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제 15회 월드컵은 축구의 불모지 미국에서 치러지게 되었다. FIFA는 LA올림픽(1984)을 통해 거대한 미국 시장을 보게 되었고 남아메리카와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도 축구를 발전시키고자 했다. 1994년 6월 17일, '축구의 역사를 만들자!'라는 표어와 함께 성대하게 시작되었지만 당시 미국 국민들의 70%는 월드컵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 대회에서 미국의 성적은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기네 나라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승점 4점으로 조 3위였으나 행운을 잡고 16강에 진출했다.
경기가 끝난 후엔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다. 미국 전에서 자살골을 넣은 콜롬비아의 에스코바르 선수가 귀국 후에 나이트클럽에서 팬들에게 총살당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미국 외에 화제가 된 팀은 불가리아를 꼽을 수 있다. 과거 5번이나 출전했지만 1승도 올리지 못했었으나 준결승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는 우리 나라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출전했고 아프리카에서는 나이지리아, 모로코, 카메룬이 출전했다.(사우디아라비아와 나이지리아만이 16강 진출)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은 연승 행진으로 관중들을 즐겁게 했고 16강을 건너 8강에서 히딩크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네덜란드와 만나게 되었다. 이 경기에서 브라질은 3:2로 승리, 4강까지 올라갔다.
이탈리아 vs 불가리아의 4강전에서는 이탈리아가 2:1로 승리하여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으며, 브라질 vs 스웨덴의 4강전에서는 브라질이 1:0으로 이겨 이탈리아와 브라질이 결승에서 맞붙게 되었다.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결승전은 그야말로 창과 방패였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경기는 치열했고, 정규 경기와 연장전에서까지 승부를 못 내 승부차기로 우승팀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 때, 이탈리아 바조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브라질이 3:2로 월드컵을 차지했고, 그는 비운의 스타로 축구사에 기록되었다. 브라질이 4번째로 우승하자 상파울로 등에서는 우승 축하 잔치 중 갖가지 사고로 27명이 사망했다. 선수들은 총 17톤에 달하는 전기 제품을 손에 들고 의기양양하게 귀국했으며 프랑코 대통령은 선수들의 선물에 대해 세금을 면제해주겠다고 발표했으나 국세청장이 항의 표시로 물러나자 바로 발표 내용을 바꿨다 한다.
-우리 나라의 본선 진출-
94년 우리 한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한마디로 드라마였다. 본선을 앞둔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은 한국, 북한,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로 압축되었다. 이들 각 국의 중간 성적은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1승 2무(승점:4), 일본과 이라크가 1승 1무 1패(승점:3), 북한과 이란이 1승 2패(승점:2)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열렸고 한국이 1:0으로 지고 말았다. 그 결과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승점 5점으로 선두가 되었고 한국, 이란, 이라크는 승점 4점으로 공동 2위가 되었다.
한국:북한, 일본: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의 경기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한국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경우는 북한을 이긴 뒤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 중 한 곳이 지거나 비기는 경우뿐이었다. FIFA는 경우의 수에 따른 승부 조작을 방지하기 위해 1993.10.28 밤 10시 15분부터 카타르에서 마지막 세 경기를 동시 진행시키기로 했다.
한국:북한 전에서는 2:0으로 한국이 앞서고 있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이란 전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2:0으로 앞서고 있었고, 일본과 이라크의 경기에선 일본이 후반 24분 나까야마의 두 번째 골로 2:1인 상태였다. 결국 우리나라는 북한에 3:0으로 승리하며 경기를 마쳤다. 그러던 중 일본과 이라크의 경기 종료 10초 전, 이라크 팀 선수의 헤딩 골로 경기는 2:2. 이로써 우리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본선에 힘겹게 올라갈 수 있었다.
본선에서의 성적을 보자면 첫 경기인 스페인과 2:2로 승점 1점을 획득했고, 두 번째 경기인 볼리비아와는 0:0. 그리고 6월 28일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팀 독일과의 예선 최종전. 전반 11분 클린스만의 선제 골, 전반 18분 리에들레 선수의 골, 그리고 35분 헤슬러 선수의 골이 연달아 터졌다.(한국 0-3 독일) 그러나 후반 7분에 황선홍의 첫 골이 터지고, 후반 18분 홍명보의 시원한 중거리 슛으로 3:2가 되었다. 하지만 독일 측의 핸들을 김주성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주심이 받아들이지 않아 3:2로 경기종료. 우리나라는 16강에 올라가지 못했다.
한국은 이 때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강팀들을 맞아 2무 1패, 4득점 5실점이라는 월드컵 출전 사상(2002년 제외) 가장 좋은 기록을 세웠고 세계로부터도 큰 박수를 받았다. 이것은 2002 한,일 월드컵 유치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