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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명기10:12-22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네가 목도한 바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 애굽에 내려간 네 열조가 겨우 칠십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를 하시고 광야에서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모세를 통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영의 일에 있어서 구원을 말씀을 하고 있었습니다.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하시는 명령은 단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이 일에 대해서 말씀을 했고 이스라엘은 그 구원을 예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하나님께서 자기조상들을 선택하셨다는 그것으로 하나님을 믿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비유입니다
그 말씀 안에는 다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를 모르고 그저 문자를 보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다 율법주의로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인생의 지혜입니다
그것으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것이 세상을 사는 문제라면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지혜만 있어도 깨달을 수 있게 기록하게 하셨을 것을 분명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의 일은 우리 인생의 언어로 표현이 안 되다 보니까 우리 인생의 일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렵습니다.
저 역시도 성경을 늘 보고 있지만 어렵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날은 설교 한편을 작성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제 제가 설교를 많이 작성을 했습니다. 강해까지 하면 순수 설교만 해도 1000편이 넘다보니까 사실 새로운 설교를 작성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어려운 말씀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말씀들은 다 작성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설교들을 계속해서 생각을 하다가 언젠가는 그것이 풀려서 쓰고 있습니다. 먹지로 쓰면 어떻게 해서라도 작성을 하겠지만 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구약입니다.
아마도 그리스도편지에서 설교를 보신 분들은 알 수 있습니다. 신약에 있는 말씀들은 거의 다 설교로 작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은 아직도 많은 말씀들을 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성경이 어렵다는 것을 늘 깨닫고 있고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는 이 영생을 얻어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성경을 바로 풀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을 다 풀 수는 없지만 풀 수 있는데 까지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르겠지만 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구약입니다
그리고 율법입니다 사실 너무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을 통해서 우리의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을 사람의 이성으로 보다가 이스라엘은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방의 교회 역시 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성경을 보고 있고 기독교라는 종교를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내 생명이 걸린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가 육체에 암병이 걸렸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물론 4기가 되어서 죽을 날짜가 정해졌다면 포기를 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1기에 발견이 되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그것에 과한 책들을 열심히보게 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영의 생명입니까?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하는 생명이라고 해도 성경은 그 생명이 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혈과 정에 매여 있는 육체의 생명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썩어 없어지는 것이고 영의 생명은 영원히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00억년입니다
그 중에서 우리 인생 100년은 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00억년의 생명이 중요합니까? 그 점과 같은 생명이 중요합니까? 지금 현실은 보이는 그 100년짜리 생명이 중요하게 생각이 될지 몰라도 지나고 보면 그것은 그저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소중합니다. 이 마음을 쥔 것 까지도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인간적으로는 그렇게 생명에 대해서 소중하게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이 영의 생명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셔서 이 시대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이스라엘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그 조상들에게 언약을 하신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주시기 위해서 그들을 불러 내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들 모두가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너무도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요구를 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 오직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성경을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묻고 계십니다, 우리는 분명한 대답을 해야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면 그 질문을 나에게 하고 있다면 우리는 대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잠언2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나의 계명을 간직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다.
그저 인간의 이성적 이해를 가지고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그렇게 해서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다. 이 잠언의 말씀은 설교로 올려 드렸습니다.
호세아14:9절을 보면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그 모든 도를 행하고
하나님의 도를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호세아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여호와의 도를 행합니까?
교회 안에는 의인과 악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도는 의인이라야 행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의인입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를 의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성도라야 여호와의 도를 행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이 누구입니까?
