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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지교(三遷之敎)
세 번을 이사하며 자녀를 가르친다는 뜻으로,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3번 거처를 옮겼다는 고사로, 생활 환경이 교육에 있어 큰 구실을 함을 말한다.
三 : 석 삼(一/2)
遷 : 옮길 천(辶/12)
之 : 갈 지(丿/3)
敎 : 가르칠 교(攵/7)
(유의어)
단기지교(斷機之敎)
맹모삼천(孟母三遷)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3번 거처(居處)를 옮겼다는 고사로, 생활 환경이 교육에 있어 큰 구실을 함을 말한다.
사람을 교육할 때 배우려는 자세가 앞서고 가르치는 스승이 중요하다는 것과 관련 성어도 많다. 사람이 아닌 주변 환경도 중요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 남쪽의 귤이 북방에 가면 탱자로 되는 남귤북지(南橘北枳)나 먹 근처에 가면 검게 물든다는 근묵자흑(近墨者黑) 등이 유명하다.
어릴 때부터 들어 누구나 기억하는 맹자의 어머니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주변 환경이 나빠 세 번이나 이사를 하며(三遷), 아들을 올바로 가르쳤다(之敎)는 교훈을 남겼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은 맹자는 덕치를 주장하며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위대한 사상가로 오늘날까지 숭앙받는 아성(亞聖)으로 남게 됐다.
설원(說苑)과 전국책(戰國策) 등의 저술로 유명한 전한(前漢)시대의 학자 유향(劉向)의 또 다른 저작 열녀전(烈女傳)에 이 이야기가 실렸다.
맹자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처음 공동묘지 근처에서 살았을 때 맹자가 송장을 묻으며 우는 흉내를 내자 어머니는 장터 도축장 근처로 이사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장사하는 것과 짐승 잡는 것을 흉내 내 맹모는 할 수 없이 서당 근처로 옮겼다. 그러자 어린 맹자는 예절을 배우며 놀고 서당에 다니고자 했다.
맹모는 그제야 '이곳이야 말로 내 아들이 있을 곳이다'라고 하면서 오랫동안 머물러 살았다.
此眞可以居吾子矣(차진가이거오자의)
맹자 어머니의 자식 교육에 헌신하는 정성을 나타내는 일화가 더 있다. 맹자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생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있었는데 어느 날 공부를 중단하고 어머니를 찾아 왔다.
베를 짜고 있던 어머니는 공부를 얼마나 했느냐고 물은 뒤 진척이 별로 없다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단칼에 베를 잘라 버렸다. 공부를 중간에 그만 두는 것은 짜던 베를 잘라버리는 것과 같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였다.
단기지교(斷機之敎)의 고사다. 자식 교육에 대한 맹모의 이런 열성을 종종 맹렬 학부모들을 빗대어 말할 때 인용되기도 한다.
명문대나 학원가 주변의 집값이 껑충 뛴다는 이야기는 이런 사실과도 연관된다. 그런데 맹모의 나라 중국 베이징에서도 명문 초등학교가 있는 주변의 집이 평당 3억원에 거래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교육 환경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지나친 바람이다.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 해도 모두가 우등생이 되거나 출세하는 것은 아니다.
삼천지교(三遷之敎)
맹모가 자식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
三 : 석 삼
遷 : 옮길 천
之 : 어조사 지
敎 : 가르칠 교
(동의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맹모삼천(孟母三遷)
(유사어)
현모지교(賢母之敎)
근주자적(近朱者赤)
마중지봉(麻中之蓬)
근묵자흑(近墨者黑)
귤화위지(橘化爲枳)
남귤북지(南橘北枳)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한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교육에는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이르는 말이다.
전한(前漢) 말의 학자 유향(劉向)이 지은 열녀전(烈女傳)에서 비롯된 말이다. 맹자(孟子)는 이름이 가(軻)로, 공자(孔子)가 태어난 곡부(曲阜)에서 멀지 않은 산둥성 추현(鄒縣) 출신이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므로 어머니 손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현명한 사람으로 아들 교육에 남달리 관심이 많아 단기지교(斷機之敎)의 일화를 남긴 분이다.
