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 결정 후회 기쁨
신선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기분 좋게 병아리난초가 살고 있는 그 바위로 갑니다. 주차를 위해 병아리 집을 슬쩍 스치듯 지나는데 바위 위에 드리운 분홍빛들이 예년만 못합니다. 주차를 하고 마주하니 더 실망스럽습니다. 해거리를 하거나 가뭄으로 몇몇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합니다. 접사렌즈를 들이대니 큼지막하게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평소 좋아하지 않는 구도라 50mm 렌즈로 교환을 합니다. 정확하게 마운트를 했는데도 정위치로 들어가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습니다.
탈거 버튼을 몇 번 누르니 정상 장착은 되었는데 빠지지를 않습니다. 하루종일 50mm 렌즈 하나로만 버텨봅니다. 일찍 탐하기를 마무리 짓고 평소 자주 가는 카메라 수리점으로 갑니다. 온갖 시도를 하여도 꿈쩍을 않습니다. "렌즈 아래를 부숩시다. 내가 부속을 구해서 손봐 줄거니까." 부수면 쉽게 빠진다는 말에 카메라 수리점 사장님의 제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동의를 합니다. 이때 나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으로 악몽이 시작됩니다.
전지가위로 렌즈 아랫부분의 플라스틱을 잘라내고 카메라 마운트와 렌즈 마운트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말과는 달리 꿈쩍도 않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원인조차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제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 상태로 캐논으로 가져 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렌즈 마운트에 쇠톱질을 합니다. 뻰찌를 물려서 뜯어 냅니다. 바라보고 있는 카메라 주인은 스트레스 지수가 끝까지 치솟습니다.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맡겨놓고 집으로 옵니다. 초정밀 부품으로 이루어진 카메라를 쇠톱으로 자르고 뻰찌로 뜯어내는데 온전할까 의문이 듭니다. 스트레스는 폭발 직전까지 다 달았습니다. 그렇다고 수리점 사장님께 책임을 돌릴 수도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집으로 향하는데 5~6분 후 전화가 울립니다. 제거를 하였으니 다시 와서 30분 정도만 기다렸다 가져가라는 연락입니다. 드디어 수리 완료입니다. 카메라를 받아 들고 집으로 가다가 간단하게 저녁으로 국수를 주문하고 카메라 전원을 켭니다. 기우가 현실로 나타납니다. 전원이 들어오질 않습니다. 배터리를 완충된 것으로 갈아 끼웁니다.
두 개를 갈아 끼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다 뷰파인더에는 전원이 들어옵니다. 하나 둘 문제가 나타납니다. 다음날 다시 카메라를 맡기고 옵니다. 오후가 되어서 다되었다고 찾아가라 합니다. 쇳가루를 다 불어 냈으니까 이제 괜찮을 거라고 혹시나 또 이상이 생기면 가져오라 합니다.
이틀 후 제주를 갑니다. 카메라가 미쳐서 날뜁니다. 초점 커서가 움직이질 않습니다. 격자 표시도 지 맘대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합니다. 사진의 날자가 일부는 현재 시각 나머지는 타임머신을 타고 1999년 12월 31일로 과거로의 여행을 다녀옵니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카메라가 돌았습니다. 나도 따라 돌지경입니다. 다시 카메라 수리점으로 가져오라 합니다. 사장님과 마주 합니다. 카메라 상태가 너무나 심각하여 캐논 본사로 올려야겠습니다. 수리점 사장님 실력을 못 믿는 게 아닙니다. 캐논의 최신 장비의 힘을 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택배로 캐논 본사로 보냅니다.
이틀이 지나고 답답한 마음에 담당자에게 전화를 겁니다. 도대체 무슨 작업을 하였길래 쇳가루가 이렇게 많냐고 묻습니다. 쇠톱질을 했다고 이실직고합니다. 고장의 원인을 특정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쇳가루가 기판으로 들어가서 회로에 숏터를 일으키는 게 아닌가 추측된다 합니다. 이런 총체적인 고장을 본적은 처음이라 합니다. 수리비로 일백 수십 만 원이 들어갈 수도 있다 합니다. 중고 기계값입니다. 기가 막힙니다. 마음을 비우기로 합니다. 받아들일 준비를 합니다. 월요일쯤 전화가 올 텐데 제발 청소만으로 무탈하게 정상 작동되기를 마음으로 빕니다.
예비 카메라를 들고 탐하기를 나섭니다. 모든게 손에 익지 않아서 찍는둥 마는둥 합니다. 월요일도 초조함으로 꽉 채웁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월요일 퇴근 시간 전 캐논 담당자에게 전화를 합니다. 카메라 이곳저곳으로 퍼진 쇳가루를 제거하고 점검을 끝냈다 합니다. 10여분 동안 수리 상황을 설명을 듣습니다. 여기도 쇳가루 저기도 쇳가루 쇳가루 쇳가루 이야기만 들은 것같습니다. 현재는 정상 작동이 잘 되어 기능에 문제가 없고 오류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합니다. 내일 오전까지 정상 작동 되는지 지켜보겠다 합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점심시간이 30여분이나 남았는데 엄청난 허기가 몰려왔지만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서울 캐논 AS 라고 뜨면서 휴대전화 벨이 울립니다. 하루 동안 작동시켜 보고 이상이 없어서 택배로 보낸다 합니다. 사용하다 다 제거하지 못한 쇳가루가 다시 나와서 말썽을 부릴 수도 있다 합니다. 수리비가 기십만 원 나왔지만 감지덕지 아깝지 않습니다. 화요일 오전 택배 아저씨의 사진이 전송되어옵니다. 우리 아파트가 아닙니다. 본사 전산 오류로 잘못 발송 되었다합니다. 부근이니 아파트로 오겠다 합니다.
카메라가 드디어 내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뽁뽁이를 2m쯤이나 감아서 포장을 했습니다. 돌돌 감긴 뽁뽁이를 풀어내는데도 제법 긴 시간이 걸립니다. 정상 작동이 됩니다. 기능상 이상은 없어 보입니다. 새 카메라를 구입한 듯 기쁩니다. 난 생 처음 가는 백두산 탐사길에 마크 4와 함께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애써 주신 캐논 담당자에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첫댓글 병아리난초 즐감합니다
카메라 때문에 애쓰셨네요
올해는 저곳의 병아리난초 해걸이를 한건지 빈약하네요~
카멜 때문에 신경 많이쓰셨겠어요
정상적으로 작동된다니 다행입니다~~
캐논 써비스쎈타를 이용하세요
절벽 돌틈의 병아리난초 멋스럽고 예쁘네요.
이곳의 병아리난초는 지고 있더군요.
즐감합니다.
카메라때문에 스트레스 지수가 많이 올랐군요
척박한 환경에서도 곱게 피어 자라는 모습이 대견스럽네요.