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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人들의 마음, 보물이 되다-新國寶寶物展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國寶와 寶物로 새로 지정된 121건중에서
50건의 문화재를 特別展으로 상설전시실 1층 中∙近世館 114호실에서 [선인들의 마음, 보물이
되다-新國寶∙寶物展]으로 전시하고 있다. (전시기간 2017. 05. 13~07.09)
이번 전시는 새로 지정된 문화재를 소개하는 자리로 繪畵, 典籍, 陶瓷, 工藝 등 다양한 종류의
소중한 지정문화재들을 크게 ‘信仰’, ‘記錄’, ‘삶’이라는 主題로 구성하였으며, 전시품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작품에 內在된 宗敎的∙歷史的∙藝術的 價値를 드러내는데 焦點을 맞추고,
그 안에 숨겨진 우리 先人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는 鑑賞의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이번에 전시하는 보물들은 蒐集에서 國家文化遺産 지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과 땀방울이 더해진 결과이므로 이 자리가 문화유산 사랑의 깊은 뜻을 되새기는
契機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有形文化財는 2016년말 현재 國寶 328건, 寶物 2,060건, 史蹟 495개소,
名勝 109개소, 天然記念物 456점이 있다.
선인들의 마음, 보물이 되다-新國寶∙寶物展 사진을 3회로 나누어 올린다.
先人들의 마음, 보물이 되다-新國寶∙寶物展(3-1); 1부 信仰
先人들의 마음, 보물이 되다-新國寶∙寶物展(3-2); 2부 記錄
先人들의 마음, 보물이 되다-新國寶∙寶物展(3-3); 3부 삶
*사진의 설명내용은 전시장의 설명문과 문화재청 홈페이지 ‘문화재정보’와 다른 자료를 참고로
작성하였다.
설명문과 문화재정보를 종합하고 설명문의 ‘專門用語’를 대부분 한글로만 표기하여 헷갈려
漢字와 용어의 뜻을 찾아보느라고 시간이 제법 걸렸다. (전문가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용어만
사용하여 우리와 같은 一般人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 많았다.)
전시하는 專門家의 눈높이가 아니라 관람하는 일반 觀客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문을
작성하면 훨씬 이해하기 수월할 텐데….
2017.06.25 孤 山 朴 春 慶
先人들의 마음, 보물이 되다-新國寶∙寶物展(3-1); 1부 信仰
(01) 先人들의 마음, 寶物이 되다.
특별전을 열며
이번 전시에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문화재위원회 動産分科委員會를 거쳐 새로 지정된
문화재 121건(지정번호 기준)의 국보와 보물 중 50건의 文化遺産을 선보이며, 書畵 ∙典籍
∙金屬工藝 ∙陶瓷 등 다양한 종류의 소중한 보물들이 출품되어 한 자리에 모였다.
1부 信仰, 간절히 바라다.
(02) 농경문 청동기(農耕文 靑銅器) -보물 제1823호(2014.05.08 지정)-
-初期鐵器時代 -材料 靑銅 -소유/소장; 國有/국립중앙박물관
윗부분에 작고 네모난 6개의 구멍이 있는 사다리꼴 靑銅器로 구멍이 조금씩 닳아있어 끈에
매달아 사용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한쪽 면에는 밭갈이하는 사람이 있어, 초봄에 豊饒를 기원하는 播種儀禮를 나타낸 것으로
咸鏡道나 平安道에서 行했던 裸耕과 유사하다.
다른 면에는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새를 새기고, 둥근 고리가 끼워있는 꼭지[鈕] 한 개가
달려있는데, 새는 인간과 神의 媒介體로 솟대신앙과도 聯關이 있다.
이 청동기는 풍요를 祈願하는 儀器로 보이며 先史時代의 生業과 信仰生活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재이다.
(03) 전 회양 장연리 금동관음보살좌상(傳 淮陽 長淵里 金銅觀音菩薩坐像)
-보물 제1872호(2015.04.22)-
-傳 金剛山(강원 淮陽郡 長淵里) 出土 –시대; 高麗 末~朝鮮 初 -재료 靑銅
-소장; 국립춘천박물관
관음보살좌상에서 보이는 섬세하고 정교한 표현기법, 全身을 뒤덮은 화려한 裝身具,
높고 화려한 寶冠, 커다란 원반형의 귀걸이, 오밀조밀한 耳目口鼻, 잘록한 허리 등은
중국 元代에 皇室을 중심으로 성행했던 티벳佛敎美術의 요소가 많은 곳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이 같은 佛敎彫刻의 영향이 麗末∙鮮初 彫刻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되어
韓國彫刻史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元과 高麗,
朝鮮 불교조각의 상호 관련성을 살펴볼 수 있으며 이 시기 불교신앙 연구 및
佛敎彫刻硏究에 귀중한 자료이다.
