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택 교수(고려대 철학과)가 11월 15일 열린 ‘대승불교 세미나’에서 발제한 ‘현대사회에 구현해야 할 한국불교의 모습’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에 대한 흥선 스님(전 불교중앙박물관장)과 허정 스님(불학연구소장)의 날카로운 토론이 자칫 밋밋하게 끝날 것 같았던 세미나 분위기를 후끈 달궜다.
조성택 교수는 이날 발제를 통해 “조계종이 선종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대승으로 확장해야 하며, 현대사회 문명을 비판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시민보살’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한국불교의 대표종단으로서 위치를 생각할 때 조계종은 선종을 넘어 대승불교로 확장돼야 하며, 더 나아가 한국불교사의 제종(諸宗)과 오늘날 한국불교인들의 다양한 관심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세미나 참석자들은 공감을 표했다.
또한 조 교수는 한국불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으로 ▲깨달음 지상주의 ▲과거에 갇혀 오늘과 내일의 전망이 불투명함 ▲초기불교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교리와 지식 중심의 불교신행을 제시하고 이의 시급한 개선을 촉구했다.
또한 현대사회에서 불교가 해야할 바람직한 역할을 ▲문명비판의 교사 ▲화쟁의 실천 ▲시민보살의 양성 ▲환경과 전생명적 연대의 실천 ▲수행의 일상성과 감성의 복권 등 5가지로 정리해 제시했다.
조성택 교수의 발제에 대해 흥선스님이 토론하고 있다.
지정토론에 나선 흥선 스님은 전체적으로 조 교수의 지적과 대안제시에 동의와 공감을 표하면서도, 조목조목 자신의 의견을 날카롭게 개진했다.
“현재의 조계종이 지닌 선종의 자기정체성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볼 때 정당하고 올바르며 바람직한 것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한 흥선 스님은 “저는 적어도 지금의 조계종은 (선종의 정체성을 대승으로 확장해야 할 시점이라기보다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깊은 자기성찰이 필요하고 해체에 가까운 자기 혁신을 통해 새롭게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조 교수의 견해에 의문을 제기했다. 자기 정체성을 찾은 뒤에야 비로소 ‘확장’이나 ‘연장’이 가능하다는 것,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놔둔 채 확장과 연장이 가능한지, 또 그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라는 것이었다.
흥선 스님은 또 조 교수의 한국불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를 나타냈다. 지적의 내용에 공감하지만, 자신은 더 비관적 진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흥선 스님은 깨달음 지상주의라고 했지만, 그것을 향해 간절하게 매진하고 있는 수행자가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되물었다. 대부분의 수행자는 ‘깨달음’이라는 그늘 아래서 ‘깨달음’과는 전혀 무관하게 안일한 삶을 살아가거나, 심지어는 ‘깨달음’을 구명도생의 방편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일갈했다. ‘과거에 갇혀 있다’는 조 교수의 진단에 대해서도 스님은 회의적 입장을 보였다. “과거에 갇혀있다고 했지만, 그 과거조차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한 것일까, 회의적이며, 따라서 그 과거를 비판적으로 계승한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참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초기불교에 대한 오해’에 대해서도 흥선 스님은 “차라리 오해일지라도 그것을 알려는 노력이라도 활발했으면 좋겠다”고 다른 현실인식을 나타냈다. ‘교리와 지식 중심의 불교신행’ 역시 문제는 문제이겠지만, 일단 교리와 지식만이라도 정확히 이해하고 공유하면 좋겠다고 역시 정반대의 불교현실 인식을 밝혔다.
흥선 스님은 조성택 교수의 ‘현대사회에서 불교가 해야 할 바람직한 역할’ 제시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흥선 스님은 “저는 화쟁을 ‘원칙 있는 다툼과 갈등의 조정이나 중재’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해가 올바른 것인지, 만일 옳다면 그 기준이나 원칙은 어떻게 설정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며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이나 ‘4대강 살리기’ 같은 경우 불교적 관점에서 비추어 볼 때 이들은 폐기되어야 마땅하고, 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소견인데, 조성택 선생이 생각하는 화쟁은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현안 속에서 화쟁은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지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성택 교수는 이에 대해 “(주제발표에 대해) 진솔한 진단을 해주신 것은 고맙지만, 동시에 토론의 방향이 지나치게 출가자의 문제로만 받아들인 것 같아 섭섭하다. 주제발표는 사부대중 모두의 문제를 거론한 것”이라고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조 교수는 다만 화쟁의 원칙이나 기준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답변했다. 화쟁은 ‘결과에 대한 철학’으로 많은 분들이 생각하고 있지만, 화쟁은 ‘과정, 즉 프로세스(Process)으로서의 철학’이며, 강정마을의 예를 들면서 각자의 주장이 다 맞기도 하고 다 아니기도 한, 즉 개시개비(皆是皆非)의 문제이므로 화쟁의 기준을 결과에 두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의 답변에 대해 흥선 스님은 다시 ‘시화호’를 예를 들어 질문을 이어나갔다.
“시화호 공사를 통해 바다를 막아서 땅을 만들었는데, 그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논란은 사라졌고, 잘못된 공사였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불교가 불교적 관점에서 올바르게 방향을 정해가는 것이 화쟁의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멀지 않은 시기에 옳고 그름이 드러날 문제에 대해 그때그때 불교가 적절한 위치에서 적절한 발언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옳은 것, 불교적 가치에 맞는 것을 정해 그 길을 제시하는 것이 화쟁의 참 의미가 아닐까?”
이에 대해 조성택 교수는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화쟁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약자가 틀렸다면, 그래도 약자의 편에 서야 하는가?”는 객석의 질문에 대해서도 “그래도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허정 스님은 조 교수의 초기불교에 대한 관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팔리어 경전에 기초한 초기불교가 부처님의 재세시의 불설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불멸후 오백년 정도의 시기에 당시 스리랑카 분별상좌부가 이해한 불설의 내용이며, 초기불교가 곧 부처님 재세시의 근본불교(오리지날 불교)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세계 불교학계의 일반적 관점”이라는 조성택 교수의 주장에 대해 초기불교 전공자인 허정 스님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허정 스님은 “팔리어 경전보다 더 이른 시기에 결집된 불전이 없는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팔리어 경전에 기초한 초기불교가 부처님의 원음에 가장 가깝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개진했고, 이에 대해 조성택 교수는 “폴 해리슨의 ‘주류불교’, 즉 간다라어로 된 정전(正典)의 사본들이 상당량 발견되면서 팔리어 경전의 위상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최근 흐름”이라는 점을 거듭 밝혔다.
한편 이번 세미나 기조발제를 맡은 자정과 쇄신 결사추진본부장 도법 스님은 “한국불교의 진면목은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실현하는 본래부처의 길인 구세대비의 대승불교이고, 대승불교의 인간상은 대승보살”이라며 “불교는 깨달음을 실천하는 종교로, 일상생활에서 지극정성으로 염불하거나 화두를 들고, 진언을 외거나, 스스로 낮추고 상대를 배려하고, 고마워하며 단순소박한 삶을 생활화하면서 이를 사회화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해야 하며, 그것이 본래부처의 모습”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