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화살표
부제 : 산티아고 길을 걷고나서
갈림길에서 화살표가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그 화살표가 가장 잘 눈에 띄인다는 노란색이고, 그 화살표를 따라가는 여정과 목적지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화살표를 따르게 될 것이다.
조가비모양과 함께 붙여진 노란 화살표를 따라 ‘산티아고 프랑스길’이라 불리우는 800여 킬로미터의 여정에서 300여 킬로미터를 걸었다.
이 길에 대해 전부터 알고 있었고, 가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떠날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지나야했다. 이미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고하여 필요한 물품을 준비했다. 가볍고도 다기능에 다목적이 최우선의 기준이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새로 장만해야 할 것도 있다보니 여러차례 매장에 가서 직접 만져보고, 입어보고 또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그렇게 어렵사리 구입하고도 배낭을 꾸려가며 반품하기도 하고.
내가 마지막까지 배낭싸기를 미룬 것은 평소 나의 나쁜 습관 탓이기도 하지만, 이번 여행의 ‘특수성’을 핑계삼고 싶다.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야 하기에 지금은 그다지 무겁다고 여기지 않아도 가져가면 여행내내 무게를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여러차례 망설이던 나는 결국 여행도중에 필요하지 않으면 과감히 던지리라 결정하고 조금 넉넉하게 배낭을 꾸렸다. 그리고 실제로 몇가지를 내려놓기도 했다.
난생 처음 가보는 유럽이다. 어릴적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내가 발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는 이곳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와 귓가에 들려오는 알 수 없는 그들의 말에서 내가 다른 곳에 와있는 것을 실감했다. 색다른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해돋이의 모습이었다. 이곳에서는 떠오르면서 고가도로나 건물뒤로 숨바꼭질하는 개구장이의 모습이라면, 순례길에서는 가을에 들어서는 계절때문인지 웅장하게 천지를 깨우는 모습은 아니어도 주어진 책무를 성실히 완수하려는 구도자처럼 보이기도 했고, 또 등뒤에서 비추일때는 먼길 가는 우리를 후원하는 모습으로 보여졌다. 커다란 그림자가 없었기에 온누리 구석구석까지 골고루 비추어주는 모습은 어머님의 품처럼 자애롭고도 따스했다.
프랑스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가는 ‘나폴레옹길’이 우리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여정이었다. 예전에 한국에서 ‘설악’을 자주 찾았었기에, 강산이 몇번 변했어도 걱정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커다란 착각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인지, 아니면 ‘설악’이 아닌 ‘피레네 산맥’이어서였는지, 오르막길에서는 어쩔수 없이 고개를 떨군채 손에 쥔 등산스틱에 의지하여 네발로 기어올랐다. 오랜 세월에도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만큼 험준한 산길을 걸을때 보았던, 수많은 소와 말의 목에 걸려있던 종에서 들려오던 소리는 마치 한국의 천년고찰에서의 그윽한 풍경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나는 배낭과 체중의 무거움에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는데, 그때 문득 상관의 명령에 따라 자기의 배낭과 적을 살상하기 위한 무기를 메고 지고가며 ‘땅따먹기’하러 이 길을 걸었을 병사들과 종교적 신념으로 이 길을 걸었을 순례자들의 모습이 겹쳐지며 머리속이 혼돈스러워졌다. 지금 내 이마에서 흘리는 땀을 그들도 흘렸을테지만, 누구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였을 길이었을 것이고, 누구에게는 구도의 길이었을 이 길…
그렇게 굵은 땀을 노란 화살표를 따라 떨구고 난 뒤에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마시던 맥주는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반가웠다. 그래서인지 이후에는 차가운 맥주와의 조우를 위해 길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날을 걷다보니 나도 모르게 “오늘도 걷는다만은, 정처없는 이 발길~”이라는 노래가 입가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어느 만큼은 익숙해졌다라고 느껴질 무렵 가장 염려했던 상황이 생겨났다. 양쪽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걸을수록 나의 신경을 잡아당기기에 걸음걸이도 흐트러지고, ‘이래서 도중에 멈추게 되는보다!’라는 생각과, 돌아가서 지인들에게 들려줄 ‘무용담 하나 만들어 가는구나!’라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되었다. 다행히 일행중의 한 분이 고약한 발냄새에도 불구하고 잘 돌보아주셔서 여정이 끝날때까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기에 예정된 길을 마저 걸을 수 있었다. 먼 거리를 걷게 되다보니 대부분의 순례자들에게 한두가지의 아픈 곳이 생기게 마련이고, 이 고통을 보듬어가며 걸어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와 많이도 닮았다.
