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필과 제자 김준호는 신학교 기숙사로 사용하던 건물에 함께 살았는데 겨울인데도 온돌방에는 불을 때지 않아서 뼈저리게 차가왔다. 그렇게 살면서도 제자 김준호는 다 떨어진 헌 누더기 옷을 입고 깡통을 들고 하루 종일 집집으로 구걸 다니며 걸식탁발을 하였다. 저녁 늦게야 집이라 해서 돌아왔지만 누구 하나 반가이 영접해줄 사람도 없었고 하룻밤 따뜻하게 쉴 구석도 없었다. 밖에는 계속 눈이 내리는데 밤은 열시가 지났다. 그때까지 자리에 눕지 않고 방구석에 묵묵히 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이현필의 눈치를 보니 눈 오는 이 밤에 배고프고 헐벗은 겨레들의 가련한 얼굴들이 자꾸 머리에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이현필은 제자 김준호를 나지막이 불렀다.
“준호, 이렇게 눈 오는 밤에 가장 헐벗고 굶주린 사람이 있을 것 아닌가.”
김준호는 선생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했다.
“오늘 종일 다니며 본 사람들 중에 양림 다리 밑에 누워 앓고 있는 거지가 있습니다. 덮을 것도 없이 이런 추위 속에 얼어 죽을지 모릅니다.”
제자의 말을 듣자 이현필은 방구석에 있던 단 하나 밖에 없는 이불을 김준호 쪽으로 밀어 보내면서, “준호, 이것을 가지고 가서 덮어주고 오시오”했다.
눈 오는 겨울밤 선생과 제자 둘이서 덮고 지내는 이불마저 남에게 주라는 것이었다. 김준호는 이내 후회가 되었다.
‘내가 어째서 주책없이 그런 대답을 했던가!’
김준호는 후회가 되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할 수 없이 선생이 시킨 대로 이불을 메고 눈에 미끄러지면서 다리 밑의 병든 거지에게 덮어주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 다음 날에 가서 보니 그 이불은 건강한 다른 거지가 와서 빼앗아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