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험 대비할겸 고구려의 성장에 대해 써보려고하다
고구려의 성장과 체제 정비
고구려는 1세기 초 국내성(지린성 지안)으로 도읍을 옳겼다
태조왕때 동해안으로 나아가 옥저를 정복하고 요동지방으로서의 진출을 꾀하였다,2세기 고국천황 시기에는 수도와 지방을 각각 5부를 나누었고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진대법을 시행하였다.고구려는 안정된 왕권을 확립.그러나 4세기 중반 선비족이 세운 천연의 침입으로 수도가 함락되는 피해를 입었다.뒤이어 고국원왕이 평양성을 공격한 백제군을 막다가 전사하였다.고구려는 국가적인 위기를 맞았다.
중앙 집권 체제의 확립
소수림왕은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국가체제를 다시 정비,불교를 받아들이고 교육기관인 태학을 세워 인제를 양성.율령을 반포하여 통치조직을 정비 이런 노력에 힘있어 왕 중심이 중앙집권체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광개토 대왕의 영토 확장
광개토 대왕은 대규모 정복 활동을 펼쳤다,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이북 지역을 차지 그리고 이 무렵 왜의 공격을 받은 신라가 고구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신라에 군사를 보내었다.이후 북쪽으로도 진출 거란과 후연을 격파 만주 대부분 지역을 차지했다,영락이라는 연호 사용하고 광개토 대왕이 스스로 태왕이라고 칭할 정도로 국력이 강해졌고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성장히였다
장수왕의 남진 정책
장수왕은 중국의 북위에 사신을 보내는 한편,중국 남조와도 외교관계를 맺어 국가를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국내성에 기반을 두고 있던 귀족 세력을 약화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수도를 평양성으로 옳겼다(427)
이후 적극적으로 남진 정책을 추진하였다.이런 상황에서 신라와 백제는 군사동맹(나제동맹)을 맺어 고구려에 대항하려고 하였다.
장수왕은 두 나라를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백제를 공격하여 수도 한성을 함락하였다.이후 남한강 유역으로 진출하고 중부지역까지 영토를 넓히며 세력을 확장하였다.이 사실은 충주고구려비를 통해 알수 있다.이 떄 고구려 사람들은 넓어진 영토와 강한 국력에 힘입어 고구려를 천하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였다.
오늘은 고구려에 성장 과정과 전성기에 대해 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