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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구원’이라는 말은 사람마다, 처해진 상황마다 그 의미가 다양합니다.
‘구원’이란 화마로부터 생명을 건지는 것입니다.
중병을 선고받은 이들에게 구원은 병으로부터 나음을 입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파산한 사람에게 구원은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 받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로부터 고통 받는 사람에게는 관계의 회복이 구원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죄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모습에서 변질된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귀하게 여겨 사랑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지만 마귀가 사람의 마음을 도둑질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자기만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만 사랑하니 불행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내 맘에 맞지 않거나 이익을 잃어버리면 싸우고 미워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마귀에게 마음을 도둑질 당하면 영혼이 피폐해지고 메마릅니다.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사랑을 빼앗기게 됩니다. 사막처럼 바짝 말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마치 여름 가뭄에 갈라진 논밭처럼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그 영혼을 관통하여 흐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메마르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힘을 내! 왜 이리 나약한 거니? 마음을 다잡으라니깐’
그러나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 그 사람인들 왜 벗어나고 싶지 않겠습니까? 온갖 노력을 해보지만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인데 자기 마음대로 안 되어 더욱 괴로운 것입니다.
“난 속에서부터 고장 났다.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 나는 날 미워했다.”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탄의 덫에 마음 도둑질 당했습니다. 그 마음을 찾아오려 해도 자신의 힘으로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을 내리길 ‘나약한 나 자신이 문제’라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자기를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악한 영의 도둑질에 영혼을 빼앗긴 것인데 스스로를 자책하고 공격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유서는 ‘나를 살려 달라’는 처절한 구원의 요청입니다.
육체가 병들고 아픈 것도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마음의 병은 더욱 더 우리를 괴롭게 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언제,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어디서 치료해야 하는지를 잘 모를 뿐 아니라 병에 걸려 있는지조차 모르게 우리의 영혼을 장악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에 물들어 병들고 아픈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없으십니까?
고독으로부터 구원이 필요한 분이 없으신가요?
두려움과 염려로부터, 우울한 마음으로부터, 불안감으로부터, 상처와 그 흔적인 아픔으로부터 실패로부터, 영혼의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 없으신가요?
주님께 마음을 열어, 입을 열어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제 마음 아시지요? 저를 도와주세요. 제 힘으로 안 됩니다. 이제 제 힘만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주님, 저를 도우소서.’
메말라 갈라지고 피폐된 논과 밭에 지하수를 끌어 물을 대는 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근본적인 해갈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하늘로부터 비가 쏟아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에 풍성한 생명이 흘러 사랑과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풍요로운 삶을 살려고 하면 하늘로부터 마음에 부어지는 은혜의 비가 내려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로 물든 우리 영혼에 ‘은혜의 단비’를 부어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영혼이 행복하고 마음이 풍성한 삶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셨나요?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1. 예수님의 구원방법 - 자기를 주셨습니다.
“자기를 비워”“종의 형체를 가지사”“자기를 낮추시고”“십자가에 죽으심이라”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구원의 산 제물로 주셨습니다.
생명을 주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지난 2014년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미국인 36살 엘리자베스 조이스 씨는 딸을 임신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의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임신한지 한 달 만에, 과거 투병했던 암이 재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위암 치료를 받으려면 뱃속의 아이를 낙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생사의 기로에서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아이의 생명을 택하며 치료를 중단했습니다. 모든 의료진은 아기도 산모도 위험할 뿐이라고 말렸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투약을 중단하고 급속히 퍼지는 암으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뱃속의 아기를 출산하였습니다. 아기를 출산 한 후, 6주 후에 그녀는 심장까지 전이되어 숨을 거두었습니다.
