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1악장
[ 도스토예프스키와 소설 <죄와 벌> ]
순조 21년, 나폴레옹이 세인트 헬레나에서 죽고 보들레르가 파리에서 태어나던 1821년, 도스토예프스키는 모스크바에서 출생했습니다.
* 도스토예프스키가 태어난 병원, 멀리 도스토예프스키의 입상이 보입니다

모스크바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생가를 찾아가자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름 붙은 거리를 물으면 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거리는 2개가 있어서 하나는 가(街)요 하나는 소로(小路)입니다. 두 길이 T자형으로 맞붙어 있습니다. 이 삼거리 지점이 작가의 생가 위치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4번지는 기다란 철책 안으로 보리수가 숲을 이룬 정원이 보입니다. 그 큰 나무들 너머에 8개의 도리아식 원주가 복판에 선 황색 2층 건물이 서 있습니다. 이것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버지가 의사로 일하던 마리아 병원입니다.
빈민들을 위한 자선병원이었습니다. 1806년 세워졌다는 것인데, 도스토예프스키 시대 이후로도 줄곧 병원으로 남아 현재는 폐결핵연구소를 겸한 결핵병원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건물 왼쪽으로 정원 가에 3층짜리 별동이 하나, 도스토예프스키 기념관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어릴 때 병원 부속의 관사였습니다. 철책 끝의 정문 문기둥에 도스토예프스키의 부조가 걸리고 길가 쪽 벽에 그가 이 집에서 태어났다는 명판이 붙어 있습니다.
* 기념관내의 유물

도스토예프스키 일가는 아래층의 현관방과 방 셋을 썼습니다. 기념관 건물 바깥의 정원은 병원 환자들의 그림자도 없이 한적합니다.
어린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버지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산책 나오는 환자들과 자주 얘기를 나누던 정원입니다. 이 빈민병원의 살풍경한 정원, 어두운 얼굴의 병자들의 무리 속에, 외계와의 접촉을 끊고 놀이 친구도 없이 청춘은 폐쇄된 채 심성은 부자유스럽게 어린 도스토예프스키는 자라고 있었습니다.
* 기념관내의 목상

문호의 유시(幼時)는 이런 음울한 환경 속이었고, 이것이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원에는 병원 건물 현관 정면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석상이 높다랗게 서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입상은 러시아에서 유형살이를 했던 세미파란치스크 외에는 이 곳밖에 없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6세 때인 1837년 육군공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모스크바의 생가를 떠나 수도 페테르부르크로 향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때부터 60세로 일생을 마칠 때까지 10년 간의 시베리아 유형생활을 제외한 34년 동안 페테르부르크에 살면서 옮겨 다닌 집이 20군데나 됩니다.
그 집들이 현재 대개는 남아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선 블라디미르 대로 11번지. 이 집이 19세기 러시아 문학사상, 그보다도 세계 문학사상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탄생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이 이 아파트의 모퉁이 2층, 창문이 블라디미르 대로 쪽으로 난 방에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시베리아 유형에서 풀려난 뒤 1863년 두 번 째 유럽 여행에서 고국의 수도로 돌아와 자리잡은 곳은 현재의 카즈나체이스카야 가(가). 이 가운데서도 7번지가 1864년 8월부터 1867년 1월까지 2년 반을 거처하면서 <죄와 벌>을 쓴 '아론킨 관(館)'입니다. 이론킨이라는 상인의 소유인 이 아파트의 3층 13호실을 빌려 쓰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름이 소(小) 메산스카야 가이던 카즈나체이스카야 가는 <죄와 벌>에 자주 등장하는 센나야 광장 근처입니다. 이 길의 한 모퉁이에 <죄와 벌>이 탄생한 집이 있습니다. 당시 상인이나 직인(職人)들이 다닥다닥 모여 살던 집이라는데, 외양으로는 지금도 아파트로 당당합니다.
* <죄와 벌>의 집필 아파트

