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 성도는 ‘자아'를 ‘특별 관리 대상’ 으로 두어 스스로경계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서 욥은 아주 독특하고 재미있는 표현으로 하나님께 항변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내가 바다니이까 용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여기에서 ‘바다’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바다’ 혹은 ‘큰 강’ 을 일컫는 말입니다. 문제는 바다가 되었든, 큰 강이 되었든 이것은 항상 사람들의 특별 관리 대상이 된다는 점입니다. 큰 강이 범람한다는 것은 생명과 옥답을 함께 잃는위험한 일입니다. 또 바다에 해일이 일어나 민가를 덮치는 일 역시 위험성에서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과연 욥 자신이 그렇게 바다나 큰 강처럼 방파제나 둑을 쌓아 특별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특별 관리 대상이 되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혐의가 욥에게 적용될 리 만무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그러한 혐의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다와 같고, 바다 괴물 같다는 의미에서가 아닙니다. 언제든 그렇게 돌변할 수 있다는 가변성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에는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되지는 못합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사실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위대한 일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 나라 일을 대적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와를 보십시오. 한갓 아녀자에 불과한 그였지만 인류에게 죄와 죽음을 가져오는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아간을 보십시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아이성 전투에서 이스라엘에 무참한 패배를 안겨주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한 사람이지만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러 놓을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지금도 교회 곳곳에는 마치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온 연못의 물을 흐리듯 흐려놓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힘이란 사실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혐의를 갖지 않으신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이러한 혐의를 두고 있어야 합니다. 지혜자 아굴은 혹시라도 자기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하거나 반대로 배가 고파서 도적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했습니다(잠30:8,9). 또 본서의 주인공인 욥 자신도, 혹시 자기 자식들이 마음으로라도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노심 초사하는 마음으로 번제를 올리며 경계했습니다(1:5). 바로 이와 같은 마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죄와 거리가 먼 생활을 한 것은 물론이요, 당대의 의인과 지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역시 오늘부터라도 자기 자신을 특별관리 대상으로 두어 스스로를 부단하게 경계하고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관리한 만큼 여러분의 신앙 인격은 도약하게 될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