단 하나뿐인 생명을 주어 또 다른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어머니보다 더 위대한 어머니가 어디 있습니까? 엘리자베스의 희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생명으로 생명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예수님의 생명을 주어 우리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주셔서 나의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나에게 영생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주심으로 또 다른 우리들의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2. 예수님의 구원방법 - 사랑을 주셨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살 찢기고 피 흘려 죽으신 것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구원하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사랑’의 상징이자 머리 속의 이론이나 교리가 아닌 실제적인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 사랑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의인이기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인 것을 알고도 사랑하신 것입니다. 사랑스럽기 때문이 아닙니다. 죄와 허물로 찢어지고 더럽혀진 그 모습 그대로 품고 사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그 분께서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사랑하고 가르치고, 먹이고 함께 했던 제자들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십자가 처형의 고통 중에 계신 예수님을 피해 도망갔거나, 숨어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눅 23:34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런 후에 “다 이루었다.”(요 19:30)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까?
가르친 제자들은 배반하고 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습니다. 십자가에 비참하게 못 박혀 죽어가고 있습니다. 로마병정들을 조롱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침을 뱉으며 멸시하는데 무엇을 다 이루셨습니까?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이루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셨다고 외치신 것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제자들, 백성들, 병정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신 십자가!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사랑은 구원의 시작이자 마지막입니다.
눅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사랑, 영혼을 구원하는 사랑은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을 넘어서 사랑할 수 없는 이를 사랑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성도님들은 모두 주님을 모시고 참된 성탄의 기쁨을 누리시길 원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한 주간만이라도 조건 없이, 차별 없이, 사랑하고 용서해 보시기 바랍니다. 품고 이해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이들이 손을 내밀기 바라지 말고, 먼저 손을 내밀어 보시기 바랍니다. 곁에 있는 이들이 마음을 열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의 구원방법 - 우리 마음에 오셨습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님은 오늘 날, 성령님 안에서 우리 마음에 임재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마음에 오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오신 것을 알고 그 분을 영의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우리들은 구원의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이것을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주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함께 계십니다. 단지 우리들이 죄, 염려와 두려움, 세상 사랑에 빠져 우리 마음에 임하신 주님을 보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 마음에 임하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영의 눈이 활짝 뜨이는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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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탄생 (마 1:18-23)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시간 예수님의 “특별하신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고고학자요, 탐험가요, 노아의 방주를 발견한 바 있는 론 와이어트(1933~1999년) 박사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 아래 예레미야 동굴에서 언약궤를 발견한 이야기는 대단히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 언약궤 위 동굴 천정에 구멍이 나 있고 피의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그 피가 흘러내려온 자리를 추적해 보니 놀랍게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진 자리였고, 그 피가 어떤 피일지 유대연구소에 의뢰했는데 거기서 놀라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 채취한 혈액은 아직도 살아있었고, 더 놀라운 것은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염색체는 발견할 수 없었고, 오직 모친이 처녀일 때만 나타나는 염색체인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요즘처럼 복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마디로 예수님의 탄생은 보통 생육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예수님의 탄생은 특별한 점이 많습니다.
1. 예언대로 오셨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했습니다. 사11:1에도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 했습니다.
사9:6에는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에는 예수님에 대해 456회나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모세오경에 75회, 선지서에 243회, 기타 138회, 이 예언대로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런 분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1년도 아니고 창3:15이니까 수천 년 전부터, 그리고 한 사람에 의해서도 아니고 모든 선지자들과 성경을 통해서, 한 번도 아니고 수백 간접으로는 수천 번을 통해서 예언되었습니다.
구약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매일 했던 제사나 절기나 예물 등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예표요 오실 예수님을 설명하고 영접하기 위한 예행연습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빠지면 그것은 빈껍데기일 뿐입니다. 요셉 한 사람 이야기에 나오는 것만 풀어 봐도 100가지도 넘는 예수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메시아의 어디서 나실 것, 누구에게 나실 것, 어떻게 나실 것, 누가 먼저 나서 그 앞길을 예비할 것, 어떻게 행하실 것, 누구에게 잡히시고 어던 고난을 당하실 것, 어디에 묻히고, 어떻게 살아나시고, 그 후에 될 일까지도 정확해서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구원의 진리를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 위해서 일 뿐 아니라 아무나 그리스도 이름을 도적질하여 속이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100가지가 맞아도 한 가지만 틀린다면 그는 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100가지 중 100가지가 틀린 사람들이 진리를 왜곡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는데 오직 예수만이 성경에 예언대로 오신 분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 탄생은 남자 없이 나셨다는 것입니다.