(04) 노영 필 아미타여래구존도 및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魯英 筆 阿彌陀
如來九尊圖 및 高麗 太祖 曇無竭菩薩 禮拜圖) -보물 제1887호(2016.02.22)-
-고려시대 1307년 –재료 漆 위에 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흑칠한 나무바탕 위에 金泥로 그린 金線描 佛畵로 정면에는 阿彌陀如來를 중심으로
八大菩薩을 표현하고, 뒷면에는 高麗 太祖가 金剛山拜帖을 가지고 와서
曇無竭菩薩(금강산에 머물고 있다는 보살)에게 禮敬했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曇: 흐릴 담 *竭: 다할 갈)
정면의 아미타여래팔대보살도는 엄격한 上下 二段構圖, 섬세하고 우아한 귀족적인
인물표현과 流麗한 線描, 端雅한 形態美를 기반으로 하는 고려불화의 특징을 잘 담고 있으며,
후면의 고려 태조의 金剛山禮敬 장면은 뚜렷한 윤곽선, 齒形突起, 針形細樹 등의
세부표현 기법에서 北宋 代 李郭派 畵風을 반영하고 있어 일반회화 작품이 거의 없는
고려시대 山水畵風을 읽을 수 있어 중요하다.
더욱이 垂直皴으로 표현된 금강산의 웅장하고 신비로운 모습은 조선 후기 謙齋 鄭敾의
<金剛山圖>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뒷면 오른쪽 아래에 <大德十一年丁未八月日謹畫魯英洞願福得付金漆書>라는 畵記가
적혀 있어 忠烈王 33년(1307) 8월 魯英이 제작했음을 알 수 있는데 작가 魯英은 1327년
江華 禪源寺 毘盧殿 벽화와 단청을 그릴 때 班頭(그 항렬의 우두머리)로 활약했던
화가로도 유명하다.
*垂直皴: 조선 후기 謙齋 鄭敾이 창안한 皴法으로 예리한 筆善을 수직으로 죽죽 그어내려
나타낸다. (*皴: 틀 준)
(05) 원주 학성동 철조약사여래좌상(原州 鶴城洞 鐵造藥師如來坐像)
-보물 제1873호(2015.04.22)-
-강원 原州 鶴城洞 발견 -新羅 末~高麗 初 –재료 鐵 -국립춘천박물관 소장
이 철조약사여래좌상은 日帝强占期까지 강원 原州市 鶴城洞 들판 邑玉坪에 放置되어
있던 다섯 具의 鐵佛 가운데 하나로 오른손에 약그릇[藥器]을 들고 있는 藥師佛이다.
原州지역은 鐵이 풍부한 忠州가 가까워 鐵佛 제작이 이루어졌다.
불상은 전체높이 110cm로 等身大에 가깝고, 어깨는 둥글게 처진 모습이며, 신체 비례가
살아있는 사람과 흡사하다. 造形的으로 우수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한 羅末∙麗初期의
불상으로 철불의 제작기법뿐만 아니라 당시 유행했던 藥師如來의 圖像을 알려주며
원주지역에서 유행했던 彫刻樣式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光背와 臺座는 없으나
鐵佛 중에는 드문 藥師佛로 高麗前期 불교미술의 중심지역의 하나인 원주지역의
대표작으로 韓國彫刻史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큰 문화재이다.
(06) 초조본 불정최승다라니경(初雕本 佛頂㝡勝陁羅尼經) -보물 제1836호(2014.10.20)-
-고려 12세기경 –종이에 木板인쇄(卷子本) –소유; 성보문화재단/관리; 호림박물관
<불정최승다라니경>은 唐朝에 印度출신 三藏 地婆訶羅(613~687)가 漢譯한 佛經으로
이 다라니경을 매일 讀誦하면 온갖 고난이 사라지고 功德을 얻게 되며 청정한 佛國土에
태어나 涅槃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이다. (*誦: 외울 송)
이 초조본은 宋朝의 開寶板大藏經을 底本으로 12세기 무렵에 간행된 초조대장경본으로
추정되며, 函次(보관함 번호)는 ‘良’이고 板數는 도합 11板이다.
本書는 初雕大藏經으로 현재 전하는 唯一本으로 초조대장경의 다양한 張次(책장의 차례)
表示의 형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佛敎學 및 書誌學 연구를 위한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雕: 새길 조)
*初雕大藏經: 고려 顯宗 때 板刻한 고려 최초의 대장경으로 거란의 침입을 佛力으로
물리치고자 만들었으며, 목판인쇄술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卷子本: 가로로 길게 이어 둥글게 둘둘 말게 한, 두루마리로 된 책.
(07) 초조본 불설문수사리일백팔명범찬(初雕本 佛說文殊師利一百八名梵讚)
-보물 제1837호(2014.10.20)-
-고려 12세기경 -종이에 木板인쇄(卷子本) -성보문화재단 소유/호림박물관 소장
<불설문수사리일백팔명범찬>은 宋朝에 印度 僧侶 法天(?~1001)이 990년 무렵에 漢譯한
것으로 108가지의 이름으로 文殊師利를 찬양한 전체 19편의 약 900자의 짧은
經典(佛經)이며, 개개의 梵讚은 4句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 梵語를 音譯하였다.
이 초조본은 宋朝의 開寶板大藏經을 底本으로 12세기 무렵에 간행된 초조대장경본으로
추정되며, 函次는 ‘封’이고 板數는 6판이다.