의의 도를 안 성도를 의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의 도가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을 의의 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이 의의 도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믿는 것이 그의 도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도를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 했습니다. 성막은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는데도 성막에서 제사는 드렸어도 그를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를 사랑하고
그가 우리를 구원하신 모든 일을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섬기라고 하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행위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입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전은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섬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저의 육체인 성전에 대해서 다 알아야 합니다. 내 안에 성전이 지어져 가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육체로 섬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의 육체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섬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섬긴다 해서 그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누구도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알아야 섬길 수 있습니다. 성막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모르고 섬기면 어떻게 됩니까? 사망을 당한다는 것을 이미 구약의 율법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반드시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려면 그의 육체인 성막에 대해서 알아야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성막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영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육체의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보고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가 자기들의 육체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한다고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로 말미암아 그들은 도리어 저주를 받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로마서4:9절을 보면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행복
생활이나 삶에서 기쁨을 누리는 행복한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영에 일에 있어서 행복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 성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행복
이 단어는 성경에서 4번 나오고 있습니다. 신명기에서 두 번 기록이 되어 있고 로마서에서 2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행복하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 행복이 무엇인가 하면 그 믿음을 의로 여가심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을 행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복자입니다
구원을 받는 우리 성도를 행복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행복한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에서 구약에서 특히 이런 말씀을 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명령입니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영생을 얻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생을 얻는 것을 어떻게 하는가 하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 모두에게 믿을 수 있는 재능을 주시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행복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믿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행복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의 명령이 무엇인가를 모르다보니까 아니 그의 명령을 어떻게 지키는지를 모르니까 그들은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명령과 규례입니다
명령은 영생을 얻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규례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우리 안에 새로 지으심을 받은 생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새로 지으심을 받는 그것이 규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복자입니다
우리 성도는 행복한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고 우리 안에 새 사람이 지으심을 받았다고 하면서 그런 성도가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행복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감성적으로 느끼는 신앙생활을 보면서 행복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감성의 기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은 반드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우리 안에 새 사람이 지으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는 구원을 받았고 그렇게 구원을 받은 성도가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행복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예배를 통해서 찬송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감동을 받아서 기쁨을 누린다 해도 그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새 사람이 지으심을 입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행복한 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이 시대 과학이 발달을 해서 과학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과학을 무시하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부의 사람들이 과학을 무시를 하고 있는데 그들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창조주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이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일일이 따지고 알아야 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성경은 그런 과학을 굳이 설명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안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일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고 있는데 교회 안에 있는 무지한 자들이 과학에 대해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길어야 100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이 이 우주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그리고 창조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 자체도 모순 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경과 짜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의 일을 알아서 영생을 얻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빅뱅입니다
130억 년 전에 있었으면 어떻습니까? 그리고 지구 나이가 45억년이면 어떻습니까? 그것이 중요합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됩니다.
성경입니다
과학책이 아닙니다.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일부의 사람들은 창조 과학이라고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고 영생에 대해서 알 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 자체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들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킴으로 해서 우리 안에 새 사람이 지으심을 받아서 구원을 받는 생명이 있으면 사랑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통해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또 야곱을 통해서 구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조상들에게 네 후손에게 이땅르 주시겠다고 언약을 하셨습니다. 그 언약을 하심으로 해서 이스라엘을 만민 중에서 택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면성입니다
성경은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에 있어서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그 조상들을 기뻐하심으로 해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기뻐하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선택입니다
일반적인 선택입니다 그들이 모두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사실 우리 이방인에게 복음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예표로 선택을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그들은 불행한 민족이라는 것을 또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그들은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는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여호수아가 들어갔고 이방인들 대표해서는 갈렙이 들어갔습니다. 그것도 역시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표입니다
광야에 들어왔습니다.
그 광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교회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광야에서 몇 사람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갔는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예표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천국에 들어갈 사람을 예표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지혜를 구해서 반드시 가나안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할례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들이 육체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왜 육체에 할례를 행했는가 하면 율법에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아들을 낳으면 팔일 만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할례
율법을 대표한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율법 중에 한 가지 할례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전체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하는 말씀은 이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실 것인데 그것을 마음으로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했습니까?
이스라엘은 목이 곧은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목이 곧은 백성이 되었는가 하면 마음에 할례를 하지 않고 자기들의 육체로 율법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난지 팔일이 되면 할례를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마음에 할례를 하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키신 율법을 마음으로 믿고 율법의 의를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목이 곧은 백성이 되어서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면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려고 했고 그것을 목이 곧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비유의 말씀은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같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더 목이 곧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온갖 율법의 행위가 가득하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시대 기독교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만든 삼위일체라는 신을 믿고 있습니다. 삼위일체는 두려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들의 지성으로 만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두려우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두렵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영생에 있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몸을 죽이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지옥에 던져 넣는 그를 두려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지 못하면 그러니까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않으면 두려우신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뇌물을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ㅓ는 오직 믿음으로 살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외모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가 그렇고 그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예배가 그렇고 찬송가가가 그렇고 기도가 다 외모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외모를 모릅니까?
