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북 고향 동기들
" 야, 너 고향이 어드메냐 " " 내래 가설나므레 니북 황해도다, 네래 와그라는 거가, 야는 " 오늘따라 니북 고향사투리가 그립다. 노객의 근무처인 연세한강병원 약제실을 평소보다 20여분 빨리 빠져 나온다. 2019년도도 닷새밖에 남지 않은 날로 모처럼 영식이와 수남이를 종로3가역 근처 DR식당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다. 저녁 여섯시지만 벌써 겨울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찬바람에 옷깃을 여밀며 겉모습은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선다. 영식이는 중고등학교 동기인데 만나본지가 40년은 훌쩍 넘긴 것 같다. 중학동기인 쓰나미(수남)이는 영희국민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쓰나미는 가끔씩 둘이 만나면 이곳에서 쐬주 맥주로 지나온 삶의 희로애락을 토하는 절친이기도 하다. 영식이는 어떤 모습일까. 두 녀석 모두가 대나무처럼 올곧은 삶의 정도(正道)를 걸어왔으며 앞으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친구들이 아닌가. 약간은 셀레임도 어쩔수는 없는 모양이다. 10대의 해맑은 여린 까까머리 소년시절이 새롭기만 하다. 식당의 분위기는 옛 한옥을 그대로 식당으로 변신시킨 모습이다. 30여평 정도의 식당 방마다는 주객(酒客)들로 빈틈이 없다. 거개가 모두 종로3가와 어울리는 흔히 말하는 고집불통 막무가내의 꼴통 노털들이라 하면 어떨까. 역시 세녀석들도 예외는 아니지 않는가. 어디에 녀석들이 있는가. 중절모를 쓴 쓰나미가 손짓을 한다. 맞은 편 앉은 녀석이 영식인가 보다. 검은 운동모자를 눌러쓰고 폰에 빠져있다. " 야, 영식이구나, 얼마만이냐 " 반갑게 서로 악수를 하는 순간 지난 날의 추억이 바로 어제처럼 밀려온다. 쐬주와 막걸리 안주는 이집의 대표메뉴인 수육과 녹두빈대떡 모듬전 그리고 칼국수가 한국토속 음식들이다. 오마니가 해주시던 녹두빈대떡이 새삼 가슴을 저민다. 언제나처럼 백년지기 벗들과 주고 받는 술잔에서는 삶의 무게를 느낀다. 어찌 밝은 햇살만이 비추지는 않았을터이다. 너와 나 모두가 누구에게도 말못할 말하기 싫은 자신만의 삶의 굴곡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군대시절의 얘기이며 학창시절의 이야기도 빠질 수는 없다. 여타 동기들의 안부와 근황도 식탁의 메뉴이기도 하지 않는가. 고교동기생 180여명 중에 벌써 우리들 곁을 떠난 이름을 열거하니 20%를 상회하고 있다. 우리 나이 벌써 70대 후반을 훌쩍 넘겼으니 어찌보면 당연지사가 아닐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그저 아쉬움이 가슴을 메우기도 한다. 그냥 어릴 때 친구로만 생각던 벗들이 알고보니 셋이 모두 황해도가 고향인 실향민들이다. 봉산탈춤으로 유명한 황해도 봉산군과 심청이가 살던 황주군이 세동기들의 고향이라니 정말 깜짝 놀라는 순간이기도 하다. 효녀 심청이가 장님인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하게 위하여 인당수 바다에 몸을 날린 곳도 황해도이다. 황해도 장산곶과 백령도 북단 사이의 바다가 바로 인당수 바다인 그곳이다. 심청이가 다시 연꽃으로 세상에 환생(還生)한 곳이라 하여 백령도 연화리 앞 바다에 연화봉(蓮花峰)이라는 바위도 있다. 황해도는 이처럼 효심이 지극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인 셈이다. 1951년 1월4일 같은 날 셋은 각자의 부모님 품에 이끌려 남하한 동기들이다. 새삼 고향이 그립고 돌아가신 부모님 얘기에 말없이 술잔을 부딪친다. 민족사에 영원히 씻을 수 없는 6.25 한국동란(動亂) 이런 비참한 역사가 없었다면 이 자리의 세명의 친구들은 어떤 모습이련가. 어쩌면 봉산군에 있는 초등 중등 고등학교 모두가 같은 학교 동창들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이런 생각은 부질없이 마음속은 더욱 혼란스럽기도 하다. 70여년이 흐른 세월이 흘렀건만 언젠가는 통일이 되리라는 희망을 우리 실향민들은 버릴 수는 없을 터이다. 어느 날엔가 꿈만 같던 남북통일의 나팔소리가 삼천리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는 그날이 올 것이다. 그 순간이 오면 쓰나미 영식이 정남이 이 자리의 황해도 고향친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 쓰나미야 ! 영식아 ! 어디에 있던지 우리들 니북친구들아, 아프지 말자꾸나 " "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려는가마는 지팡이를 짚고라도 일어나거라 , 우리들에게는 아직은 마지막 할 일이 남아있지 않은가 " 오늘과 같이 술잔을 부딪치며 장산곶마루 앞 바다 인당수를 헤엄쳐 백령도를 한바퀴 돌아서 백두산으로 향하리라. " 남북통일만만세(南北統一萬萬歲)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영원(永遠)하다 " 목청껏 피를 토하다 죽어도 여한(餘恨)은 없지 않을까.
2019년 12월 26일 무 무 최 정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