佛說文殊師利一百八名梵讚은 初雕大藏經으로 현재 전하는 唯一本으로 卷末에 기록된 證義,
筆授, 綴文, 證梵文, 證梵義, 潤文 등 譯經과 관련된 참여자 명단 등 初雕大藏經의 간행과
관련된 여러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08) 초조본 법원주림 권82(初雕本 法苑珠林 卷八十二) -보물 제1838호(2014.10.20)-
-고려 12세기경 -종이에 木板인쇄(卷子本) -성보문화재단 소유/호림박물관 소장
<法苑珠林>은 唐朝의 道世(?∼683)가 佛敎에 관한 여러 가지 자료를 集大成한 百科事典으로
분량이 방대하고 다양한 자료를 수록하여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이 평가되는 佛書이다.
이 초조본은 도합 100권 중 제82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 등의
<六度篇> 중에서 持戒와 忍辱에 관한 內容이 수록되어 있는 初雕大藏經의 追雕本이다.
본서는 初雕大藏經의 雕造가 일단락된 宣宗 4년(1087) 이후에 大覺國師 義天이 수집·
편찬한 <新編諸宗敎藏總錄>에 수록된 佛典이 追雕되어 初雕大藏經에 편입된 사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일반적으로 <大藏目錄>을 기준으로 목록 앞의 것은 初雕大藏經이고 목록 뒤의 것은
再雕大藏經을 조성할 때 편입시킨 것으로 보아 왔으나, 調査本 <法苑珠林>은 비록
大藏目錄의 목록 뒤에 수록된 佛典이나 再雕大藏經이 아니라 이른바 初雕大藏經의
追雕本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09) 초조본 불설일체여래금강삼업최상비밀대교왕경 권4(初雕本 佛說一切如來金剛三業最上秘密大敎王經 卷四) -보물 제1839호(2014.10.20)-
-고려 12세기경 -종이에 木板인쇄(卷子本) -성보문화재단 소유/호림박물관 소장
<佛說一切如來金剛三業最上秘密大敎王經>은 宋朝에 印度 승려 施護(?∼?)가 新譯한
도합 7卷 18分으로 수행의 단계를 身密·口密·意密의 三密로 나누어 부처들의 행동과
말과 생각이 나타내는 여러 가지 신비스러운 功德에 대해 密敎式으로 설법하고 있다.
卷末에 기록된 ‘大宋咸平五年十一月日進’의 내용으로 보아, 咸平 5년(1002) 11월에
雕印하여 進上한 것임을 알 수 있다.
本書는 初雕大藏經의 雕造가 일단락된 宣宗 4년(1087) 이후에 大覺國師 義天이 수집∙
편찬한 <新編諸宗敎藏總錄>에 수록된 佛典이 追雕되어 初雕大藏經에 편입된 사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비록 권두의 2장이 훼손되어 후대에 보수하였으나 초조대장경의 追雕本으로 傳本이
매우 희귀한 판본이다.
(10)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8 (大方廣佛華嚴經 貞元本 卷八) -보물 제1846호(2014.12.31)-
-고려 12세기경 -종이에 木板인쇄(卷子本) -성보문화재단 소유/호림박물관 소장
<大方廣佛華嚴經> 貞元本 卷八은 唐의 般若가 晉本인 60華嚴經과 周本인 80華嚴經 중의
<入法界品>만을 번역한 것으로 제8권에 해당하는 <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다.
板刻의 手法 등이 현존하는 다른 <華嚴經>의 판본과는 그 품격이 다른데 아마도
顯宗 12년(1021) 8월 현종이 부모의 冥福을 빌기 위하여 玄化寺에서 板刻한 板本이거나
文宗 5년(1051) 正月 眞觀寺에서 판각한 판본일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26行 17字本의 稀貴本으로 佛經과 佛敎學 및 書誌學의 硏究에는 물론
고려시대 목판인쇄문화의 연구에도 크게 활용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11)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4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三十四) -보물 제1847호(2014.12.31)-
-고려 12세기경 -종이에 木板인쇄(卷子本) -성보문화재단 소유/호림박물관 소장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三十四는 唐의 實叉難陀가 新譯한 周本 80華嚴經 가운데
제34권으로 현재 海印寺 寺刊板의 母本으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高麗大藏經을 간행할 때
底本으로 사용되었던 壽昌 4년(1098) 판본의 국내 傳來本이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희귀본으로 본문 옆에는 角筆의 點吐가 표시되어 있어 角筆硏究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으며, 佛經과 佛敎學 및 書誌學의 硏究는 물론 고려시대
목판인쇄문화의 연구에도 크게 활용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角筆: 象牙나 나무, 대나무 따위의 한쪽 끝을 뾰족하게 만든 젓가락 모양의 필기구
또는 그것으로 눌러 쓴 표시.
(12) 재조본 유가사지론 권20 (再雕本 瑜伽師地論 巻二十) -보물 제1886호(2016.01.07)-
-고려 1246년 板刻, 13~14세기 인쇄 -종이에 木板인쇄(卷子本)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불교 瑜伽行派의 사상을 담은 論書로 재조본 <유가사지론>은 唐의 玄奘이 漢譯한
100권 중의 제20권이다.
권말의 ‘丙午歳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라는 刊記로 보아 고려 高宗 33년(1246, 丙午)에
大藏都監에서 판각한 재조대장경의 판본으로, 13~14세기경에 印出하여 巻子本으로
장정한 後印本으로 추정된다.