겉으로 나타난 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겉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외모를 보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기독교라는 종교는 점점 더 외모지상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목을 곧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다 외모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외모에 빠져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하고 있고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보지 않고 계시지만 사람들은 더 많이 외모로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고아와 과부를 신원하십니다.
그러니까 고아와 과부의 원통한 일이나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풀어주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고아와 과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원통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고아와 과부의 원통한 일을 신원하여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이미 올려져 있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가 고아이고 과부라는 것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가 고아인지 과부인지도 모르면 하나님께서 신원하여 주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그네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잠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향을 찾아가고 있는 나그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인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옷을 주시고 양식을 주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신원하여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의 옷을 입을 수 있게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게 양식을 주시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게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양식을 전혀 먹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식물을 주십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식물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더디서 주시고 있는가 하면 성경에서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 식물을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구원의 옷을 입을 수 있게 역사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인 인생들을 이렇게 사랑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도리어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부자가 되어서 그들이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누군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내가 고아가 되고 과부가 되고 나그네가 되어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식물을 주실 수 있고 또 의복을 주셔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시고 있습니다.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우리 인생 모두는 나그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이제 신약에 와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식물을 먹고 의복을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은헤를 입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있는 나그네에게 내가 입은 은혜를 전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그들을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아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종교에 빠져 있는 그들이 나그네를 사랑하겠다고 하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 열심이 사람들을 저주로 빠뜨리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가 되어 있는 그들이 나그네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소자 하나를 얻으면 배나 지옥 지식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입니다
그들은 나그네입니다 우리 인생들의 본향은 천국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본향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이 세상에 종교에 빠져 본향도 모르는 그들이 나그네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열심을 내고 있고 그것이 더욱 더 재앙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
그를 섬기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그것을 고린도전서에서 우리를 성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성전을 우리 안에 모시는 것이 섬기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로 섬기려고 하지 마시기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를 섬길 수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내가 영생을 얻지 못하면 그는 섬기는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인간의 이성에 따라ㅣ 그가 아무리 성도와 같이 살아간다고 해도 그의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지 않고 있다면 그는 여호와를 섬기는 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를 수 있다고 하지만 신약에서는 이 영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신학에서 배운 교리를 따르다보니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이 영의 일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으로 모든 것을 들어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맹세를 하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름으로 맹세를 하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네가 목도한 바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
그는 찬송이시요
성경에 찬송이라는 말씀이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찬송가를 많이 부르고 있습니다. 또 신학교라는 곳에서도 이 찬송가만을 위해서 학과가 따라 생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이 찬송이라는 의미를 모르다보니까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찬송가를 너무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는 찬송입니다
우리가 찬송가를 부르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내가 구원을 받은 그 자체가 찬송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킴으로 해서 내 안에 새 사람이 지으심을 입은 그 자체가 찬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사는 것 자체가 찬송입니다 우리가 본향을 바라고 영생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 찬송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 찬송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노래로 부르는 것이 찬송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그 자체가 찬송이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입니다
구원도 받지도 못한 사람들이 찬송가를 아무리 부르면 뭐합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도 모르고 그 도를 지키는 것도 모르고 구원도 받지도 못한 그들이 교회 안에서 거룩한 가운을 입고 찬송가를 모르면 뭐 합니까? 그것이 찬송이 아니라 내 영혼이 구원을 받은 그것이 찬송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는 찬송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노래를 불러서 찬송이 됩니까? 내 안에 새 사람이 지으심을 입음으로 해서 찬송이 됩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 기독교는 찬송가에 거의 미쳐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이 여호와를 찬송하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애굽에 내려간 네 열조가 겨우 칠십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역사를 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예표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을 하셨는데 그 자손이 이제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예표입니까?
우리 이방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도 우리에게 복음을 계시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게 성령을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살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 안에 이제 새 사람이 지으심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에 그 새 사람이 부활을 해서 천국에서 영원히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출처: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주신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