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진성호 기자와 열린우리당 김재홍의원(열우당 언론개혁팀 담당)과의 악연
조선일보 블로그에서 퍼옴
악연(惡緣)이란 게 있다. 김재홍 열린우리당 의원과 나의 관계가
그런 것 같다. 지난주 발매된 시사저널이 김재홍 의원과 내
인물사진까지 실어가면서 김의원과 나의 ‘과거사 논쟁’을 보도했다.
그 글을 읽은 이들이 여기저기서 나에게 이 기사를 본
소감을 애기해준다. 궁금한 점도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내 블로그에서 그 때 이야기 한번 해볼까 싶다. ]
김 의원과 나,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암울했던 그 시절, 80년대. 화염병 시위는 잊혀져가는 풍경이다.
그 시절, 전두환 정권 아래서 나는 김재홍 의원과
잘못된 만남을 가지게 됐다.
화면은 다소 회색빛의 80년대로 돌아간다. 1982년 가을
서울대 도서관 내에 위치했던 대학신문사가 무대다.
당시 김재홍 의원의 신분은 대학신문 대학원생 편집국장.
나는 학부 학생기자. 김재홍 의원과의 기억은 대부분 나쁜 것이다.
그에 대한 대표적 이미지는 빨간 사인펜을 쥐고
우리 기사를 뜯어고치던 모습이다.
물론 김 의원 본인의 잘못도 있지만, 사회와 대학,
그리고 직위가 갖는 구조적인 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도 나는 김재홍 이란 이름을 들으면 전두환 정권이 떠오르니, 당시에 대한 개인적 기억이 강하긴 강한 모양이다.
대학신문 검열관 김재홍?
나는 81학번이다. 전두환 정권 하에서,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다. 당시는 학내 데모는 엄두도 못내던 시절이었다.
데모 시작 1분이 채 안돼 학교 잔디밭에 언제나 앉아 있던
‘짭새’(학내에 상주하던 경찰을 우리는 이렇게 불렀다)들이
당장 달려가 주도자를 체포했다.
1981년 서울대 대학신문은 정간되고, 82년 복간되면서
아예 학생 수습기자 채용 시험도 치지 않고 추천으로 뽑아 운영했다.
당시 이 일을 맡은 이가 김재홍 의원이다.
그러다 82년 2학기 다시 시험으로 학생기자를 뽑았다.
그 때 난 경영학과 2학년생이었고, 대학신문사 시험을 봐 들어갔다.
지금은 판사, 기자, 화가 등등으로 변신한 학부 기자 동기생들과
함께 시작한 학생기자 생활.
김재홍 열린우리당 의원
당시 김재홍 편집국장이 한 일은 학부 기자들이 쓴 글을
데스크보는 기술적 업무였는데, 중요한 일 중 하나는
(군사정권이나 대학 당국과 관련해서) ‘문제기사’를
고치는 일이었다고 당시 학부 기자들은 회고한다.
물론 학생 기자의 글을 해직 기자 출신 대학원생이 손보는 일쯤
그리 힘든 것이 아닐 지 모르지만 당시는 조금만 정권을
비판해도 정권이 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김 의원은, 좋게 말하면 교수와 학생기자 사이의 ‘조정자’이고,
나쁘게 말하면 정권과 대학당국의 앞잡이 노릇이었다.
수없이 많이 김 의원과 학생기자들은 싸웠고, 관계는 점점 나빠져갔다.
그러나 김 의원으로선 불리할 게 없는 싸움이었을 지 모른다.
학생기자는 기자이기 이전에 학생이라는 신분상 이유로
김재홍 의원과는 싸우다가도 주간 교수님이나 자문 교수님들
이야기에는 약했다.
또한 학생기자들은 대개 4학년으로 올라가면 개인적인 학업과
취업 문제 등으로 학보사를 떠났기에 그로선 유리한 측면도 있었다.
나 역시 1년 반 정도 학생기자를 하다 4학년이
되면서 학보사를 그만두었다.
"왜 그 사람이 언론개혁을?"
