 낮은 관목들을 옆으로 하고 조금 내려서니 저만치 오늘의 목적지 장터목 산장(1700m)이 보인다.(17:50)
발품을 많이 팔아서일까? 내 집에 도달한 듯 마음이 놓이고 갑자기 배고픔에 허기를 느낀다.
바삐 산장에 신고하고 나서 돼지고기 볶아내고 햇반 데우니 이런 진수성찬이 어디 있을까? 더욱이 소주 한 잔 들이켜니 오늘 하루의 고단함이
싹 사라진다. 잠자리 배정받고 담요 지급받아 자리에 누우니 세상모르게 꿈속으로 빠져든다.(산장 21시 소등)
6월 5일 새벽 3시 기상, 서둘러 산행 채비를 한다. 고어텍스를 꺼내 입고 해드 램프 챙기고....
그런데 옆 침상의 산님 왈 “나가보니 흐려 일출은 틀렸어, 카메라도 준비하지 마”하는 소리에 맥이 풀린다.
3대가 덕을 쌓야 볼 수 있다는 천왕 일출... 집안에 노름과 바람으로 덕과는 거리가 머니, 우리야 생각도 못하지. 체념 아닌 체념으로 서운함을
감춘다. 새벽어둠을 뚫고 산길을 잡는다. 천왕봉까지 1시간 거리라니 시간은 충분하다.
어둠에 등산길이 한눈에 들어오지는 않으나 계속되는 너덜지대이다. 제석봉(1806m) 부근을 지나며 하늘을 쳐다보니 많은 별들이 어둠 속에서
자기 자태를 뽐내듯 밝기를 따로 한다. 초롱 초롱한 별빛에 꺼져가는 희망이 돼살아난다. 볼 수 있겠다.
동쪽, 천왕봉 쪽 하늘에 붉은 띠를 띠우는 여명이 확연히 나타난다. 두근대는 심장의 고동을 느끼며 발걸음을 바삐 한다.
바위틈 속을 쇠 난간을 잡고 통과하고 보니 통천문(1850m)인거 같다. 천왕봉 가는 길의 거쳐야만 하는 조그만 바위 틈 구멍이다.
통천문 위에 올라 지나온 길을 쳐다보니 꼬리에 꼬리를 잊는 랜턴 불빛의 유영이 어둠을 가르며 세차게 나를 향해 질주해 오는 듯하다.
드디어 천왕봉(1915m) 정상, 흥분과 기쁨으로 나의 가슴이 터질 듯 벅차오른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 “ 천왕봉 정상석 비문의 문구이다.
눈 아래 끝없이 펼쳐진 구름바다 저 멀리, 동녘 하늘을 오렌지빛으로 물들이며 거대한 태양이 불쑥 솟아오른다.
정상에 오른 산님들로 천왕봉이 들썩들썩하고 크리스마스트리인 듯 천왕봉 봉우리에 산님들이 가득 붙어있다.
일출을 기다리며 골을 따라 넘오 온 바람에 몸을 맡겼더니, 나의 온몸을 차디차게 얼려 놨다. 추위를 잊으려 급히 하산을 한다.
50년 전만 해도 울창한 숲이었다는 제석, 마구 벌목하고 그것도 모자라 증거 인멸로 불을 사렸다.
그래서 나무 무덤이 된 제석봉.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제석봉 고사목지대를 지나며 전희근 님을 쳐다보니 마법에 걸린 황홀한 표정이다.
바로 앞 연화봉에서부터 저 멀리 있을 반야봉 그리고 운무 속에 숨겨진 지리산 자락, 이제 걸어온 발자취에 스스로 감탄을 하며 산길을 내려선다.
장터목산장에 도착, 서둘러 아침을 해 먹고 하산 준비를 한다. 하산은 백무동으로....
그러나 아픈 무릎을 어쩌랴. 오름 산길에서는 통증이 적으나 내려서기에는 고통이 따를 텐데.
그렇다고 지리산에 묻혀 있을 수 도 없고... 오전 8시 18분 하산을 시작한다.
만만치 않은 깔따구 고개는 한없이 이어지고 (도선사 하루재 고개 10배는 되는 듯하다),내려서는 내 다리는 고통을 호소한다.
내려서며 보이는 지리능선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져 지나간다.
백무동매표소에 도착하니 11시 15분이다. 무려 3시간 걸려 내려선 산길이다.
골짜기 식당에 들러 파전과 막걸리를 시켰으나, 차표 끊으러 간 전희근 님 전화 - 11시 30분 차량 타야 한단다.
연휴라 이후 차량 예약 끝. 할 수 없이 음식 취소하고 부리나케 뛰고 뛰어 백무동발 서울행 직행버스에 몸을 실른다.
6월 3일 오전 5시 성삼재를 떠나 저녁 17시 50분 장터목산장 도착하고 6월 4일 천왕봉 오르고 백무동까지 걸린 시간 5시간
도합 18시간(물론 쉬는 시간 포함), 38km 거리의 산행이다. 참고로 만보기로 재보니 62,544 걸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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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눈 앞에 보이는 듯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