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 의과대학에서 외과 수업을 받았던 첫날을 떠올려본다.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정신이 번쩍 든다. 고故 장기려 박사님의 첫마디가 지금도 깊고 강하게 나를 깨운다. “우리의 병을 치유하는 것은 80%가 하나님의 뜻이다. 나머지 10%는 의사가 낫게 하고, 남은 10%는 약이 도와준다. 그러니 너희들이 고쳤다고 자만하지 마라.”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늙은이도, 젊은이도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공평하게 한 번씩 죽는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으로 남은 삶을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두려움에 잡아먹히면 병을 다스릴 수 없게 된다. 현명하게 위기를 극복한, 평범하지만 용감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준비되어 있다. 그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용기와 위로를 받는다면, 그래서 독자 여러분의 삶에 작은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프롤로그 - 한국인 암환자의 치유성적이 유독 저조한 이유」
이와는 대조적으로 치료가 잘되는 특정 직업군과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 서울보다는 지방, 도시보다는 시골, 많이 배운 사람들보다는 좀 덜 배운 선량한 사람들이 치료성과가 좋다. 생각이 너무 많고 계산적인 사람들보다는 순박하고 남을 잘 믿는(가끔 욱하는 기질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의사의 말을 잘 따르고 성실하게 치료에 임한다. 또한 성격적으로 명랑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치료과정을 잘 견딘다. 그중에서도 소위 ‘깍두기’로 통하는 사람들의 순수함은 의사를 탄복시킨다.
“띠리링~”
“김 박사님, 지가 낼 그리 갑니더. 병원하고 젤루 가차운(가까운) 골프장이 있으면 말씀 좀 해주이소.”
“띠리링~”
“박사님! 아, 주무셨습니꺼? 지송합니더. 병원 근방에서 젤루 물 좋은 술집이 어딥니꺼? 저희 형님이 좋아하시는 양주가 따로 주문되는지도 알고 싶고요오. 발렌타인 머시기라고….”
이 정도면 ‘이 사람이 지금 놀러오는 줄 아나?’ 하고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환자들은 병원에 입원을 한 뒤에도 매일 먹고 놀 궁리만 한다. 치료 때문에 침울해하거나 슬퍼하는 기색도 없다. 이들은 오로지 매사가 재미있고 명쾌하다.
---p.21 「검사 환자보다 조폭 환자가 더 잘 낫는 이유」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한국의 암 전문병원이 보유한 의료기기와 의료진의 실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미국에 있는 나의 동료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더구나 저렴한 의료비 덕택에 한국의 많은 암환자들이 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치료혜택을 받고 있다. 게다가 한국인 의사들은 거의 다 해외 유명 병원에서 유학을 마쳤고, 한국의 암 전문병원은 환자에 대한 실험약 투여율도 세계적인 수준이다(예컨대 서울대병원의 경우는 세계 4위다).
한편 한국과 미국의 의료환경을 비교해보면, 의료수준은 거의 동등한데 미국의 경우 검사비와 약값이 한국에 비해 10배 가까이 비싸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암환자들은 이런 실정을 잘 모르는 눈치다. 미국에서 평가하는 한국의 암치료 수준은 눈이 부실 지경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왜 한국의 암환자들이 동일한 치료를 받으러 10배나 비싼 엠디 앤더슨에 오는 걸까? 나는 이것이 10년 넘게 궁금했다. 한국의학협회조차 매년 나에게 한국의 암 전문병원이 갖춰야 할 덕목을 알려달라는 공문을 정중하게 보내온다. 이미 다 갖추고 있는데 뭘 더 갖추겠다는 것인지, 솔직히 이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좀 답답하고 안타깝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p.37 「한국인 환자는 한국인 의사가 잘 고친다」
환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병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와 어떤 상황에서든 웃을 수 있는 여유다. 내가 의사가 된 이후로 지금까지 몸으로 직접 깨달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에 걸리면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군다. 환자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태도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런다고 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 왜 건강을 잃게 되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과도한 걱정이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암을 키운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니 계속 그런 정신 상태를 유지하고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시작부터 암과의 싸움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살고 싶은 욕구가 들면 내가 왜 꼭 살아야 하는지를 짚어보아야 한다. 때로는 환자의 각오나 마음 상태가 기적을 일으킨다. 불행한 마음은 불행을, 희망적인 마음은 희망을 가져온다. 당연히 전자는 스스로를 더 큰 불행에 빠뜨리고, 후자는 스스로를 구원한다.
---p.45 「1%의 희망이 기적을 만든다」
한국의 암환자들은 대부분 암선고를 받으면 회사를 그만두고, 쉬어야 한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집에 가두는 것 같다. 그것은 쉬는 것이 아니라 고립이다. 나름대로는 집에서 쉬는 것이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여긴 듯하다. 하지만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가 암과‘함께’가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가령 고혈압이나 당뇨증상이 있다고 해서 하던 일을 그만두는 사람은 없다. 일을 계속 하면서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자신을 돌보면, 세포도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과식하면 세포가 빨리 늙는 것처럼 휴식도 과도하게 하면 안 좋다. 아무런 긴장감 없이 마냥 쉬기만 하면 기분도 처지고 기운도 점점 없어진다. 몸에 암세포가 생겼다고 해서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생각’ 블록으로 성을 쌓고 허물기를 반복하다 보면, 스스로 체념하고 소심해지기 마련이다. 혼자서 발전시키는 생각은 자꾸만 부정적인 쪽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나쁜 감정이나 고통을 외부로 흘려보내야 한다.
---p.78 「우리 사회는 암과 ‘함께’ 가야 한다」
식탁은 마음만 먹으면 일상에서 가장 손쉽게 개선할 수 있다. 흰쌀밥은 온전히 흰 설탕 덩어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주 앉아서 식사를 하는 사람이 숟가락으로 흰 설탕을 푹푹 퍼서 먹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무섭지 않은가? 실제로 쌀밥을 오래 씹어보면 단맛이 난다. 한번은 호기심이 발동해 흰쌀밥으로 식사를 하고 나서 혈당을 체크해보았다. 잡곡밥을 먹고 나서 혈당을 측정했을 때와 확연한 차이가 났다. 당연히 흰쌀밥을 먹었을 때는 혈당이 많이 올라갔고, 잡곡밥을 먹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한국에 머물 때 난감한 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외식을 하러 식당에 가면 대부분 흰쌀밥이 나온다. 보리밥이나 잡곡밥이 나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심지어 병원에서도 환자들에게 흰쌀밥을 주는 곳이 있다. 처음에는 상식 이하의 모습에 내 눈을 의심하기도 했다.
---p.115 「흰쌀밥의 화학성분 SUG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