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들의 오락, 휴식 제공한 ‘애스컴극장’
발간일 2021.12.13 (월) 13:42
애관(愛觀)의 도시, 인천의 극장사 ㊺
애스컴시티와 애스컴극장
인천에서 태어나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냈고 결혼도 인천에서 했다. 당연히 인천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면서 느낀 점은 정작 인천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학창시절 자주 갔던 애관극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 정확히 말하자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극장이라는 사실을 불과 5년 전에 알 정도였다. 몇몇 분들에게 이를 여쭤보니 알고 계신 분들이 적었고 애관극장과 함께 자주 갔던 현대극장, 미림극장, 오성극장, 인천극장, 자유극장 등등 사라진 옛 극장들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본 칼럼을 통해 사라진 인천의 옛 극장들이 인천시민 개인에게는 추억이었으며, 인천에는 평생 친구였고 우리나라에는 역사였다는 것을 조명하고자 한다. |
▲ 1920년대 초 부평 산곡동 일대에 부평연습장이 설치됐다. 일본군이 포격 연습을 하던 곳이었다. 사진은 부평연습장. 출처 부평역사박물관
1920년대 초 부평 산곡동 일대에 부평연습장이 설치되었다. 일본군이 포격 연습을 하던 곳이다. 이후 1939년 이곳에 일본 육군의 병기 제조소인 조병창이 설치되었다.
▲ 부평 애스컴시티, 1948년 출처 norb-faye.
일제는 부평이 항구와 가깝고 서울과 중국을 연계하는 요충지이며 물자 조달이 쉬워서 부평을 병참기지로 삼은 것이다. 1945년 해방 후 미국 제24군단이 이 부지를 애스컴시티로 이름 짓고 운영했다. ASCOM은 군수지원사령부라는 뜻인데 Army Service Command의 약자이다.
▲ 1949년 2월 4일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49년 애스컴 요원채용 광고이다. 당시 면사무소 서기 월급이 4000원이었다. 쌀 2가마 가격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애스컴 요원 월급이 2만2000원 이상이었다.
▲ 한국전쟁 후 애스컵은 캠프마켓, 캠프테일러, 캠프 그란트 등 7개 구역으로 구성됐다. 부대 안에는 군사시설과 함께 미군을 위한 클럽, PX, 도서관, 병원 등이 생겼다. (1953년 출처 라이프지)
한국전쟁 후 애스컴은 캠프 마켓, 캠프 테일러, 캠프 그란트 등 7개 구역으로 구성되었다. 부대 안에는 군사시설과 함께 미군을 위한 클럽, PX, 도서관, 병원, 체육관, 교회, 야구장, 극장 등이 생겼다. 그런데 1973년 한국 국방부로 그 기능이 이전되면서 많은 미군병력들이 경북 왜관 등지로 이전하여 애스컴시티가 해체되었다. 이곳에는 미군을 위한 빵과 과자를 만드는 캠프 마켓만이 남게 되었다.
▲ 미군극단 공개공연을 알리는 신문기사. 1961년 7월 22일 조선일보.
“미군극단 공개공연. 대한적십자사 마련으로. 대한적십자사에서는 주한미군과의 친선교류를 위하여 미군극단 ‘애스컴’의 공연을... (중략) 상연할 연극은 미들마스와 홀의 합작인 ‘용감한 사형인’과 카워드 작인 희극 ‘레드펩퍼’다.”
이 기사를 통해 애스컴에 미군극단 애스컴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 겸 가수인 대니케이 공연소식을 알리는 신문기사. 1961년 12월 21일 경향신문.
당시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겸 가수인 대니 케이가 크리스마스를 기해 미국사병들을 위문차 내한했다. 서울, 부산, 대구 등을 순회하면서 공연을 했는데 부평 애스컴 ‘이즈 서비스 클럽’에서는 23일에 공연했다.
▲ 부평 애스컴 노천무대에 봅 호프와 라나 타나가 주한 유엔군 위문공연을 했다. 1962년 12월 25일 조선일보
봅 호프와 라나 타나가 주한 유엔군 위문공연을 위해 내한했다. 부평 애스컴 노천무대에서 막을 올렸는데 영하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미군들이 열광했다는 기사이다.
▲ 1960년대 애스컴 모습.
왼쪽이 스낵 바이고 오른쪽이 극장이다.
▲ 애스컴 내부에 있던 극장(US ARMY ASCOM THEATER).
이곳에서 상영되었던 영화필름은 인근 백마극장 등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 부평 캠프마켓 정문
80년이 흘러서야 2020년에 캠프 마켓 일부 구역이 일반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캠프 마켓을 방문했다.
▲ 캠프 마켓 B구역 안내도
▲ 당시 극장이었던 곳
해설사 분의 설명에 따르면 11번 건물이 극장과 연회장으로 사용된 건물이란다. 사무실로 표기된 것은 최종 용도가 사무실이었다는 것이다.
▲ 애스컴에서 극장과 연회장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 건물 입구
▲ 건물 뒷면
▲ 건물 설명 표지판
그리고 건물 앞 설명 표지판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조병창 본부 혹은 조병창 병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극장, 연회장, 사무공간 등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얼마 전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선정한 꼭 지켜야 할 문화유산에서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미림극장과 함께 조병창 병원이 선정되었다.
▲ 애스컴시티가 있던 곳. 시티라고 부를 만큼 엄청난 규모였다.
글· 사진 윤기형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