맹자가 어머니와 처음 살았던 곳은 공동묘지 근처였다. 놀 만한 벗이 없던 맹자는 늘 보던 것을 따라 곡(哭)을 하는 등 장사(葬事)지내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
이 광경을 목격한 맹자의 어머니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사를 했는데, 하필 시장 근처였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맹자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꾼들의 흉내를 내면서 노는 것이었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도 아이와 함께 살 곳이 아니구나 하여 이번에는 글방 근처로 이사를 하였다. 그랬더니 맹자가 제사(祭祀) 때 쓰는 기구를 늘어놓고 절하는 법이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법 등 예법(禮法)에 관한 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맹자 어머니는 이곳이야말로 아들과 함께 살 만한 곳이구나 하고 마침내 그곳에 머물러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어머니의 노력으로 맹자는 유가(儒家)의 뛰어난 학자가 되어 아성(亞聖)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맹자 어머니는 고금(古今)에 현모양처(賢母良妻)의 으뜸으로 꼽히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자녀 교육에 있어서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며, 또한 어린이들이 얼마나 순진무구(純眞無垢)한가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맹자의 어머니를 가르켜 아주 지혜롭고 훌륭한 어머니라고 한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란 말도 그래서 생겨난 말이다.
그런데 지혜있는 여인이 왜 처음부터 맹자를 서당이 있는 곳에 가서 키우지 않고 공동묘지가 있는 곳에서 살았을까? 그리고 다음에는 시장으로, 마지막에는 서당이 있는 곳으로 갔을까? 그녀는 진정 지혜로운 여인이었을까?
진정 그녀가 지혜있는 여인이었다면 3번씩이나 이사를 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처음부터 무조건 학문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인생을 가르쳐 참사람의 길을 가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맹자를 데리고 공동묘지로 가서 가난한 자, 부요한 자, 있는 자, 없는 자, 권력을 가진 자, 못가진 자 누구나 사람은 다 죽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죽음을 알고 난 후에 그녀는 맹자를 데리고 시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인생의 사는 법을 가르쳤다. 생존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인가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죽음을 알고 난 사람에게 생존 경쟁이라는 것은 어쩌면 무익한 것인지 모른다. 죽을 줄도 모르고 아귀 다툼을 하고 내일을 알지 못한 채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참사는 것일가를 궁금해 하고 고민하면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아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서당에 왔을 때 진정 학문의 필요성을 깨닫고 그 학문을 통하여 인생이 참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연구하고 연구하였을 것이다. 진정한 삶은 죽음을 아는 것이다.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알 때 진정한 삶을 살게 된다. 막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다 사람답게 가는 것이다.
맹모(孟母)에 대한 이야기는 구구단을 외우듯 익히 알고 있지만 열녀전(列女傳)의 탄생 배경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열녀전의 저자는 왕족이다. 한(漢) 제국은 모든 권력을 중앙에 집중시키는 바람에 권력 주변의 암투가 격화되었다. 중앙 관계(官界)에 진출한 유향(劉向)은 당시 권력을 장악한 외척 세력의 미움을 받아 모든 작위를 박탈당하고 평민으로 강등되는 박해와 수모를 당한다.
이 사태로 그는 권력구조 주변에 기생하는 외척 세력에 대한 깊은 혐오를 가지게 된다. 황제 주변의 치맛바람을 잠재워야겠다는 정치적 각성에서 태어난 것이 이 열녀전이다.
궁중 안에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이른바 현모양처만 있다면 올바른 정치를 펴는데 훨씬 유익하리라는 것에서 이 같은 교훈집(敎訓集)을 엮게 되는데 이 같은 치맛바람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여러 전적(典積)에서 자료를 모아 편찬한 이 책에는 민간에 유포되던 전설, 그리고 자신이 지은 창작도 들어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맹모 이야기는 어쩌면 완전한 허구라는 이야기도 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맹자가 묘지 근처에서는 무덤 파는 연습이나 해대고, 시장 근처로 옮겼더니 장돌뱅이 흉내나 내어 결국 학교 근처로 옮겨 주었더니 열심히 공부를 한다는 주제이다.