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예언은 예수님께서 나시기 7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에 의해서 한 예언인데 아기가 완전한 처녀의 몸에서 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이 사건은 인간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사건입니다.
미국 TV 토크 쇼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래리 킹(Larry King)에게 누군가가 물었답니다. "당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과 다 인터뷰를 해왔는데, 만일 전 세계 역사를 통해서 딱 한 사람만 선택해서 인터뷰를 하라고 한다면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그러자 래리 킹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무엇을 묻고 싶으냐?"는 질문에, "정말로 처녀의 몸에서 나셨습니까? 이것을 묻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신비한 사건이 바로 동정녀 탄생입니다.
눅1:34-35에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한 대로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성령으로 나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성자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태로 들어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백세가 되고 사라의 나이 구십 세라 경수가 끊긴지 오래 되어 아들을 낳았어도 기적이라고 하는데 마리아는 남자 없이 예수님을 낳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어 의롭게 오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고 말씀합니다.이것이 신비요, 희생이요, 사랑이요, 겸손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 이것은 사람이 짐승이 되는 것보다 더 큰 비하입니다. 벌레보다 못한 우리 인간이기에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은 사람이 벌레가 되는 것보다 더 자기를 낮춘 사건입니다.
어느 목장에 이리 떼가 나타나 양들을 무참히 물어 죽였습니다. 양들은 놀라 사방으로 도망쳤습니다. 주인이 양떼를 찾아 나섰지만 이리에 놀란 양들은 인기척만 나면 다 도망갑니다. 강제로 한두 마리 붙잡았지만 주인도 몰라보고 앙탈을 부립니다. 양들을 사랑했던 주인은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습니다.
그것을 본 아들이 "아버지! 제가 양들을 찾아오겠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양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양을 찾아다녔습니다. 양을 만날 때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양처럼 소리를 내고, 양처럼 기어 다녔습니다. 그렇게 해서 양을 12마리나 찾았지만 머리는 가시에 찔려 피투성이가 되었고 목은 쉬고 손과 발은 찢겨져 결국 아들은 양을 찾다가 입은 상처로 죽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피 흘린 목자는 누구시겠어요?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된 사건은 예수 말고는 없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명한 유대의 역사학자 요세퍼스는 "그 무렵에 예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워낙 이적도 많이 행하고 훌륭한 선생이어서 사람이라고 여겨지기 어려웠다. - 그를 십자가에 매달았지만, 그는 3일 만에 부활하여 그를 따르는 무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다."고 기록했습니다.
4.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제가 예수 믿을 때 맨 처음 배웠던 성경 구절입니다.
여기 “독생자”는 헬라어로 “모노게네스”라고 합니다. “모노”, “하나”, “게네스”, “생명”, 하나밖에 없는 생명, 여러 아들이 있는 데 그중에 하나가 아닙니다. 딱 하나 밖에 없는 그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살리려고 준 것이 아니라 재물로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말이 쉽지 어찌 쉬운 일입니까?
누군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을 낳았습니다. 보자기에 싸여 새근새근 자는 모습이 너무나 예쁩니다. 그런데 두 남자가 오더니 “아들 낳은 것을 축하합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저희들이 가져가기로 오래전에 예약되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의과대학생들인데요. 이 아이를 연구용으로 쓰려고 합니다. 이리 주세요.” “아니, 무슨 이야기입니까? 연구용이라니. 누가 그런 약속을 했어요?” “누구라니요? 당신 아버지예요. 당신 아버지가 손자가 태어나면 의학발전을 위해 손자를 바친다고 약속했어요. 여기 증서가 있잖아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버지가 약속했다고 줄 사람이 있습니까? 주라는 사람이나 달라는 사람이나 다 미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에 빠진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 손자 손녀 귀하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 사랑하는 독생자를 주신 것입니다.