조사본(재조본)은 비록 巻首의 제1장이 缺落되고 제2~3장이 훼손되어 있으나
13~14세기경에 인출해낸 고려 재조대장경의 판본으로서 중요하며, 특히 各章 各行의
좌우에 釋讀口訣이 筆寫되어 있어 漢文을 우리말 문장구조로 바꾸어 읽을 수 있도록 한
기호로 고려시대에 발달하여 國語史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판단된다.
*瑜伽行派: 인도에 성했던 大乘佛敎의 한 종파로 法相宗이 이것을 계승한 것의 한 宗派이다.
(*瑜: 아름다운 옥 유)
*釋讀口訣: 한문을 우리말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특수하게 토를 단 口訣.
(13)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經)
-보물 제1885호(2016.01.07)-
-고려 1309년경 –종이에 목판인쇄(線裝本) -개인 소장
*線裝本: 오래된 木版本이나 活字本을 끈으로 엮어 만든 冊子
楞嚴經은 修行者가 陀羅尼를 외워 魔鬼의 방해를 물리치고 禪定에 專念하면 스스로 解脫할
힘을 기를 수 있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楞: 네모질 능)
조사본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고려 忠宣王 1년(1309)에 간행된
판본으로 字劃이 분명하며 墨色도 선명하고 좋은 점으로 보아 板刻된 직후에 인출된
初印本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조사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順讀口訣의 토가 기입되어 있어 漢文에 우리말의
助詞와 語尾를 붙여 읽을 수 있도록 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口訣이 적어도 3종이 전하는데 이 책에 있는 구결이 가장 이른 시기의
구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訓民正音 이전의 국어사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이 조사본은 비록 훼손상태는 심하나 고려 판본으로 初印本이며,
훈민정음 이전의 국어사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이다.
(14)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 -보물 제1900호(2016.05.03)-
-조선 1441년 –종이에 활자인쇄(線裝本) -謙齋鄭敾美術館 소장
<주역참동계>는 後漢朝 魏伯陽(100~170)의 저술로 道家의 心身修練의 방식과 長生不老를
위하여 복용하는 丹藥의 제조법 등을 설명한 책으로 <周易參同契>라는 제목은 ‘周易’이
鍊丹術(神仙이 되는 妙藥의 제조법)과 道敎의 ‘道’가 서로 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주역참동계>는 明朝초기에 張本鎭(?~?)이 宋末∙元初에 兪琰(1258~1327)이 저술한
<周易參同契發揮(3편)>와 <周易參同契釋疑(3편)>를 合本하여 간행한 것을 底本으로 하여
世宗 23년(1441) 初鑄甲寅字로 印出된 것이다.
<주역참동계>가 초주갑인자로 간행되었다는 기록이나 실물은 지금까지 전혀 알려진 바
없어 本書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唯一本이며, 조선시대 초기의 道家思想 및 葬禮風俗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학술적‧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貴重本이다.
*初鑄甲寅字: 世宗 16년(1434) 鑄字所에서 만든 銅活字.
(15) 고려 십육나한도(제7 가리가존자) [高麗 十六羅漢圖(第七 迦理迦尊者)]
-보물 제1882-1호(2016.01.07)-
-고려 1236년 -비단에 色 -釜山 거주 개인 소장
이 나한도는 壯年의 比丘모습으로 파르라니 깎은 머리, 짙은 눈썹에 형형하게
빛나는 눈, 콧망울이 넓은 코, 꾹 다문 작은 입술에서 修行者로서 羅漢의 근엄한
성격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의자에 앉아 고요하게 사색하는 이국적인 모습의 수행자를 수묵담채로 담담하게
담아냈는데, 바위와 樹木을 배경으로 하는 고려 五百羅漢圖와 확연히 구분되는
도상적 특징이다.
잘려나간 畵記의 원문은 ‘國土[太平] 聖壽[天長] 太子[千載] 令壽[萬年]之願□
下□□ 景□□ 丙申□ 棟梁[隊正] 金[義人]’으로 보고 있어 이 작품은 國土의 太平,
國王의 長壽 등을 발원하며 丙申年에 그린 것으로 筆線과 색채, 표현방식 등으로
보아 丙申年(1236년)에 從九品 下級武官이었던 棟梁 金義仁 등 武人들의 주도 하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때는 蒙古의 兵亂이 있었던 위기상황으로, 國難 時 크게 베풀어졌던
羅漢信仰과 연관되어 제작된 사례로 그 역사적 의의가 있다.
이 불화는 고려시대 제작된 나한도와 16나한도 중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이며,
16나한도로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제15 阿伐多尊者와 이 작품이 유일하다.
현존하는 고려불화 중 13세기에 제작된 불화는 매우 드물고 특히 16나한도는 그 예가
거의 없어, 이 작품은 고려시대 16나한 신앙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라고 할 수 있다.
(16) 고려 십육나한도(제15 아벌다존자) [高麗 十六羅漢圖(第十五 阿伐多尊者)]
-보물 제1882-2호(2016.01.07)-
-고려시대 –비단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尊者의 年輪이 묻어나는 자애로운 눈빛과 짧게 드러낸 白髮과 흰 수염, 깡마르게
굴곡진 輪廓은 오랜 修行의 깊이와 高潔한 인품을 드러내고 있다.