그러나 이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세 번에 걸친 이삿짐에는 맹모(孟母)가 현대에서도 너끈히 소화해 낼 경영자를 키우는 큰 모성을 지녔다는 재발견을 하게 된다.경영학에서 근본인 실전을 익히는 전술을 스스로 체득하게 하는 기법을 실행하게 했다는 점이다.
묘지 근처에서는 죽음을 넘나들며 올바른 삶과 죽음의 허무함을 내면적으로 체득하게 했고 살아가는 길에서 기왕이면 윤택한 삶을 살기위해서는 경제원리에 의한 돈을 버는 기법을 배우게 했고 올바르게 돈을 벌고 정직한 삶속에 자기와 이웃에게 넉넉함을 베풀 줄 아는 지덕(智德)과 지혜로움을 익히는 정신적 바탕을 튼실히 하기위해 스스로 공부하게 하였다.
뒤집어서 서당에 끓어 앉혀 공부를 시키면 그 아이는 아마 놀기 위한 방법에 몰두하고 이에 질린 부모는 내 자식은 공부에 관심이 없다며 장사꾼을 만들어 보지만 결국 아이는 장사에도 흥미를 잃어버리고 노름과 도박으로 가산 탕진이 빤한 결말이라 생각한다.
비록 맹모 이야기가 허구라 해도 오늘날 다시금 제조명 해보고 싶은 것도 근본적으로 삶의 철학과 교육의 지표와 방향이 뚜렷이 각인되기 때문이다.
▶️ 三(석 삼)은 ❶지사문자로 弎(삼)은 고자(古字)이다. 세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 젓가락 셋을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셋을 뜻한다. 옛 모양은 같은 길이의 선을 셋 썼지만 나중에 모양을 갖추어서 각각의 길이나 뻗은 모양으로 바꾸었다. ❷상형문자로 三자는 '셋'이나 '세 번', '거듭'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三자는 나무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대나무나 나무막대기를 늘어놓은 방식으로 숫자를 표기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三자는 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숫자 3을 뜻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호의를 덥석 받는 것은 중국식 예법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최소한 3번은 거절한 후에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 三자가 '자주'나 '거듭'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三(삼)은 셋의 뜻으로 ①석, 셋 ②자주 ③거듭 ④세 번 ⑤재삼, 여러 번, 몇 번이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석 삼(叁)이다. 용례로는 세 해의 가을 즉 삼년의 세월을 일컫는 삼추(三秋), 세 개의 바퀴를 삼륜(三輪), 세 번 옮김을 삼천(三遷),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의 세 대를 삼대(三代), 한 해 가운데 셋째 되는 달을 삼월(三月), 스물한 살을 달리 일컫는 말을 삼칠(三七), 세 째 아들을 삼남(三男), 삼사인이나 오륙인이 떼를 지은 모양 또는 여기저기 몇몇씩 흩어져 있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삼삼오오(三三五五), 삼순 곧 한 달에 아홉 번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집안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다는 말을 삼순구식(三旬九食), 오직 한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삼매경(三昧境), 유교 도덕의 바탕이 되는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의 인륜을 일컫는 말을 삼강오륜(三綱五倫), 날마다 세 번씩 내 몸을 살핀다는 뜻으로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행동을 반성함을 일컫는 말을 삼성오신(三省吾身),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 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삼십이립(三十而立), 사흘 간의 천하라는 뜻으로 권세의 허무를 일컫는 말을 삼일천하(三日天下),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남이 참말로 믿기 쉽다는 말을 삼인성호(三人成虎), 형편이 불리할 때 달아나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삼십육계(三十六計), 하루가 삼 년 같은 생각이라는 뜻으로 몹시 사모하여 기다리는 마음을 이르는 말을 삼추지사(三秋之思), 이러하든 저러하든 모두 옳다고 함을 이르는 말을 삼가재상(三可宰相), 삼 년 간이나 한 번도 날지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웅비할 기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삼년불비(三年不蜚), 세 칸짜리 초가라는 뜻으로 아주 보잘것 없는 초가를 이르는 말을 삼간초가(三間草家), 봉건시대에 여자가 따라야 했던 세 가지 도리로 