"찌는 듯한 무더위가 한창인 7월 초순의 어느 날 저녁 무렵, 한 청년이 S골목에 있는 자기의 조그만 셋방에서 한길로 나와 느릿느릿 망설이는 듯한 발걸음으로 K다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은 서두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 작품이 쓰여진 1865년 페테르부르크에는 기록적인 맹서(猛暑)가 들이닥쳐 7월 기온이 40도까지 치솟았다고 합니다.
<죄와 벌>은 이렇게 첫줄의 날씨 하나에서부터 사실 그대로입니다. 이 작품의 무대가 되는 거리나 다리, 건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더러는 알파벳 두문자(頭文字)만으로 적기는 했어도 하나하나가 다 실제의 이름입니다.
이 소설책 한 권과 페테르부르크의 지도 한 장을 들고 나서면(거리 이름들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작품의 줄거리를 현장으로 좇아갈 수 있습니다. <죄와 벌>은 실재성의 소설이요, 토폴로지(위상기하학)의 문학입니다.
세계 문학사상 어느 실제 인물보다도 유명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헤매던 거리를 따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라도 된 듯이 즐거운 일입니다. 그 무대의 현실성으로 하여 라스콜리니코프는 이 도시에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죄와 벌>의 주무대는 네바 강변의 옛 해군성 건물에서 방사성으로 뻗은 두 길, 고로호바야 가(현재의 게르첸스키 가)와 보즈네센스키 대로(현재의 마이오로프 대로) 사이의 삼각지대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모이카 운하와 사도바야 가 사이에 집중되어 있고, 이 지대를 지나가는 에카테리나 운하(현재의 그리보예도프 운하)가 주획이 됩니다. 소설에 보면 이 작품을 쓴 작가 자신의 집이 무대장치의 센터 격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집 근처의 자기가 늘 다니던 길, 늘 보던 건물들을 작품 속에 박제해 넣었습니다. 자신의 생활 반경이 곧 라스콜리니코프의 행동 반경인 셈입니다.
소설에서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셋집이 S골목(당시의 스토랴르누이 골목, 지금의 푸르제발리스 가)에 있는 것처럼 되어있지만 실은 S골목과 그라즈단스카야 가의 모퉁이집이고, 정문은 그라즈단스카야 가 쪽에 나 있어 주소는 이 거리의 19번지입니다.
* 라스콜리니코프 셋집의 입구

건물은 지하층이 붙은 노란 벽의 5층 짜리입니다. 문도 없이 터널 같은 정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중정(中庭)이 있고 정문 쪽의 지붕 꼭대기에 창고 같기도 하고 초소 같기도 한 문짝이 2개 달린 다락방이 얹혀 있습니다. 이곳이 "그의 방은 높은 5층 건물의 지붕 위에 있어서 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다락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소설에 쓰인 라스콜리니코프의 셋방입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자기 방에서 내려와 노파를 죽일 도끼를 훔치는 수위실은 어디 있을까요. 정문에서 안뜰로 들어오는 터널 왼쪽에 원래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습니다. 이 계단 입구가 수위의 방이었습니다.
당시의 계단도 벽 안으로 들어가 버렸지만, 그 중 맨 아래의 첫 돌계단 하나가 벽 바깥으로 삐죽 나와 있습니다. 무슨 범죄의 단서 같습니다. 벽만 허물면 옛 계단이 나올 것이고, 계단을 따라 꼭대기로 올라가면 살인범 라스콜리니코프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집에서 옛 S골목으로 도로 나옵니다. K다리(코쿠시킨 교) 앞에서 그리보예도프 운하(옛 에카테리나 운하)를 왼쪽으로 끼고 그리보예도프 가를 따라 내려갑니다. 마이오로프 대로 조금 못미처 운하변에 소냐의 집이 있습니다. 소설에 쓰인대로 '낮은 3층 집'입니다. 소설에서는 녹색 건물로 되어 있는데 누런색인 것이 다릅니다.
* 그리보예도프 운하

