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엄마’ ‘엄마’라고 부르며, 남혜경 원장 수녀 곁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입양 건수가 줄어들고 여아 입양을 선호하는 흐름이 여전히 개선되고 있지 않아 성가정입양원에서 입양부모를 기다리는 남자 아이들의 수는 점점 늘고 있다. 입양 전 아이들의 얼굴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새벽녘, 아기들은 동트기 전부터 꼬물꼬물 꿈나라에서 깨어난다. 엄마가 옆에 없으면 울음부터 터트릴 법도 한데, 누구하고든 눈을 마주치면 환한 웃음부터 짓는다. 아기가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존재 자체만으로 빛이 되는 아기들, 그들이 집으로 갈 수 있도록 빛을 밝혀주는 성가정입양원, 그 길을 잘 걸을 수 있도록 빛 한줄기씩을 더해주는 자원봉사자들,
따뜻한 빛으로 아기들을 품는 입양부모들. 대림,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이 시기에 한마음으로 ‘빛’을 기다리는 이들, 이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다.
■ 24시간 켜진 불
성가정입양원의 불은 24시간 밝혀져 있다.
생후 한 달도 채 안된 막내 민아(가명)부터 네 살 영훈(가명)이까지 48명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보육사들이 이른 아침부터 한 명 한 명씩 안아 젖병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따뜻한 물에 목욕을 시킨다. 신생아와 영아만 23명인 터라, 이런 일상은 하루 종일 ‘무한반복’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에 사용하는 기저귀가 수백 장, 아기용 입수건은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다. 점심 무렵이면 벌써 아기 옷가지들과 이불, 천장난감 등의 빨랫감들도 산더미처럼 쌓인다. 수십 개의 젖병과 이유식 그릇들을 씻고 소독하는 일도 만만찮다.
유아방에서는 두서너 살배기 아이들의 놀이가 한창이다. 남혜경 원장 수녀를 비롯한 보육사들의 팔다리에는 두세 명의 아이들이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모른다. 여기저기서 ‘엄마’ ‘엄마’를 쉼 없이 불러댄다.
아이들이 남 수녀를 찾는 소리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 어느 쪽에서 누가 불렀는지도 헛갈릴 지경이다. 남 수녀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일일이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불러주며 응답한다.
곧이어 입양원 4층에서는 여느 어린이집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미술, 오르프(음악 교육의 일종) 수업은 물론 감각 통합과 오감 발달 프로그램, 개별 언어치료 시간 등도 이어진다.
또 다른 방에선 보육사들이 신나게 아기 옷을 고르고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입양부모와 만나는 아기에게 입힐 옷이다.
어떻게 꾸며주면 더 예쁘게 보일까. 보육사들은 아기보다 더 설레는 마음으로 부모를 기다려왔다. 오늘 입양원을 방문한 부부는 이미 자녀를 두고 있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입양을 준비해왔다.
민석(가명)이는 오늘 생애 첫 생일을 맞았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틈에 보육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은 플래카드를 걸고 색색의 풍선을 불어 방을 꾸몄다.
파티가 시작되고 축하노래가 이어지자, 서너 살배기 유아들은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축하인사도 건넸다. 하지만 입양원 내에서 ‘다 큰’ 아이들의 또렷한 말소리를 듣는 것이, 그저 기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2~4시간 간격으로 돌아가면서 성가정입양원을 찾아 아기방 돌봄과 빨래 및 차량 봉사 등에 동참한다.
자원봉사자들은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2~4시간 간격으로 돌아가면서 성가정입양원을 찾아 아기방 돌봄과 빨래 및 차량 봉사 등에 동참한다.
■ 마지막 한 명이 가정을 찾을 때까지
해마다 겨울바람이 불어올 때면, 남 수녀의 마음은 조급해진다.
“벌써 12월, 한 해가 또 지나가는데. 이달 안에도 입양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입양부모가 안 오시면 어쩌나….”
한국사회에선 여아 위주의 입양이 여전히 선호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입양을 기다리는 남자 아이들은 더욱 늘어나는 실정이다.
그나마 5세(만3세)가 되면 입양원에도 머무를 수 없고, 다른 보육시설로 떠나야 한다. 게다가 입양이 늦어져 부모와 상호교류 없이 크면서, 심리·정서적 발달 문제를 겪는 경우도 많다.
“마지막 한 명의 아이가 가정을 찾을 때까지….”