고려시대 羅漢信仰은 특정시기에 국한되지 않고 전 시기에 걸쳐 유행하였으나,
현재 佛畵로 남아 있는 16羅漢圖를 비롯하여 제7 迦理迦尊者圖와 이 작품이
유일할 정도로 그 유례가 드물다.
畵題에 墨書로 ‘第十五 阿代多尊者’라고 적었으나, 無學大師의 儀禮集을 토대로,
원래의 화제 ‘阿伐多尊者’ 또는 ‘阿氏多尊者’를 後代에 옮겨 쓰는 과정에서 생긴
誤謬로 보고 있다.
이 작품은 尊者와 그를 侍奉하는 侍者 2인을 그렸는데, 老尊者는 竹節形
拄杖子(修行僧들이 지니고 있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여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작품은 화면의 餘白을 존중한 안정된 구도와 세밀하고 유려한 筆線, 사실적인
인물 묘사와 백색과 붉은색, 짙은 濃墨 등의 묘한 색채대비를 통하여 격조 높은
그림을 완성하였다.
특히 尊者의 의자 밑에 墨書로 ‘惠間(또는 惠閒)’이라고 作者名을 적어 놓았는데,
고려 16나한도와 오백나한도(보물 1883호)를 통틀어 작자명이 기록된 유일한
예로서도 주목된다.
제작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화면의 꺾임과 剝落, 後代의 修理 등 아픈 상흔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으나 현재 고려시대 13세기에 조성된 불화는 세계적으로 그 수가
많지 않고, 더구나 국내에 殘存하는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 존재만으로도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17) 고려 오백나한도(高麗 五百羅漢圖) -보물 제1883호(2016.01.07)-
-고려시대 1235년~1236년 –비단에 色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시대 羅漢信仰은 특정시기에 국한되지 않고 전 시기에 걸쳐 유행하였으나, 그 신앙의
내용을 佛敎繪畵라는 造形言語로 視覺化한 것은 몇 폭밖에 전하지 않는다.
오백나한도의 크기는 대체로 세로 55~60cm 내외, 가로 35~40cm 내외의 絹本 위에
그렸으며 대체로 야외의 岩山을 배경으로 깊은 산중에서 修行하거나 神通力을 부리는
극적인 모습으로, 이들 오백나한도는 남아 있는 畵記分析을 통해 乙未年~丙申年에 걸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畵風과 圖像 등으로 미루어 1235년~1236년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되며, 제작 주관자는 隊正 金義仁으로 확인된다.
光背와 器物, 袈裟의 條와 文樣 등에 화려한 金泥를 적극 사용한 점은 고려불화의 특징 중
하나로 볼 수 있으며, 암석의 중앙부를 비워 照光효과를 주는 등 李郭派 화풍이 가미되어
있어 고려시대 산수화의 경향을 이해하는데도 중요한 자료이다.
모든 작품에서 尊者의 차례와 尊名을 명시하여 圖像의 이해를 돕고 있고, 畵記를 통해
제작시기, 發願者, 발원목적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어 고려시대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18) 高麗 五百羅漢圖 中 제92 守大藏尊者 -보물 제1883호(2016.01.07)-
-고려시대 1235년 –비단에 色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왼편으로 얼굴을 드러낸 全身坐像의 나한은 金剛杵 문양의 袈裟를 입고 상감청자로
추정되는 사리병을 양손으로 받치고 의자에 앉아 병에서 하늘로 뿜어 나오는
瑞氣를 바라보고 있다. (*杵: 공이 저)
수묵에 紅白의 채색과 金泥를 섬세하게 베풀었는데, 고려 나한도에 인물과 光背 등
중요부위에 墨筆을 따라 다시 金泥로 鉤勒線을 남긴 것은 지금까지 唯一한 사례이다.
畵記: 國土[太平] 聖壽[天長] 令壽[萬年]之願 司宰□□ 敞□ 乙未□□ 棟梁[隊正]
金[義人]
*金剛杵: 佛敎儀式에 사용되는 불교 용구의 하나로, 杵는 인도 고대의 무기 가운데
하나이다. (*杵: 공이 저)
*鉤勒線: 윤곽을 가늘고 엷은 雙線으로 그리고 그 가운데를 채색하는 방법의 線 그림
(*鉤: 갈고리 구)
(19) 高麗 五百羅漢圖 中 제125 辰寶藏尊者 -보물 제1883호(2016.01.07)-
-고려시대 1235년 –비단에 엷은 色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왼편 얼굴을 드러낸 全身坐像의 羅漢은 우여임한 長衫 위에 袈裟를 입고
오른 손에 淨甁을 받든 채 둥근 구름 같은 모양의 韻頭皴法으로 그린 바위 위에
앉아있다. (*皴: 틀 준)
바위 아래는 정병에서 뿜어져 땅을 적시는 甘露水를 맞고 있는 瑞獸가 있고,
나한은 이 장면을 눈을 크게 뜨고 보고 있어 동물을 부리는 진보장존자의
神通力을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畵記: 國土[太平] 聖壽[天長] 太子[千載] 令壽[萬年]之願 將軍□ 垈下 高光
己未□ 棟梁[隊正] 金[義人]
*韻頭皴法: 산수화를 그릴 때 산, 바위, 土坡(흙으로 쌓아 올린 둑) 등의 입체감,
量感, 質感, 明暗 등을 나타내기 위하여 표면을 처리하는 類型的인 기법.