마이오로프 대로가 운하와 연결된 다리가 보즈네센스키 교. 소설에서 아프로시냐란 소녀가 이 다리에서 운하에 투신합니다. 좁은 목조의 다리는 양쪽 끝 네 모퉁이를 돌사자가 지키고 있습니다.
이 다리를 건너서 이번에는 운하를 오른쪽으로 끼고 걷는 길 이름은 같은 그리보예도프 가입니다. 운하가 크게 굽이를 한 번 돌고 난 뒤 다리 하나를 다시 막 지나기 직전에 한 건물 정문 앞에 '104'라는 번지수가 커다란 글씨로 문패처럼 나 붙어 있습니다. 밤에는 번지수에 불이 켜지는지 등 같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죽이게 되는 고리대금업 노파의 집이 바로 여기입니다.
소설에서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집에서 이 집까지가 '730보'로 되어 있습니다. 정문은 이 집도 터널식입니다. 비뚤어진 4각형 모양의 안뜰이 누런 색의 높은 6층 건물에 둘러싸여 깊은 우물 안 같습니다. 안뜰 뒤편으로도 출입구가 있어서 바깥은 한길입니다.
"건물의 한쪽 벽은 개천에 면해 있고, 다른 한쪽 벽은 xx거리에 접해 있었다"는 소설의 묘사와 일치합니다. 노파의 방은 오른쪽 건물입니다. 조명이 침침한 계단을 녹슨 철책 난간을 짚고 오르면 소설 속의 '어둡고 좁은 뒤 층계'입니다.
돌계단은 많이 닳아 있습니다. 겉보기보다는 안이 아주 많이 낡은 집입니다. 회벽은 위쪽에 백색, 아래쪽에 청색 칠을 했습니다. 으스스합니다. 품에 도끼라도 품은 듯 가슴이 두근거려지는 것 같습니다. 노파의 방은 4층이었습니다.
<죄와 벌>에는 센나야(건초라는 뜻) 광장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현재 마르(평화) 광장으로 이름이 바뀐 이 광장은 K다리(코쿠시킨 교)에서 사도바야 가로 접어들면 동쪽으로 바로 길가에 있습니다.
<죄와 벌>에서 죄를 고백하고 난 라스콜리니코프는 이 광장 한복판에서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입맞춘 뒤 경찰서로 향합니다. 광장은 넓습니다. 모든 죄인을 포용할 만큼 아주 가슴이 넓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집(기념관}은 쿠즈네츠니 가와 도스토예프스키 가의 모퉁이에 있는 반지하가 1층인 5층짜리 건물입니다. 건물 모서리에 층마다 창문이 나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846년에 이미 이 집에서 한 번 산 적이 있습니다.
* 도스토예프스키가 마지막 살던 집

그 때 <이중인격>이란 작품을 썼습니다. 1878년에 입주한 것은 두 번째가 됩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사는 동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기필(起筆)하고 완성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살던 방 현관 입구에는 그가 쓰던 검은 실크 해트, 우산, 지팡이 등이 놓여 있습니다. 만지면 그의 체온이 전해질 것만 같습니다. 응접실에는 도스토예프스키가 피우다 남은 담배 개비와 담뱃갑이 남아 있습니다. 주인이 잠시 자리를 뜬 것 같습니다.
서재. 책상 위에는 2개의 촛대와 잉크, 스탠드, 철필, 마지막 일하던 <작가의 일기>의 교정쇄, 그가 즐려 읽던 푸시킨 선집 등이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홍차가 한 잔.
* 실내

* 실내, 생전에 쓰던 모자가 보입니다

* 도스토예프스키의 묘지

[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

대소설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는 인간의 운명을 응시하는 고뇌와 회의의 작가였고 인간심리의 투철한 통찰자였습니다.
그의 문학은 무슨 병인(病因)이라도 찾듯이 인간의 심층을 단층촬영하고, 도관(導管)을 매설하기 위해 도표를 굴착하듯 사람 속을 파헤칩니다.
소설 <죄와 벌>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정의 불화와 경제적 어려움 등 극심한 괴로움과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집필된 것입니다. 가난한 학생인 주인공 라스콜니코프가 선택된 강자는 인류를 위해 사회의 도덕률 위에 선다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고리대금업자인 인근의 노파를 도끼로 살해합니다.
그러나 그는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되고, 이러던 중 자기 희생과 고뇌의 삶을 사는 창녀 소냐를 만난 후 정신적으로 감화되면서 마침내 자수하고 시베리아 유형의 길을 떠난다는 내용입니다.
작가는 기독교적인 사랑과 인종(忍從)사상을 지니게 되는 사상의 변화과정을 납득시키고, 서구적 합리주의를 죄로 처단하려는 의도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하나 <죄와 벌>은 이러한 의도를 넘어서서 그 당시 단절된 사회 속에서 미해결된 인간성 회복에 대한 강력한 소망을 호소하는 인도주의적인 작품으로 평가되었습니다.
*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2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