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3부 일통 천하 (138)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제 16장 진소양왕의 무력 정책 (2)
조혜문왕(趙惠文王)은 졸지에 고민거리가 생겼다.
화씨(和氏)의 벽(璧)을 보내자니 진소양왕에게 사기를 당할 것 같았고, 보내지 않자니 진나라의 침략을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대장군 염파(廉頗) 등을 불러 몇 날 며칠을 의논했으나 의견이 제각각이었다.
이것을 환자령 무현(缪賢)이 알게 되었다.
그는 조혜문왕 앞으로 나가 말했다.
"우선 용기있고 지혜로운 사람을 뽑아 사자로 임명하여 진(秦)나라로 보내십시오."
"그리하여 열다섯 개 성을 받으면 화씨(和氏)의 벽(璧)을 내주고, 진왕이 성을 내줄 마음이 없으면 옥(玉)을 도로 가져오게 하십시오."
"누가 그렇게 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신의 가신 중에 인상여(藺相如)라는 사람이 있는데, 높은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사람입니다."
그러고는 지난날 자신이 연(燕)나라로 달아나려 할 때 만류한 인상여의 말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이 정도 혜안을 갖춘 사람이라면 능히 이번 일도 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다른 대안이 없는 조혜문왕(趙惠文王)으로서는 인상여에게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대부 벼슬을 내리고 화씨(和氏)의 벽(璧)을 내주며 당부했다.
"돌아올 때는 반드시 열다섯 개 성의 지도나 화씨의 벽 중 하나를 가져와야 하오.“
"대왕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인상여(藺相如)는 화씨의 벽을 들고 함양성을 향해 떠나갔다.
- 조(趙)나라에서 사자가 왔다고?
진소양왕(秦昭襄王)은 매우 기뻐하며 신하들을 불러 모은 후 조나라 사신인 인상여를 들어오게 했다.
인상여(藺相如)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대전으로 들어가 비단보를 풀고 화씨(和氏)의 벽(璧)을 꺼내 진소양왕에게 바쳤다.
진소양왕은 눈을 빛내며 찬찬히 옥(玉)을 감상했다.
소문대로 화씨(和氏)의 벽(璧)은 아름답고 영롱했고, 매끄러웠다.
너무나 찬란해서 눈이 부셨다.
"과연 천하의 보물이로다!“
연신 감탄하다가 좌우에 시립해 있는 신하들에게 넘겨주었다.
내궁의 비빈들까지 나오게 하여 옥(玉)을 구경시켰다.
모든 신하와 비빈들은 차례로 화씨(和氏)의 벽(璧)을 돌려본 후 진소양왕을 향해 절을 올렸다.
"왕께서 귀한 보물을 얻으신 것을 경하드립니다.“
진소양왕(秦昭襄王)은 흡족한 표정으로 아래를 굽어본 후 인상여를 향해 말했다.
"천하 제일의 보물을 가져오느라 수고가 많았소."
그런데 그뿐이었다.
화씨(和氏)의 벽(璧)과 바꾸기로 한 열다섯 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한참 동안 진소양왕의 거동을 살피던 인상여(藺相如)가 마침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모든 사람이 화씨(和氏)의 벽(璧)을 천하 보물이라고 칭송하지만, 어찌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은 그 옥에도 티가 하나 있습니다. 왕께서는 그것을 발견하셨습니까?"
진소양왕(秦昭襄王)의 얼굴에 놀라는 빛이 스쳐갔다.
"과인은 흠을 발견하지 못했소. 조(趙)나라 사신의 그 말은 사실인가?“
"그러합니다. 외신이 그 흠을 가르쳐드릴 터이니 청컨대 왕께서는 잠시 그것을 보여주십시오."
진소양왕은 내관을 시켜 화씨(和氏)의 벽(璧)을 인상여에게 내주었다.
인상여(藺相如)는 옥을 받아들자 살피는 척하면서 천천히 대전 기둥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는 성난 호랑이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궁궐 지붕이 떠나갈 듯한 큰 소리로 외쳤다.
"왕께서는 천하의 보배인 이 화씨(和氏)의 벽(璧)을 얻고자 사신을 조나라에 보내셨습니다.
이에 우리 왕은 신하들을 불러놓고 의논했습니다.