(20) 高麗 五百羅漢圖 中 제145 喜見尊者 -보물 제1883호(2016.01.07)-
-고려시대 1236년 -비단에 엷은 色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른편 얼굴을 드러낸 全身坐像의 羅漢은 白衫과 長衫 위에 袈裟를 입고,
양손으로 무엇인가를 잡은 채 너럭바위 위에 앉아 멀리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어 깊은 思惟에 잠긴 모습으로 구름을 부리는 尊者의 神通力을 표현한 듯 하다.
인물에는 강한 鉤勒線을 만들고 홍색과 백색의 眞彩를 가한 전형적인 구륵채색법을
사용하였으나 배경이 되는 바위와 圓形 頭光은 묵필과 수묵선염을 사용하여
대조된다. (*鉤: 갈고리 구 *勒: 굴레 륵)
畵記: 國土[太平] 聖壽[天長] 太子[千載] 令壽[萬年]之願 軍卿□ 將全□ 丙申
棟梁[隊正] 金[義人]
*白衫: 祭官의 祭服에 받침으로 껴입는 흰 빛깔의 홑옷. (*衫: 적삼 삼)
*眞彩: 진하고 강하게 쓰는 채색. 또는 그것으로 그린 그림.
*鉤勒法: 형태의 윤곽을 고른 선으로 먼저 그리고 그 안을 먹이나 채색으로 메우는 畵法
(21) 高麗 五百羅漢圖 中 제170 慧軍高尊者 -보물 제1883호(2016.01.07)-
-고려시대 1236년 -재료; 비단에 엷은 色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왼편얼굴을 드러낸 水墨渲染의 羅漢은 백삼과 장삼 위에 가사를 입고
禪定印을 한 채 너럭바위 위에 跏趺坐를 틀고 앉아 선정에 잠긴 모습이다.
나한의 오른팔 뒤쪽의 바위 위에는 警策과 香椀이 있고 香煙이 화폭 전체를
감돌고 있어 아득한 禪定三昧의 경지를 표현한 듯 하다.
頭光과 암석, 袈裟에 水墨渲染을 배합하였으며 채색은 입술과 백삼에만
사용하였다.
畵記: 國土[太平] 聖壽[天長] 令壽[萬年]之願 校尉□ 丙申□ 棟梁[隊正] 金[義人]
*禪定印: 부처가 수행할 때 禪定에 들었음을 상징하는 手印.
*警策: 坐禪하는 修行者가 졸거나 마음이 나태해져서 자세가 흐트러질 때 이를
바로잡아주기 위하여 사용하는 대나무나 갈대로 만든 납작하고 긴 막대기.
*渲染: 東洋繪畵의 技法으로 종이에 물을 먼저 칠하고 마르기 전에 水墨이나 채색을
가하여 표현 효과를 높이는 기법으로 붓의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은은한 표현 효과를 나타낸다.
(22) 高麗 五百羅漢圖 中 제357 義通尊者 -보물 제1883호(2016.01.07)-
-고려시대 -비단에 엷은 色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왼편얼굴을 드러낸 가부좌상의 羅漢은 백삼과 장삼 위에 양 어깨를 덮도록 가사를
입은 채 오른손은 如意를 잡고 왼손은 가슴 앞으로 맵시 있게 들어 올리고 있다.
인물의 衣褶을 표현하는 활달한 白描와 암석 등을 묘사하는 水墨渲染, 입술과
백삼에만 절제하여 사용된 채색은 나한의 품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慧軍高尊者와 유사한 圖像과 白描양식을 지닌 점에서, 비슷한 시기에 같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如意: 불교에서 說法, 講讀, 法會 할 때 講師가 威容을 갖추기 위한 用具로,
‘如意’는 뜻대로 한다는 뜻으로 손 모양을 한 麻姑手形과 靈芝를 닮은
雲形이 있다.
*白描: 古代 ‘白畵’에서 유래한 중국 회화의 기법으로 墨線만으로 對象을 묘사하면서
색채를 칠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23) 高麗 五百羅漢圖 中 제427 願圓滿尊者 -보물 제1883호(2016.01.07)-
-고려시대 1236년 -비단에 엷은 色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른편얼굴을 드러낸 가부좌상의 羅漢은 白衫과 長衫 위에 왼쪽 어깨를 덮도록
袈裟를 입고 너럭바위 위에 가부좌를 튼 채, 오른손으로 香爐의 손잡이를 잡고
왼손으로 향을 피우는 모습이다.