대학신문사 편집국장을 하면서 (정권이나 대학당국 차원에선)
큰 문제 없이 일을 마친 김 의원은 그 일을 하면서
서울대 정치학과서 박사 학위를 얻었다.
당시 그를 가르쳤던 한 교수는 지난 봄 한 술자리에서,
김 의원에겐 인간적으로 환멸을 느낀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에서 김재홍 의원과 같은 시절,
대학원생 생활을 했던, 현 서울대 교수는 “왜 김재홍
같은 이가 언론개혁 앞장을 서지?”하고 말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후 나는 조선일보 기자가 되었고,
그는 동아일보에 복직했다.
그렇게 살다 그는 경기대 교수를 하면서 TV토론 등에 나와
여권을 지지하는 발언을 자주 하는 대표적 ‘어용교수’
(386은 이런 표현을 좋아한다)로 한번 더 변신했다.
그리고 올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의원이 되었다.
또 변색(아니 본색)이 됐다.
그리고 올해 5월 나는 김재홍 의원과 이번에는
TV토론 패널로서 격돌했다.
MBC TV ‘100분토론’의 ‘왜 언론개혁을 말하는가’ 편에서
나는 손석춘 한겨레 논설위원과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
그리고 김재홍 의원과 소위 ‘언론개혁’을 주제로 토론을 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토론이 시작되기 전,
분장실에서 만난 김재홍 의원과 나는 이상하게도
(아니 이게 정상일지 모르지) 대화를 전혀 나누지 않았다.
대신 손석춘 위원과 박형준 의원과는 많이 얘기했다.
당시 대학신문 시절 김재홍 의원과의 악연을 이야기 하니,
손 위원이나 박 의원은 놀란 표정이었다.
토론 중 김재홍의원과 나는 필연적으로 격돌했다.
토론 후 박형준 의원은 내가 토론에서 대학신문 시절
이야기를 꺼낼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고도 했다.
언제나 '언론자유 탄압자' 편인가
물론 김재홍 의원도 5공화국이란 시절이 낳은 피해자일 수도 있다.
개인 과거사만 가지고 비난하는 것도 어른스런 일은 아닐 듯 싶다.
그런데 정작 내가 불쾌한 것은 김 의원의 과거 행적이 아니다.
현재 진행중인 그의 행동이다. 그는 열린우리당 의원이기
1년 전인 지난해 2월 ‘국민의 힘’이란 친노 홍위병 단체 모임에
발제자로 나와 ‘언론개혁’을 논한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논리가 똑같은 것 같다.
신문사 소유지분을 제한하는 수치까지 변한 게 없는 듯 싶다.
그런데 그는 시민단체들 여론을 청취해서 언론개혁 법안을
만들겠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한다. 이미 결론 다 내 놓고
의견 수렴하겠다는 말인가.
결국 세계에 유례가 없는 악법을 만들어 열린우리당 비판하는
조중동 잡겠다는 얘기 아닌가. 그가 들이대는
독일 귄터위원회 관련 수치(40%를 축소해 25%로 말함)도 틀린 것이다.
그는 공개적인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이런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
알고 하는 것인지 모르고 하는 것인지.
알고 하면 나쁜 사람이고, 모르고 했다면 무식한 사람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런 분이 열린우리당 언론개혁을 주도한다면서
국회 커뮤니케이션 연구회인가 하는 모임 회장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그의 주장이 너무 튀어서인지 열린우리당 내부나
일부 시민단체, 안티조선 진영에서도 비판 목소리
(대표적인 이가 김동민 교수 등)가 나온다고 한다.
전두환 정권 하의 김재홍 국장이나 노무현 정권 하의
김재홍 의원이나 변하지 않은 점이 있긴 하다.
그것은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역할에 앞장선다는 점이다.
5공 하에서 그는 대학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금은 조중동으로부터 언론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이른바 언론개혁을 주도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재홍 의원과의 악연은 좀더 지속될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인간적으로는 그를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싶다.
그리고 과거 악연보다는 현재 진행중인 문제를
감정이 아닌 논리로서 대처해야지.
오 악연은 이제 그만....
첫댓글 이놈 안면 철판은 아마도 탱크 하나 만들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