이때 모든 신하는 한결같이 말하기를,
- 진(秦)나라는 탐욕스러워 성(城)은 내주지 않고 화씨(和氏)의 벽(璧)만 가로챌 것입니다. 그러니 보내지 마십시오. 하고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신(臣)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일반 백성도 이런 일로 속임수를 쓰지 않는데, 하물며 만승의 나라인 진(秦)나라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공연히 의심을 품어 진왕의 진노를 사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우리 왕께서는 닷새간 목욕재계한 후 신으로 하여금 진왕께 화씨(和氏)의 벽(璧)을 갖다바치라 명하신 것입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이것은 대국의 위엄을 존중하여 경의를 표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어찌하셨습니까?
오만한 예절로 신을 대했고, 화씨(和氏)의 벽(璧)을 받자마자 신하들과 비빈들에게까지 돌려보게 하며 신을 조롱했습니다.
이제 신은 알았습니다. 대왕께서는 조(趙)나라에 성을 내줄 마음이 없으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신은 일부러 거짓말을 해 화씨(和氏)의 벽(璧)을 돌려 받은 것입니다.
물론 왕께서는 신을 핍박하여 이 옥(玉)을 빼앗으려 하시겠지요.
하지만 신뢰가 없는 왕께는 절대로 이 화씨(和氏)의 벽(璧)을 내드리지 않겠습니다.
좌우의 무사들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신은 이 옥(玉)을 기둥에 찧어 산산조각 내어버리고, 신의 머리 또한 기둥에 부딪쳐 죽어버리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인상여는 화씨(和氏)의 벽(璧)을 번쩍 쳐들어 당장에라도 기둥에 내던질 동작을 취했다.
진소양왕(秦昭襄王)은 인상여가 죽는 것보다 화씨(和氏)의 벽(璧)이 깨질까 두려웠다.
얼른 손을 내저으며 만류했다.
"조(趙)나라 사신은 잠깐 기다리오. 내가 어찌 조나라를 상대로 속임수를 쓰겠소?
과인의 기쁨이 너무 지나쳐 결례를 한 것이니, 나의 사죄를 받고 노기를 푸시오."
그러고는 좌우 신하들에게 명했다.
"지도를 가져오라.“
진소양왕(秦昭襄王)은 지도를 펼쳐들고 친히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알겠는가? 이 땅을 조(趙)나라에 어김없이 내주어라."
그러나 인상여(藺相如)는 진소양왕과 그 신하들의 표정에서 그것이 거짓임을 직감했다.
'명을 받드는 신하들의 눈동자가 쉴새없이 움직이는 것으로 봐서 진왕(秦王)은 여전히 성(城)을 내줄 마음이 없구나.'
인상여(藺相如)는 기둥 앞에 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다시 외쳤다.
"화씨(和氏)의 벽(璧)은 천하가 인정하는 보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왕께서는 이 옥을 보내기 전에 닷새간이나 목욕재계하신 것입니다.
대왕께서도 만일 진정으로 이 옥을 원하신다면 닷새간 목욕재계하시고 대궐 뜰에서 구빈(九賓)의 예를 취하십시오.
그러면 그때에 신도 이 보물을 바치겠습니다."
구빈이란 조례 때 거행하는 궁궐 최고의 의식을 말한다.
만조백관이 보는 앞에서 성(性)을 내주겠다고 약속하라는 것이었다.
진소양왕(秦昭襄王)은 멈칫하는가 싶더니 이내 대답했다.
"좋소. 닷새간 목욕재계하고 구빈(九賓)의 예로써 조나라에서 보내온 보물을 받겠소.
그 사이 그대는 광성전(廣成傳)에 나가 쉬도록 하오.“
광성전은 국빈이 묵는 영빈관이다.
그제야 인상여(藺相如)는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대왕께서 그렇게 하신다니 신 또한 객관으로 나가 닷새 동안 목욕재계하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한 인상여는 화씨(和氏)의 벽(璧)을 가슴에 품고는 대전을 물러나왔다.
광성전에 당도한 인상여(藺相如)는, 그러나 여전히 진소양왕을 신뢰하지 않았다.
'진왕(秦王)은 목욕재계하고 구빈의 예를 취한다 하더라도 열다섯 개의 성(城)을 내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내 어찌 이에 대한 방비를 하지 않으리오.'
인상여(藺相如)는 수행원 한 사람을 불러 지시했다.
"그대는 거지로 변장한 후 화씨(和氏)의 벽(璧)을 가지고 샛길로 도망쳐 한단성으로 돌아가라."
그날 밤 그 수행원은 광성전에서 모습을 감췄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