5. 그리고 예수님 탄생이 특별한 것은 지금도 특수한 형태의 성탄이 계속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1:11-13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이 말씀이 오묘한 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이 글을 쓴 요한이 예수님의 성탄을 각인의 심령에서 일어나는 중생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생이란 거듭난다, 위로부터 난다, 성령으로 난다는 신학적인 용어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썩고 부패한 우리 영혼 속에 새 생명 되신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우리가 새로 태어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치 예수님이 우리 속에서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작은 누룩이 가루 서 말을 모두 부풀게 하듯 우리 인생을 온전히 새롭게 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중생은 위대한 복이요, 또 신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영혼이 거듭나는 중생은 작은 성탄절이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기로 나실 때 말구유와 같이 낮고 천하고 춥고 냄새나고 소란하고 가난하고 거기다 헤롯왕처럼 죽이려고 했듯 우리 심령도 그러한데 그런 우리를 위해 성탄의 주님이 찾아오셨다는 사실은 영원히 감사하고 노래해야 할 찬양의 제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아기 예수로 특별하게 나신 것은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시간에 이 특별한 은혜를 받으십시다. 역사 속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우리 각인에게 새 생명으로 나타나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고 찬양하고 높이고 따라서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가 임하고 구원 받고 하나님 나라를 풍성하게 누리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리폼드뉴스)】기쁘고 즐거운 성탄이 다가왔습니다. 거리마다 캐럴송이 울려 퍼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탄의 기쁨과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1. 배경(26-29)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가 있었습니다. 사가랴는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불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와 그녀에게 임신을 예고합니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아기를 드디어 가지게 됩니다. 두 사람은 너무 기뻤습니다.
엘리사벳이 임신한지 6개월 후에 가브리엘은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갑니다. 그곳에는 다윗의 자손 요셉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약혼한 처녀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다윗의 자손입니다. 마리아는 그 요셉과 약혼한 사람이지만 함께 잠자리를 하지 않은 처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28-29절을 봅니다.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28-29).
2. 처녀의 몸에서 나실 아기 예수님(30-31)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30-31절입니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30-31).
이것은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하여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알려주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천사는 먼저 마리아에게 그녀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이 은혜는 무한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은혜의 내용이 31절에 나옵니다. 바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아주 황당한 일입니다. 마리아는 처녀였습니다. 남자와 잠자리도 하지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초음파 검사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천사는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아들의 이름도 알려줍니다. 바로 예수(예수스)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여호수아에 대한 헬라어 표기입니다. 의미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그 아기를 통해 구원을 주신다는 약속의 이름입니다.
왜 하필 처녀의 몸에서 구원자가 출생하십니까? 이것은 창 3:15의 성취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이 사건은 창조 이래로 단 한 번만 일어난 사건입니다. 반복되지 않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기 바랍니다.
3. 높으신 이의 아들(32-35)
천사 가브리엘은 계속해서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32-33절입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32-33).
여기에 쓰인 큰 자는 거인이 아닙니다. 키가 크다는 말이 아니라 능력이 탁월한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전능하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아기 예수님께 주실 것입니다. 다윗의 왕위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의미입니다. 삼하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을 주십니다. 이것을 다윗언약이라고 부릅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아들로 왕위를 이어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아들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해주십니다.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 7:13).
여기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다(바실류세이)는 미래형입니다. 예수님이 장차 왕으로 통치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또 무궁하리라(우크 에스타이 텔로스)도 미래형으로 ‘끝이 없을 것이다’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즉 영원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 천국은 끝이 없이 영원한 나라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천사에게 자신은 남자를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대답합니다. 35절입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35).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아기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는 분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되는 분입니다. 사람의 출생 방식으로 아기 예수님이 잉태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기 예수님은 거룩한 분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세상에 오셔서 고난과 죽임을 당하십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살려주시고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가장 복된 것이고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결론
이 성탄의 기쁨을 누리며 감사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이 성탄의 기쁨을 온 세상에 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