어려서는 어버이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좇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삼종의탁(三從依托), 키가 석 자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라는 뜻으로 철모르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을 삼척동자(三尺童子), 세 사람이 마치 솥의 발처럼 마주 늘어선 형상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을 삼자정립(三者鼎立), 세 칸에 한 말들이 밖에 안 되는 집이라는 뜻으로 몇 칸 안 되는 오막살이집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간두옥(三間斗屋), 가난한 사람은 농사 짓느라고 여가가 없어 다만 삼동에 학문을 닦는다는 뜻으로 자기를 겸손히 이르는 말을 삼동문사(三冬文史), 삼생을 두고 끊어지지 않을 아름다운 언약 곧 약혼을 이르는 말을 삼생가약(三生佳約), 세 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수령이라는 뜻으로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즉 청백리를 이르는 말을 삼마태수(三馬太守), 세 치의 혀라는 뜻으로 뛰어난 말재주를 이르는 말을 삼촌지설(三寸之舌), 얼굴이 셋 팔이 여섯이라는 뜻으로 혼자서 여러 사람 몫의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삼면육비(三面六臂), 사귀어 이로운 세 부류의 벗으로서 정직한 사람과 성실한 사람과 견문이 넓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익지우(三益之友), 세 가지 아래의 예라는 뜻으로 지극한 효성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지지례(三枝之禮), 머리가 셋이요 팔이 여섯이라 함이니 괴상할 정도로 힘이 엄청나게 센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두육비(三頭六臂), 세 번 신중히 생각하고 한 번 조심히 말하는 것을 뜻하는 말을 삼사일언(三思一言) 등에 쓰인다.
▶️ 遷(옮길 천)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하늘에 오르다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 䙴(선, 천)으로 이루어졌다. '오르다'의 뜻이 전(轉)하여 '옮기다'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遷자는 '옮기다'나 '떠나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遷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䙴(옮길 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䙴자는 본래 '옮기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로 遷자 이전에 쓰였던 글자였다. 䙴자의 금문을 보면 邑(고을 읍)자 옆에 새집을 옮기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터전을 옮긴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䙴자가 '옮기다'나 '떠나가다'라는 뜻으로 쓰였었지만 소전에서는 여기에 辶자가 더해지면서 길을 떠나 '옮긴다'는 뜻을 더하게 되었다. 그래서 遷(천)은 (1)벼루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옮기다 ②옮겨가다 ③떠나가다 ④내쫓다, 추방하다 ⑤벼슬이 바뀌다 ⑥달라지다 ⑦바꾸다, 변경하다 ⑧오르다, 올라가다 ⑨붙좇다, 따르다 ⑩천도(遷都) ⑪벼랑, 낭떠러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옮길 사(徙)이다. 용례로는 도읍을 옮김을 천도(遷都), 귀양살이하는 사람을 천객(遷客), 움직여서 옮김을 천동(遷動), 바뀜이나 변함을 천개(遷改), 죽은 혼령을 극락세계로 가게 함을 천도(遷度), 무덤을 다른 데로 옮김을 천묘(遷墓), 대가 바뀜을 천대(遷代), 나쁜 짓을 고쳐 착하게 됨을 천선(遷善), 변하여 바뀜을 천화(遷化),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 삶을 천거(遷居), 어떤 일로 말미암아 난 성이 엉뚱하게 애매한 다른 사람에게 옮아감을 천노(遷怒), 미적미적 미루어 감을 천추(遷推), 관리가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떨어짐을 좌천(左遷), 변하여 바뀜을 변천(變遷), 동쪽으로 옮김을 동천(東遷), 세 번 옮김을 삼천(三遷), 임금이 도성을 떠나 딴 곳으로 피난함을 파천(播遷), 무너져서 밀려남을 탑천(塌遷), 여기저기로 여러 번 옮김을 누천(累遷), 등급을 뛰어넘어 올라 감을 초천(超遷),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어 착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개과천선(改過遷善), 맹모가 맹자를 제대로 교육하기 위하여 집을 세 번이나 옮겼다는 