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6막56장(6부-3)
나는 그때부터 김사장과 밤낮을 같이 지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기가 막막하였다.
하는수 없이 법률 쪽으로는 생소하여 패소당한 서초동의 김사장 선임 변호사를 찾아갔다.
그는 항의하는 나를 무심코 쳐다볼뿐 자신은 할도리는 다했다는 표정이였다.
그때였다.
나를 스쳐가는 사람이 있었다.
작년 페이스북으로 찾아낸 군대후배 "김광○"였다.
그는 30여명의 변호사를 거느린 법무법인의 사무장이였다.
나는 김사장과 그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이에 격분한 "김광○"가 직속 대표 변호사를 소개시켜주었다.
우린 그와 변호사 선임 체결을 하고 몇달간 재판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나는 김사장집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법률적이거나 심리적인 묘소, 상대방 진술의 헛점을 파헤치는데 몇달을 소진하였다.
내 인생중 대입 시험 치룬 이후 가장 두뇌를 많이 쓴 케이스 였다.
지성이면 감천 이랄까?
항소한 우리는 개척교회의 김목사로부터 피해액 1억2천만은 설득력이 부족하여 지불할 필요가 없으며, 원고의 내용처럼 2억원 원금과 변호사 비용과 법정 이자까지 받게되니 김사장은 하늘로 날아갈듯 기뻐하였다.
내 인생중 가장 벅찬 일이였다.
꺼져가는 한 가정의 몰락에 기적을 만들어 주었으니 내 인생 일대의 미담으로 남을것이다.
이후 김사장은 자금이 풍부하여서 인지 그의 꿈이였던 선산에 "블○하우스"라는 펜션을 개장하였고 도로가에는 나즈막한 자신의 보금자리를 짓고 오손도손 살고 있으니.
이 어찌 기적이 아니란 말이요..
내가 그를 살린겨..
내가 그집안을 살린겨..
내 인생 최고의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