한편, ‘설상가상’으로 가장 먼 거리를 걸어야하는 날에 비가 예보되었다. 전날 저녁까지 예보는 바뀌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배낭을 다음날 머무를 숙소까지 택배로 보내기로하고, 비에 대비하여 가벼운 차림으로 떠나기로 하였다. 30여Km거리와 우리의 보행속도를 감안하여 길을 나서게 되었는데,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어두운 빗길을 헤드렌턴에 의지하여 걸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걸으니 어느새 신발에서는 걸음마다 개구리소리가 새어나오고, 우비위로는 비가 내리고, 속에서는 땀이 배어나와 옷이 젖어 몸은 엉망이 되었다. 한편, 비가 와서인지 평소처럼 커피와 함께 아침을 제공하는 가게들이 문을 열지 않았기에 한참을 걸은 후에 겨우 찾은 호텔 카페에서 허기와 추위를 달래야 했다. 걸어 가야할 길은 여전히 남아있었기에 또 다시 ‘출발!’을 외치기는 했지만, 발걸음은 무거웠고, 언덕을 오를때는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과 흘러내리는 흙탕물에 젖고, 자갈과 흙으로 이루어진 비포장길 한가운데에는 어느새 커다란 물웅덩이가 만들어져 바깥쪽으로 몸을 옮겨 걸었다.
그러더니 다행히 점심무렵에 비가 그쳤다. 하지만, 오히려 긴장이 풀리니 온 몸의 구석구석에서 소리없는 아우성이 울려나왔다. 비에 젖은채 먼거리를 걷느라 볼쌍사나운 모습으로 겨우 숙소에 도착하여 여행중에 처음으로 우리 입맞에 딱 알맞는 뜨거운 라면을 먹으니 모든 고통스러움이 사라진 듯 여겨졌다.
그렇게나 먼거리를 단지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천리길도 한 걸음 부터’이기에, 한발 두발 터벅터벅 걷다보면 어느새 20 ~30여 킬로미터를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된다. 그러다보니, 지금껏 살면서 ‘도전’하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나름 합당한 ‘이유’를 근거로 최선의 선택이라 여겼지만, 무모해 보일지라도 ‘돈키호테’처럼 도전했더라면 조금씩 ‘목표’에 가까워지면서 언젠가는 이루어진 ‘꿈’을 즐기며 지금보다 풍요로운 삶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걸을때의 힘든 기억은 사라지고, 길위에서 영원으로 박제된 사진으로 남은 추억을 되짚어가며 나머지 길을 걷고 싶다”
함께 걸었던 일행들의 이야기처럼, 내게도 어려움은 ‘정열의 나라’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에 빛바래어 가기에, 인생 이력서에 충분히 한 줄 자리할 수 있는 이토록 값진 여행을 완성하고 싶다. 나머지 숙제를 어서 마저 하고 싶다.
노란 화살표!
나보다 앞서서 이 길을 걸었던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노란 화살표’를 따라 내가 걸었던 것처럼 나도 이제 누군가에게 그들이 원하는 목적지로 안내할 수 있는 ‘노란 화살표’와 같은 삶의 길을 걷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아름다운 소풍’이 끝나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