입양원 운영의 가장 큰 이유다. 남혜경 원장 수녀는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모두 가정을 찾아주도록 다리가 되어주는 것이 입양원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산하 ‘성가정입양원’은 원가정 보호가 어려운 아동들을 입양되기 전까지 돌보는 것은 물론, 입양부모 상담과 가정법원의 입양 허가,
양부모와 양자 결연, 입양 후 아동 적응을 위한 애착 프로그램 진행, 양육 코칭, 입양가족을 위한 사후프로그램 진행 등을 도맡고 있다.
생부모 상담과 가정 위탁을 맡아줄 ‘사랑의 부모’ 교육 및 연결과 일시보호소 운영 등도 모두 입양원에서 담당하는 몫이다. 입양되지 않은 아이들을 돌보는 데에도 각별히 신경 쓴다.
■ 입양은 내 아이를 키우는 일
“옆 집 새댁이 아기를 낳으면 대개 ‘축하한다’고 인사하지요. 하지만 입양부모들에게는 ‘좋은 일 하십니다’ 혹은 ‘훌륭하십니다’라고 인사하곤 하지요.”
남 수녀의 한 마디에,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입양에 관한 의식 수준을 한 번에 체감할 수 있다. 입양에 관한 사회적, 국가적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왜곡된 시선도 왕왕 볼 수 있다.
입양 관계자들은 교회 안에서조차 입양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고 토로한다.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국내 입양건수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2010년 국내 입양건수는 1462건, 국외 입양은 1013건이었다.
하지만 2012년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2013년도 입양건수는 국내 686건, 국외 236건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해 입양도 국내 683건, 국외 374건에 머무르는 수준이었다.
입양이 올바로 실현되려면, 가장 먼저 ‘원가정’, ‘원가족’부터 보호돼야 한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땐 ,‘원가정’과 가장 비슷한 환경과 돌봄을 지원해야 한다.
바로 ‘국내’의 건전한 ‘가정’에서 키우는 ‘입양’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지원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아이를 위해서다.
성가정입양원은 현재 한국에서 유일하게 운영 중인 국내 입양 전문 기관이다.
하지만 입양원 3층, 100평도 채 되지 않는 공간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아이들의 숫자는 48명이나 된다.
최대 25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입양이 더뎌지면서 보호 아동 수가 월평균 70~90여 명 늘어났기 때문이다. 현재 입양을 전제로 위탁 중이거나 ‘사랑의 부모’가 돌보는 어린이들도 20명이나 된다.
보육사들이 아기들의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는 동안, 봉사자들은 재빨리 놀이매트와 장난감 등을 소독, 정리한다.
■ 봉사로 빛을 밝혀
성가정입양원에서는 보육사 19명과 간호사 2명, 촉탁의사 1명이 24시간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매일 오전 오후, 2~4시간 단위로 봉사자들도 꾸준히 힘을 보태지만, 돌봄의 손길은 늘 부족하다.
정부에서는 사무원 1명의 기본임금만 지원해준다. 때문에 운영비의 70% 이상을 후원금으로 충당하는 실정이다.
미술교사인 최은주(소화 데레사·31·서울 삼각지본당)씨는 2013년부터 매주 입양원을 찾아 유아들의 교육을 지원해왔다. 이주영(28)씨는 결혼 전부터 신생아를 돌보기 시작해 결혼 후에도 지속하고 있다.
박선옥(요세피나·61·서울 상계2동본당)씨는 우연히 남편 회사에서 제공하는 판촉용 유아용품들을 기부하러 왔다가 봉사를 시작했다.
벌써 14년째다. 박씨는 “내가 기쁘고, 받는 사람도 기쁘고, 보시는 하느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기에 봉사를 멈출 수가 없다고 말한다.
기자가 성가정입양원을 방문한 날엔 마침 점심식사 선물도 쏟아졌다. 청소년 요리대안학교인 ‘영쉐프스쿨’ 6기생들이 졸업쇼케이스로, 성가정입양원을 찾아 식사대접을 한 것이다.
이들은 화려한 졸업쇼케이스를 대신, 아이들과 입양원 종사자,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식사 봉사를 택했다. 모두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이어지는 후원들이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성가정입양원에 관해 알게 된 이들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라고 한다.
함께하는 첫 번째 방법은 입양이다.
입양이 어렵다면 꾸준한 봉사의 몫을 택할 수 있다. 기도와 물질적 후원도 절실하다. 평소 입양아와 그 가족들을 평범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도 또한 중요하다.
부모를 기다리는 한 명 한 명의 아이들 모두가 세상의 큰 빛으로 성장할 수 있는 미래는, 그들이 걸어갈 길을 빛을 밝혀주는 이들이 곁에 있을 때 가능하다.
※도움주실 분 02-764-4741~3, www.holyfcac.or.kr, 우리은행 111-05-090457 성가정입양원
주정아 기자(가톨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