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10]
로제타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
로제타는 남편 윌리엄 홀(William Hall)이 1894년 11월 24일 사망했을 때 34세의 젊은 나이였고, 몇 년간 고국으로 돌아가 있다가 1897년 다시 조선으로 들어왔으나 딸까지 병으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사망한 남편이 남긴 유산으로 세워진 평양의 기휼병원은 훗날 평양기독병원이 되었고, 그녀는 점자법을 개발해서 맹인교육을 시작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맹인학교를 세웠습니다. 여성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광혜여원도 설립했습니다. 1917년부터는 동대문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여자의학교를 세웠는데 나중에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로. 그리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박에스더(본명 김점동)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서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의학 의사(두 번째가 서재필)가 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는 조선에서 남편과 딸을 잃고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 비록 이 땅에서 사랑하는 남편과 딸을 잃었지만, 아들 셔우드와 함께 조선에서 오래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로제타는 앞에서 언급한 학교와 병원 외에도 인천기독병원, 인천간호대학, 이화여대부속병원을 세웠습니다. 그녀의 아들 셔우드 홀(Sherwood Hall)도 훌륭한 일을 했는데, 친하게 지냈던 박에스더가 1910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사망하자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미국으로 들어가서 의학을 공부한 후 자신의 아내 메리안 홀(Marian B. Hall)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와 결핵협회를 창설하고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을 만들어 보급하는 일을 했습니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추방될 때까지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친구 박에스더의 뒤를 이어 우리나라 의료계 발전을 위해 헌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