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6] 강정자 (姜禎資) - 말씀따라 모든 사연 뒤로하고
14. 경남지구장으로 발령을 받아
1 1965년 11월 3일 남편이 경남지구장 발령을 받아 부산으로 가게 됐다. 교회는 범일동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부임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참아버님께서 순회를 오셔서 1965년 12월 14일 범일동 눈물의 바위를 성지로 정해주셨다.
2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시면서 앞으로 세계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그 말씀이 하루하루 살기 힘든 시절에 그저 우리를 격려하기 위한 말씀인 줄 알았다.
3 하지만 지금 각국의 선교사들과 세계의 사람들이 그 성지를 찾아가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면 참아버님은 우리보다 먼 미래를 바라보시는 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4 범일동에 있는 동안 은혜롭기는 했지만 교회가 너무 외각에 위치해 있는 탓에 전도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부민동에 위치한 당시 도지사의 관사 바로 앞집을 전세로 얻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전도에 나섰다.
5 전도를 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다가 야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와이셔츠 공장에 다니는 식구에게 공부를 가르쳐 줄 테니 공장 직원 몇 명을 데리고 저녁에 오라고 했다.
6 식구가 데리고 온 공장 직원들에게 영어와 한문을 가르치기 시작해 나중에는 원리 말씀을 전했다. 그때 공부를 하다가 전도된 식구로 박정해, 한정희씨 등이 있다.
7 전국적으로 총 파는 운동이 전개될 때 우리는 부산 광복동에 총포사와 사격장을 운영했다.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빚을 내어 총포사와 사격장을 냈는데 돈이 줄을 서서 들어오듯이 장사가 잘됐다. 그때 크나큰 물질 축복을 받았다.
8 그래서 전셋집으로만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초량역 건너편에 기성교회 장로가 살던 별관이 딸린 양옥집을 사서 부산경남 지구 본부로 사용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집을 처음으로 마련한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9 남편은 경남지구장을 하면서 경남 승공 계몽단과 승공연수원을 개설하고 경남 일대를 돌며 승공 이론 교육을 했다. 그 성과로 1966년 경찰의 날에 통일교회 지구장 이름으로 내무부 장관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그때 인연 된 사람으로 정성모 장관이 있다.
10 당시 부산 경남 경찰국장을 지내고 있던 정성모 국장은 남편과 연결이 되어 우리를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다. 훗날 정성모씨는 치안국장 시절 청파동 교회로 관용차를 타고 참부모님을 뵈러 찾아오기도 할 만큼 깊은 인연을 맺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