활달한 白描와 水墨渲染을 위주로 백삼에만 채색한 것으로 보이지만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裝潢에는 光緖 18년(1892/高宗 29년) 작품을 보수하면서 남긴 墨書가 있는데,
고려 나한도를 吳道子의 그림과 연결시키는 19세기의 인식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畵記: 國土大[平] 聖壽[天長] 太子千[載] 令壽万年 之願 金□ 智□ 丙申七月
棟梁隊[正] 金義人
*裝潢: 書畵의 표지장식. 裝은 장배 즉, 장정의 뜻. 황은 종이를 염색하는 것이나
못(池, 테두리를 하다)의 뜻도 있으며, 裝池라고도 한다. (*潢: 웅덩이 황)
*光緖: 丙子胡亂 이후 朝鮮에서 쓰던 淸의 年號(1875~1908)이다.
*吳道子: 중국 당나라 玄宗 때의 畵家 吳道玄으로 道子는 字이며 唐代 제일의 화가로
특히 佛畫에 뛰어났다.
(24) 함통6년명 청동북 (咸通六年銘 靑銅金鼓) -보물 제1907호(2016.09.01)-
-傳 慶北 –통일신라시대 865년 –재료 靑銅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절에서 사용하던 佛敎儀式具의 하나로 직경 31.5cm, 폭 10.5cm로 전체적으로 푸른 녹이
고르게 슬어 靑綠 빛을 띠고 있으며, 慶北지역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며,
통일신라 紀年銘 금고로 한국 금고의 기본형으로 일찍부터 주목 받아 왔다.
특히, 이 금고는 ‘咸通 陸歲乙酉二月十二日成內時(?)供(?)寺禁口’라는 제작과 관련된
銘文이 있어 통일신라 金屬工藝의 기준자료로, 咸通 陸歲 乙酉는 신라 景文王 5년(865)에
해당하며, 成內는 ‘이룬’, ‘이루다’의 吏讀式 표기이며, 명칭은‘禁口’였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청동북[金鼓]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工藝史的 의미가 크고, 표면에
특출하거나 화려한 문양을 사용하지 않고도 淡白하고 세련된 조형미를 만들어 낸
통일신라시대의 금속공예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의의가 크다.
(25)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金泉 葛項寺址 東∙西 三層石塔 出土
舍利莊嚴具) -보물 제1904호(2016.07.01)-
-경북 金泉 葛項寺址 三層石塔 출토 –통일신라시대 758년 –재료 金銅, 靑銅
–국립대구박물관 소장
사리장엄구는 사리를 佛塔의 舍利孔에 安置할 때 사용하는 容器와 함께 봉안되는
供養物 등을 통틀어서 가리키는 말이다.
1916년 갈항사 터의 동∙서 삼층석탑을 景福宮으로 移建 하던 중 발견되었는데 葛項寺는
통일신라 초 勝詮法師가 창건했다는 사찰로 東塔의 上層基壇 面石에 景德王 17년(758)
言寂法師와 그의 두 누이가 함께 發願하여 탑을 건립했다는 사실이 적혀 있는데,
사리장엄구도 탑의 건립과 함께 봉안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동탑의 사리병은 竹節形의 목과 꽃잎형의 굽을 달아내어 신라인들의 뛰어난
美的 感覺도 엿볼 수 있으며, 통일신라 感恩寺式의 殿閣形 사리기와 달리 壺形의
外函 안에 淨甁과 유사한 금속제 병을 사리병으로 봉안한 독특한 형식의 舍利器이다.
최근 보존처리 과정에서 작은 금속제 병에서 准提眞言 陀羅尼 1매가 발견되어 당시의
佛敎史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며 특히 동탑 상층기단에 기록된 건립연대를 통해
사리기의 제작연대와 造成主體를 알 수 있어 통일신라 사리기 연구의 基準資料가
되고 있다.
*准提眞言: 如意珠와 같아서 眞言을 외우고 그 뜻을 놓치지 않으면 기필코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陀羅尼: 한량없는 뜻을 지니고 있어 모든 악한 法을 버리고 한량없이 좋은 법을
지니게 한다는 불교용어.
(26)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益山 深谷寺 七層石塔
出土 金銅佛龕 및 金銅阿彌陀如來七尊坐像) -보물 제1890호(2016.02.22)-
-전북 益山 深谷寺 七層石塔 出土 –고려 말~조선 초 –재료; 金銅 –소유; 益山 深谷寺 소유/
관리; 王宮里遺蹟展示館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7구의 佛像은 불감의 앞쪽에서 阿彌陀如來와 觀音∙大勢至菩薩像이
발견되고, 뒤쪽에서 2구의 如來와 觀音菩薩과 地藏菩薩이 발견되었다.
이들 불상은 대체로 높은 肉髻、큼직한 蓮峰모양의 頂上髻珠, 잘록한 허리와 육감적인
신체표현과 감각적인 세부표현, 삼각형 모양으로 仰․覆蓮이 맞닿은 蓮花座, 원반모양의
귀고리, U자형으로 두껍게 늘어진 목걸이 등을 보이고 있다. (*髻: 상투 계)
이는 이 시기에 크게 유행했던 元․明代 라마불교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麗末∙鮮初期
소형 금동불상들과 양식적으로 相通하는 요소이다.
7구의 불상은 2개의 樣式群으로, 라마佛像樣式을 강하게 반영한 阿彌陀如來三尊像과
이들 양식을 수용하여 어느 정도 우리 식으로 변모시킨 4구의 佛∙菩薩像으로 구분된다.