뜻으로 교육에는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이르는 말을 맹모삼천(孟母三遷), 맹모가 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3번 거처를 옮겼다는 고사로 생활 환경이 교육에 있어 큰 구실을 함을 이르는 말을 삼천지교(三遷之敎), 봄이면 새가 깊은 산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 위에 올라앉는다는 뜻으로 사람의 출세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출곡천교(出谷遷喬), 인간 세상의 변천이 쉬지 않고 흐름을 일컫는 말을 무상천류(無常遷流), 어떤 자리에 오래 붙어 앉아서 다른 데로 옮기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좌지불천(坐之不遷), 고향을 떠나기를 좋아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안토중천(安土重遷)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
▶️ 敎(가르칠 교)는 ❶회의문자로 教(교)의 본자(本字)로 爻(효; 배움)와 부수 글자 攵(회초리)의 합자(合字)이다. 회초리로 쳐서 가르쳐 배우게 함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敎자는 ‘가르치다’나 ‘가르침’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敎자는 爻(효 효)자와 子(아들 자)자,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한자에서 爻자는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하나는 ‘배우다’이다. 學(배울 학)자가 그러하다. 다른 하나는 단순한 모양자로 쓰이는 경우이다. 希(바랄 희)자가 그러하다. 여기에 쓰인 爻자는 ‘배움’이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敎자는 이렇게 ‘배우다’라는 뜻을 가진 爻자에 子자와 攵자를 결합한 것으로 ‘아이가(子) 공부를(爻) 하도록 하다(攵)’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敎자는 회초리를 들어 아이를 가르친다는 뜻이다. 고대에는 이것을 ‘가르침’이라 했다. 그래서 글자의 구성으로만 본다면 改(고칠 개)자와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敎자에는 爻자가 있으니 이것은 공부와 관련된 글자이다. 그래서 敎(교)는 (1)종교(宗敎) (2)삼문(三門) 즉 교(敎), 율(律), 선(禪) 중(中)의 하나. 이 교는 경론(經論)으로써 신앙(信仰)의 근본을 삼음 등의 뜻으로 ①가르치다 ②본받다 ③가르침 ④~로 하여금 ~하게 함 ⑤교령(敎令: 임금의 명령) ⑥종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인도할 도(導), 가르칠 훈(訓), 가르칠 회(誨),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닦을 수(修), 배울 학(學), 익힐 련/연(練), 익힐 습(習)이다. 용례로는 학술이나 기예를 가르침을 교수(敎授), 가르치어 지능을 가지게 하는 일을 교육(敎育), 학술이나 기예를 가르치는 사람을 교사(敎師), 학교에서 가르치는 데 쓰는 책을 교과서(敎科書), 학교 교사 가운데, 오로지 수업에만 쓰이는 방을 교실(敎室), 가르치고 깨우침, 타이름, 훈계함을 교훈(敎訓), 가르쳐 기름을 교양(敎養), 가르치고 배우는 데 쓰이는 재료를 교재(敎材), 가르치는 과목을 교과(敎科), 종교 단체의 모임을 교회(敎會), 가르쳐 착한 길로 인도함을 교화(敎化), 종교 상의 이치나 원리를 교리(敎理),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그 무리를 교도(敎徒), 가르쳐서 익히게 함을 교습(敎習), 교재로 쓰는 책을 교재(敎本), 종교를 믿는 사람을 교인(敎人), 경전 바깥의 특별한 전승이라는 뜻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뜻을 전한다는 말을 교외별전(敎外別傳),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진보시켜 준다는 뜻으로 사람에게 가르쳐 주거나 스승에게 배우거나 모두 자신의 학업을 증진시킴 또는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이 서로 자신의 공부를 진보 시킨다는 말을 교학상장(敎學相長), 자식에게 땔나무 캐오는 법을 가르치라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근본적인 처방에 힘씀을 이르는 말을 교자채신(敎子採薪), 신부의 교육은 시집 왔을 때에 바로 하라는 교부초래(敎婦初來), 나의 자식과 남의 자식을 바꾸어 교육한다는 뜻으로 부자父子 사이엔 잘못을 꾸짖기 어렵다는 뜻의 말을 역자교지(易子敎之), 말이 없는 가운데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노자의 무위자연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을 불언지교(不言之敎)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