이들 불상을 통해 麗末∙鮮初期 元∙明代 외래 양식의 傳來와 수용과정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하며, 출토지가 분명하고 7구의 불상이 모두 한 불감 내 온전한 형태로 발견되어
가치가 크다.
(27)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益山 深谷寺 七層石塔
出土 金銅佛龕 및 金銅阿彌陀如來七尊坐像) -보물 제1890호(2016.02.22)- (*龕: 감실 감)
-전북 益山 深谷寺 七層石塔 出土 –고려 말~조선 초 –재료 金銅 –소유; 益山 深谷寺/
관리; 王宮里遺蹟展示館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은 2012년 6월 深谷寺 七層石塔의 解體∙修理 時,
地臺石 윗면에 마련된 사각형의 홈(25.0×24.0cm, 깊이 18.0cm)에서 발견되었다.
불감은 밑판, 좌∙우측면판, 뒷판, 뚜껑 등이 각각 1판으로 제작되었고 門扉만 2판으로
제작되었다.
뚜껑은 지붕의 네 면의 모를 죽인 盝頂形으로 정상에는 2개의 고리가 달려 있다.
감실의 내면 중앙벽면에는 打出技法으로 阿彌陀如來說法圖를 나타냈고, 門扉에는
역동적인 金剛力士를 배치하였다. (*盝: 다할 녹/록)
*佛龕: 불상을 모셔 두는 방이나 집. (*龕: 감실 감)
(28) 순천 매곡동 석탑 청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삼존좌상(順天 梅谷洞 石塔 靑銅佛龕 및
金銅阿彌陀如來三尊坐像) -보물 제1874호(2015.04.22)-
-전남 順天 梅谷洞 삼층석탑 출토 –조선시대 1468년 –재료 金銅, 靑銅
–국립광주박물관 소장
보물 제1874호는 불감 1점, 불상 3구, 발원문 8매로 구성되었다.
順天市 梅谷洞의 三層石塔 1층 지붕돌 舍利孔에서 발견되었으며,
成化 4년(世祖 4년/1468)이라는 제작연대와 造成背景, 순천 別良里 竹寺의 승려 一禪을
비롯한 280여명의 施主者 명단을 적은 發願文도 함께 발견되었다.
불감은 팔작지붕 집 모양으로 기와와 雜像 등 건물의 구조를 충실하게 재현했다.
청동불감은 탑에서 유출되면서 임의로 수리되어 완전한 상태는 아니나 불감 안에 불상을
안치했을 경우 그 규격이 잘 맞고 殿閣形 불감이라는 형식적인 특징에서 1468년이라는
불상의 제작시기와 부합되며, 지붕의 곡선과 구조 등에서 독특한 특징을 보이는 작품이다.
(29) 순천 매곡동 석탑 청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삼존좌상(順天 梅谷洞 石塔 靑銅佛龕 및
金銅阿彌陀如來三尊坐像) -보물 제1874호(2015.04.22)-
-전남 順天 梅谷洞 삼층석탑 출토 –조선시대 1468년 –재료 金銅, 靑銅
–국립광주박물관 소장
順天市 梅谷洞의 三層石塔 1층 지붕돌 舍利孔에서 발견된 地藏菩薩, 阿彌陀佛, 觀音菩薩로
이루어진 阿彌陀三尊佛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 유행했던 구성형식을 따랐으며,
전통양식을 바탕으로 티베트식 불교미술 요소가 부분적으로 반영되었다.
發願文을 통하여 조성시기와 造成主體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5세기 불상과
불감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귀중한 작품으로 독특한 특징을 보이는 불감의 형식 등에서
가치가 크며 朝鮮初期 佛像硏究의 基準作이 되고 있다.
(30) 고려 수월관음보살도(高麗 水月觀音菩薩圖) -보물 제1903호(2016.07.01)-
-고려 후기 –비단에 色 –소유; 성보문화재단/관리; 호림박물관
圖說내용은 <大方廣佛華嚴經> <入法戒品>에 근거하며, 입법계품은 善財童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53명의 善知識을 찾아 가는 남방순례 중 28번째 觀音菩薩을
방문하여 보살도를 묻는 장면이다.
화면의 중심에는 補陀洛迦山 금강암좌에 반가좌로 앉은 관음보살을 크게 배치하고,
우측 하단에는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合掌하며 공손히 보살도를 묻는 선재동자를
조그맣게 배치하여 두 주인공 사이의 심오한 공간감을 나타내었다.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프를 이루는 靑竹∙바위∙정병 등 경물의 표현과 배치 등은
고려 후기 水月觀音圖의 전형적인 圖像이다.
관음보살의 두 손은 길게 念珠를 드리웠는데 두 손에 염주를 들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몸체는 모두 金泥로 칠하고 윤곽선과 이목구비의 描線은 엷은 먹선으로 그렸다.
국내에는 몇 점 남아있지 않는 예이며 비록 剝落되고 손상된 부위가 後代에
수리되었으나, 고려시대 수준 높은 佛敎繪畵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先人들의 마음, 보물이 되다-新國寶∙寶物展(3-2); 2부 記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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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많았네요 실제로 가 보아도 이 보다 더 잘 알수없었 정도의 자세한 설명 그저되는게 아닌데 늘 감사한 마음으로 보고있습니다 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